변화와 전투 (마17:1-13)
본문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를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세 제자는 거기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하신 것과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하시는 것을 본 것이었습니다. 세 제자는 그것이 너무 황홀하고 놀라워서 예수님에게 그곳에 초막을 짓고 그냥 거기서 살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의 궁궐에서 사는 것 보다 그 변화산의 초막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와같은 고백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고백과 같은 고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와같은 고백을 위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셨는지도 모릅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세상과 싸워야 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변화산의 초막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저들의 제안에 동의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변화산의 초막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을 버릴 수 있는 능력도 목적이었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의 초막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원하신 것이었지 실제로 변화산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눌러 사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같은 능력을 가지고 하여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으로 내려가 세상의 온갖 악한 것과 불의한 것과 더불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전투이었습니다. 세상과의 전투, 온갖 불의와 악과의 전투, 마귀와의 전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변화는 바로 전투를 위한 무장이었던 것입니다. 변화산에서의 그 황홀한 체험, 그리고 그 때문에 세상의 궁궐보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초막이 더 좋다는 고백은 세상과 싸워야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무장중에 하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중에 세 종류의 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산 아래의 교인입니다. 저들은 평생을 교회를 다니지만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 중 상당 부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12명중 9명이 변화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 비율이 지금도 맞는 것 같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 4명중 3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님 만남의 체험 즉 성령님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없이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교회에 깊이 관여하게 되거나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교회생활을 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부적을 가지고 다니듯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랜 습관을 통하여 주일날 교회라도 가지 않은면 웬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기 때문에 부적을 쓰듯 주일날 한 번씩 교회를 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냥 교회에 다니면 좋은 이야기를 듣고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신 수양과 인격 단련 차원에서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 속에 그와같은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구지 예수만 믿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정도의 목적은 불교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고 유교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종교는 다 마찬가지다라는 종교다원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교회안에 있는 인간적이고도 사회적인 매력 때문입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입니다. 교회안에 형성된 사회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 보다는 낫기 때문에 세상에서 기회를 얻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기회를 얻는 것이 헐씬 더 쉽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노력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하여도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없는 반면 교회는 조금난 성실하게 노력하면 빠른 시일내에 목표하는 기회와 지위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기회와 지위가 주는 만족은 세상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와같은 매력도 우리들에게는 상당한 것이서 변화와 거듭남이 주는 영적인 매력을 맛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교회에 열심일 수 있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체험 없이 평생을 그리고 제법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변화산 위의 교인입니다. 교인들 4명중 1명 정도는 기도와 찬양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여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맛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그와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교회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은 사도바울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와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고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저들은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변화산에 초막 셋을 짓고 거기서 살자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저들은 찬송가 중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을 그 누구보다도 확실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곳이 너무 좋아 세상을 잊어 버리고 등한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도 많이하고 성령님의 체험도 있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하고 헌신적이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가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궐같은 세상보다 초막같은 교회를 더 좋아하는 것은 좋으나 온 힘을 교회에만 쏟아 정작 변화하여야 할 세상은 관심없이 포기한채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나 세상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과는 반대로 점점 더 나빠지고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변화산의 체험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 세상과 싸우는 교인입니다. 산 아래에는 귀신이 들려 물에도 쓰러지고 불에도 쓰러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산 아래에 남아있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 내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만일 그냥 변화산이 좋아 세상으로 내려 오지 않고 있었다면 자신들이야 삼층천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산 아래서 고생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고쳐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와같은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변화산에서의 영적인 체험으로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가 귀신 아이와 같은 이 세상과 싸워 모든 어그러진 것들을 바로 잡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와같으신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똑 같으시지만 여전히 교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변화산에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냥 변화산 밑에 무능한 교인으로 머물러 있거나 변화산에 올라가 능력은 받았으나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거나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님 체험을 한 뜨거운 사람들이 세상으로 내려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과 싸우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은 참으로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종류의 교인중 어디에 속하시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바라고 계시는 변화산에서의 영적인 체험으로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교인이 되지 말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십시다. 그리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 세상의 부귀영화 다 우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받으십시다. 사도바울과 같이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십시다. 평생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연연하여 세상 욕심 버리지 못하고 세상의 종노릇하면서 사는 삶을 청산하십시다. 그리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당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참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성전 뜰만 밟고 다닌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지 모릅니다. 변화산으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놀랍고 황홀한 광경을 우리도 직접 목도 해야만 합니다. 그 감격과 감동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데 까지 우리의 믿음도 자라야만 합니다. 평생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믿는 참 맛을 알지 못하여 쓴 약 먹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와 같이 길을 가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그와같은 기쁨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시편 4편 7절과 8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 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아멘. 평생을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와같은 기쁨과 즐거움을 모른다면 그것을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영적 체험을 간구하세요. 성령님의 충만함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세요. 그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세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참여하세요. 그리고 인내하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변화산의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체험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궁궐을 우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의 초막을 우습게 보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 노릇을 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궁궐을 우습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은 우리를 세상에 대하여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경제위기와 같은 일을 경제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변화산의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경제위기가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자유함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함과 비천함이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동안교회의 교인 여러분들이 먼저 이와같은 신앙으로 이 어려운 난세를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와같은 해결없이 이 문제를 경제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해결이 되어도 진정한 의미의 해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그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생활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을 얻는다 하여도 어차피 그것은 배설물과 같은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큰 소용이 있겠습니까 배설물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하여 세상과 싸우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하여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싸움은 힘든 것입니다. 어려운 것입니다.그러나 싸우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싸움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종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종으로 살면 싸움은 없습니다. 그리고 배설물을 배당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입니다.
세상의 종으로 평생을 살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종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패배는 싸움보다 비참한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단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이나 방황하여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싸워야 할 전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싸움은 힘든 것이지만 그리고 무서운 것이지만 약간의 믿음만 있었다면 그리 두렵게만 생각 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를 꺽으신 하나님,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만 있었다면 저들은 우리들의 밥이라고 당당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용감하게 나아가 싸워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싸우지 아니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셔서 저들을 광야의 길로 돌리셨던 것입니다. 힘들어도 믿음으로 싸웠더라면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었을 것을 그 믿음이 없었음으로 인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을 고생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와같은 일이 바로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과 싸우지 아니함으로 세상은 점점 광야같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의 싸움을 포기하고 교회 안으로만 들어와 변화산에 초막 짓고 영적인 소꿉장난만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악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너무 교인들을 교회에만 머무르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일만 하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일만 하나님의 일이고 세상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세상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세속화되어가게 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싸우기도 전에 그 싸움은 불가능한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싸움은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만만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싸움은 반드시 이기는 싸움입니다. 비록 좁은길을 가야만 하고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싸움이지만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긴 싸움을 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그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믿음이 있는 자에게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전투를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더 이상 물러 설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이긴 싸움에서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내 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변화와 전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할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변화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전히 성전 뜰만 밟고 다니시는 분들은 아니십니까 전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전히 변화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 영적인 소꿉장난만 하고 계시는 분들은 아니십니까 변화산으로 올라가십시다. 세상이 우습게 보이는 그 근사한 자리에 한 번 서 보십시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와 세상과 싸우십시다. 지난 주일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자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과 싸우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승리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변화산 아래의 교인입니다. 저들은 평생을 교회를 다니지만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 중 상당 부분이 이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12명중 9명이 변화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 비율이 지금도 맞는 것 같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 4명중 3명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거의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님 만남의 체험 즉 성령님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없이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교회에 깊이 관여하게 되거나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교회생활을 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는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부적을 가지고 다니듯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랜 습관을 통하여 주일날 교회라도 가지 않은면 웬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기 때문에 부적을 쓰듯 주일날 한 번씩 교회를 나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냥 교회에 다니면 좋은 이야기를 듣고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신 수양과 인격 단련 차원에서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 속에 그와같은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구지 예수만 믿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정도의 목적은 불교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고 유교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종교는 다 마찬가지다라는 종교다원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교회안에 있는 인간적이고도 사회적인 매력 때문입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입니다. 교회안에 형성된 사회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 보다는 낫기 때문에 세상에서 기회를 얻는 것보다 교회 안에서 기회를 얻는 것이 헐씬 더 쉽습니다. 세상은 아무리 노력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하여도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없는 반면 교회는 조금난 성실하게 노력하면 빠른 시일내에 목표하는 기회와 지위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기회와 지위가 주는 만족은 세상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와같은 매력도 우리들에게는 상당한 것이서 변화와 거듭남이 주는 영적인 매력을 맛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교회에 열심일 수 있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체험 없이 평생을 그리고 제법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변화산 위의 교인입니다. 교인들 4명중 1명 정도는 기도와 찬양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여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맛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그와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은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교회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은 사도바울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와 자랑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고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저들은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변화산에 초막 셋을 짓고 거기서 살자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들이며 저들은 찬송가 중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을 그 누구보다도 확실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곳이 너무 좋아 세상을 잊어 버리고 등한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도 많이하고 성령님의 체험도 있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하고 헌신적이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가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궐같은 세상보다 초막같은 교회를 더 좋아하는 것은 좋으나 온 힘을 교회에만 쏟아 정작 변화하여야 할 세상은 관심없이 포기한채 살아가기 때문에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나 세상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과는 반대로 점점 더 나빠지고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변화산의 체험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 세상과 싸우는 교인입니다. 산 아래에는 귀신이 들려 물에도 쓰러지고 불에도 쓰러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변화산 아래에 남아있던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 내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만일 그냥 변화산이 좋아 세상으로 내려 오지 않고 있었다면 자신들이야 삼층천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 산 아래서 고생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고쳐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와같은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하여 사랑하는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변화산에서의 영적인 체험으로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가 귀신 아이와 같은 이 세상과 싸워 모든 어그러진 것들을 바로 잡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를 변화산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와같으신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똑 같으시지만 여전히 교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변화산에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냥 변화산 밑에 무능한 교인으로 머물러 있거나 변화산에 올라가 능력은 받았으나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무관심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거나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님 체험을 한 뜨거운 사람들이 세상으로 내려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세상과 싸우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은 참으로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종류의 교인중 어디에 속하시는가를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바라고 계시는 변화산에서의 영적인 체험으로 무장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교인이 되지 말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십시다. 그리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 세상의 부귀영화 다 우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받으십시다. 사도바울과 같이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신앙의 자리에 들어가십시다. 평생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연연하여 세상 욕심 버리지 못하고 세상의 종노릇하면서 사는 삶을 청산하십시다. 그리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당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일에는 놀라운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참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성전 뜰만 밟고 다닌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지 모릅니다. 변화산으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놀랍고 황홀한 광경을 우리도 직접 목도 해야만 합니다. 그 감격과 감동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데 까지 우리의 믿음도 자라야만 합니다. 평생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믿는 참 맛을 알지 못하여 쓴 약 먹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와 같이 길을 가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그와같은 기쁨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시편 4편 7절과 8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 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아멘. 평생을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와같은 기쁨과 즐거움을 모른다면 그것을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영적 체험을 간구하세요. 성령님의 충만함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세요. 그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세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참여하세요. 그리고 인내하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변화산의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체험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궁궐을 우습게 볼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의 초막을 우습게 보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 노릇을 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궁궐을 우습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은 우리를 세상에 대하여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경제위기와 같은 일을 경제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변화산의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경제위기가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자유함을 가진 사람에게는 부함과 비천함이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동안교회의 교인 여러분들이 먼저 이와같은 신앙으로 이 어려운 난세를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와같은 해결없이 이 문제를 경제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면 해결이 되어도 진정한 의미의 해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그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과 싸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세상과 타협하는 생활을 하여서는 안됩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을 얻는다 하여도 어차피 그것은 배설물과 같은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큰 소용이 있겠습니까 배설물과 같은 것을 얻기 위하여 세상과 싸우지 아니하고 세상과 타협하여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싸움은 힘든 것입니다. 어려운 것입니다.그러나 싸우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싸움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종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종으로 살면 싸움은 없습니다. 그리고 배설물을 배당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입니다.
세상의 종으로 평생을 살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종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패배는 싸움보다 비참한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단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이나 방황하여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싸워야 할 전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싸움은 힘든 것이지만 그리고 무서운 것이지만 약간의 믿음만 있었다면 그리 두렵게만 생각 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를 꺽으신 하나님,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조금만 있었다면 저들은 우리들의 밥이라고 당당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용감하게 나아가 싸워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싸우지 아니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셔서 저들을 광야의 길로 돌리셨던 것입니다. 힘들어도 믿음으로 싸웠더라면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었을 것을 그 믿음이 없었음으로 인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을 고생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와같은 일이 바로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과 싸우지 아니함으로 세상은 점점 광야같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의 싸움을 포기하고 교회 안으로만 들어와 변화산에 초막 짓고 영적인 소꿉장난만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악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너무 교인들을 교회에만 머무르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일만 하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일만 하나님의 일이고 세상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세상은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세속화되어가게 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싸우기도 전에 그 싸움은 불가능한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싸움은 절대로 질 수 없는 싸움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만만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싸움은 반드시 이기는 싸움입니다. 비록 좁은길을 가야만 하고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싸움이지만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긴 싸움을 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그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믿음이 있는 자에게 그 싸움은 이긴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교인들에게 전투를 가르쳐 주어야만 합니다. 더 이상 물러 설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이긴 싸움에서 패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내 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변화의 힘을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변화와 전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할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변화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전히 성전 뜰만 밟고 다니시는 분들은 아니십니까 전투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여전히 변화산 위에 초막 셋을 짓고 영적인 소꿉장난만 하고 계시는 분들은 아니십니까 변화산으로 올라가십시다. 세상이 우습게 보이는 그 근사한 자리에 한 번 서 보십시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다시 내려와 세상과 싸우십시다. 지난 주일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자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과 싸우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세상과 싸워 승리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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