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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삶의 기적 (요2:1-11)

본문

1. 예수님은 물을 가지고 포도주가 되게 하였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은 공생애(公生涯)에서 제일 처음으로 나타낸 기적입니다.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거기에 계셨다는 것을 보 면, 아마도 잘 아는 친척집이었든 것 같습니다. 본문대로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도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다'는 것을 보아 특별한 인척 관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튼 잔치 집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지났는가 이 집에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손님보다 준비해 놓은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을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이 집 형편과 사정을 아뢰면서 어 떻게 해결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 드는 기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 자체의 기사(奇事)라기 보다, 주님의 메시아 사명이 어떤 것 인가를 밝히 보여준 상징적인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물이 변하여 포도 주가 되었다는 것은 인생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들어내 보여준 것입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란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의 마음 이 변화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교육으로도 안되고, 법과 정치로도 안되고, 윤리적 도덕 적 수양으로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죄성(罪性)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세상에서는 또 없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로부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의 버릇을 고칠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 천성(天性)이 그런걸 어쩌겠나' 라고 천성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버릇 개(犬)에 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사람의 버릇이 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말들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포악한 사람은 언제나 포 악하고, 방탕한 사람은 언제나 방탕하게 산다고 그렇게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등장한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를 만난 후 변화된 사람은 허다합니다. 마음이 교만하던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겸손한 마음으로 변화하였 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었고, 허랑 방탕하던 탕자(蕩兒)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성 어거스틴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예수 믿고 새 사람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가 그 마음에 들어가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가 마을에 들어가면 그 마을이 변합니다. 예수가 가정에 들어가면, 그 가정이 변합니다. 예수가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가 변하였습니다. 영국이란 나라가 오늘날 저처럼 변한 것은 사실 따져 보면, 바다에서 약탈하던 해적들이 변한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의 복음이 들어가면 가루 속에 누룩과 같이 모두 변화시킵니다. 인격이 변합니다. 습관이 변합니다. 생각이 변합니다. 우선 말이 변합니다. 욕쟁이가 욕을 못합니다. 어떤 곳에 포악스러운 욕쟁이 노인이 살았다고 합니다. 하도 욕을 잘했어 사람들은 이 노인을 '욕쟁이'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이 욕쟁이 노인이 소를 몰고 나갈 때면, 온통 입에 험악한 욕이 마구 나갔습니다. 그리고 밭을 갈거나, 물건을 싫어 나를 때도 별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욕을 잘하던 욕쟁이가 요즘 통 조용해 졌다는 말이 소문으로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아니면 무슨 죽을 병이라도 들었는가고그러나 후에 알았습니다. 그 욕쟁이가 요즘 교회엘 나간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는 말수도 적어졌고, 일체 욕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어디 두고 보자고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날이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일부러 구경하려고 욕쟁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소에게 안장을 지우더니 이 렇게 말합니다. "소님! 일어나십시오짐을 싣고 오늘은 장엘 가야겠습니다" 소는 아무런 댓구도 없이 들은 척도 않고 새김질만 합니다. 사람들은 노인의 얼 굴과 소를 번갈아 보면서 다음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구 호기심의 눈초리로 지 켜보았습니다. 몇 번 반복하여 소에게 일어나라고 했지만 소는 여전히 들은 척도 않 았습니다. 이때 노인은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갑자기 회초리를 크게 들고는 탁! 소리를 내면서 큰 소리로 "할-렐-루이-야 아아아!" 그랬더니 소가 얼른 일어났 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맹물처럼 살던 사람들이 포도주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오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기적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2.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신앙을 엿보게 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집에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아서 모친 마리아는 벌써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아직 내가 그런 기적을 나타내 보일 때가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5절에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 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고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돌 항아리 여섯에다 물을 채우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하였 고, 물을 다 채운 후 이제는 떠다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연회장은 물로된 포도주 맛을 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말씀'에 대한 하인들의 전적인 순종의 행 위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전적으로 순종한 행위를 간과(看過)했어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 같았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겠습니까 주님께 따져 물었을 것입니다. '왜 물은 채우라고 하느냐' '항아리에 물은 채워서 어쩔랴고 하느냐' '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갔다 주라'고 할 때 어떻게 행동하였겠습니까. 오늘도 세상 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성경에 있는 말들을 어떻게 믿으라고 하느냐 모두 허황된 말들로 차 있는 내용을 어떻게 믿으라고 하느냐 고 하면서 자기들 스스로의 합리적 머리로 신앙의 세계를 저울질해 봅니다. 그래서 변화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헛 똑똑 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는 행위입니다. '말씀'대로 물을 들고 가는 하인들의 순종에서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즉 그것은 말씀대로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돌 항아리에 물을 부어 채우리!'고 하여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연회장에게 떠다 주라!'고 하여 떠다 주었습니다. 하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물은 포도주로 변하였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체험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곳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성령님의 검(劍)이라고 하였습니다(엡6:17). '말씀'은 죄를 찔러 쪼갭니다. '말씀'은 악한 생각을 베어 냅니다. '말씀'은 모든 부정과 불의 함을 쳐 부십니다. '말씀'은 완고한 마음을 회개시킵니다. '말씀'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지금도 살아 움직입니다. 누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변화의 역사(役事)를 체험합니다. 하인들처럼 말씀대로 순종하는 곳에 우리의 삶은 변화됩니다. 그 변화를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말씀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중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가르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선택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경제위기 시대에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답답할 때, 그 답답함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 고독할 때, 그 고독을 통하여 다른 면에서의 감사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병이들 때, 그 병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의 경험을 갖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변한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말씀에 부딪쳐서 녹아진 사람들입니다. 말씀 가운데 기도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이 임하는 경험을 얻게 됩니다. 성령님 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영입니다. 반드시 말씀 위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곳에서는 이탈되기 쉽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곳에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리고 변화의 체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죠지 뮬러를 다 아시지요. 그는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칭함을 받는 참된 변화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는 93세까지 살면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60년간을 기도로 많 은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이 있어 그렇게 많은 고아들을 돌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기도로 응답을 받곤 했습니다. 그가 기도로 응답을 받은 금액이 미국 돈으로 720만 달라나 되었다고 합니다. 뮬려는 일을 위해서 무엇 이 필요하면 기도를 바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올릴 기도의 내용이 성경 말씀 어디에 약속되어 있는가를 먼저 찾은 다음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전 몇일동안 성경을 찾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올릴 기도가 성경 말씀에 약속되 어 있는 것을 찾아내면, 물려는 성경을 앞에 놓고, 그 말씀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할 때 말씀을 믿고, 말씀 안에서 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일입니다. 말씀이 우선 입니다. 말씀대로 '물을 채우라' 하니 채웠고, '이제는 떠다 주라' 하니 떠다 준, 그 하인들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물로된 포도주를 맛보게 하십니다. 직장이 없던 사람에게 직장이 생깁니다. 돈이 없어 고생하던 사람에게 돈이 생깁니다. 병들어 고생하던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습니다. 모든 면에서 결핍함으로 짜증내던 삶에서 풍성한 감사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는 주님의 권능입니다.
3.
그러므로 참된 삶의 기쁨은 주님께서 개입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가정처럼, 누구나 삶의 결핍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하고, 그래서 당황하고, 그래서 짜증스럽고, 그래서 난감해진 인생들 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예상대로, 자기의 인생 설계대로 들어맞지 못해 낙심하고, 실망하고, 당 황해 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꽃다운 젊은 나이에 벌써 인생 을 비관하고 스스로 자살하는 경우들도 봅니다. 즐거워야 할 잔치 날!, 기뻐하고 행복해야 할 잔치 날에 포도주가 모자랐으니 얼 마나 딱한 일이겠습니까 오늘도 모든 행복의 조건들을 갖추어 놓고도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회 중에 경험한 일입니다. 어느 권사님이 딸이 둘 있었습니다. 따님들 둘 중에 맏 딸에게 더욱 사랑이 갔는지, 그 딸이 해 달라는 것은 다해 주 었습니다. 중학 시절부터 과외란 과외는 다 시켰고, 피아노 레슨이며, 미술이며, 그 리고 온갖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했습니다. 고생도 모르고, 없는 것 없이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곱게 자라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명문 여자 대학 을 졸업하고, 신랑 깜으로 의사와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 권사님이 딸에게 쏟은 정성은 별이라도 따 줄 수 있다면 다 해 주려고 하는 것을 보 았습니다. 옷이며, 이불이며 가사 집기며 철따라 필요한 모든 것을 바리 바리 마다 양껏 해 보냈습니다. 아마 그것만 가지고도 일생 살아도 다 못 입고 못쓰고 죽을 만 큼 온갖 것을 다 해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들 하나 임신하여 낳은 지 얼마가 안되어 그만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인 남편이 오죽이 나 정밀 검사를 다 했겠습니까 결국 얼마 못 가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가 약혼 주례도 하였는데, 그만 장례 주례까지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습니다. 딸을 잃은 권사님의 슬픔이야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붙들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이 계신 겁니까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경우를 맞게 하십니까" 자꾸만 울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관 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관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그 권사님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까무라칠것을 염려했는데, 너무나 조용하게, 침착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 습니다. 조용하게 예배를 다 마치고 이제 취토하는 순서를 가지려 할 때, 권사님이 드디어 말씀하였습니다. "목사님! 나 이제는 울지 않으렵니다. 나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내 딸이 흰옷을 입은 천사들과 함께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나 이제는 울지 않으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후부터 권사님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거두어 갔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간증 입니다. 그렇게 간증하던 권사님도 이제는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아마 먼저간 딸도 만나 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우리 인생의 삶은 누구나 만족함이란 없습니다. 어느 한구석에 포도주는 모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행복의 조건을 다 가 추었다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닥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언제 떨어질는 지 모릅니다. 그럴 때,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간섭해 주어야 문제가 해결이 납니다. 불행스러운 가정에 주님을 모셔야 평화가 깃들입니다. 부부간에 갈등, 고부간에 갈등, 이웃간에 갈등에서도 주님이 함께 해야 해결이 납니다. 주님이 함께 하면 원수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면 죽음까지도 변하여 영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포도주가 떨어진 가정들이 계십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인격이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을 앞에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깨닫게 하십니다. 추하고 더러운 것이 발견됩니다. 내가 왜 그러했는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게 되고,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맞게 됩니다. 변화를 원하십니까 변화된 삶을 원하십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성령님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성령님으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생활도 변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생각도 변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 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모든 결핍을 채워 주시는 주인이십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 참된 기쁨과 평화는 넘칩니다. 처음 보다 나중의 것이 더 좋아집니다. 주님 손에서 만들어진 포도주의 맛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포도주 맛에 비할 바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변화된 삶의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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