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사람의 모습 (왕하5:1-14,갈6:7-16,눅10:16-20롬12:2)
본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 인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온전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구성요소는 영혼과 육이라는 구성체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는 영혼이 병든사람, 육이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치유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육신의 질병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면서도, 영적인 질병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감각합니다. 영적인 질병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고질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이라는 아람나라의 장군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나라는 부유한 나라로서 치료할 수 있는 약도 많이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으로 부터 대단한 능력을 받고 역사한다는 소문을 들고 엘리사에게 옵니다.
그런데 그에게 엘리사는 그의 영혼의 질병에 먼저 손을 대는 흔적이 있습니다. 그가 육신적으로 불치병인 문둥병을 고침 받기 전에, 먼저 영적 질병인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 입니다. 그가 문둥병을 고침 받고자 엘리사에게 갔을 때에,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 때 그의 부하가 만류하기를 “만일 저 예언자가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요구 했더라도 장군님은 그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강에 가서 씻기만 하면, 몸이 깨끗하게 된다지 않습니까”하면서, 강으로 가서 씻기를 권면했습니다(왕하5:13).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의 겸손의 태토변화는 그에게 있어서 해결받아야 할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 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질병이 먼저 치유되고 그다음의 육신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날도 어느 누구에게나 역사하십니다. 인생의 문제는 그가 지위가 높든 돈이 많든 많이 배운 사람이든 상관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법 입니다. 현 과학기술처 장관인 정근모 박사는 종로성결교회 장로 입니다. 이 시대 과학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정박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불치병으로 죽어 가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그 아들을 과학적인 수단으로 원인이 규명될리 만무합니다. 다른 방도없이 죽어가는 그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그져 안타깝게 지켜 볼 뿐 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다 귀한 것이겠지만, 정박사 부부에게는 그 아들이 너무나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죽음을 앞둔 채 고통에 못 이겨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이 분도 괴로워 번번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과 의학이 발달했고, 자신이 과학자라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 한계를 느끼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보통으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아들의 생명을 건져 주시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달라고 하면서.매달렸습니다. 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발달한 의술로써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불치병에서 정장관의 아들이 놓임을 받은 것입니다. 거짓말 같은 놀라운 일이 이 시대 의 과학자 가정에서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가정에도 영적인 치유와 육신적인 치유가 이어서 일어 났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들도 해결받아야 할 문제가 있으면 지금도 살아계서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시는 사랑의 주님에게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떤 문제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 입니가 그 이유와 문제만 잘 파악한다면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근본적인 문제의 의식을 잘 이해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아만은 자기 스스로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순종과 엘리사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겸손의 모습을 타의든 자의든 결정을 하고 따랐을적에 문제가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근본적인 문제,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힘써야 할 일은 잊어버리고
1.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를 왜 찾아갔는지 자칫 그 목적을 망각한 채, 아무 소득도 없이 그냥 돌아올 뻔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지혜로운 사람인지라,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그 누구도 고침 받지 못했던 난치병인 문둥병에서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갈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정근모 박사가 고백한 것을 보면, “사랑하는 아들이 병고침을 받아 온전케 됨으로써 새롭게 아들을 얻은 기쁨을 맛보게 된 것도 큰 영광이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자기 자신이 주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1: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 입니까 1세상에서의 사소한 이익이나 명예,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께서 7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여러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돌아와서 기껏 하는 말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자, 귀신들이 다 우리에게 복종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눅10:17). 이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복종했다는 사실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 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 입니까 오늘 우리는 정말 소중한 생명을 새롭게 얻게 된 것만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2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하는 일과, 자신의 삶이 더욱 새롭게 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세상의 다른 일에 더 신경을 쓰다 보면,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쉽게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에 치중하다 보면, 별스럽지 않은 일로 해서 싸움과 다툼을 일으키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몇 푼 어치 되지 않는 권위 의식 때문에, 영영 문둥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 갈 뻔했습니다. 3결국 오늘날도 우리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천국 백성으로서,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랑해야 할 것이 뭐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눅10:20에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고 했고, 바울은 갈6:14에서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늘나라보다 세상에 대하여 더 애착을 갖고 살게 되면, 자꾸 썩어질 것만을 이 땅에 심게 됩니다. 바울성생은 (갈6:)7“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 고 했고 (갈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2.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십니다. 기도의 응답과 문제의 해결과 소원의 성취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으려면,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죽으면 죽었지 엘리사의 말을 따르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하는,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힘든 일도 하지 않겠느냐고, 나아만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 교만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2끝가지 인내하고 믿음으로 나아감으로서 결국 복을 받게됩니다. 바울 선생님은 우리에게 (갈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진리를 따르는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지 못하고 세상 명예와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서 서로 다투고 싸우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정말 세상 것이 아니라면, 혹 세상 유혹에 이끌려 다투다가도 다시 주께 돌아와, 우리가 추구하던 바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려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우리를 은혜의 잔치에 초대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맛보며 살아야 하는 것은 결코 이 세상 것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93장 1절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2절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 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우리는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찾아서 그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 새롭게 인식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설명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 가지고, 그들과 똑같이 우리도 그들 속에 끼여 서로 비교하면서 서로 잘 났다고 경쟁을 하게 되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인지 그 목적을 상실하고 말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이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그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모를 것 같지만, 그들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한 믿음 갖고 살면 그들도 시인하면서 주께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3.변화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주 우습고 넌센스적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 한 검은 고양이가 네로가 미남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이 고양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라는 신 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고양이의 딱한 사정을 가엾이 여긴 여신은 고양이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어 주었고, 이 미남 청년은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 잡혔다. 이들의 첫날밤에 아프로디테신은 고양이가 외모만 변신한 것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방에 쥐 한마리를 넣어 보았다.그러자 처녀가된 고양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어디에 있는지를 가맣게 잊은채 침대에서 뛰어내려 쥐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여신은 화가 나서 처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버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변화된 본연의 신분을 망각하면 이런 고양이 같은 경우에 침몰해 버리는 경우가 된다는 교훈이다. 1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곶감의 예) 아무리 떫은 감이라도 껍질을 깎고 꼬챙이에 끼워서 햇볕을 잘 쪼이면 달고 맛있는 곳감이 된답니다. 이처럼 인간도 그 영혼을 회개라는 날카로운 고챙이로 꿰뚫고 더러운 행위와 말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조이면 이전에 맛없고 떫은 감 같던 사람도 맛있는 곳감 같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성령님은 바르게 살려는 사람에게 역사 합니다.
2이웃에게 복음 전하는 일도 병행을 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그의 종(從)이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영영 나아만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구원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를 소개할 뿐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혹 그들이 “너나 구원받으라”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겠으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원받고 안 받고는 그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에게 전해야 책임이 있습니다. 3변화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려면 힘이 들때도 있습니다. 곧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낙심치 않고 계속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들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일이 무슨 일이든지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남의 흉보고 다니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쁜일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모사를 꾸미려 다닐때에 대체적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안으려고 밤에 다니는 것을 봅니다. 군사 구테타의 역사도 보면 대체적으로 몇몇이 쉬쉬 하면서 들키지 아니하려고 무척 긴장을 하면서 아주 어렵게 목슴을 걸고 했던 것을 볼 수 있드시 악한 일들도 그리 쉽게 되는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영혼을 살리고 좋은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천국복음을 전하는 좋은 일을 하려 할 때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 좋은 일이란 무엇 입니까
ㄱ.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ㄴ.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이웃에게 베푸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나 자신이 좀더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힘쓰는 일은 그 무엇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나 좋은 선물이 됩니다. ㄷ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 나라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뻐하고 긍지로 여기면서 승리롭게 살아가야 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생명과 기쁨이 충만한 영원한 나라입니다 . 이 영원한 나라를 진실로 소망하는 사람은, 세상 일 때문에 바르게 사는 일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바른 선택을 하고 바르게 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늘나라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긍지와 확신을 갖고, 참으로 중요하고 더욱 좋은 일인 이 복음에 순종하고 변화받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에 힘쓰시기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인간의 구성요소는 영혼과 육이라는 구성체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는 영혼이 병든사람, 육이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치유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육신의 질병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면서도, 영적인 질병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감각합니다. 영적인 질병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고질적인 상태에 이를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이라는 아람나라의 장군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 나라는 부유한 나라로서 치료할 수 있는 약도 많이 있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으로 부터 대단한 능력을 받고 역사한다는 소문을 들고 엘리사에게 옵니다.
그런데 그에게 엘리사는 그의 영혼의 질병에 먼저 손을 대는 흔적이 있습니다. 그가 육신적으로 불치병인 문둥병을 고침 받기 전에, 먼저 영적 질병인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 입니다. 그가 문둥병을 고침 받고자 엘리사에게 갔을 때에,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 때 그의 부하가 만류하기를 “만일 저 예언자가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요구 했더라도 장군님은 그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강에 가서 씻기만 하면, 몸이 깨끗하게 된다지 않습니까”하면서, 강으로 가서 씻기를 권면했습니다(왕하5:13).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의 겸손의 태토변화는 그에게 있어서 해결받아야 할 제일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 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질병이 먼저 치유되고 그다음의 육신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날도 어느 누구에게나 역사하십니다. 인생의 문제는 그가 지위가 높든 돈이 많든 많이 배운 사람이든 상관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법 입니다. 현 과학기술처 장관인 정근모 박사는 종로성결교회 장로 입니다. 이 시대 과학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정박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불치병으로 죽어 가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그 아들을 과학적인 수단으로 원인이 규명될리 만무합니다. 다른 방도없이 죽어가는 그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그져 안타깝게 지켜 볼 뿐 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다 귀한 것이겠지만, 정박사 부부에게는 그 아들이 너무나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죽음을 앞둔 채 고통에 못 이겨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이 분도 괴로워 번번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아무리 과학기술과 의학이 발달했고, 자신이 과학자라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 한계를 느끼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보통으로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아들의 생명을 건져 주시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달라고 하면서.매달렸습니다. 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발달한 의술로써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불치병에서 정장관의 아들이 놓임을 받은 것입니다. 거짓말 같은 놀라운 일이 이 시대 의 과학자 가정에서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 가정에도 영적인 치유와 육신적인 치유가 이어서 일어 났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들도 해결받아야 할 문제가 있으면 지금도 살아계서서 역사하시고 도와주시는 사랑의 주님에게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어떤 문제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 입니가 그 이유와 문제만 잘 파악한다면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근본적인 문제의 의식을 잘 이해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아만은 자기 스스로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순종과 엘리사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겸손의 모습을 타의든 자의든 결정을 하고 따랐을적에 문제가 해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근본적인 문제,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힘써야 할 일은 잊어버리고
1.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를 왜 찾아갔는지 자칫 그 목적을 망각한 채, 아무 소득도 없이 그냥 돌아올 뻔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지혜로운 사람인지라,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그 누구도 고침 받지 못했던 난치병인 문둥병에서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갈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정근모 박사가 고백한 것을 보면, “사랑하는 아들이 병고침을 받아 온전케 됨으로써 새롭게 아들을 얻은 기쁨을 맛보게 된 것도 큰 영광이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자기 자신이 주님을 만나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1: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 입니까 1세상에서의 사소한 이익이나 명예,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께서 72명의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여러 가지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돌아와서 기껏 하는 말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자, 귀신들이 다 우리에게 복종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눅10:17). 이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복종했다는 사실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 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 입니까 오늘 우리는 정말 소중한 생명을 새롭게 얻게 된 것만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2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하는 일과, 자신의 삶이 더욱 새롭게 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세상의 다른 일에 더 신경을 쓰다 보면,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쉽게 좌절하고 낙심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에 치중하다 보면, 별스럽지 않은 일로 해서 싸움과 다툼을 일으키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몇 푼 어치 되지 않는 권위 의식 때문에, 영영 문둥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 갈 뻔했습니다. 3결국 오늘날도 우리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천국 백성으로서,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랑해야 할 것이 뭐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눅10:20에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고 했고, 바울은 갈6:14에서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늘나라보다 세상에 대하여 더 애착을 갖고 살게 되면, 자꾸 썩어질 것만을 이 땅에 심게 됩니다. 바울성생은 (갈6:)7“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 고 했고 (갈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2.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십니다. 기도의 응답과 문제의 해결과 소원의 성취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으려면,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죽으면 죽었지 엘리사의 말을 따르기가 싫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부하는,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힘든 일도 하지 않겠느냐고, 나아만이 지니고 있는 인간적 교만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2끝가지 인내하고 믿음으로 나아감으로서 결국 복을 받게됩니다. 바울 선생님은 우리에게 (갈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진리를 따르는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지 못하고 세상 명예와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서 서로 다투고 싸우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정말 세상 것이 아니라면, 혹 세상 유혹에 이끌려 다투다가도 다시 주께 돌아와, 우리가 추구하던 바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려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우리를 은혜의 잔치에 초대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맛보며 살아야 하는 것은 결코 이 세상 것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93장 1절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2절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 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우리는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찾아서 그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 새롭게 인식할 수가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설명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 가지고, 그들과 똑같이 우리도 그들 속에 끼여 서로 비교하면서 서로 잘 났다고 경쟁을 하게 되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인지 그 목적을 상실하고 말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이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그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모를 것 같지만, 그들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한 믿음 갖고 살면 그들도 시인하면서 주께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3.변화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주 우습고 넌센스적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 한 검은 고양이가 네로가 미남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이 고양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라는 신 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고양이의 딱한 사정을 가엾이 여긴 여신은 고양이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어 주었고, 이 미남 청년은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 잡혔다. 이들의 첫날밤에 아프로디테신은 고양이가 외모만 변신한 것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방에 쥐 한마리를 넣어 보았다.그러자 처녀가된 고양이는 자신이 누구인지,어디에 있는지를 가맣게 잊은채 침대에서 뛰어내려 쥐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여신은 화가 나서 처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버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변화된 본연의 신분을 망각하면 이런 고양이 같은 경우에 침몰해 버리는 경우가 된다는 교훈이다. 1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곶감의 예) 아무리 떫은 감이라도 껍질을 깎고 꼬챙이에 끼워서 햇볕을 잘 쪼이면 달고 맛있는 곳감이 된답니다. 이처럼 인간도 그 영혼을 회개라는 날카로운 고챙이로 꿰뚫고 더러운 행위와 말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조이면 이전에 맛없고 떫은 감 같던 사람도 맛있는 곳감 같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성령님은 바르게 살려는 사람에게 역사 합니다.
2이웃에게 복음 전하는 일도 병행을 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에게 그의 종(從)이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면, 영영 나아만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구원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를 소개할 뿐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라고 말입니다. 혹 그들이 “너나 구원받으라”고 조롱할지 모릅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겠으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원받고 안 받고는 그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에게 전해야 책임이 있습니다. 3변화된 사람의 모습으로 살려면 힘이 들때도 있습니다. 곧 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낙심치 않고 계속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들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일이 무슨 일이든지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남의 흉보고 다니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쁜일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모사를 꾸미려 다닐때에 대체적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안으려고 밤에 다니는 것을 봅니다. 군사 구테타의 역사도 보면 대체적으로 몇몇이 쉬쉬 하면서 들키지 아니하려고 무척 긴장을 하면서 아주 어렵게 목슴을 걸고 했던 것을 볼 수 있드시 악한 일들도 그리 쉽게 되는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영혼을 살리고 좋은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천국복음을 전하는 좋은 일을 하려 할 때 어찌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 좋은 일이란 무엇 입니까
ㄱ.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ㄴ.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이웃에게 베푸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나 자신이 좀더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힘쓰는 일은 그 무엇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나 좋은 선물이 됩니다. ㄷ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 나라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기뻐하고 긍지로 여기면서 승리롭게 살아가야 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생명과 기쁨이 충만한 영원한 나라입니다 . 이 영원한 나라를 진실로 소망하는 사람은, 세상 일 때문에 바르게 사는 일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바른 선택을 하고 바르게 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늘나라 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긍지와 확신을 갖고, 참으로 중요하고 더욱 좋은 일인 이 복음에 순종하고 변화받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에 힘쓰시기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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