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무너뜨리다 (엡2:11-22)
본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결코 나 하나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죽으시 다것이 아니라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나만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그'도 존재한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며 우리는 모두 그의 지체이다. 지체는 각기 다른 모양과 다른 성질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한머리를 중심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이것들은 전체를 위해서 서로 복종하며 희생한다. 교회는 특색있는 이질적 존재들이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서로 양보하고 서로 복종하며 전체를 위해 항상 균형을 않는 공동체이이여 되는 것이다.
1.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선이란 영화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칼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예수를 믿는 선장이 아프리카 여러지역을 다니면서 흑인들을 잡아가지고 배밑창에 싣고 와서 영국의 상류계급이나 돈많은 농장 경영자들에게 팔아서 많은 돈을 벌곤 했다.
그런데 큰 문제는 오랜 항해를계속하는 동안 노예들이 병들거나 굶주려서 죽거나 도망가는 일들이일어난 것이다. 이를 방지하게 위해서 사슬로 묶어둔 팔과 발들을 풀어 주어 갑판 위에서 억지로 춤을 추게 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애타하는 모습을 보고선장은 "불쌍하긴 하지만 저들은 하나님을 모른 사람들이니까 하나님께서도 나의 이같은 행위를 용납하실 거싱다"고 스스로 위로를 받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소위 택함받은 백성으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을 탈출해온 야곱의 후예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들은 하나님을섬기면서 새 통치자 메시야를 기다리며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들이다. 반면에 이방인은 이같은 유대인의 선택받은 특혜도 없고 애굽을 탈출한 경험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온 세계에 퍼져 있어서 유대인들의 수보다 훨씬 많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이란 전세계 모든 백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할례받지 못한 버림받은 백성이라 하여 상종도 안하며 심지어는 죽여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이방인을 절대로 믿을 권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이처럼 무너질 수 없는 높은벽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과 인간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뒤에 움직이는 인간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감격해 하신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내려가면 그렇게도 좋았던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처럼 멀어지고 만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범죄한 것이다. 에덴의 생존법칙을 범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끝없는 벽을 쌓기 시작했으며이 벽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밀착된조화를 이루며 서로 평화스럽게 얽혀 있었다. 인간과 자연은 넘치는하나님의 사랑과 극진한 돌보심 가운데서 항상 기쁨을 가지고 성장하여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평화로운 조화를 스스로 깨트려버림으로 하나님과의 복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전쟁과 질병, 시기와 미움속에서 그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갔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불행을 자처하게 되었고 죽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저주속에 살게 되었다.
3.그리스도와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들을 허시기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 사랑의 본질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인간은 보다 큰 것을 받기 위한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변한다. 그러나 에수 그리스도는조건없이 십자가를 지셨고 아무 것도 바라지지 않으신채 무덤에 묻히신 것이다. 그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희생됨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새로운 화해의 길을 터 주셨던 것이다. 따라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사랑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속에는 인종의 차별이있을 수 없고 빈부귀천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사랑만으로 연결된 완전한 인격체들만이 존재할 수 있는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들이었다. 버림받은 존재요 심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구원의 공동체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들 서로의 담들을 헐고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와 교회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하나님과 인류간에 새로운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1. 유대인과 이방인 노예선이란 영화에서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칼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예수를 믿는 선장이 아프리카 여러지역을 다니면서 흑인들을 잡아가지고 배밑창에 싣고 와서 영국의 상류계급이나 돈많은 농장 경영자들에게 팔아서 많은 돈을 벌곤 했다.
그런데 큰 문제는 오랜 항해를계속하는 동안 노예들이 병들거나 굶주려서 죽거나 도망가는 일들이일어난 것이다. 이를 방지하게 위해서 사슬로 묶어둔 팔과 발들을 풀어 주어 갑판 위에서 억지로 춤을 추게 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애타하는 모습을 보고선장은 "불쌍하긴 하지만 저들은 하나님을 모른 사람들이니까 하나님께서도 나의 이같은 행위를 용납하실 거싱다"고 스스로 위로를 받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소위 택함받은 백성으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을 탈출해온 야곱의 후예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들은 하나님을섬기면서 새 통치자 메시야를 기다리며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성들이다. 반면에 이방인은 이같은 유대인의 선택받은 특혜도 없고 애굽을 탈출한 경험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온 세계에 퍼져 있어서 유대인들의 수보다 훨씬 많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이란 전세계 모든 백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할례받지 못한 버림받은 백성이라 하여 상종도 안하며 심지어는 죽여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이방인을 절대로 믿을 권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이처럼 무너질 수 없는 높은벽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과 인간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뒤에 움직이는 인간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감격해 하신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내려가면 그렇게도 좋았던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처럼 멀어지고 만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범죄한 것이다. 에덴의 생존법칙을 범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여 끝없는 벽을 쌓기 시작했으며이 벽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밀착된조화를 이루며 서로 평화스럽게 얽혀 있었다. 인간과 자연은 넘치는하나님의 사랑과 극진한 돌보심 가운데서 항상 기쁨을 가지고 성장하여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평화로운 조화를 스스로 깨트려버림으로 하나님과의 복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전쟁과 질병, 시기와 미움속에서 그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 갔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불행을 자처하게 되었고 죽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저주속에 살게 되었다.
3.그리스도와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들을 허시기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 사랑의 본질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인간은 보다 큰 것을 받기 위한 조건적인 사랑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변한다. 그러나 에수 그리스도는조건없이 십자가를 지셨고 아무 것도 바라지지 않으신채 무덤에 묻히신 것이다. 그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희생됨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새로운 화해의 길을 터 주셨던 것이다. 따라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사랑으로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속에는 인종의 차별이있을 수 없고 빈부귀천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사랑만으로 연결된 완전한 인격체들만이 존재할 수 있는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들이었다. 버림받은 존재요 심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구원의 공동체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들 서로의 담들을 헐고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와 교회간에, 민족과 민족간에 하나님과 인류간에 새로운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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