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하는 바울 (행24:10-23)
본문
1,바울의 변증의 표현들
2,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이유. 사도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 때문에 체포되어 로마인의 법정에 서게된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소된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민중을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즉 로마 정부에 반역을 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단의 괴수였다는 것이다. 즉 정통인 유대교에서 이탈한 이단의 우두머리하는 것이었다. 중세시대에 마틴 루터와 캘빈등에 의하여 시작된 개혁 교회가 기존의 천 주교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캘빈이나 루터는 이단의 괴수 취급을 받았다. 세째는 성전을 더럽게하였다는 것이었다. 선전 건물의 피괴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성전의 결례에 관한 문제인다. 결례의 문제라면 로마의 총독이 무었을 아는가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에게 제사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비둘기 팔고 돈 바꾸며 또 난장판을 만든 장본인 들이 누구인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실지로 성전 성결의 문제라면저들이 바울을 고소할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저들을 고소해야한다. 예수님에게도 그랬고 스데반에게도 그랬듯이 유대인들은 무죄한 사람들에게 누명을 뒤집어 쒸워서 일처리하는데 프로들이었다. 예수님과 스데반에게 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이제는 사도 바울을 고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고마운 일들인가 어떻게 감히 천한 바울이 로마의 총독 베릭스 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증거키 위하여 말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전진이 되도록 주선한 장본인들이 누구인가 사도 바울이 로바의 총독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 준 사람 들이 누구인가 바로 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아닌가 저들이 로마의 총독에게 고소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바울이 이런 곳이 올 수 있었겠나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를 장만할 수 있었겠나 바로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교 교훈인것이다. 일은 사람들이 떠벌리지만 결말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베릭스 총독 앞에서 그 누구의 제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었던 평소의 소원을 낱낱히 증거할 수 있었다.
1,바울의 변증들.
1),믿음에 관하여 (!),근거, 14절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이 말은 바울이 다른 이상한 것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바울을 고소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믿는바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 것이다. 바울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범위, 14절 "다 믿으며" 율법중에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제쳐두고가 아니고 다 믿었다. 믿음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3),행위, 14절 "믿으며" 믿는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믿는다는 것은 실제적인 행함이 따라야함을 말한다. 믿음은 적극적이고 강력하며 확고하게 역사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믿음이 바른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들이 필요하다. 0
1,믿는 것에 대한 온전한 훈육과 지식이 필요하다. 요일4;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먼저 알고 믿을 때 바르게 성숙한다. 0
2,배운바에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한다. (요6;69. 17;8) 눅1;4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하려 함이로라" 0
3,실제적인 신뢰와 의롸함이 필요하다. 고후5;7절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04,알고 믿는 바를 적용해야한다. 약2;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2),소망에 관하여 - 15절 "저희가 기라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바울은 믿음을 말하다가 소망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망은 믿음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에관한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말은 소망이 없는 믿음은 온전한 것이 못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15절에서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은 부활이라 했다. 그렇다 사도 바울이 지금 믿고 또 지금까지 증거한 복음의 내용이 바로 성도들의 부활인 것이다. 그래서 소망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들 즉 거듭난 사람들의 결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
3) 다음은 우리들의 소망은 연단으로 성숙된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일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4,5) 바울을 고소한 자들도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믿는 사람들이고 그 글의 내용인 부활을 믿고 소망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고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고소를 당한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3,변증하는 바울의 태도 " 그래서 바울은 16절에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 선한 양심, - 베릭스에게 이렇게 담대하게 증거하는 바울은 하나님 앞에나 사람들 앞에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따라 변증함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 선한 양심은 믿음과 소망이 있는 자들의 것이다. 믿음과 소망이 있으면 선한 양심을 가진다. 딤전1;5절에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하거늘." 믿이 있는 곳에 선한 양심은 함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믿음과 소망에의한 선한 양심으로 변증하고 있음이다.
2),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는 바울 바울의 이 말들 속에는 진실함이 있다. 바울의 이 말들 속에는 공손함이 있다. 바울의 이 말들 속에는 부드러움이 있다. 바울은 변증을 할때 변사 더둘로처럼 유창하게 아첨의 말로 하지 않았다. 바울은 변증을 할때 유대인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다. 바울의 변증에 진실함이 엿보이고 있는 것은 바울의 변증은 누구를 모함하거나 해하려함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소망함 을 따라 양심에 꺼리낌이 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3),지속적인 삶의 노출 - 16절 하반절에 ". 항상 . 힘쓰노라"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나 사람에 대하여나 양심에 꺼리낌이 없기를 항상 힘써 왔음을 변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을 하면서도 상대방으로하여금 무었을 기대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하게 마음에 굴곡이 심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것은 양심이 아니다. 양심은 믿음에서 그리고 소망에서 오는 것이기에 언제나 변함이 없어야한다. 이랬다 저랬다 함은 양심이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기에 바울은 누구에게나 꺼리낌이 없는 것이다. 17절에서 21절까지 상세하게 사건을 열거하면서 변증을 하고 있다. 한가지도 보태지도 아니하고 하가지를 더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를 다 양심을 따라 변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다.
3,순종 끊임 없이 힘쓰고 있는 바울의 순종을 본다. 믿음으로 소망을 따라 선한 양심으로 힘스고 있는 사도 바울의 아름다운 순종을 보라! "순종'이란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치를 못하다. 순종이 뭔지를 몰라서 순종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게된다. 우리들은 흔히 순종이라면 상대에대한 어떤 복종같은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때는 순종을 하면서 즐겁지를 못할 때가 매우 많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옳바른 순종이 아니다. 순종이란 말의 원래의 뜻은 "내가 나를 위하여 설득함"을 말함이다. 내가 나를 위한 설득이 된 상태라면 절대로 거기엔 기쁨만이 있지 비굴함이나 굴종감 같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순종은 믿음의 목적이자 믿음의 결실인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순종도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를 못한 것 같으다. 바울은 믿음의 결실이 그리고 소망의 결실이 순종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힘써서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지금 베릭스 앞에서 변증하고 있는 냉용들이 다 자신이 순종하면서 살아 온 오늘날까지의 삶의 자취들을 양심을 따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 믿음이 있으면서 소망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이 있으면서 순종이 없는 사람도 되지 말자. 순종으로 그것도 온전한 순종으로 우리들의 믿음과 우리들의 소망이 온전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사도 바울 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힘쓰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이유. 사도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 때문에 체포되어 로마인의 법정에 서게된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소된 내용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민중을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즉 로마 정부에 반역을 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단의 괴수였다는 것이다. 즉 정통인 유대교에서 이탈한 이단의 우두머리하는 것이었다. 중세시대에 마틴 루터와 캘빈등에 의하여 시작된 개혁 교회가 기존의 천 주교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캘빈이나 루터는 이단의 괴수 취급을 받았다. 세째는 성전을 더럽게하였다는 것이었다. 선전 건물의 피괴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성전의 결례에 관한 문제인다. 결례의 문제라면 로마의 총독이 무었을 아는가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에게 제사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비둘기 팔고 돈 바꾸며 또 난장판을 만든 장본인 들이 누구인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실지로 성전 성결의 문제라면저들이 바울을 고소할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저들을 고소해야한다. 예수님에게도 그랬고 스데반에게도 그랬듯이 유대인들은 무죄한 사람들에게 누명을 뒤집어 쒸워서 일처리하는데 프로들이었다. 예수님과 스데반에게 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이제는 사도 바울을 고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고마운 일들인가 어떻게 감히 천한 바울이 로마의 총독 베릭스 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증거키 위하여 말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전진이 되도록 주선한 장본인들이 누구인가 사도 바울이 로바의 총독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 준 사람 들이 누구인가 바로 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아닌가 저들이 로마의 총독에게 고소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바울이 이런 곳이 올 수 있었겠나 어떻게 이런 좋은 기회를 장만할 수 있었겠나 바로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교 교훈인것이다. 일은 사람들이 떠벌리지만 결말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베릭스 총독 앞에서 그 누구의 제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었던 평소의 소원을 낱낱히 증거할 수 있었다.
1,바울의 변증들.
1),믿음에 관하여 (!),근거, 14절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이 말은 바울이 다른 이상한 것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바울을 고소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믿는바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 것이다. 바울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범위, 14절 "다 믿으며" 율법중에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제쳐두고가 아니고 다 믿었다. 믿음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3),행위, 14절 "믿으며" 믿는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믿는다는 것은 실제적인 행함이 따라야함을 말한다. 믿음은 적극적이고 강력하며 확고하게 역사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믿음이 바른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들이 필요하다. 0
1,믿는 것에 대한 온전한 훈육과 지식이 필요하다. 요일4;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먼저 알고 믿을 때 바르게 성숙한다. 0
2,배운바에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한다. (요6;69. 17;8) 눅1;4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하려 함이로라" 0
3,실제적인 신뢰와 의롸함이 필요하다. 고후5;7절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04,알고 믿는 바를 적용해야한다. 약2;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2),소망에 관하여 - 15절 "저희가 기라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바울은 믿음을 말하다가 소망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소망은 믿음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에관한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말은 소망이 없는 믿음은 온전한 것이 못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15절에서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은 부활이라 했다. 그렇다 사도 바울이 지금 믿고 또 지금까지 증거한 복음의 내용이 바로 성도들의 부활인 것이다. 그래서 소망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들 즉 거듭난 사람들의 결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
3) 다음은 우리들의 소망은 연단으로 성숙된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일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5;4,5) 바울을 고소한 자들도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믿는 사람들이고 그 글의 내용인 부활을 믿고 소망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고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고소를 당한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3,변증하는 바울의 태도 " 그래서 바울은 16절에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 선한 양심, - 베릭스에게 이렇게 담대하게 증거하는 바울은 하나님 앞에나 사람들 앞에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따라 변증함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 선한 양심은 믿음과 소망이 있는 자들의 것이다. 믿음과 소망이 있으면 선한 양심을 가진다. 딤전1;5절에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하거늘." 믿이 있는 곳에 선한 양심은 함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믿음과 소망에의한 선한 양심으로 변증하고 있음이다.
2),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는 바울 바울의 이 말들 속에는 진실함이 있다. 바울의 이 말들 속에는 공손함이 있다. 바울의 이 말들 속에는 부드러움이 있다. 바울은 변증을 할때 변사 더둘로처럼 유창하게 아첨의 말로 하지 않았다. 바울은 변증을 할때 유대인들처럼 과격하지 않았다. 바울의 변증에 진실함이 엿보이고 있는 것은 바울의 변증은 누구를 모함하거나 해하려함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소망함 을 따라 양심에 꺼리낌이 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3),지속적인 삶의 노출 - 16절 하반절에 ". 항상 . 힘쓰노라"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나 사람에 대하여나 양심에 꺼리낌이 없기를 항상 힘써 왔음을 변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양심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을 하면서도 상대방으로하여금 무었을 기대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하게 마음에 굴곡이 심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것은 양심이 아니다. 양심은 믿음에서 그리고 소망에서 오는 것이기에 언제나 변함이 없어야한다. 이랬다 저랬다 함은 양심이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기에 바울은 누구에게나 꺼리낌이 없는 것이다. 17절에서 21절까지 상세하게 사건을 열거하면서 변증을 하고 있다. 한가지도 보태지도 아니하고 하가지를 더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를 다 양심을 따라 변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다.
3,순종 끊임 없이 힘쓰고 있는 바울의 순종을 본다. 믿음으로 소망을 따라 선한 양심으로 힘스고 있는 사도 바울의 아름다운 순종을 보라! "순종'이란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치를 못하다. 순종이 뭔지를 몰라서 순종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게된다. 우리들은 흔히 순종이라면 상대에대한 어떤 복종같은 것을 느낀다. 그래서 어떤 때는 순종을 하면서 즐겁지를 못할 때가 매우 많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옳바른 순종이 아니다. 순종이란 말의 원래의 뜻은 "내가 나를 위하여 설득함"을 말함이다. 내가 나를 위한 설득이 된 상태라면 절대로 거기엔 기쁨만이 있지 비굴함이나 굴종감 같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순종은 믿음의 목적이자 믿음의 결실인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순종도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를 못한 것 같으다. 바울은 믿음의 결실이 그리고 소망의 결실이 순종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힘써서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지금 베릭스 앞에서 변증하고 있는 냉용들이 다 자신이 순종하면서 살아 온 오늘날까지의 삶의 자취들을 양심을 따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 믿음이 있으면서 소망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이 있으면서 순종이 없는 사람도 되지 말자. 순종으로 그것도 온전한 순종으로 우리들의 믿음과 우리들의 소망이 온전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사도 바울 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힘쓰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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