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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하나님 (말3:6-12)

본문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레는 자녀가 24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들의 환경으로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일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일어났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리고 어느날 이 24명의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없어지고 말았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겠습니까"그것참 잘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기가 참 힘들었는데 잘 없어져 버렸다."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찾으시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라면 "그것 참 잘 없어져 버렸다"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24명의 아이들 중 하나를 잃어버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뭘 그리 찾으세요. 아직 23명이 있잖아요." 한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그분에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자식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 중 하나를 잃어버리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아무도 "23명의 아이가 내게는 있잖아" 하고 돌아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잃어버린 그 아이를 찾기 위해서 힘쓰실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자식을 기르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기 매우 특이한 사람이 있어서 여러분들께 소개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1935년 7월 1일 미국의 도나호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의 두 딸 메어리와 빅토리아에게" 너희는 이 아버지가 너희들에 대해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불효하였기에 나는 너희에게 각각 1달러를 유산으로 남기는 바이다. 너희들의 삶이 불행과 고통과 혹독한 슬픔 속에 잠기기를 바라노라. 너희들의 죽음이 곧 이루어지기를 저주하며 그 죽음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질질 끄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들의 영혼은 지옥에 머물 것이며 영원히 저주받은 고통을 겪게 되리라." 여러분들은 이 유언을 들으시면서 어떤 것이 느껴지십니까 저는 이 유언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얼마나 딸들이 불효를 했으면 이렇게 까지 아버지가 저주를 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제 속으로 난 자식들에게 이럴 수 있담 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들이 보다 보면 이런 유언을 써야만 했던 도나호라는 사람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요즘 얼마나 패역한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까 이제 부모를 때리는 것은 예사의 일들이 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부모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 도나호의 딸들도 이런 불효 막심한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그런 관계를 갖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패역한 아들로 변해 버린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 까요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반역, 이런 것들로 가득찬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과연 어떻게 나타났을 까요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역지 않으시는 하나님 먼저 오늘 본문은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히시고 있습니다. 다같이 6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여호와는 변화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 여호와란 말 자체에 이미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 여호와란 말은 "나는 영원히 나대로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 자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자신을 이렇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면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임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심판하러 저들에게 임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예, 술수를 행하는 자를, 거짓 맹세를 행하는 자를, 품꾼의 삯을 억울케 하는 자를,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를,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심판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 포함되지 않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면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희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는 이 말씀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 하나님의 약속이 깨어지고 말았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변해버리고 말았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언제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더니 이제 와서는 심판을 해 왜 하나님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하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는 바라보지 않으면서 수많은 불만들을 하나님께 터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심판받을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의기소침해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을 향해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히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자신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하는 하나님이 아님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책망을 하고 너희들의 죄를 들추어내지만 내가 변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왜 너희들에게 이렇게 격양된 어조로 심판을 말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5절에서 격양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들을 향해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심판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죄를 지적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들의 부끄러운 것을 끄집어 내어서 창피를 주려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하나님은 저들을 향한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전혀 예전과 같지 않는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느껴왔던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경험치 못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날 때가 있습니까 욀까요 하나님이 변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나타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나타나시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갑자기 하나님께서 변한 모습으로 나타나시면 우리들은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도 우리들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하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도된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자주 넘어집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시면 그만 당황해 하다가 넘어지고 맙니다. 늘 복 주시던 분으로 나타나시던 하나님이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가져가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늘 소망을 주시던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절망의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이럴 때 넘어지고 낙망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할 때 우리들은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넘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욥의 신앙 고백 욥의 삶이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늘 자신에게 베푸시고 선대하시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십니다. 예전의 모습이 전혀 아니셨습니다. 이때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낙망했습니까 아닙니다.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무엇인가 의도된 것이 있으실 것이다." 이것이 욥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혹독한 상황 가운데서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욥의 신앙,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은 변하시는 분이 아니라 변함이 없는 분이라는 신앙만 있다면 우리들에게 어떤 일들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염려하지 않고 든든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신앙을 가지시고 계십니까 이 변치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하나님도 우리처럼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세월의 힘이 참으로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이 국민학교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합니다.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세월의 힘앞에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늘 거기 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저를 가리키던 선생님 중 국민학교 5학년때의 선생님의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선생님은 저에게 회초리를 드신 후면 늘 학교에 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석용아 많이 아프던!" 하시면서 회초리 자국이 난 종아리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 손길이 얼마나 따사롭던지 아직도 그 선생님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그 선생님께서 때때로 매를 드시고 저를 나무라시지만 저는 그 선생님을 어느 선생님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의 매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한다"는 의미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내가 지금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의 회초리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을 늘 바라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돌아 오라 그러면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밝히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권면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7절에 있는 말씀을 보십시다. "" 하나님께서 어떤 권면을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돌아오라는 것은 무엇을 전재로 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떠났음을 전재로 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떠났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그런데 보십시오. 본문의 문맥을 가만히 보면 돌아오라는 말이 전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는 것입니다.즉, 여호와인 내가 돌아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둔 말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6절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즉, 변하지 않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말한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6절에서 나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7절에서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 돌아오라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이렇게 설명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혹 왕복표를 사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왜 왕복표를 삽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오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출발했던 그 곳이 변하지 않고 거기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전재되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북한에 납북된 고상문씨의 부모님의 사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방영이 된 적이 있습니다. 늙은 두 부부는 고상문씨가 납북이 되고난 후 한 번도 이사를 하거나 집을 고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즉은 언제 아들이 돌아올지 모르는데 만약 아들이 돌아와서 이사를 했거나 집을 고쳐 버려 찾지 못한다면 만나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범죄하고 돌아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기다리시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6절에서 자신이 변함이 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왜 그토록 강조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절에서 나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다고 강조를 하고난 후 7절에서 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말한다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 여러분들 중에 돌아가셔야 할 분은 없습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간절히 부르시는 이 음성을 들어야 할 분은 없습니까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말씀하실 때 돌아서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십시오. 나도 돌아가리라 돌아오라는 말이 두 번째로 전재하고 있는 것은 그러면 나도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언듯 보기에 하나님께서 떠나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은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단지 누가 떠나 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 있다고요.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떠나 있으면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떠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저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한 번 돌아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거기 거대로 있는 것이 발견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돌아오라고 안타깝게 손을 벌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 중에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던 분이 계십니까 아이를 잃어버리게 되면 누가 더 답답합니까 그렇습니다. 부모가 더 답답합니다. 더 안절부절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 졸이고 찾는 것이죠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난 것에 대해서 더 안타까운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들을 설득하시면서 돌아 오라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계속 오리발만 내밀고 "내가 언제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답답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하나님만 답답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모습을 로마서는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0:21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여기서는 돌아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종일 손을 벌렸 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렇게 우리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그리고 내게 돌아가야 할 부분이 없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어떻게 돌아가리까 그러면 이렇게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을까요 7절을 계속 보십시다.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어떻습니까 이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가겠다는 의도로 보입니까 그래서 그 방법을 묻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저들의 태도와 같이 다시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아갈 필요가 없는데 왜 자꾸 돌아오라고 합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감각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말라기서를 통해서 저들이 어떤 죄를 짖고 있는가를 밝히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멀리 떠나 있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말라기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오리발을 내밀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들이 떠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떠났다고 말씀하시는데도 계속 오리발을 내밀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돌아갈 부분이 없다나는 잘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주변의 환경을 통해서 수 없이 우리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무개야 돌아 오라 돌아 오라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무감각해져 있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예배는 진지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때 여러분 가슴속에서 아멘 하고 응답하십니까 아니면 설교 시간이 지루하고 졸음만 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무감각하신 것입니다. 감각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 아멘은 억지로 끄집어내는 그런 아멘은 아닙니다. 여러분 심령 깊숙한 곳으로부터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아멘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반응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반응을 해서는 안됩니다. 여기 하나님께 바르게 반응을 했던 예가 있어서 여러분들께 소개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렘 31: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 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애 5:2
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같게 하옵소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돌이키소서 그러면 돌아가겠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른 반응입니다. 주님 돌이키소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오리발을 내밉니다. 하나님의 역설 그러면 이렇게 오리발을 내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다루어 나아가십니까 8절을 읽습니다. "." 여러분 8절이 우리에게 밝히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너희들이 나의 것을 도적질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또다시 오리발을 내밉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고 오히려 반문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우리는 여기서 잠시 하나님께서 왜 갑자기 십일조의 문제를 끄집어 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들이 도적질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자 보십시오.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돌아갈 것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지요 이것은 우리들은 떠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을 향해 무엇이라 말씀하셔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그렇지요 저들이 떠났음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떠났 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갑자기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다시 이 이야기를 바꿔놓고 생각을 해 보십시다. 십일조를 잘하면 하나님을 떠나지않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죠 십일조를 잘해도 범죄 할 수 있습니다. 떠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십일조를 당시의 대표적인 죄로 다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말라기서에서 저들의 죄에 대해서 많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제사에 대한 문제 혼인에 대한 문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문제 이 문제 저 문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신들이 떠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까지 지적하지 않는 십일조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위해서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죄를 지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말라기서 하면 오해가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말라기서는 십일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십일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죄에 대한 지적입니다. 죄에 대해서 하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이제는 십일조 문제를 끄집어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라기서를 십일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말라기하면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오리발을 떠올리십시오. 그렇게 이스라엘이 완악했다는 것을 떠올리십시오. 치사하게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정도로 저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부인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시는 대도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오리발을 내밉니다. 도적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감각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무감각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저들이 내미는 오리발이 잘못되었음을 계속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9절을 보십시다. "" 여기서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이 요즘 어렵게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하면 십일조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부분을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잘못 해석을 해서 십일조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한가지 묻습니다. 십일조를 왜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드리는 것입니다. 내게 열 개를 주신 것을 감사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열 개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는 의미를 그중 하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의 의미를 축복을 받는 통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잘하면 복을 받고 잘산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로 아무리 십일조를 많이 해보십시오. 그런 십일조는 드려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의 정반대의 의미로 헌금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의 의미가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복의 통로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더 많이 가지게 해주십시오. 내것이 더 많아지게 해주십시오. 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자 이런 생각을 갖고 오늘 본문을 다시 잘 살펴보십시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본문을 반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다 십일조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잘해도 잘 안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십일조를 잘 해도 안돼더라. 예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잘해도 안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는 것은 십일조를 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들이 자꾸 발뺌을 하니까 저들의 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또, 이것은 당시 상황에만 필요한 것입니다. 즉, 이 원리를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고난과 문제들을 보십시오. 십일조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고난이 있었습니다. 욥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므로 잘안돼는 것은 십일조를 잘하지 않은 것이 다고 우선 생각하지 말아햐 합니다. 다음으로 주의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10절 이하의 해석입니다. 10절 이하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잘하면 복을 주겠다 너희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온전한 십일조를 해라 말씀하시지요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떻습니까 이 구절이 "십일조를 잘하면 복을 주겠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까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가 왜 왔지요 예,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바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도적질했다" 했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우리들을 도적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오리발을 내밀었죠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다. 너희들이 도적질을 했다 도둑놈들이다. 이것을 말씀하시고 증명하시기 위해서 지금 이야기를 하시고 계시는 것이죠
그렇다면 십일조를 잘 해봐라 그러면 복을 주겠다는 말씀은 그것 봐라 지금까지 너희들이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느냐 그것 봐라 너희들이 오리발을 내민 것이 잘못이지 않는냐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일조를 잘하면 복을 준다 하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내민 오리발이 잘못 되었다 하는데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해 보라는 의미는 사실은 내가 복을 주나 안주나 시험해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 시험을 통해서 너희들이 죄를 지었는가 아닌가를 증명해 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을 해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잘했습니다. 그랬더니 삶의 형편이 달라지고 새로와 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이 지금까지 내민 그 모든 오리발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들의 죄를 지적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들의 이런 수치스런 죄악을 지적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치사하게 십일조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면서까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잘못되었으니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고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돌이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저들의 여러 문제들 중에 십일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지적하시면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실까요 여러 가지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끄집어내실 것입니다. 그 문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십일조에 대한 문제일 수 있고 다른 여느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돌이켜야 할 것은 진정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돌이키십시다. 그래야 우리들이 삽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영이 평안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위로가 넘칠 것입니다. 돌이키는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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