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릭스 총독과 바울 (행24:22-27)
본문
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옴으로 바울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각 지역에서 바울을 적극적으로 싫어하고 방해하던 자 들이 여기서도 똑같이 무리들을 충동질하여 바울을 배척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이 바울을 싫어한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율법에 어긋난 것이며, 신성 모 독을 자행하도록 백성들을 어지럽히는 자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결례를 행하기 위하여 성전에 있던 바울을 보고서 소아시아로부터 온 자들이 율법 과 성전을 모독하는 자라는 명목으로 바울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소란한 소리를 들 은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하는 천부장이 군사를 보내어 소란을 평정하고 바울을 보호 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고 음모하는 40인의 암살단 계획이 천부장에게 알려짐으로 벨릭스 총독에게 이 사건을 보내어 재판을 받게 하였 던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의 자격으로 재판을 받기 위하여 가이사랴에 온 지 5일만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를 앞세워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 습니다. 그 고소 내용은, 천하에 퍼진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요,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행24:5-6). 이 고소에 대하여 바울은 합당하게 변론하였습니다. 고소와 변론을 다 들은 벨릭스는 바울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유대인들의 내부 문제인 종교 문제에 연루되기 싫어서 재판의 최 종 판결을 연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고소가 불합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 총독은 나름대로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들이 수종 드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본론'
1.총독 앞에서 강론하는 바울 벨릭스 총독은 비록 로마인이었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유대인들 보다도 더 자 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온 지 수일 후에 벨릭스 총독은 자기 아내인 유대 여자 드루실 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감옥에 있던 바울을 불러내어 자청하여 복음을 듣겠다고 한 총독의 태도입니다 총독은 그리스도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믿는 도에 대하여 호기심이 있었던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기를 자청하는 벨릭스 총독에게 사도 바울은 주 저하지 않고 설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향해 불타는 태도를 버리지 않은 바울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첫째,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해 야 합니다. (벨전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 움으로 하고" 또한,
둘째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였 습니다. 바울의 이 강론은 그리스도를 믿느 도를 알아가는데 가장 초보적인 것이면서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의를 다루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강론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의 윤리적 삶의 절제와 장차 백보좌 앞에서 받을 심판을 준비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신자의 신앙의 삶임을 강론했을 것입니다. 이런 강론을 들은 벨릭스는 그 엄청난 말씀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 충격을 `벨 릭스가 두려워하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 판에 대하여 말씀이 던져질 때에 우리 자신의 현제의 모습을 반성하는 두려움이 있 어야 합니다.
2.바울에게서 뇌물을 바라는 벨릭스
1)벨릭스의 이중적인 마음 그리스도 믿는 도를 듣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던 벨릭스 총독은 한편으로 다 른 마음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 때에 많은 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행24:17). 물론 이 돈은 자기 민족을 구제하는 것과 성전에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총독 벨릭스는 이 재 물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자주 불러 그리스도 예수의 도에 관해서 드 었지만 그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뇌물에 대한 그의 뜻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복음이 잘 전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가 그릇되어 있거나 다른 마음이나 탐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결코 열매를 맺지 못 함을 봅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복음의 진리가 선포되어도 헛된 세상 일에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복음 전파자들은 외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2)유대인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벨릭스 바울은 2년 동안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벨릭 스는 바울에 대한 죄의 유무를 재판하지 않고 연기했습니다. 벨릭스가 내어놓은 연 기 사유는 천부장 루시아가 올 때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루시아는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하는 천부장이었는데 군사들을 시켜 바울을 벨릭스에 게 호송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천부장 루시아가 가이사랴에 오는 것은 2년 씩 이나 기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불과 하루 안쪽에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총 독의 뇌물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유대인들의 미묘한 종교적 문제를 성급하게 취급 하지 않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들의 반란적 행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그 에 대한 인상을 바꾸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벨릭스는 특별한 죄명도 붙이지 않고 2년이라는 세월을 구류하였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에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바울을 구류한 채로 후임 총독에게 인계했습니다.
'결론' 바울은 이같은 시련의 연속 앞에서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인 내와 절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선한 인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데로 복음을 전할 자세를 가졌던 것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았으나 끝까지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조급하고 성급한 우리의 성미를 바울 사도의 성화된 마음 앞에 배워야 할 것입니다.
'본론'
1.총독 앞에서 강론하는 바울 벨릭스 총독은 비록 로마인이었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유대인들 보다도 더 자 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온 지 수일 후에 벨릭스 총독은 자기 아내인 유대 여자 드루실 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감옥에 있던 바울을 불러내어 자청하여 복음을 듣겠다고 한 총독의 태도입니다 총독은 그리스도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믿는 도에 대하여 호기심이 있었던 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기를 자청하는 벨릭스 총독에게 사도 바울은 주 저하지 않고 설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향해 불타는 태도를 버리지 않은 바울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첫째,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해 야 합니다. (벨전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 움으로 하고" 또한,
둘째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바울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였 습니다. 바울의 이 강론은 그리스도를 믿느 도를 알아가는데 가장 초보적인 것이면서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의를 다루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강론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의 윤리적 삶의 절제와 장차 백보좌 앞에서 받을 심판을 준비하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신자의 신앙의 삶임을 강론했을 것입니다. 이런 강론을 들은 벨릭스는 그 엄청난 말씀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 충격을 `벨 릭스가 두려워하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 판에 대하여 말씀이 던져질 때에 우리 자신의 현제의 모습을 반성하는 두려움이 있 어야 합니다.
2.바울에게서 뇌물을 바라는 벨릭스
1)벨릭스의 이중적인 마음 그리스도 믿는 도를 듣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던 벨릭스 총독은 한편으로 다 른 마음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 때에 많은 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행24:17). 물론 이 돈은 자기 민족을 구제하는 것과 성전에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총독 벨릭스는 이 재 물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자주 불러 그리스도 예수의 도에 관해서 드 었지만 그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뇌물에 대한 그의 뜻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복음이 잘 전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가 그릇되어 있거나 다른 마음이나 탐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결코 열매를 맺지 못 함을 봅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복음의 진리가 선포되어도 헛된 세상 일에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복음 전파자들은 외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2)유대인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벨릭스 바울은 2년 동안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벨릭 스는 바울에 대한 죄의 유무를 재판하지 않고 연기했습니다. 벨릭스가 내어놓은 연 기 사유는 천부장 루시아가 올 때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루시아는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하는 천부장이었는데 군사들을 시켜 바울을 벨릭스에 게 호송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천부장 루시아가 가이사랴에 오는 것은 2년 씩 이나 기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불과 하루 안쪽에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총 독의 뇌물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유대인들의 미묘한 종교적 문제를 성급하게 취급 하지 않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들의 반란적 행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그 에 대한 인상을 바꾸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벨릭스는 특별한 죄명도 붙이지 않고 2년이라는 세월을 구류하였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에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바울을 구류한 채로 후임 총독에게 인계했습니다.
'결론' 바울은 이같은 시련의 연속 앞에서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인 내와 절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선한 인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는데로 복음을 전할 자세를 가졌던 것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았으나 끝까지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조급하고 성급한 우리의 성미를 바울 사도의 성화된 마음 앞에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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