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벳새다의 한 어린이 (요6:1-15)

본문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 나타난 벳새다의 한 어린이에 대하여 살펴 보고져 합니다. 그 어린이의 보잘 것 없는 도시락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주님이 축사하시니 벳새다의 한 어린이 자신뿐만 아니라, 거기 모인 큰 무리가 다 먹고도 열 두 바구니를 가득 채웠습니다. 벳새다의 한 어린이 어른도 아닌, 한 어린이로 말미암아 일어난 예수님의 이적입니다. 어른이 아닌 중학생, 고등학생이라 해서 주님 앞에서는 무시되어지지도, 소외되어지지도 않습니다. “(마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그러므로 아이라고 해서 기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벳새다의 한 어린이처럼 살아갑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만 5천명 실제는 대략 2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사람들을 먹이고도, 부수러기를 열 두 바구니나 거둔 놀라운 예수님의 이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보통 "5병2어의 이적"으로 불리는 이 이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에 빠짐 없이 모두 기록되리만큼 예수님의 이적 중에서도 중요한 이적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이적이다. 창조의 능력으로 감추었던 만나를 주신 분이십니다. 실상은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참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그러시면서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산 떡임을 나타내는 이적입니다. 우리는 이 5병2어의 이적을 통하여 긍휼에 풍성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찾아온 큰 무리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가르치시고, 먹여 주신 것입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자신은 40일 금식의 베고픔 중에서도 마귀의 유혹을 뿌리치고 돌로 떡 만들어 먹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자 없는 양 같은 불쌍한 무리들을 위하여 5병2어의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이라야 주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도 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벳새다의 한 어린이” 비록 어린 아이었지만 그의 손을 통해 바쳐진 5병2어가 놀라운 5병 2어의 이적을 가져왔다. 평강교회 성도 여러분, 기죽지 말고 우리 다같이 "화이팅!"을 외치며 벳새다의 한 어린이를 살펴 봅시다.
1.주님을 따랐다. 본문 2절/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벳새다의 한 어린이 그도 그 큰 무리 속에 있었습니다. 주를 따랐습니다. 이 어린이에 대한 기록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기록으로 상세한 기록이 없어, 이 아이의 이름도, 형편도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낌없이 드리리다의 삶이요, 감사하며 섬기리다 의 삶이었습니다.
1.큰 무리가 따르니 마태복음 4:23-24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 것 같습니다. “(요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그리고, 천국 복음을 들으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눅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또다른 사람들은 책잡을 말을 찾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막12: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2.진정 주를 따르는 길은 마태복음 16:24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이는 자기를 버린다는 말이요, 자기를 이긴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다는 것입니다. 맡겼으니 이제 내 것은 없다는 말이요, 나 자신의 주인이 내가 아니오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주님을 따른다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나는 예수 믿는다"고 남들에게 말할 수 있고, 식사 기도를 하고, 주일에 교회를 가고, 헌금을 하고, 예배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 정도만 하여도 요즈음은 "대단한 신자"로 인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주를 따르는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주를 좇는 일입니다.
2.자신의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본문 8-9절/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 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주님은 지금 디베랴 바다 건너편 들판에 계시고, 이곳은 구체적으로 벳새다라고 했다(눅9:10). 이 곳 벳새다는 주님의 제자 중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했다(요1:44). 목자 없는 양 같은 큰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여 무리들로 하여금 마을에 들어가 사 먹게 하자고 했다(마14:15). 본문 5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빌립을 시험하고져 하시는 주님의 질문입니다. 빌립의 이성적 판단은 조금씩 준다 해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는 계산이요, 대답이다. 우리 인간의 이성적 판단은 우리 인간이 경험한 범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계가 있습니다. 주님의 질문은 이 큰 무리를 위해서는 얼마치의 떡이 필요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표면적인 그 질문보다는 그 질문 속에 담겨진 주님의 "의도(意圖)" 하심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에 반하여 안드레의 "예수께 여짜오되"는 어리석고, 바보스럽기도 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여짜오되"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말과 같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는가입니다. 같은 이적을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곧 공관복음의 기록에서는 한결같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미루어 생각해 본다면 빌립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가진 것은 없고 돈으로 해결하려 한 것 같고 안드레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알아보니 고향 마을의 한 어린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태복음 14:18절/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벳새다의 한 어린이 그는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어린아이입니다. 더구나 자신의 도시락입니다. 어린아이가 그것도 먹을 것을 자신의 손에서 내어놓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움켜쥐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우는 것이 일반적인 어린이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래서, 안드레가 와서 달라는데도 내어놓았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데도 내어놓았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남을 위해서 내어놓을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심을 우리에게 사랑의 본이 되셨습니다. 남을 위해 내 것을 얼마나 내어놓고 살아가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3.주의 영광 나타내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본문 11-12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벳새다의 한 어린이 그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어린 아이의 한 끼 식사분 그 5병2어가 벳새다의 한 어린이의 손에서 주님의 손으로 옮겨졌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벳새다의 한 어린이의 손에 있을 때는 한 어린 아이의 한 끼 식사였지만 주님의 손에서는 큰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 놀라운 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마태복음 14:21절/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여자와 아이 외에 5천명 20세 이상의 남자 어른만 5천명 거기에다 여자와 아이까지를 합치면 보통 성경 학자들은 2만명 정도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벳새다의 한 어린이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아 어른들 중에도 한 둘 정도는 먹을 것을 챙겨온 이들도 있었으리라 보여진다. 그들은 내어놓지 못한 것일까 벳새다의 한 어린이 어른들에 의해서 업신여김을 받는 아이들이다. 무시되어지는 아이들입니다. 제자들에 의해서도 쫓겨나고, 꾸중을 듣는 아이들입니다(마19:13). 그러나, 5병2어의 이적은 벳새다의 한 어린이가 자신의 것을 내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루어진 이적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도시락입니다. 한 끼 식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놀라운 일에 쓰임을 받은 5병2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가진 것도 보잘 것 없고, 이룩해 놓은 일을 보아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보잘 것 없는 것도 주님의 손에 드려지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필요로 주님의 손에서 의해 사용되어졌기에 대단한 5병2어의 이적이 된 것입니다. 벳새다의 한 어린이 그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한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 5천명이란 숫자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숫자에 칠 가치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벳새다의 한 어린이가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신의 것을 주님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이러한 벳새다의 한 어린이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큰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게 내어놓는 것 그것 가지고 크게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벳새다의 한 어린이 우리에게도 그 아이만큼은 가진 것이 있다고 봅니다. 주를 따르는 마음도 주께 내어놓을 수 있는 마음도 있다고 봅니다. 본문 9절/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대단한 게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주님의 손에 드려질 때 놀라운 5병2어의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손에 드려질 때 큰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우리 비록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지만 우리의 작은 입술을 통해 증거 되어지는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롬1:17). 우리가 기죽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5병2어로 5병2어의 이적을 행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이 나의 주님이시오, 나를 고쳐 주시는 주님이시오, 나의 드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크게 사용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주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49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