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삼상6:10-16)
본문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다 른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의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무엇을 판단할 수 있는이성과 자유의지 도 부여받았습니다. 또한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은 창조의 면류관이요 하나님의걸작품 중의 걸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이하나님께 범죄함 으 로 우리 인간에게는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우리 안에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 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본성으로는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항상 악한 생각을 품게 되었고, 자연적으로 죄악된 행동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 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 인 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사1:3)라고 탄 식한 것처럼 세상에는 소나 나귀 처럼 짐승만도 못한 무지한인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뜻을깨닫게 하기 위하여 가끔 동물들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거짓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의뜻을 거스리면서 이스라엘 을 저 주하기 위하여 모압의 발락에게로 갈 때에하나님께서는 그가 타고 가던 나귀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기전에 애굽에 내렸던 개구 리, 이, 파리, 메뚜기재앙들은 완악한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 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본문에도 아직 멍에를 메어보지아니한 암소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암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이 납니다만 10여년전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서울 압구정동에 있는암소한마리 라는 음식점에 가서 암소를한마리 먹은 적이 있습니다. 전 주 에도암소한마리 라는 음식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음식점에 들어가면 누구나 암소 한 마리씩 먹고 나오게 됩니다. 어떻게먹느냐고요 간단합니다.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소의 각 부위 들을 조금씩 모아서 갖다 주닌까 그것을 다 먹으면 암소한마리를다 먹는 것입니다. 심지어 소의 혀까지 있더군요. 저는 그것을먹으면서참으로 소라는 동물은 우리 인간을위해서 100% 희생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살아생전에는인간을 위하여 죽도록 일하죠, 게다가 젖소는 우유 까지 제공합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먹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뼈까지 탕을 만들어 먹지 않습니까 또한가죽은 가죽대로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아마 인간을위하여 소만 큼 희생하는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본문에 암소 두 마리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먼저 그 배경을 살 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 제사장당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을 믿었지만,결과는 블레셋에 패배하 게 되 었고, 법궤마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블레셋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빼앗아온 법궤를 그들의 다곤 신상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밤을 지나고 일어나 보니그들의 신상이 박살나 있는 겁니다. 깜짝 놀란 블레셋 사람들은법궤에 대하여 두려워하기 시작하였고, 그 법궤를 신전에서 아 스돗이라는 도시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스돗이라는 도시에심한 독종이 퍼지 게 된 것입니다.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법궤를 가드로옮기자 거기에도 독종이 퍼졌고, 다 시 에그론으로 보내자 이제는 에그론 사람들이자기들을 독종으로 죽이려고 한다고 데모를 한 것입니다. 이쯤되자 블레셋 방백들은 더 이상법궤를 가지고 있다가는 온 나라가 독종으로 멸망할 것 이 니다시 이스라엘로 돌려 보내자고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법궤를 어떻게 돌려보낼 것 인가 나름대로 몇가지 방법을고안하여 시도합니다. 먼저 자기들을 괴롭혔던 독종의모양대로 금으 로 다섯 개의 독종을 만들고, 또한 금으로 다섯 개의 쥐를 만들어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것들을 상자에 넣어서 법궤와 함께 수레에 실어놓고 아직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젖이 나는 소 둘을 데려 다가 수레에 메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젖소의 새끼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블레 셋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만약에 이 소들이 본래법궤가 있었 던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수레를 끌고 가면 우리에게 내린 죄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린 것이 요, 반대로 이 소들이 자기의 새끼들을 찾아 집으로 수레를 끌고 가면우리에게 내린 재앙이 하나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우연 히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블레렛 사람들은수레를 멘 암소들에게 떠나라는 채찍을때렸습니다. 여러분! 과연 그 소들이 어디를 향하여 달려 갔을까요본래 법궤가 있었던 이스라엘 벧세메스를 향하여 달려 갔겠습니까 아니면 자기의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블레셋의 집으로 향하여 달려갔겠습니 까 상 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소들은 당연히 자기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수레를 몰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들은 집과는 정반대인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향하여 달려갔음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여러분! 이 장면이 충분히상상이 됩니까 지금 집에는 새끼들이 어미가 오기를 애타게기다 리고 있습니다. 암소들이 그것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새끼들이 있는 곳이 아 니라 정반대인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향하여 수레를 몰고 갑니다. 그것도 좌우로치우치지 아니하 고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갔다고하였습니다. 또한 그 소들은 달려가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여러분! 한갖 미물에 불과한 짐승이지만 새끼에 대한 정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소들은 그러한 정 을 울 음으로 호소하면서 이스라엘 땅으로 수레를 몰고 달려갑니다. 그것을바라본 블레셋 방백들 은 그 때서야 자기들에게 내린 죄앙이이스라엘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믿게 되었고, 그사건 이 후 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벧세메스로 달려가는 암소들의 모습을보며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는않습니 까 그 소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시키는데도구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 소 들은 혈육의 정 보다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분별하였고, 그 뜻에 따라 사명의길로 달려갔습니다. 결국 그 소들은법궤를 이스라엘에 인도하였고, 거기서 희생제사의 제물로 드 려지 게 됩니다. 얼마나 값진 희생입니까 특별히 오늘 우리는 벧세메스로가는 암소들을 통하여 두가 지 교훈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나태한 신앙에 대하여 각성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입니다. 여러분! 이성이 아니라 거의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짐승인 암소가 새끼들을 뒤에 두고사지로 향하였다는 것이 우연이었다고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와 간섭이 있었기에그것이 가능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우연이란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래 오늘날까지, 아니 마지막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때까지 모든 것을섭리하시며 주 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는 분 이십니다.
그러므로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역사란 무의미한 사건의 연속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섭리의 사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모르겠습니다.이 지구(우주)는 어떤 창조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저절로생겼다. 미생물에서 점점 진화하여 뭐가 되고, 뭐가 되어서결국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도대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머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크리스챤 과학자가말하기를이 우주가 우연히,저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조금만 상자 속에 분해한 시계 부속품을 집어넣고 흔들었을 때에 시계가 우연히 조립되어 나왔다고 얘 기하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믿습니까 성도 여러분! 아직 멍에 메어보지 못한 암소가 새끼들을 뒤로 하고 벧세메스로향하여 수레 를 몰고 간 것은 바로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섭리를 믿 고 살아는 자들은 그저 되는대로,자신의 정욕대로 삶을 꾸려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 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다가초점을 맞추어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삶을 그분의 섭리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여러분의삶을 성공적으로 창조해 나가 도록 의뢰하시기 바랍니다.그러한 자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돌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우리의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의 모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 앞에서 사명의 길로 걸어가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암소들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소 들 은 새끼에 대한 연민의 정을 억제하면서벧세메스로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암소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얼 마나 많은 성도들이 부모에 대한 정, 자식에대한 정, 또한 주변의 상황에 발목이 붙잡혀 사명의 길로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부모나 자식이나 가족이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직장이나 사업이나일이 중 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때로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갈때에 주 님 을 위한 일이라면, 몸된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그것들을 뒤로 미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정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들이 수레 를 몰 고 울면서 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눈물을 감수하면서도사명을 위해서 라 면 십자가를 바라보며 전진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멘입니까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동안 여러분의 신앙이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질 적 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분별해야합니다. 또한 그 뜻 을 이 루고 성취하기 위하여 때로는 가정의 일이나, 직장의 일을 잠시 뒤로 미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가정 일에만 얽메여 있다면, 직장이나 사업에만 얽메어있다면 어떻게 큰 일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가정이나 직장의 일을 떠나서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몸된 교회를 위하여,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밤을 지새우며 부르짖는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을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수레를 몰고벧세메스로 달려가는 암소들의 모습을 통하여 두 사람의 인 물을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나귀 새끼를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찬송하리로다 주의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주님은 그 들의 환영과는 다르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백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의왕이 되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입성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의뜻에 기꺼이 순종하여 죽음 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마치 수레를 멘암소들이 죽 음이 기다리고 있는 벧세메스로 울면서 달려간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성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 하였 던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 역시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게되면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많은 환 난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그는 조금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묵묵히 사명의 길 로 걸어갔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님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 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 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2-24) 그의 마지막 예루살 렘으로 의 여정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울면서 벧세메스를 향하여 달려갔던 암소들을 연상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갖 미물에 불과한 암소들이 이렇게 자식에 대한 연민의정을 억제 하 면서 사명의 길로 달려갔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오늘 우리들이야 어떠한 삶을 살아 야 하겠습니까 더욱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푯대 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위하여 좇아가야 되지 않겠습 니 까 만약 벧세메스로 향하여 달려가는 암소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각성하지 못한다면 그야말 로 우리는 암소만도 못한 인간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으로 도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암소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시키면서 영광을 돌리게 하 였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내 마음대로, 정욕대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오직 그 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그의뜻에 순종하면서, 그가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앞으로 여러분의일생에 계속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 은 창조의 면류관이요 하나님의걸작품 중의 걸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이하나님께 범죄함 으 로 우리 인간에게는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우리 안에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 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본성으로는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항상 악한 생각을 품게 되었고, 자연적으로 죄악된 행동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 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 인 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사1:3)라고 탄 식한 것처럼 세상에는 소나 나귀 처럼 짐승만도 못한 무지한인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뜻을깨닫게 하기 위하여 가끔 동물들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거짓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의뜻을 거스리면서 이스라엘 을 저 주하기 위하여 모압의 발락에게로 갈 때에하나님께서는 그가 타고 가던 나귀의 입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기전에 애굽에 내렸던 개구 리, 이, 파리, 메뚜기재앙들은 완악한 바로와 애굽 사람들을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 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본문에도 아직 멍에를 메어보지아니한 암소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암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이 납니다만 10여년전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서울 압구정동에 있는암소한마리 라는 음식점에 가서 암소를한마리 먹은 적이 있습니다. 전 주 에도암소한마리 라는 음식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음식점에 들어가면 누구나 암소 한 마리씩 먹고 나오게 됩니다. 어떻게먹느냐고요 간단합니다.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소의 각 부위 들을 조금씩 모아서 갖다 주닌까 그것을 다 먹으면 암소한마리를다 먹는 것입니다. 심지어 소의 혀까지 있더군요. 저는 그것을먹으면서참으로 소라는 동물은 우리 인간을위해서 100% 희생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살아생전에는인간을 위하여 죽도록 일하죠, 게다가 젖소는 우유 까지 제공합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먹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뼈까지 탕을 만들어 먹지 않습니까 또한가죽은 가죽대로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아마 인간을위하여 소만 큼 희생하는 동물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본문에 암소 두 마리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먼저 그 배경을 살 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 제사장당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을 믿었지만,결과는 블레셋에 패배하 게 되 었고, 법궤마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블레셋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빼앗아온 법궤를 그들의 다곤 신상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밤을 지나고 일어나 보니그들의 신상이 박살나 있는 겁니다. 깜짝 놀란 블레셋 사람들은법궤에 대하여 두려워하기 시작하였고, 그 법궤를 신전에서 아 스돗이라는 도시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아스돗이라는 도시에심한 독종이 퍼지 게 된 것입니다.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법궤를 가드로옮기자 거기에도 독종이 퍼졌고, 다 시 에그론으로 보내자 이제는 에그론 사람들이자기들을 독종으로 죽이려고 한다고 데모를 한 것입니다. 이쯤되자 블레셋 방백들은 더 이상법궤를 가지고 있다가는 온 나라가 독종으로 멸망할 것 이 니다시 이스라엘로 돌려 보내자고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법궤를 어떻게 돌려보낼 것 인가 나름대로 몇가지 방법을고안하여 시도합니다. 먼저 자기들을 괴롭혔던 독종의모양대로 금으 로 다섯 개의 독종을 만들고, 또한 금으로 다섯 개의 쥐를 만들어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것들을 상자에 넣어서 법궤와 함께 수레에 실어놓고 아직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젖이 나는 소 둘을 데려 다가 수레에 메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젖소의 새끼들을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블레 셋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만약에 이 소들이 본래법궤가 있었 던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수레를 끌고 가면 우리에게 내린 죄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린 것이 요, 반대로 이 소들이 자기의 새끼들을 찾아 집으로 수레를 끌고 가면우리에게 내린 재앙이 하나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우연 히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블레렛 사람들은수레를 멘 암소들에게 떠나라는 채찍을때렸습니다. 여러분! 과연 그 소들이 어디를 향하여 달려 갔을까요본래 법궤가 있었던 이스라엘 벧세메스를 향하여 달려 갔겠습니까 아니면 자기의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블레셋의 집으로 향하여 달려갔겠습니 까 상 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소들은 당연히 자기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수레를 몰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들은 집과는 정반대인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향하여 달려갔음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가니라 여러분! 이 장면이 충분히상상이 됩니까 지금 집에는 새끼들이 어미가 오기를 애타게기다 리고 있습니다. 암소들이 그것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새끼들이 있는 곳이 아 니라 정반대인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향하여 수레를 몰고 갑니다. 그것도 좌우로치우치지 아니하 고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갔다고하였습니다. 또한 그 소들은 달려가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여러분! 한갖 미물에 불과한 짐승이지만 새끼에 대한 정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소들은 그러한 정 을 울 음으로 호소하면서 이스라엘 땅으로 수레를 몰고 달려갑니다. 그것을바라본 블레셋 방백들 은 그 때서야 자기들에게 내린 죄앙이이스라엘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으로 믿게 되었고, 그사건 이 후 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벧세메스로 달려가는 암소들의 모습을보며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는않습니 까 그 소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시키는데도구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 소 들은 혈육의 정 보다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분별하였고, 그 뜻에 따라 사명의길로 달려갔습니다. 결국 그 소들은법궤를 이스라엘에 인도하였고, 거기서 희생제사의 제물로 드 려지 게 됩니다. 얼마나 값진 희생입니까 특별히 오늘 우리는 벧세메스로가는 암소들을 통하여 두가 지 교훈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나태한 신앙에 대하여 각성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입니다. 여러분! 이성이 아니라 거의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짐승인 암소가 새끼들을 뒤에 두고사지로 향하였다는 것이 우연이었다고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와 간섭이 있었기에그것이 가능하였다는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우연이란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래 오늘날까지, 아니 마지막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때까지 모든 것을섭리하시며 주 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는 분 이십니다.
그러므로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역사란 무의미한 사건의 연속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섭리의 사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즈음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모르겠습니다.이 지구(우주)는 어떤 창조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저절로생겼다. 미생물에서 점점 진화하여 뭐가 되고, 뭐가 되어서결국 사람이 나타나게 되었다도대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머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크리스챤 과학자가말하기를이 우주가 우연히,저절로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조금만 상자 속에 분해한 시계 부속품을 집어넣고 흔들었을 때에 시계가 우연히 조립되어 나왔다고 얘 기하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믿습니까 성도 여러분! 아직 멍에 메어보지 못한 암소가 새끼들을 뒤로 하고 벧세메스로향하여 수레 를 몰고 간 것은 바로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섭리를 믿 고 살아는 자들은 그저 되는대로,자신의 정욕대로 삶을 꾸려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 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다가초점을 맞추어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삶을 그분의 섭리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여러분의삶을 성공적으로 창조해 나가 도록 의뢰하시기 바랍니다.그러한 자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돌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지난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우리의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의 모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 앞에서 사명의 길로 걸어가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암소들은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소 들 은 새끼에 대한 연민의 정을 억제하면서벧세메스로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암소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얼 마나 많은 성도들이 부모에 대한 정, 자식에대한 정, 또한 주변의 상황에 발목이 붙잡혀 사명의 길로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부모나 자식이나 가족이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직장이나 사업이나일이 중 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때로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갈때에 주 님 을 위한 일이라면, 몸된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그것들을 뒤로 미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정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들이 수레 를 몰 고 울면서 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눈물을 감수하면서도사명을 위해서 라 면 십자가를 바라보며 전진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멘입니까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동안 여러분의 신앙이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양적으로 질 적 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분별해야합니다. 또한 그 뜻 을 이 루고 성취하기 위하여 때로는 가정의 일이나, 직장의 일을 잠시 뒤로 미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가정 일에만 얽메여 있다면, 직장이나 사업에만 얽메어있다면 어떻게 큰 일을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때로는가정이나 직장의 일을 떠나서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몸된 교회를 위하여,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밤을 지새우며 부르짖는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을 기 억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수레를 몰고벧세메스로 달려가는 암소들의 모습을 통하여 두 사람의 인 물을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나귀 새끼를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찬송하리로다 주의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주님은 그 들의 환영과는 다르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백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의왕이 되려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입성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의뜻에 기꺼이 순종하여 죽음 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마치 수레를 멘암소들이 죽 음이 기다리고 있는 벧세메스로 울면서 달려간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성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 하였 던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 역시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게되면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많은 환 난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그는 조금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묵묵히 사명의 길 로 걸어갔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님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 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 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2-24) 그의 마지막 예루살 렘으로 의 여정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울면서 벧세메스를 향하여 달려갔던 암소들을 연상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갖 미물에 불과한 암소들이 이렇게 자식에 대한 연민의정을 억제 하 면서 사명의 길로 달려갔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오늘 우리들이야 어떠한 삶을 살아 야 하겠습니까 더욱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푯대 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위하여 좇아가야 되지 않겠습 니 까 만약 벧세메스로 향하여 달려가는 암소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각성하지 못한다면 그야말 로 우리는 암소만도 못한 인간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으로 도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암소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시키면서 영광을 돌리게 하 였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내 마음대로, 정욕대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오직 그 의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그의뜻에 순종하면서, 그가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앞으로 여러분의일생에 계속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