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로 올라가자 (창35:1-15)
본문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포이에르 바하는 그 당시의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자리 에 인간이, 성경의 자리에 이성이 앉아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오늘 에 와 서 우리는 '너무나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 교회가 이러서는 안된다. 지금은 교회가 깨어나야 할 때 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성도들의 현실을 잘 대변 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신학자는 한국 교회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한국 교회의 현재 상황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전야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요즈음은 그 어 느 시 대보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영적 각성과 개혁이 요구되어지는 시대라고 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점점 부흥하고 있습니다. 세계10대 큰 교회 가운데 반이 한국에 있습니다. 해마다 수백개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으며, 인구의 25%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는 그야 말로 경 이 적인 숫자입니다. 교회당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과 기도를 드립니다. 정성껏 헌금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성도들끼리 서로 인사를 하고 교제하 면서 흩 어 집니다. 무엇하나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신앙 공동 체와 성도의 모습이 곧 영적인 상태가 건강함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 한 국 교회와 성도들을 어떻게 보시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성도 개인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처럼 어려운 시 험과 고난 과 환란으로 인하여 자신의 영적 현실을 깨닫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모든 것이 잘 되어가 고 배가 부르고 따뜻하기에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면 이것은 크 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야곱의 모습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 의 영적 인 상태를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온갖 탐심의 우상들, 세속적인 생활 방식, 습관적 이 고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 이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그 옛날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 서 의 감격과 첫 사랑을 다시한번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러한 영 적 각성과 신앙의 회복이 먼저 우리 개인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될 때에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한번 갱신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지고,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움직여질 때 에 우리 사회 구석 구석이 변화되고 개혁되어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먼저 본문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야곱의 생애를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아마 구약 성경에 서 야곱처럼 재미있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낳은 쌍 둥 이 중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출생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모태에서부터 형 과 싸 웠고, 막상 출생할 때에는 먼저 태어나겠노라고 형의 발꿈치를 잡아 당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태 어난 후에는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이나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 을 받 은 것을 보면 그는 너무나 간사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형 에서가 죽일려고 하자 야곱은 형의 낯을 피하여 밧단 아람 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정처없는 피난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사실 그 때까지만해도 야곱은 신 앙이 무엇인지 잘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20여년의 피난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경 험 하게 되었고, 비록 성숙한 신앙은 아니었지만 신앙이 무엇인지 조금씩 눈을 뜨게 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은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창 28장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루스 들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그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잠이 깬 야곱은 베고 잤던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서 서원 하 게 됩니다. 다같이 성경을 찾아 보겠습니다. 창28:20-22절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 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 히 아 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 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의 서원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하 사 무사 히 피난생활을 마치고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 이라는 것이요,
둘째는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그 때로부터 2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함께하셨고, 그에 게 풍성한 물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외삼촌의 두 딸과 두 여종 합하여 네명의 부인에 다가 11 명 의 아들과 1명의 딸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이미 그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없었습니다. 20여년만에 형 에서와 상봉은 하였지만 옛날의 사건 때문에 같이 살 기 가 껄끄러웠던지 형 에서는 세일 지방에, 동생 야곱은 세겜 지방에 따로 떨어져 살게 되었습 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1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비록 형제가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에 서는 에 서 대로 야곱은 야곱대로 물질적인 풍요속에서 자녀손들과 남부럽지 않게 평안한 삶을 살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야곱에게 또 하나의 끔직한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됩니다. 바로 그것 이 야 곱의 외동딸 디나가 그 지방 추장에게 욕보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여자들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추장이 그녀를 발견하고 끌여들여 강간 하고 욕되게 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의 가정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추장의 아비는 야곱에게 찾아와 디나를 며느리로 삼을 것을 간청하였지만,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 청을 들 어 줄 테이니 먼저 그의 가족과 성안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추 장과 세겜의 모든 남자들은 기꺼이 할례를 행하였고, 제3일째에 그들이 고통스러울 때 에 디나 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세겜 사람들을 진멸하고 쑥밭을 만들어 버립니다. 결과적 으 로 야곱의 가정은 토착 세력과의 갈등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곱의 가 정은 그 들 에 비하면 숫적으로도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야곱의 가정은 주 위의 토 착 세력에 의하여 멸절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 을 쌓 으라 하신지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이러 한 싯 점에 야곱에게 나타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야곱으로 하여금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명령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서야 야곱 은 30여 년 전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면서 하나님을 만나 감격하고 제단을 쌓으며 서원하였던 서원을 상기 하게 됩니다. 사실 야곱은 그 때 벧엘의 서원 이후 30여년이 흘러왔지만, 자신이 하나님께서원한 것을 까 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때에 하나님께 세가지를 요구하였고,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역시 3가지를 지키겠다고 서원한바 있습니다. 먼저 야곱 이 하나님 께 요구한 것은 자기가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지켜 달라는 것이었고, 피난 생활 동안 먹을 양식 과 입을 옷을 달라는 것이었고, 자기를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 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가지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30여년을 지내면서도 서원을 지킨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여호와가 자 신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서원하였지만 그의 가정은 결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신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정 안에는 버젓이 이방신상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세겜 사람들과 같 이 교 제하면서 그들의 생활방식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야곱 가정의 영적인 상태는 그야말로 하나님 이 지배하는 가정이라기 보다는 세속적인 가정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야곱은 벧엘에서 자기가 세운 그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서원하였지 만, 30 여 년이 흘러오는 동안 벧엘을 찾아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흔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 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지만 아무리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성경을 찾아 보아도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쳤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야곱은 형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많은 가축을 예물로 드 렸습니다. 또한 자신과 가족들이 살 땅을 구하기 위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은을 일백개나 지불 하였습 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 드리고야 말겠다던 십일조의 서원을 지킨 흔적을 찾아 볼 수 없 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간사한 야곱, 자기 편리할대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 신의 방 식 대로 살아가는 야곱을 깨우치기 위하여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34 장에 기록 된 야곱의 딸 디나의 강간사건입니다. 어쩌면 이 사건은 벧엘의 서원을 이행하지 않고 현실에 안 주하고 있는 야곱을 각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잔인한 방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야곱은 왜 자신의 가정에 이러한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생각할 즈음 에 하나님 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택한 백성들을 자신의 뜻대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 하 게 됩니다. 그분은 어려운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을 깨닫 게 하시고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 만 한 자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자들에게 사랑의 매를 들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 각성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매를 맞 을 때에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 였던 벧엘에서의 처음 사랑과 감격을 회복할 수 만 있다면 그것은 징계가 아니라 축복임을 믿으 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 개인적인 문제, 가정적인 문제, 자녀들의 문제, 사 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오, 전 능하신 하나님! 왜 나에게, 왜 우리의 가정에 어려운 일이 닥치는 것입니까'하면서 눈물로 부르짖 고 있 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자신과 가정의 영 적 현 실을 깨닫게 하시고 각성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 민하며 괴 로워하는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이 말씀은 현실의 문제에만 얽 메어서 괴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신앙의 감격과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온 갖 더러운 탐심의 우상들, 세속적인 생활 방식,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 모든 것을 버리고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새겨 들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야곱은 지금까지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일대 개혁을 일 으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 든 자에 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 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실제적으로 인간적인 야곱이 하나님을 겨루어 이긴 이스라 엘 로 변화되는 삶의 전환이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집니다. 늦게나마 야곱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영적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바 른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 자' 이 것이 바로 30여년동안의 세상적인 삶을 통하여 야곱이 터득한 신앙의 부흥의 비결이 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그 벧엘에서 다시한번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약속을 받습니다.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로 부르겠다.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줄 것이다' 마지막 14-15 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 을 세우 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실로 30여년만에 야곱이 서원을 지키는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영적인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 를 향하여, 우리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 으 라' 이 말씀은 곧 영적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잃어버렸던 처음 사랑과 구원의 감 격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 으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한주일에 한 번 하나님 앞에 나와 예 배드리 고 흩어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은 30여년 동안 풍요로운 삶 속에서 편안한 삶을 살 다가 가정적인 어려움을 겪고서야 자신의 영적인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벧엘의 서원 을 이행하였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야곱처럼 인생의 위기와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벧 엘을 찾게 된다면 그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평생동 안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영적 각성과 부흥의 계기가 되는 벧엘의 경험을 맛보지 못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의 영적 상태를 보면 하루빨리 벧엘 을 찾아 야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겠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전히 세상적 인 생활방식이 삶을 지배하고, 주님이 가정에 주인이 되지 못할 때에 우리의 삶의 모습 은 인간 적 이고 간사한 야곱의 모습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야만 야곱이 이스라엘 로 변화 되 고, 영적인 풍요와 축복들이 바로 나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이 되면 성도들이 이렇게 모여 예배하고 흩어집니다. 때 로는 찬송과 기도를 드립니다. 정성껏 헌금을 드리며 저마다 열심히 봉사합니다. 굳이 우리 가 애 써 전도하지 않는다해도 하나님께서는 새가족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비록 더디지만 해 가 거듭 할 수록 부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로부터 노 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이 안이한 신앙생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각 성하면 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벧엘에 올라가는 영적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새벽마다 저녁마다 성전에서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 가 끊이 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 우리의 교회는 더 이상 비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 다시 한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우리와 우리의 가정이 살 길이 있고, 우리 세 심교회와 한국교회, 이 민족이 살 길이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영 적 각성과 신앙의 회복이 먼저 우리 개인의 삶 속에 나타나게 될 때에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한번 갱신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지고,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움직여질 때 에 우리 사회 구석 구석이 변화되고 개혁되어지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먼저 본문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야곱의 생애를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아마 구약 성경에 서 야곱처럼 재미있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낳은 쌍 둥 이 중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출생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모태에서부터 형 과 싸 웠고, 막상 출생할 때에는 먼저 태어나겠노라고 형의 발꿈치를 잡아 당기던 사람이었습니다. 태 어난 후에는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이나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 을 받 은 것을 보면 그는 너무나 간사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형 에서가 죽일려고 하자 야곱은 형의 낯을 피하여 밧단 아람 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정처없는 피난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사실 그 때까지만해도 야곱은 신 앙이 무엇인지 잘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20여년의 피난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경 험 하게 되었고, 비록 성숙한 신앙은 아니었지만 신앙이 무엇인지 조금씩 눈을 뜨게 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은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창 28장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루스 들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그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합니다. 잠이 깬 야곱은 베고 잤던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서 서원 하 게 됩니다. 다같이 성경을 찾아 보겠습니다. 창28:20-22절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 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 히 아 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 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의 서원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하 사 무사 히 피난생활을 마치고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 이라는 것이요,
둘째는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그 때로부터 2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함께하셨고, 그에 게 풍성한 물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외삼촌의 두 딸과 두 여종 합하여 네명의 부인에 다가 11 명 의 아들과 1명의 딸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이미 그의 부모는 세상을 떠났고 없었습니다. 20여년만에 형 에서와 상봉은 하였지만 옛날의 사건 때문에 같이 살 기 가 껄끄러웠던지 형 에서는 세일 지방에, 동생 야곱은 세겜 지방에 따로 떨어져 살게 되었습 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10여년이 흘러갔습니다. 비록 형제가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에 서는 에 서 대로 야곱은 야곱대로 물질적인 풍요속에서 자녀손들과 남부럽지 않게 평안한 삶을 살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야곱에게 또 하나의 끔직한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됩니다. 바로 그것 이 야 곱의 외동딸 디나가 그 지방 추장에게 욕보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여자들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추장이 그녀를 발견하고 끌여들여 강간 하고 욕되게 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의 가정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추장의 아비는 야곱에게 찾아와 디나를 며느리로 삼을 것을 간청하였지만,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 청을 들 어 줄 테이니 먼저 그의 가족과 성안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추 장과 세겜의 모든 남자들은 기꺼이 할례를 행하였고, 제3일째에 그들이 고통스러울 때 에 디나 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세겜 사람들을 진멸하고 쑥밭을 만들어 버립니다. 결과적 으 로 야곱의 가정은 토착 세력과의 갈등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곱의 가 정은 그 들 에 비하면 숫적으로도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야곱의 가정은 주 위의 토 착 세력에 의하여 멸절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 을 쌓 으라 하신지라'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이러 한 싯 점에 야곱에게 나타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야곱으로 하여금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명령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서야 야곱 은 30여 년 전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면서 하나님을 만나 감격하고 제단을 쌓으며 서원하였던 서원을 상기 하게 됩니다. 사실 야곱은 그 때 벧엘의 서원 이후 30여년이 흘러왔지만, 자신이 하나님께서원한 것을 까 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때에 하나님께 세가지를 요구하였고,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신다면 역시 3가지를 지키겠다고 서원한바 있습니다. 먼저 야곱 이 하나님 께 요구한 것은 자기가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지켜 달라는 것이었고, 피난 생활 동안 먹을 양식 과 입을 옷을 달라는 것이었고, 자기를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 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가지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30여년을 지내면서도 서원을 지킨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여호와가 자 신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서원하였지만 그의 가정은 결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신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정 안에는 버젓이 이방신상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세겜 사람들과 같 이 교 제하면서 그들의 생활방식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야곱 가정의 영적인 상태는 그야말로 하나님 이 지배하는 가정이라기 보다는 세속적인 가정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야곱은 벧엘에서 자기가 세운 그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라고 서원하였지 만, 30 여 년이 흘러오는 동안 벧엘을 찾아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흔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 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지만 아무리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성경을 찾아 보아도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쳤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야곱은 형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많은 가축을 예물로 드 렸습니다. 또한 자신과 가족들이 살 땅을 구하기 위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은을 일백개나 지불 하였습 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 드리고야 말겠다던 십일조의 서원을 지킨 흔적을 찾아 볼 수 없 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간사한 야곱, 자기 편리할대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 신의 방 식 대로 살아가는 야곱을 깨우치기 위하여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34 장에 기록 된 야곱의 딸 디나의 강간사건입니다. 어쩌면 이 사건은 벧엘의 서원을 이행하지 않고 현실에 안 주하고 있는 야곱을 각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잔인한 방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야곱은 왜 자신의 가정에 이러한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 생각할 즈음 에 하나님 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택한 백성들을 자신의 뜻대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 하 게 됩니다. 그분은 어려운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을 깨닫 게 하시고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 만 한 자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자들에게 사랑의 매를 들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 각성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매를 맞 을 때에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 였던 벧엘에서의 처음 사랑과 감격을 회복할 수 만 있다면 그것은 징계가 아니라 축복임을 믿으 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 개인적인 문제, 가정적인 문제, 자녀들의 문제, 사 업의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등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오, 전 능하신 하나님! 왜 나에게, 왜 우리의 가정에 어려운 일이 닥치는 것입니까'하면서 눈물로 부르짖 고 있 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자신과 가정의 영 적 현 실을 깨닫게 하시고 각성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 민하며 괴 로워하는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이 말씀은 현실의 문제에만 얽 메어서 괴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신앙의 감격과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온 갖 더러운 탐심의 우상들, 세속적인 생활 방식,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 모든 것을 버리고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새겨 들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야곱은 지금까지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일대 개혁을 일 으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 든 자에 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 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실제적으로 인간적인 야곱이 하나님을 겨루어 이긴 이스라 엘 로 변화되는 삶의 전환이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집니다. 늦게나마 야곱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영적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바 른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 자' 이 것이 바로 30여년동안의 세상적인 삶을 통하여 야곱이 터득한 신앙의 부흥의 비결이 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그 벧엘에서 다시한번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약속을 받습니다.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로 부르겠다.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줄 것이다' 마지막 14-15 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 을 세우 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실로 30여년만에 야곱이 서원을 지키는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영적인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 를 향하여, 우리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 으 라' 이 말씀은 곧 영적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잃어버렸던 처음 사랑과 구원의 감 격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 으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한주일에 한 번 하나님 앞에 나와 예 배드리 고 흩어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은 30여년 동안 풍요로운 삶 속에서 편안한 삶을 살 다가 가정적인 어려움을 겪고서야 자신의 영적인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벧엘의 서원 을 이행하였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야곱처럼 인생의 위기와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벧 엘을 찾게 된다면 그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평생동 안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영적 각성과 부흥의 계기가 되는 벧엘의 경험을 맛보지 못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의 영적 상태를 보면 하루빨리 벧엘 을 찾아 야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겠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전히 세상적 인 생활방식이 삶을 지배하고, 주님이 가정에 주인이 되지 못할 때에 우리의 삶의 모습 은 인간 적 이고 간사한 야곱의 모습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벧엘로 올라가야만 야곱이 이스라엘 로 변화 되 고, 영적인 풍요와 축복들이 바로 나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이 되면 성도들이 이렇게 모여 예배하고 흩어집니다. 때 로는 찬송과 기도를 드립니다. 정성껏 헌금을 드리며 저마다 열심히 봉사합니다. 굳이 우리 가 애 써 전도하지 않는다해도 하나님께서는 새가족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비록 더디지만 해 가 거듭 할 수록 부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어린아이로부터 노 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이 안이한 신앙생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각 성하면 서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벧엘에 올라가는 영적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새벽마다 저녁마다 성전에서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 가 끊이 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 우리의 교회는 더 이상 비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만 합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 다시 한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우리와 우리의 가정이 살 길이 있고, 우리 세 심교회와 한국교회, 이 민족이 살 길이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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