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스의 세계 (룻4:16-22)
본문
여러분,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습니까 어제 뿐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은 역사를 지배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아주 엄청난 사건 뿐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건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권으로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인간 역사는 당신의 약속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속사를 진행시켜 오셨습니다. 이것이 룻기서를 살피면서 깨닫게 되는 진리입니다. 18절의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라는 어구는 룻기의 마지막 종결일 뿐 아니라, 그 책에 내포된 역사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사사기와 사무엘 상서의 중간에 이 룻기가 놓여 있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룻기 말씀의 마지막을 보면서, 성경 전체를 통해 면밀히 흐르는 구속역사를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이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 따라서 된다는 깨달음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내가 믿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믿게되었고, 그러니 구원을 얻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구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그 목적에서부터 시작된, 그 뿌리가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자를 만드시려는 목적하시고, 그 작정하신대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를 예정하시고, 그 예정대로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 가운데, 인간의 타락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도 있고, 우리의 믿어 중생함과 오늘 의 성화를 이루는 과정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현실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구속사로 보는 것은 세상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 속에 영원전 작정과 예정 가운데 있었던 것이 이제 오늘 현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성경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창 3:15에서 약속하셨던 메시야를 주시겠다는 이 말씀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소망없는 인생에게 유일한 소망이요,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 구약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의 해석의 키는 창 3;15입니다. 여인의 후손을 통해 뱀의 후손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이 원시은혜의 약속, 이를 약속의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고, 때가 차매 메시야를 보내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지금도 이 약속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때가 차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그의 마지막을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 그 클라이막스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다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 오실 바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역사요, 오늘 우리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는 것입니다. 이 룻기 4장에 나타난 한 가정의 이야기와 그 가정의 족보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단한 사람이기 보다는, 그 인물들과 그들의 삶에서 가리키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요,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이지만,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그의 베푸신 구속의 사역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도 살피는 것은, 우리가 영원하고, 거룩한 구원을 은혜로 입은 것이기 때문이요, 이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를 깨달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원하시는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계는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이 가계를 보존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이를 계속 방해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구속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종종 위기의 때가 나타납니다. 이 위기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선한 왕과 악한 왕이 교차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인간의 실수와 죄악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이러한 인간의 모습까지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족보에 보면, 도덕적으로 불결한 인생들 까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 이방여인 룻도 있고, 보아스와 같은 고상한 인물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하나님의 섭리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임을 받은 룻은 얼마나 복됩니까 룻은 문자 그대로 ‘복을 받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복된 여인’이라고 한 것 같이, 이 룻도 가면 갈수록 복되고, 영원히 복된 자입니다. 이 룻이 여러분은 부럽지 않습니까 이 룻을 부러워하는 여러분에게 이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그녀가 단순히 하나님께 은혜를 겸손히 구한 것 뿐이요, 아무 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을 열거해 보면, 너무도 큰 것, 귀한 것을 받았습니다. 먼저, 룻은 나오미에게 축복된 존재가 됩니다. 룻의 영광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영광이었습니다. 4장 마지막 장면에서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룻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일곱아들보다 더 귀한 자부’라고 했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에 룻이 낳은 아이이지만, 나오미가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룻의 헌신과 충성이 나오미에게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아들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는 나오미에게 생명의 회복과 소망을 준것입니다.
둘째로, 룻은 새로운 남편 보아스에게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으로 인하여 메사야의 가계를 잇는 아름다운 아들을 두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보아스가 룻 때문에, 룻이 낳은 아들 때문에 유명하고 유력해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아들 뿐 아니라, 영광스럽워지게 해 주었습니다.
셋째로, 룻은 베들레헴에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베들레헴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셔서 잘 알려진 동네이지만, 그 때는 유명할 것도 없는 조그만 숨겨진 고을입니다. 그러나 룻은 이 동네를 유명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 고을은 어 세계에 가장 복된 곳, 귀한 곳이 되었습니다.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한 사람의 헌신된 삶은 그의 삶의 터전인 그 사회에 영향과 영광을 끼치기에 충분합니다.
넷째로, 룻은 이스라엘민족에게 축복된 존재가 됩니다. (룻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는데, 열두 지파의 기원은 야곱의 열두 아들입니다. 이 열두아들은 라헬과 레아를 통해서 납니다. 우리는 이방여인인 룻이 드디어 하나님의 선민의 이스라엘의 백성이 될 뿐 아니라, 그녀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복을 받는 다윗 왕조의 조상이 됩니다. 룻은 민족에게도 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섯 째로, 룻은 온 세상에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의 핏줄을 타고, 다윗 왕이 출생하게 됩니다. 그 다윗의 계통으로 메시야가 출생합니다.
그러므로 룻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온 천하가 복 받으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 룻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복된 여인이라는 칭찬과 존경을 받는데, 영원히 그녀에게 이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이 한 가정의 아주 평범한 사건, 있었다고 해도 곧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런 사소한 사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사람, 큰 사건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사람, 작은 사건, 사건들을 통해서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룻기는 족보에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족보를 말하기 전에, 특별히 (룻4: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라는 말씀을 삽입했습니다. 룻이 낳은 아들이름이 오벳인데, 하나님은 이 오벳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손자 다윗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1장 1절에서 사사시대의 죄악을 말했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제 소견대로 행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잡한 사사들, 무엇인가 저들이 나라를 쥐 흔들어 놓는 것 같은 시대, 암울하고, 복잡한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섬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하신 왕, 다윗을 길러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룻기는 아주 평범한 가정사입니다. 오늘에도 그렇습니다. 드러난 대단한 큰 일 보다도 숨기어 있는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드러난 역사 뿐 아니라, 화려한 역사의 이면에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보아야 신앙걸음을 걷습니다. 세계를 지금 몇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고, 역사에 영향을 주는 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구속역사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런 드러난 사람이 아닙니다. (룻4:18)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룻4: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룻4: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룻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4: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베레스의 세계는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족보를 들여다 보면 베레스는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들여다 보면 잘압니다. 베레스는 유다가 그 며느리로 더불어 동침하여 낳은 아들 중 하나입니다. 또 살몬은 누구입니까 이 살몬은 바로 기생라합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보아스는 그의 어머니가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입니다. 그의 웃대의 할머니는 다말이요, 어머니는 기생이었던 라합이요, 그의 새로운 신부는 모압여인 룻입니다. 그 뒤의 다윗의 아들 중에 메시야 계보를 잇는 사람인 솔로몬은 또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입니다. 우리는 메시야의 족보는 깨끗하고, 흠이 없는 사람들 중에 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 자체가 은혜요, 이적이지만, 인생은 다 같이 범죄하고 더러운 존재입니다. 왜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런 허물 많고, 죄많은 사람들이 가득합니까 세상의 영웅들, 왕들은 자신의 출생가문이 어떻게 화려하고, 좋은 집안인 것을 잘아하고, 과장까지 하는데, 왜 예수께서는 이런 가문에 출생하셨습니까 이것이 죄 많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생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비하입니다. 또한 모든 인생은 실은 다 한 가지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죄가 많고, 적고, 말하지만, 모든 인생은 다 죽을 죄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죄많은 여인들은 한결 같이 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사람들이요, 약속을 믿고, 헌신하고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은 회개를 기뻐하시는 것이지, 죄를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생이 다 죄인이지만, 자기들의 의로서 죄있는 줄 알지 못하는 많은 세상의 의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고, 죄인이라서 구원얻은 것은 아니지만, 죄인됨을 깨닫고, 룻과 같이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되시기를 바라고언약의 백성이 되는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은 것을 우리에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요, 여인이요, 죄인이었던 예수님 족보에 나타난 여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주 가운데 있었고, 여인은 가련한자를 말하는데, 이런 가련하고 못난 자였던 우리들, 또 그러면서도 범죄한 인생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이방인), 또 아직 연약할 때에(여인), 죄인되었을 때에(죄인)구원하신 은혜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우리들도 똑 같은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 구원의 역사를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우리의 의가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받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여기에 쓰임을 받는 자도 그렇습니다. 죄인을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무능한 자를 쓰신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단지, 용서함을 받은 자, 자신이 무능한 것을 깨닫고, 은혜입기를 원하는 룻과 같은 자를 사용하십니다. 주께서 처음 이세상에 오실 때에 사용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이요, 여인으로, 죄인된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 용서함 받고, 백성된 자들입니다. 지금도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가난하고, 약하고, 부족하지만, 죄 있고 실수 많은 자이지만, 비참하다고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님을 찾고, 일어서기를 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일어섭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이런자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까지 이루십니다. 룻이 그저 자기 가정하나 잘 이루는데 그쳤다면 무엇이 그렇게 복되며, 무엇이 우리에게 부럽겠습니까 룻의 그 헌신과 순종, 하나님께 겸손히 은혜입기를 원하고,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삶이 그의 시어머니,새 남편 보아스를 복되게 할 뿐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동네, 그의 새로운 나라인 이스라엘, 온 세계에 복을 주는 복의 기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룻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헌신하고 순종한 삶 뿐입니다. 신앙의 걸음을 걸어도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자기가 주체된 삶을 사는 사람은 이 복을 모릅니다. 이 룻과 같이 은혜 입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오늘에도 이 길은 여러분 앞에 수 없이 놓여져 있습니다. 단지 보지 못하는 것이요, 욕심으로 그길로 가지 않고, 오르바와 아무개씨 같이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이길을 걷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단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게명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어떻게 순종, 순응하느냐 하는 것이요, 여기에 거역하는 것이 불신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산제사를 드리기 전에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선행입니다.(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 다음에 자신에게 맡겨주신 분량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룻기 말씀의 마지막을 보면서, 성경 전체를 통해 면밀히 흐르는 구속역사를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이 자신의 결단과 의지에 따라서 된다는 깨달음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내가 믿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믿게되었고, 그러니 구원을 얻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구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그 목적에서부터 시작된, 그 뿌리가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한 자를 만드시려는 목적하시고, 그 작정하신대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를 예정하시고, 그 예정대로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것입니다. 이 가운데, 인간의 타락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도 있고, 우리의 믿어 중생함과 오늘 의 성화를 이루는 과정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현실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구속사로 보는 것은 세상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 속에 영원전 작정과 예정 가운데 있었던 것이 이제 오늘 현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성경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창 3:15에서 약속하셨던 메시야를 주시겠다는 이 말씀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소망없는 인생에게 유일한 소망이요,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 구약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의 해석의 키는 창 3;15입니다. 여인의 후손을 통해 뱀의 후손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이 원시은혜의 약속, 이를 약속의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고, 때가 차매 메시야를 보내셔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지금도 이 약속을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때가 차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그의 마지막을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 그 클라이막스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다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은 이 오실 바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역사요, 오늘 우리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는 것입니다. 이 룻기 4장에 나타난 한 가정의 이야기와 그 가정의 족보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단한 사람이기 보다는, 그 인물들과 그들의 삶에서 가리키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요,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이지만,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그의 베푸신 구속의 사역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도 살피는 것은, 우리가 영원하고, 거룩한 구원을 은혜로 입은 것이기 때문이요, 이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이를 깨달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이 원하시는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계는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이 가계를 보존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이를 계속 방해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구속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종종 위기의 때가 나타납니다. 이 위기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선한 왕과 악한 왕이 교차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인간의 실수와 죄악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이러한 인간의 모습까지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족보에 보면, 도덕적으로 불결한 인생들 까지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성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 이방여인 룻도 있고, 보아스와 같은 고상한 인물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하나님의 섭리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임을 받은 룻은 얼마나 복됩니까 룻은 문자 그대로 ‘복을 받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복된 여인’이라고 한 것 같이, 이 룻도 가면 갈수록 복되고, 영원히 복된 자입니다. 이 룻이 여러분은 부럽지 않습니까 이 룻을 부러워하는 여러분에게 이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그녀가 단순히 하나님께 은혜를 겸손히 구한 것 뿐이요, 아무 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을 열거해 보면, 너무도 큰 것, 귀한 것을 받았습니다. 먼저, 룻은 나오미에게 축복된 존재가 됩니다. 룻의 영광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영광이었습니다. 4장 마지막 장면에서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에게 말합니다. (룻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일곱아들보다 더 귀한 자부’라고 했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을 때에 룻이 낳은 아이이지만, 나오미가 낳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룻의 헌신과 충성이 나오미에게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아들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는 나오미에게 생명의 회복과 소망을 준것입니다.
둘째로, 룻은 새로운 남편 보아스에게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으로 인하여 메사야의 가계를 잇는 아름다운 아들을 두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보아스가 룻 때문에, 룻이 낳은 아들 때문에 유명하고 유력해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아들 뿐 아니라, 영광스럽워지게 해 주었습니다.
셋째로, 룻은 베들레헴에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베들레헴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셔서 잘 알려진 동네이지만, 그 때는 유명할 것도 없는 조그만 숨겨진 고을입니다. 그러나 룻은 이 동네를 유명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 고을은 어 세계에 가장 복된 곳, 귀한 곳이 되었습니다.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한 사람의 헌신된 삶은 그의 삶의 터전인 그 사회에 영향과 영광을 끼치기에 충분합니다.
넷째로, 룻은 이스라엘민족에게 축복된 존재가 됩니다. (룻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는데, 열두 지파의 기원은 야곱의 열두 아들입니다. 이 열두아들은 라헬과 레아를 통해서 납니다. 우리는 이방여인인 룻이 드디어 하나님의 선민의 이스라엘의 백성이 될 뿐 아니라, 그녀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복을 받는 다윗 왕조의 조상이 됩니다. 룻은 민족에게도 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섯 째로, 룻은 온 세상에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여인의 핏줄을 타고, 다윗 왕이 출생하게 됩니다. 그 다윗의 계통으로 메시야가 출생합니다.
그러므로 룻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서 온 천하가 복 받으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 룻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복된 여인이라는 칭찬과 존경을 받는데, 영원히 그녀에게 이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이 한 가정의 아주 평범한 사건, 있었다고 해도 곧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런 사소한 사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사람, 큰 사건을 통해서 역사를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사람, 작은 사건, 사건들을 통해서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룻기는 족보에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족보를 말하기 전에, 특별히 (룻4: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라는 말씀을 삽입했습니다. 룻이 낳은 아들이름이 오벳인데, 하나님은 이 오벳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손자 다윗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1장 1절에서 사사시대의 죄악을 말했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제 소견대로 행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복잡한 사사들, 무엇인가 저들이 나라를 쥐 흔들어 놓는 것 같은 시대, 암울하고, 복잡한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섬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하신 왕, 다윗을 길러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룻기는 아주 평범한 가정사입니다. 오늘에도 그렇습니다. 드러난 대단한 큰 일 보다도 숨기어 있는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드러난 역사 뿐 아니라, 화려한 역사의 이면에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보아야 신앙걸음을 걷습니다. 세계를 지금 몇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고, 역사에 영향을 주는 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구속역사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이런 드러난 사람이 아닙니다. (룻4:18)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룻4: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룻4: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룻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4: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베레스의 세계는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족보를 들여다 보면 베레스는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들여다 보면 잘압니다. 베레스는 유다가 그 며느리로 더불어 동침하여 낳은 아들 중 하나입니다. 또 살몬은 누구입니까 이 살몬은 바로 기생라합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보아스는 그의 어머니가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입니다. 그의 웃대의 할머니는 다말이요, 어머니는 기생이었던 라합이요, 그의 새로운 신부는 모압여인 룻입니다. 그 뒤의 다윗의 아들 중에 메시야 계보를 잇는 사람인 솔로몬은 또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입니다. 우리는 메시야의 족보는 깨끗하고, 흠이 없는 사람들 중에 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 자체가 은혜요, 이적이지만, 인생은 다 같이 범죄하고 더러운 존재입니다. 왜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런 허물 많고, 죄많은 사람들이 가득합니까 세상의 영웅들, 왕들은 자신의 출생가문이 어떻게 화려하고, 좋은 집안인 것을 잘아하고, 과장까지 하는데, 왜 예수께서는 이런 가문에 출생하셨습니까 이것이 죄 많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생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비하입니다. 또한 모든 인생은 실은 다 한 가지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죄가 많고, 적고, 말하지만, 모든 인생은 다 죽을 죄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죄많은 여인들은 한결 같이 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사람들이요, 약속을 믿고, 헌신하고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것은 회개를 기뻐하시는 것이지, 죄를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생이 다 죄인이지만, 자기들의 의로서 죄있는 줄 알지 못하는 많은 세상의 의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고, 죄인이라서 구원얻은 것은 아니지만, 죄인됨을 깨닫고, 룻과 같이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되시기를 바라고언약의 백성이 되는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은 것을 우리에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요, 여인이요, 죄인이었던 예수님 족보에 나타난 여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주 가운데 있었고, 여인은 가련한자를 말하는데, 이런 가련하고 못난 자였던 우리들, 또 그러면서도 범죄한 인생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이방인), 또 아직 연약할 때에(여인), 죄인되었을 때에(죄인)구원하신 은혜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우리들도 똑 같은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 구원의 역사를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우리의 의가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받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여기에 쓰임을 받는 자도 그렇습니다. 죄인을 쓰시는 것은 아닙니다. 무능한 자를 쓰신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단지, 용서함을 받은 자, 자신이 무능한 것을 깨닫고, 은혜입기를 원하는 룻과 같은 자를 사용하십니다. 주께서 처음 이세상에 오실 때에 사용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이요, 여인으로, 죄인된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 용서함 받고, 백성된 자들입니다. 지금도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가난하고, 약하고, 부족하지만, 죄 있고 실수 많은 자이지만, 비참하다고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하나님을 찾고, 일어서기를 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일어섭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이런자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까지 이루십니다. 룻이 그저 자기 가정하나 잘 이루는데 그쳤다면 무엇이 그렇게 복되며, 무엇이 우리에게 부럽겠습니까 룻의 그 헌신과 순종, 하나님께 겸손히 은혜입기를 원하고,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삶이 그의 시어머니,새 남편 보아스를 복되게 할 뿐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동네, 그의 새로운 나라인 이스라엘, 온 세계에 복을 주는 복의 기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룻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헌신하고 순종한 삶 뿐입니다. 신앙의 걸음을 걸어도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자기가 주체된 삶을 사는 사람은 이 복을 모릅니다. 이 룻과 같이 은혜 입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오늘에도 이 길은 여러분 앞에 수 없이 놓여져 있습니다. 단지 보지 못하는 것이요, 욕심으로 그길로 가지 않고, 오르바와 아무개씨 같이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이길을 걷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단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게명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어떻게 순종, 순응하느냐 하는 것이요, 여기에 거역하는 것이 불신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산제사를 드리기 전에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선행입니다.(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 다음에 자신에게 맡겨주신 분량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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