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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창13:5-18)

본문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심리적 욕구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기 성취 욕구입니다. 이것을 성공 욕구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즐거움의 욕구 흥미의 욕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성취의 욕구가 이루어질 때 즐거움이 생깁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이 성취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공이 연속될 때에 그 사람은 즐거움의 욕구가 계속 충족됩니다. 사실 무엇을 성취하였는데 아무런 즐거움도 만족도 없다면 다음에 그것을 이루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인생을 포기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침례 교단 총회장 정인도 목사님께서 93전도에 동구에 순방을 가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비엔나의 호텔 왕이 나이도 젊고 경제와 명예와 모든 행복의 조건을 다 소유할 정도로 성공을 하였는데 그만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살의 원인은 허무였습니다. 성공은 하였지만 아무런 즐거움이 안 생겨요. 물질과 인기와 온갖 쾌락의 조건을 다 갖추었지만 거기에서 만족이 안 나와요 그러니 더 이상 무엇을 해 볼 의욕이안 생겨요 무엇을 이루어 봐도 계속 허무해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럼 남은 것은 죽음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함께 즐거움이란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살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술이나 마약 혹은 온갖 추악한 성적 행각을 찾아 거기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신과 가정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 전체를 파괴시키고 맙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참된 성공, 참된 즐거움을 찾게 되며 또 찾아야 하며 찾아 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을 원합니다:정치, 공부, 장사(기업), 회사, 물건 그렇지만 세상에는 성공은 고사하고 실패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즐거움보다 슬픔과 고통이 사람을 장악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개업 예배 드린 성도의 기업이 무너졌을 때, 기도하고 보낸 학생이 대입에서 실패했을 때, 주례해 주고 기도해 준 신혼부부가 갈라설 때,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 바쳐 양육해 놓았더니 불효하는 자녀
그런데 여기 명심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성공과 즐거움의 대부분은 사실 선택에서 결정이 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초음파로 임신을 하자마자 아들이냐 딸이냐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결정은 남편이 만듭니다. 아내가 일단 임신을 하고 나면 10달 동안 아무리 기도하고 바란다고 해도 남아가 여아가 된다거나, 여아가 남아가 될 수 없습니다. 남자는 남자로 자라서 나오고, 여자는 여자로 자라서 나옵니다. 성공의 대부분은 이미 선택에서 결정됩니다. 이미 선택할 때 그 성공과 실패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의 씨앗을 뿌린 다음 그것을 가꾸고 물주고 자라게 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의 씨앗을 뿌린 다음 그것에 물주고 가꾸고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싹이 나고 잎이 피고 열매가 맺은 다음에야 자기가 뿌린 씨앗이 성공의 씨앗이었는지, 실패의 씨앗이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에 안타깝지만 선택에서 이미 결정 난 실패를 가꾸고 물주고, 거기서 성공의 열매가 맺히기를 부질 없이 고대하고 바라며 애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공을 키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실패를 가꾸고 있습니까 그것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어저께, 그저께, 5년전, 10년 전에 선택한 그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실패의 씨앗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애쓰고, 간구하고, 바라고, 수고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간절한 소망과는 아무 상관없이 커다란 실패를 맛보아야만 될 것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어떤 선택은 10년을, 어떤 선택은 20년을 ,어떤 선택은 50년을, 어떤 선택은 수백 년을, 어떤 선택은 영원을 좌우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성공적인 선택의 비결을 고통스런 여러 단계의 훈련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지나가 버리는 아침 안개처럼 짧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거기엔 분명히 성공적 인생이 있고, 실패의 인생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하고 싶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행복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실패하길 바라는 것은 원수 사단입니다. 요 10:10. 여러분의 목사인 저도 여러분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가족들도 여러분이 제발 성공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것을 누구 보다도 더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이미 선택에서 실패 했다면 지금 여러분은 실패의 나무를 키우고, 실패의 열매를 얻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안됐지만 그렇습니다! 성공은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에게 그러셨 던 것처럼 또 다시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말씀을 듣는 자와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수많은 세월 동안 뼈아픈 실패의 고통을 통해 비로소 배울 수 있었던 그 성공적 선택의 비결을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통해 단번에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공적 선택의 비결을 깨닫고 배워, 우리의 인생 농사를 통해 풍성한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최초의 선택-세겜:다른 신을 선택하지 말라입니다. 6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그 땅을 통과하여-" 그리고 히11:13을 보면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우리의 이 땅은 통과하는 땅인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서 외국인인 것처럼, 나그네인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라고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이름을 새기고, 집을 짓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밟는 이 땅, 다 밟지 못하고 본향으로 갈 줄 알아야 합니다. 버는 돈 다 벌지 못하고, 쓰는 돈 다 쓰지 못하고, 시작한 일들 다 마치지 못하고 본향으로 갈 줄을 알아야 합니다. 6절 하반 절을 보면 모레 상수리나무가 나오지요, 여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모레란 지식, 선생=무당, 점쟁이이고요, 상수리나무는 호4:12과 13절을 보면 신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24:2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은 신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하나님을 선택하셨습니까 가나안의 신들을 선택하진 않으셨을까요 가나안의 신화를 보면 바알과 아세라라는 신들이 나옵니다.
(1) 그것은 풍요의 신이요 다산의 신입니다. 곧 Sex의 신입니다. 주기도문 대신 바알 기도문을 외우고 있지나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이 아니고, 먹고 쓰고 남을 물질을 날마다 주셔서 온갖 향락을 누리게 하옵소서"라고 하지나 않는지요-.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으로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나요 이것은 다른 신들 곧 우상과 물질 제일주의와 쾌락 제일주의 삶을 버리고 참된 성공 참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12:4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선택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브라함이 부친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아닙니다. 데라가 살아 있을 때에 모든 우상 신들을 버리고 풍요와 사치 허영 지상주의 도시를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고 말씀을 따라 그 도시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 가나안에 들어와보니 거기는 갈대아 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우상 도시였습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은 또 다시 하나님이냐 가나안의 신이냐 하는 선택의 유혹을 거치게 됩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선택한 사람임을 들어내 보이기 시작합니다. 12:7절과8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고 하는데 이 짧은 절 속에 두번이나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더라는 기록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지요 다른 사람들은 우상을 위하여 살고 물질을 위하여 살고 쾌락을 위하여 사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만을 위하여 산다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우상의 이름을 부르는데 아브라함은 참된 성공 참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겜에서도 벧엘에서도 하나님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신들처럼 신전 속에만 갇혀 있는 신이 아니라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심을 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선택하신 성도들이여 교회에서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어디서나 하나님을 위하십시오. 계명을 실천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하십시오. 감사와 찬송과 남을 위하여 기도해 주며 간증하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이러한 성도가 바로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요, 모든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줄 자로 쓰임 받는 성공자인 것입니다.
2. 두 번째 선택을 보십시다. 12:9절과 10절을 보세요 여기에서는 아브라함이 심한 기근을 만나자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선택하는 것을 봅니다. 순종했는데, 충성했는데, 봉사했는데, 말씀대로 우상도 버리고 물질 중심으로 살지도 아니하고 세상의 쾌락도 멀리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였는데, 뜻밖에 실패라니, 재난이라니, 기근이라니, 질병이라니, 정말 기가 막힌 시험입니다. 이 경우 많은 신자들이 애굽을 선택합니다.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인내와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맡은 직분과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면서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선택하느냐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거짓과 부정 그리고 부조리를 용납하면서 성공하기를 선택하느냐 의 단계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잘못 선택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의인 욥은 생명을 걸고 하나님 신앙을 선택하여 참된 성공을 하는 것은 놀라운 대조입니다.
3.자 이제 세 번째 선택을 봅시다. 12:11부터 끝까지를 쭉 보세요 애굽에서 생명의 위기를 만납니다. 사라가 너무 이뻐서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죽이고 사라를 빼앗아 갈까 하는 곤포가 아브라함을 감쌉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은 창12:3절의 너를 저주하는 자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 내가 복을 내린다란 말씀을 믿고 진실하게 사라를 보호하며 사는가 아니면 거짓 말을 할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거짓 말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왕 바로의 처남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성공을 위하여 남을 파괴하고 아내라도 팔고 부모 가족 친구 누구라도 성공 이기적인 성공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애굽에는 재앙이 왔고 아브라함은 개골 망신을 당하고 축출을 당합니다. 거짓말쟁이'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한사람으로 알려진 도시에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는 양심의 가책, 그리하여 그는 그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기적인 성공을 선택한 것의 막을 내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4.이제 끝으로 창13:을 봅시다. 벧엘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 시작합니다. 물질 따라 애굽으로 내러 갔던 죄인, 자기를 위하여 아내라도 팔 수 있었던 비양심적이었던 사람, 이제 그는 진심으로 회개하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13:4)그리고 얼마 안있자 이번에는 조카 롯의 양무리와 아브라함의 양무리가 너무 많아져 양편의 목동들이 다툼이 일어납니다. 이제 거대한 풍요가 사람들 사이를 괴롭히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사회도 이러합니다. 절대 빈곤도 문제이지만 서로 사업을 더 잘해 보려고, 돈을 더 많이 벌어 보려고, 더 높아져 보려고, 일등을 해 보려고, 다툽니다. 소위 생존 경쟁이 아니라 소유 경쟁 일등 경쟁이요 번영경쟁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 배워 봅시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13:8-9) 하나님께 결론을 맡기는 모습입니다. 조카 롯은 소돔을 선택하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결정지어주신 벧엘을 선택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에덴 동산 같이 기름진 땅 애굽같이 물이 많은 땅을 선택할 우선권이 있었으나 이제 그는 진정 자기를 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데는 장소가 어딘인들 무슨 상관입니까 그는 우상도시요 죄악의 도성, 물질과 쾌락의 도시, 풍요의 도시, 소돔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보세요 13:18절에 그는 헤브론으로 이사합니다. 벧에이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요, 헤브론이란 하나님과의 친교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집을 위하며 하나님과의 친교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14장에서도 소돔이 전쟁으로 패할 때 포로로 잡혀간 조카 롯과 인민들을 찾아오는데 얼마나 용감합니까 후일 그는 소돔성의 불심판을 막기 위하여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면 아들 그것도 백세에 낳은 독자 이삭이라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영원 한성 공이요 후생 자손과 그 시대의 사람들과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놀라운 인물로 쓰임 받는 성공 자가 되는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입니까 우상과 쾌락과 물질을 신으로 선택하시계습니까 무엇을 위하는 가로 그것은 나타납니다. 어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진리와 하나님을 붙잡고 인내로 하나님의 뜻대로 성공을 하시겠습니까 세상과 타협하며 성공을 찾으시겠습니까 위기가 왔습니다. 남을 해롭게 하며 타인을 파괴시키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을 하시겠습니까 나의 희생을 각오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만의 길을 고수하시겠습니까 세상과 인간들과의 친교로 만족하는 세상 성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의 친교를 선택하심으로 영원한 성공 자가 되시겠습니까 이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선택을 하신 분들은 아브라함처럼 우리 시대를 위하여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그 성공을 나눠주는 전도와 구제와 사랑 실천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줄 사람들임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 곧 복 덩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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