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은혜인가? (고전15:1-11)
본문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기둥과 같은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는 부드럽지만 사람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단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지옥으로 달려가던 사람이 천국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이기적(利己的)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남을 위해 사는 이타적(利他的)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은혜 받아야 삽니다. 은혜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1.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2:4,5에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거절한 사람이 구원을 얻은 적이 결코 없습니다. 구원이 있기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에베소서2:8에도 "너희가 그 은혜를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은혜가 가는곳에는 믿음도 같이 가고, 은혜의 길을 통해서 믿음이 열매를 맺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1:6절에서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법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불러 주셨습니다. 로마서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인간의 절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바 되었느니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유일한 소망임을 말씀합니다. 디도서2:11에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등지면 좋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안에만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일지라도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릴수 있는 자격자가 되고 소망이 있게 됩니다.
2.삶의 승리를 위한 것입니다. 은혜로 새 출발한 사람은 매일매일의 삶도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4:16은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날마다 은혜로 채워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풍성한 은혜와 승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때에 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 계속해서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음을 확신해야하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자는 이제 그속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8에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하셨고, 디모데후서2:1은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아래서 성장할 뿐 아니라 은혜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만큼 강해질수 있습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14,16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고 했습니다. 한번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계속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3.봉사를 위한 은혜입니다.'10절' 은혜의 자각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수를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둔감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각성이 있으면 은혜에 대한 결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예수믿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6:1,2에도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은혜를 쏟지 말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받았지만 일상생활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잊고 살지말고 처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생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된다'는 은혜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은혜를 각성하고, 그 은혜에 대해 결단을 한 사람에게는 열매가 있게 됩니다.
첫째는 수고의 열매입니다. 은혜를 받고 '어떻게 하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결론은 더 많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은자의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수고와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도바울의 은혜에 대한 반응도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겸손의 열매입니다. 사도바울은 최선을 다해 수고했지만 그의 마지막 결론은 "내가 아니요"입니다. 교회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수고한 사람이 '내가 아니요'라는 분명한 의식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열심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울 때, 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놓여지게 될 때 은혜로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봉사하고 나서 내가 살아나면 오히려 덕을 세우지 못하고, 내 이름이 앞장서게 되면 열심히 봉사하다가 변질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봉사한 사람이지만 그의 마지막 결론은 항상 '내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였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마땅히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봉사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인데 여기에서 봉사를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만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종교는 다 부활이 없는 죽은 신을 섬깁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섬기지만 그 분은 우리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께서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그 지체가 되는 교회를 이 땅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이것을 깨닫고 나서 9절에 "나는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받고나니 자기가 핍박했던 예루살렘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지역교회가 불완전하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유보하지 마십시오.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새로남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주님에게 충성하는 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교리를 다 설명한후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결론을 내려주는데,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줄을 앎이니라"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생동적인 충성에의 도전과 권면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저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수 있는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앞세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지금까지는 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충성을 유보하며 살았습니다. 1999년에는 헌신의 자리에 동참하여 누구보다 더 수고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합니다.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소서.
1.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2:4,5에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고 거절한 사람이 구원을 얻은 적이 결코 없습니다. 구원이 있기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에베소서2:8에도 "너희가 그 은혜를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은혜가 가는곳에는 믿음도 같이 가고, 은혜의 길을 통해서 믿음이 열매를 맺습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1:6절에서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법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불러 주셨습니다. 로마서3:23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인간의 절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바 되었느니라"고 하나님의 은혜가 유일한 소망임을 말씀합니다. 디도서2:11에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등지면 좋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안에만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일지라도 새로운 삶의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릴수 있는 자격자가 되고 소망이 있게 됩니다.
2.삶의 승리를 위한 것입니다. 은혜로 새 출발한 사람은 매일매일의 삶도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4:16은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날마다 은혜로 채워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풍성한 은혜와 승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때에 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 계속해서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음을 확신해야하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자는 이제 그속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8에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하셨고, 디모데후서2:1은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은혜속에서 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아래서 성장할 뿐 아니라 은혜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만큼 강해질수 있습니다. 그래야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14,16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고 했습니다. 한번 은혜 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계속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3.봉사를 위한 은혜입니다.'10절' 은혜의 자각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수를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둔감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각성이 있으면 은혜에 대한 결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예수믿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6:1,2에도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은혜를 쏟지 말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받았지만 일상생활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잊고 살지말고 처음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생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된다'는 은혜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은혜를 각성하고, 그 은혜에 대해 결단을 한 사람에게는 열매가 있게 됩니다.
첫째는 수고의 열매입니다. 은혜를 받고 '어떻게 하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결론은 더 많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깨달은자의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수고와 열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도바울의 은혜에 대한 반응도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겸손의 열매입니다. 사도바울은 최선을 다해 수고했지만 그의 마지막 결론은 "내가 아니요"입니다. 교회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수고한 사람이 '내가 아니요'라는 분명한 의식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열심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울 때, 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놓여지게 될 때 은혜로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봉사하고 나서 내가 살아나면 오히려 덕을 세우지 못하고, 내 이름이 앞장서게 되면 열심히 봉사하다가 변질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봉사한 사람이지만 그의 마지막 결론은 항상 '내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였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도 마땅히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봉사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인데 여기에서 봉사를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만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종교는 다 부활이 없는 죽은 신을 섬깁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섬기지만 그 분은 우리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께서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그 지체가 되는 교회를 이 땅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이것을 깨닫고 나서 9절에 "나는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받고나니 자기가 핍박했던 예루살렘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지역교회가 불완전하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유보하지 마십시오.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새로남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주님에게 충성하는 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교리를 다 설명한후에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결론을 내려주는데,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줄을 앎이니라"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생동적인 충성에의 도전과 권면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저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수 있는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앞세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지금까지는 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충성을 유보하며 살았습니다. 1999년에는 헌신의 자리에 동참하여 누구보다 더 수고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합니다.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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