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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자랑할까 (롬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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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30년간을 목회하면서 성경강해로 은혜를 끼친 로이스 존스 목사는 본래 성 바돌로매 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세계적인 명의 로드호더 박사와 함께 일한 바 있습니다. 이 분이 매 금요일 저녁 성경을 강해했는데 1,000-1,200명의 많은 청중들이 그의 강해를 듣기 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존스 목사는 로마서를 강해하는데 롬 3:20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8장 마지막까지 강해를 했는데 아주 자세하게 강해를 해서 롬 3:20-8:39까지를 강해하는데 여러 해 걸렸고 그 강해한 것이 무려 여섯권의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존스 목사의 말씀에 의지하면 롬1장부터 3:19까지 강해하지 않은 이유는 로마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단숨에 나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 부분은 우리를 흥분시키는 부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위대한 구원의 특성내지 그 결론을 대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 생각한대로 롬 3: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법정의 비유, 제사의 비유, 그리고 노예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3:27에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방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자랑 할데가 어디 있습니까 자랑함이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자랑이라는 말은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랑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어느 사람에게나 자랑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개가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데도 역시 자기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에게 새 신, 새 옷을 사주면 자랑하고 다닙니다. 좋은 시계, 반지, 목걸이나 가방이나 무슨 장신구를 사면 이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사람들 보는데서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 집, 새 자동차를 자랑합니다. 출신 학교를 자랑합니다. 돈 자랑, 지위 자락, 재간 자랑, 남편 자랑, 하는 자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사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모두가 내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는데 내 것인 양 어찌 내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만해도 그렇습니다. 율법이나 행위로 구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빌 3:4에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도 자랑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고후 12:1-5에 “무익하나마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14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다른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아니하고 그럴수록 겸손했고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의 연약함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후 12:9에서 “내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의미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동안 세상의 것, 자기에게 있는 것에는 자랑할 요소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마저도 자기의 자랑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을 자랑하며 크게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3:28에서 그는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자랑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을 가지고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일대 논쟁을 전개했습니다. 논쟁의 촛점은 “오직 믿음”(Sola flde)이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거나 지키지 못하거나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 점이 바로 율법의 행위와는 별도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믿음에 의하여, 믿음을 통하여” (by faith, through faith)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것으로 되는 도구 내지는 통로에 불과한 것입니다. 믿음이 곧 의는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완전하신 공로인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전가시킴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믿음은 그 의가 우리의 것으로 되는 통로입니다. 그 의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에 붙잡아 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믿음에는 반드시 신뢰의 요소, 위임의 요소, 복종의 요소, 자기 포기의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약 2:26에 이르기를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 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믿음을 단순히 “나는 믿는다”고 하는 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 세상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인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그들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십시다. 주님께 내 모든 것 다 맡기십시다. 그리하여 어디가나 무엇하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만을 자랑차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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