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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좋아하십니까 (잠1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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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은 없다"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는데 그 책의 내용이 제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아와 그 한 부분을 소개함으로 말을 시 작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일본인은 무엇을 좋아하는가"입니다. 작가 전여 옥씨는 일본인은 '노조키행위'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노조키행위란 살짝 숨어서 옅보기를 즐기는 취미를 말하는데 다음과 같은 한 실예를 들었습니다. 츠쿠바 시에 사는 29살난 에리트 의사인 '노모도 이와오'가 31세난 자기 아내 인 '에이코'를 목졸라 죽인 뒤 시체를 비닐에 싸서 요꼬하마 강에 버린뒤 친자식 인 두 살난 맏딸과 한살난 아들을 역시 비닐 봉지에 싸서 어두운 강에 던집니다. 츠쿠바 대학의 엘리트 의사인 노모도는 경찰에 부인과 아이들의 실종 신고 를 하고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병원에 출근해 환자를 보는 등 아무런 동요 없이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노모도의 행동거지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의 치밀한 추궁 이 계속되자 그는 마침내 실종 신고 후 3주 만에 자신이 지은 죄를 모조리 고백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밝혀진 사건의 실상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매스컴은 이 '부유한 의사의 가정'을 속속들이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꼼꼼하게, 나쁘게 말하면 조잡하게, 세세히 파헤쳐 알렸습니다. 일본 국민은 남의 불행을 옅보기를 즐기기 를 조하하는 민족이니 이들은 메스콤에서 보도하는 사건의 한가지 한가지 충격 적인 사실을 접하면서 남의 불행을 더운 날 아이스 크림을 먹듯이 즐겼습니다. 그들이 줄기기를 좋아한 것은 피해 당사자로서 이미 죽어버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절대적인 약자, 부인 에이코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을 하나 하나 를 메스콤이 들춰낸 것입니다. 에이코는
첫째로 이번이 두번째 결혼이었으며 첫 남편인 메밀국수집 주인 아들과의 사이에 이미 아들 둘을 두었다고 합니다. 둘 째로 그녀는 단과대학을 중퇴하고 간호 보조원 업무를 익혀 아르바이트로 병원 에 다녔는데 바로 그 병원에서 현재 남편인 의사 노모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셋 째로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당시 에이코는 낮에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밤에는 '에르시토'라는 술집에 호스테스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러나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에이코가 전남편과 이혼을 하고 노모도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 뒤 에도 같은 생활을 계속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섯째로 더구나 살해되기 직전까지 도 나간 그 술집은 이른바 '란제리 파브'라는 곳으로 호스테스인 여성들이 브래 지어와 팬티만을 입고 손님을 맞는 요상한 술집이었습니다. 여섯째로 일본에서 도 의사라는 직업은 이른바 '부와 명예'의 상징인데 속된 말로 부러울 것없는 의 사 부인이 왜 낮에는 검사실의 보조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속옷만 걸치는 술집 에 나가야 했을까 메스콤은 '그녀는 엄청난 빚 때문에 몹시 고생하고 있었다'고 밝혀냈습니다. 결국 빚을 갚기 위해 그녀는 병원 검사실로 술집으로 밤낮 뛰어 다닌 셈입니다. 일곱째로 그러나 에이코의 생활 수준은 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초호화판이었다는 것, 메스컴은 에이코가 살해 될 때 입은 운동복이 값비싼 '소니아 리키엘'브랜드라는 사실부터 집값이 얼마이고, 두 대의 자동차가 비싼 자동차라는 것, 기르고 있는 애완견 두 마리가 엄청나게 비싼 개이고 무공 해 자연 식품만을 배달해 먹었다는 등 끝도 없이 파헤쳤습니다. 여덟째로 드디 어 일본의 메스콤은 에이코의 부엌에는 프라이팬이 없다는 사실까지 발견해 놓 고 의기양양해 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 사건은 의사남편 노모도에게는 사귀 던 여성이 있어 이혼 위자료를 놓고 싸움을 벌이다 노모도가 발작적으로 에이 코를 목졸라 숨지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극에 이르렀습니다.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의사 부부의 이러한 실상은 일본인의 남의 불행을 구경아기를 즐기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엿보기 취미'를 극치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일본인에게는 이 '옅보기 취미'를 바탕으로 '타인의 불행은 나의 꿀맛'이라는 일본의 속담이 있는 데 이 속담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거의 모든 일본인이 이 사건을 '꿀맛'처럼 달콤하게, 깨소금처럼 고소하게 즐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당한 사생활 침해'와 '살해된 자의 명예'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명제를 일본 매스컴과 국민은 100퍼센트 이용하여 즐긴 것이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길었습니다만 일본인은 무엇을 좋아합니까타인의 불 행을 살짝 엿보면서 그것을 꿀맛처럼 깨소금처럼 즐기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타인의 불행이 나의 꿀맛"이란 말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 본인만 타인의 불행을 꿀맛으로 여길까요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인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진정 남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즐기기를 좋아하십니까 남의 불행을나의 불행으로 알고 슬퍼하며 기도와 사랑 으로 위로하기를 좋아하십니까
1. 그래서 오늘의 첫째 말씀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가를 먼저 진단해 보십시다. 솔로몬은 잠언서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몇가지 지적해 주었습니다. 먼저 11:25를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하였고 12:1에는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 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하였으며 17:19에는 "다툼을 좋아 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18:8에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 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19:6에서는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21:17 에서는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 게 되지 못하느니라" 끝으로 26:21을 보면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 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남을 구제하며 만족하게 해주기를 좋아합 니까 훈계를 받음으로 지혜를 얻기를 좋아합니까 선물을 나눠줌으로 사람들에 게 위로와 보람을 느끼며 살도록 격려하기를 좋아합니까 아니면 물질에 눈이 어두워모으기에 급급하여 인색함으로 아끼기만 좋아합니까 서로 고집하며 교만 함으로 다투기를 좋아합니까 혀로써 남에게 실망과 상처와 이간을 시키는 말하 기를 좋아합니까 술과 연락으로 방탕하기를 좋아합니까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삶의 원칙 한가지를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내 가 남에게 축복을 빌거나 남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알아 좋아하면 내게 복이 오고 남에게 저주를 하기를 좋아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나의 꿀맛으로 여긴다면 반드시 내게도 그 저주와 그 불행이 찾아온다는 원칙입니다. 여러분 다 함께 시 109:17을 찾아 보십시다. 17절에는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18절은 또 저주 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 어갔나이다, 19에는 저주가 그 입는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 다시 20절에서는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 응이니이다. 성도 여러분, 축복의 말하기를 좋아하십시오. 물질로서 타인을 행복하게 살도 록 도와 주십시오. 타인을 대접하십시오. 남을 만족하게 해보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나 남을 저주하지 마십시오. 저 일본인들 처럼 타인의 불행을 나의 꿀맛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원칙대로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시렵니까
2.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물질을 통해서 동역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당신에게 드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 하셔서 우리 인생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행17:25에 나타난 바울 의 아덴에서의 설교내용을 보면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친히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 이시라"고 설명합니다. 시50:12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가령 주 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다 내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시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물질을 통해서 동역하시고자 하는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진 것을 기쁨으로 드릴 때에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역사를 한번 상기해 보고자 합니다. 요6장에 예수님께서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실 때에 제자 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빌립이라는 제자는 조금씩만 준다고 하여도 200데나 리온의 떡이 모자랄 것이라고 보고하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어린 소 자 하나를 데리고 와서 그의 도시락인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 없음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받으시고서는 무리 를 정돈하여 앉히라고 하시고는 축사후 떼어 먹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이렇게 적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항상 적고 부족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으로 드릴 때 동역하는 재료로 보십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믿음인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 은 물질로 동역하는 기준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정성으로 드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과 동역하는 좋은 방법 임을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일조 때문에 교회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마치 십일조는 거두는 세무소처럼 보이는 모양입니다. 착각을 해선 안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은 빼앗아 가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 시는 분이심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말3:10-12를 보세요.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십일조 드림의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 않으 셨습니까 그러나 십일조 드림에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물질 축복의 관 리에 있어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라는 기쁨과 영광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과의 동역의 조 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 계산에 너무 약삭 빠릅니다. 당장의 이익이 있어 보 이는 계산에는 세상 누구보다도 빠른 예수 믿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과의 동역자 본을 드리는 계산에는 엉터리가 대부분인 성도가 많습니다. 한번 정해 놓은 십 일조는 해가 가도, 수입이 늘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내가 결정한 것이니 누구도 말하지 말라고 시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와 동역 하고 있느냐'이며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성실한 그리고 진실한 동역자가 되고 있는가가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또 다른 동역하는 기준이 구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늘 강조합니다만 구제란 꼭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돕는 것만이 아닙니다. "구제"란 '내게 있는 것을 주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께서는 감옥에 있을 때나 감옥밖에 있을 때나 자신의 선교와 생활을 위하여 물질을 늘 지원하는 빌립보교인들에게 "너희의 준 것을 받음으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바드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라(빌4:18)"고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란 주는 사명을 의미합니다. 그중에 궁핍한 자들을 돕는 것을 제일 많이 강조합니다. 잠언에 나타난 구제사상만 찾아보려해도 한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잠3:27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아끼지 말라. 잠11:24 흩어 구제하여도 부하게 되는 일이 있다. 잠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라. 잠14:21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라. 잠21:26 의인은 아끼지 않고 시제한다. 잠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할 것이라. 잠31:20 현숙한 여인은 간곤한 자에게 자기의 손을 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사람이나 국내외 선교와 기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볼 때에 구제와 선교의 물질을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줄 것을 원 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이는 여호와께 빚을 지우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할 정도입니다. 이제 성도들이여! 하나님은 우리와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물질적 동역자 가 되어 선한 일을 많이 시도하시기를 좋아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희망과 행복의 하나님과의 동역을 이루어나가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진정 하나님과 물질의 동역자로 살아가신 분의 삶을 한가지 소 개함으로 말씀을 마칩니다. 대구 동산병원 안에 고아를 위한 병원이 세워졌는데 병원 낙성식에서 피얼스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미국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큰 부자가 헌금을 많이해서 이렇게 지은줄 아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 병원을 지으려할때 돈이 꼭 필요하다고 라디오 방송을 몇 번 했는데 다음에 내가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어떤 부인이 돈 50달러를 편지속에 넣어 보 내면서 '나는 항상 병속에 사는 반신불구가 된 사람인데 내가 라디오를 통해서 당신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든지 그 병원을 도와 줄 마음이 간절하지만 다른 돈 은 없은즉 그 라디오를 판 돈 50달러를 보냅니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이런 정성 어린 헌금이 모여서 이병원이 되었습니다."고 말씀했습니다. 진정 무엇을 좋아하 십니까 오!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를 물질로 아버지의 동역자가 되어 한국과 세계의 가난한 자들과 구운을 받아야 할 영혼들을 위하여 많은 물질을 드릴수 있는 복을 내리소서. 아멘 그리스도 예수의 지극히 작은 종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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