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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가서 (눅2:15-20)

본문

성탄의 기쁜 소식이 맨 먼저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지도자나 족장들은 대개가 양을 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었고 모세는 미디안에서,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양을 친다는 사실이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의 주님은 자신을 목자로 비유하셨고 그의 백성은 양 떼로 비유하셨습니다. 자기 양 떼를 치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의 성탄 소식이 들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그 뜻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동남쪽 10km 지점에 있는 작은 고을입니다. 예루살렘이 성지 관광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베들레헴도 관광지로 개발이 되긴 했습니다만,지금도 베들레헴은 작은 고을에 불과합니다. 베들레헴의 가치는 자연 경관이나 관광 조건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 탄생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 들은 목자들은 즉시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드렸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1.그들은 이루어진 일을 보기 위해 갔습니다. 15절을 보면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큰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언과 성취입니다.예언과 성취란 “될 것이다”와 “되었다”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이란 “이렇게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성취란 “이렇게 이렇게 되었다”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실 것이며 그 분은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실 것이며 베들레헴에 오실 것이라는 것이 구약의 예언이었습니다. 그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그리고 그 소식은 맨 먼저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목자들은 예언의 성취로서 이루어진 일을 직접 가서 보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2.빨리 갔습니다. 16절은 “빨리 가서”라고 했습니다.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누가가 목자들의 거동을 기록하면서 “빨리” 갔다고 표현한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빨리 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반응의 민첩성입니다. 말씀이나 명령이 떨어졌을 때는 즉시 행동하는 민첩성이 필요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밭에 나가 일을 하라고 했다고 합시다. 큰아들은 선뜻 가서 일하겠다고 대답해 놓고는 영 가지 않았습니다.반면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그 후에 들에 가서 일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큰아들은 유태인을 의미하고
둘째 아들은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가장 좋은 아들, 아버지가 기뻐하는 아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순종하고 행동하는 아들입니다. 목자들은 민첩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들은 천사의 가르침을 믿었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빨리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빨리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말씀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믿고 신뢰하면 빨리 순종하고 결단하게 됩니다.
셋째는,그들의 궁금증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 중의 일부였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가 궁금했습니다.그리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빨리 간 것입니다.
3. 아기를 찾아서 보았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그리고 아기가 나신 곳을 찾았습니다.여기서“찾아서”라는 것은 그들의 열심과 정확성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찾는 이가 찾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진리를 찾을 것이고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찾고 불의를 찾는 사람은 패배와 파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광맥을 찾는 사람은 금을 찾게 될 것입니다만,지뢰밭을 뒤지는 사람은 지뢰의폭발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길든 짧든 한평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를 찾게 됩니다.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 필요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돈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행복도 필요하고 직업도 필요하고 배필도 필요하고 사랑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그것들을 찾기 위해 동서남북을 헤매이기도 하고 피나는 투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다 찾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여론 조사 기관이 직업인 890명을 대상으로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9.8퍼센트가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만족한다”는 응답은 고작 20퍼센트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전공과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1,000여 명의 응답자 가운데 현재 전공하고 있는 과목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28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상의 조사는 우리 사회 전체의 흐름을 진단케 해줍니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만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만 만족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도처에서 불만의 활화산이 되어 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 법원의 한 관계자는 갑자기 불어난 이혼율의 증가 원인을 결혼 생활에의 불만족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불만족의 원인은 불만족한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으로 돌아가 찬송하며 본연의 위치로 돌아갔던 목자들의 삶을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 20절을 보면,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드린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겪은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양 떼가 기다리는 들판으로 돌아갔습니다. 취직 시험을 치러 갔다가 떨어지고 돌아가는 길이라면 찬송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 만나러 갔다가 배신당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면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사의 지시에 따라 예수님을 만나러 갔었고 그곳에서 평화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그래서 예수님 만난 기쁨,그것 때문에 그들은 찬송하며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찬송을 부릅니다.기쁠 때도 찬송을 부르고 슬플 때도 찬송을 부릅니다.심지어는 죽음을 앞에 놓고도 찬송을 부릅니다.그것은 예수 안에서 얻은 평화와 소망이 모든 것을 초월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베드로를 만나고 걷게 된 사건이 나옵니다. 3:8을 보면 그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다”라고 했습니다. 에디오피아의 국고 장관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병거 안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그때 빌립이 그를 만나 읽고 있던 성경을 해석해 준 후 가던 길에서 세례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고난 후 그가 “흔연히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쁨이 가득한 채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찬송하며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탄하신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세상으로 다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했던 목자들이 찬송하며 돌아간 것처럼 우리도 찬송하며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시다. 주님을 내 마음에 구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기쁨과 평화와 찬송이 넘치게 됩니다. 군인이 군가를 부르며 행군하듯 우리도 찬송가를 부르며 역사의 현장으로 나갑시다. 고통과 절망이 짙게 깔린 세상일지라도 찬송하며 우리의 베들레헴 들판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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