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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남겼는가? (행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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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어느 지역을 방문 하였을 때 그 곳의 외적 환경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에 의해 방문한 곳이 좋은 인상으로 남기도 하고 전혀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언제나 이러 저러한 외적인 조건들,즉 외양이라든지 경제생활의 정도라든지 하는 것들이 미치는 영향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달리말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마음먹기에 따라”라는 잘알려진 말이 암시하듯 “외적조건을 넘어서게 하는 사고방식이나 생활의 태도나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 결국 사람살이에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그럼에도 만일 이러한 사실이 무시되었을 때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자신도 모르게 현실적인 조건에만 매몰되어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다른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람이나 삶이란 없어지게 되고, 사람을 조이고 있는 인습의 사슬과 현실적인 조건만이 남아 되레 그것이 그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 자신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여러곳에서 어떠한 지역에 대한 인상을 종종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레데인”하면 ‘거짓말꾼’이라는 인상을 전해주고, “소돔인”하면 ‘범죄자’라는, “사마리아”지역에 대해서는 ‘천박함’이라는 선입견에 가까운 인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타나엘 이란 사람이 “나사렛”에 대해 즉각 “나사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2:46)”라는 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떠한 계층에 대해서도, “세리”하면 ‘착취꾼 이며 매국노’라는, “바리새인”하면 ‘돈을 좋아하고 겉치레가 심한 이중인격자’라는 인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상적인 인상들이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그곳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일과 생활관습과 전통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인 것입니다. 이는 많은 경우에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마치 명찰이나 꼬리표 처럼 그를 뒤따라 다닐 것입니다. 이러한 인상을 새롭게 바꾸어 내는 것은 흘러 온 역사 만큼이나 참으로 많은 노력과 변화의 계기를 필요 합니다. 실로 어떤 공동체나 한 개인의 인상은 그 사람이나 그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이러 저러한 경로를 통하여 젖어들은 “주된 정신”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고방식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지, 또한 그 공동체를 주도하는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어떠한 공동체,단체,한 개인에게서 어떠한 인상을 받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나 단체가 소유하고 품고있는 가치관 정신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재물”에 가치를 두고 그것이 그의 정신을 다스리는 기준이 되어 있다면 그는 그것에 주력할 것이고 온갖 힘을 다 쏟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는 재물을 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부분은 바울로가 “베레아”라는 곳에서 경험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빌립보-데살로니카를 거쳐 베레아까지 왔습니다. 데살로니카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바울로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살기등등한 유대인들이 그의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그 다음날 밤에 그는 베레아로 오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성서는 “베레아에 사는 유대인들은 테살로니카 유대인들 보다 마음이 트인 사람이었다”라고 전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바울에게 편협되지 않고 마음이 넓은 포용력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두곳의 유대인들은 아주 다른 인상을 전해줍니다. 한 곳은 “편협하고 충동적이며 시기심이 많고 폭력적” 이었고, 다른 한 곳은 “공정하며 편협되지 않고 마음이 트인 진지한 모습”이었습니다. 항구도시인 데살로니카는 무역이 활발한 상업도시였고, 그곳의 많은 유대인들은 무역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들은 계산이 빠르고 물질적 가치에 밝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가치는 이해타산에 연루되어 있어서 자신들에게 약간의 해라도 미친다고 생각되면 언제나 분노하며 즉각적인 도전의 자세를 내보이는 것이 습성화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바울로의 말을 많은 그리스인들이 따르자 시기하여 “불량배를 돈으로 매수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이를 바울로의 일행에게 책임지우는 파렴치한 일을 하였습니다. 베레아의 경우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곳의 유대인들은 마음이 트이고 포용력이 있었습니다. 분별력이 있었고,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베레아 사람들은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들 이었습니다. 마음이 넓게 열고 진지하게 상황들을 꾸려나가는 인격적인 성숙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경청하며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본다면 창조적인 면모는 일구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베레아인들은 참으로 의미있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신사적이고, 편견을 갖지않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이며, 진지하고 규모있는 사람들 이었다”라는, “그들은 정직하며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라는 인상을 담아 내었습니다. 이제는 “베레아사람”하면 데살로니카인과는 다른 깊이있는 인상이 남습니다. “낙골인”의 인상은 어떠한 것입니까 오늘 우리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인상을 남겼습니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주된 정신은 무었입니까 베레아인이 그랬던 것처럼 “낙골인”이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규모있고, 진지하며, 정의롭고, 성실하며, 진리를 향한 뜨거움이 있고, 마음이 트인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껏 무엇을 남겼습니까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변함이 없는 깊이 있는 인상이 우리를 만나는 모든이의 가슴에 남도록, 우리의 역사에 남도록 오늘을 책임있게 살아가며 가꾸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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