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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랄 것인가? (엡1:15-23)

본문

새해가 되면 으레히 신년 소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 들은 성탄절 소원이 있고 그것을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 주 기를 바라는 마음이 매우 강열한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 할아버지가 직접 오셔서 선물을 몰래 주는 장면을 볼려고 밤 늦게까지 깨어있겠다고 버티다가 끝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고 마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라고 이 어린이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새해가 되면 새해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높은 산 봉우리에 올라 가거나 해변가로 가서 새 해 첫 해가 돋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년에도 동해안의 정동진과 제주도의 일출봉 등지에 새해의 일출을 구경하려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일출 구경을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외국을 여행하거나 특별한 계절에 일출을 구경하려고 이른 새벽에 잠을 설치고 일어나 곤 한 기억들이 있고 사진을 찍은 일도 많습니다. 더러는 해가 바다 나 큰 호수에서 또는 산에서 떠오르는 엄숙하고도 장엄한 장관을 본 때도 있었고 더러는 동쪽 하늘에 낀 구름때문에 보지 못하고 구름 위로 덜 장엄한 모습으로 떠오르는 장면을 본 적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다들 여러 가지 모습의 일출을 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같이 새해를 마지하지 못하고 지난 해에 세상을 떠난 사람 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이 새해 아침을 맞이하고 일출을 보면 서 우리가 대채로 느끼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새해 아침에 밝은 해 가 동편하늘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 오늘도 변함 없이 태양 은 떠오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앙심이 돈독한 분은 이러한 새해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어떤 실패를 하였든지, 어떤 불행을 겪었든지 '이제 새로 시작해 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또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 '인간들이 아무리 저항한 다 해도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시는 방향으로 역사를 계속 이끌어 가시는구나.' 등등의 느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아 일출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동기가 단순히 시간이나 새 해에 대한 단상이나 사색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춥고 먼 동해안으로 가서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구경하는 극성스러운 사람들은 의식, 무의식 간에, 또는 막연할지 모르지만 중 요한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진정한 동기는 새해의 소 원과 새해 결심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소원 을 하늘에 구하기 위해 손을 모으거나 비비거나 불끈 쥔 주먹을 공중 으로 휘둘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 솟아 오르는 첫 햇살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새해 소원과 결심을 빌고 다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결심합니까 여러분이 금년 벽두에 가지고 있는 새해 소원이 무엇입니까 새 해 결심은 또 무엇입니까 그것을 지금 공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만, 그것들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잠시 침묵과 기다림. 오늘 에배소서 본문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는 설명이 달린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에배소 교회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 주셔서 하나님을 참으로 알 게 하시고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를.알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18 절)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에배소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소명을 받은 사람이 바라고 희망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 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기를 바란다고 기도를 했다고 말합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가 일출봉에 갔던지 않갔던지 간에 부르심 을 받은 우리들이 바랄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희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희망으로 부름을 받 았다는 것을 오늘 에배소서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 이 무엇을 바라고 희망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 새해인 1999년, 2000년 직전의 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제기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기도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각 개인이 금년 1999년 한 해 동안 바라는 것과 결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각 개인이 처한 형편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를 것입니다.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들은 금년에 빨리 직장을 구하 기를 원할 것이고 사업에 실패했거나 여의치 못한 경험을 한 분들의 경우 금년에 사업을 회복하고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고 또 결심이 대단할 것입니다. 건강을 잃었던 사람은 다시 건강회복을 소 원할 것이고 또 보다 더 철저히 건강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 을 할 것입니다.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은 석방과 사면을 꿈꿀 것이고 구속수배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새해에는 기어히 석방되고 구속수 배가 해제되도록 모든 노력과 투쟁을 다할 것입니다.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금년에 꼭 그 사랑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또 다짐할 것 입니다. 재수하는 젊은이들은 금년 말에 있을 시험에서 자신이 희망 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소원과 결심 보다 더 큰 소원과 결심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각 개인마다 새해 바람이 다른 것 같이 각 가정 마다, 각 조직 마다, 각 교회마다 바라는 바와 결심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여당인가, 야당인가, 시민운동 단체 에 속했는가 또는 여당을 지지하는가 야당을 지지하는가 등에 따 라 바라는 것과 다짐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온 지난 한 해가 험하고 치열한 해였을수록 새해에 대한 소원과 결심은 간절하고 클 것입니다. 밤이 어두우면 어두울수 록 별이 더욱 빛나는 것과 같은 원리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들과 결심이 현실적인 것인가 아니면 정말 꿈 속에 서의 소원이나 허황된 결심 처럼 너무나 터무니 없는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인가 또는 그 소원이 총체적인가 아니면 지엽적이 고 부분적인가 또 그것이 하나님 신앙의 시각에서 볼 때올바른 것 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엇을 바랄 것인가 등등의 문제 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새해 소원을 말할 때 지나간 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상가는 "역사란 과거로 떠나는 여정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인생과 새해를 말하면서 복고 적이고 회상적이거나 과거에 매몰되고 마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과거의 연대나 외우고 과거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 이 역사공부의 전부나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역사공부 의 목적을 말할 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만, 이 것은 과거 역사를 알아서 현재와 새로운 것을 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의 주 관심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나 미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해를 마지하고 새해에 바라는 것이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직면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해 가는 여정이지 과거지향적이거나 복고적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보다 나은 현재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무엇을 바라고 어떤 결의를 다지는가 하는 역사적인 문제를 관심해 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특히 기독교인들 가운데 믿음과 소망을 말하고 또 바라고 희망하는 삶을 산다고 말하지만, 현실과 현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은 아마 휴거론자 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만, 지금부터 약 6년 전인  10월 28일 24시, 2만여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흰 옷을 입고 교회에 모여서 통성기도를 하면서 그들이 세상에 공표한 것처럼 그 시각에 하늘로 들리워 올라가기를 바라고 기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어떤 사람들은 처자를 버리 고, 또 대부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들의 자녀들을 학교 등을 다 그 만두게 하고 모든 재산을 몽땅 팔아서 교회에다 다 바치고 오로지 휴 거되는 날과 시간에 그들이 산 채로 하늘로 들리워 올라가기 만을 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어떤 조짐이나 표징도 나타 나지 않은 채 그 시간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도 모르 고 하늘의 천사도 모르며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신다는 휴거일시를 자 신들이 정하고 휴거를 바랐다는 것이 잘못임은 물론이지만, 이들의 더 큰 문제는 현실과 이 세상을 외면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바람이나 기도는 기독교적이지 못하고 예수님의 교훈에 정면 으로 어긋난다고 믿습니다. 현상상태 또는 현상질서(status quo)를 절대화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기도는 불순한 행위입니다. 기도는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말 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경청하는 것도 기도의 중요한 부 분입니다. 그러나 모든 바라는 사람, 모든 기도하는 사람은 혁명가라 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체제나 정권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달 라고 구하거나 잘못된 현실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기도하는 모든 기독교인은 진짜 현실과 현체제에 대한 비판자들이고 또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혁 명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현실에 부정부패가 있고 불의가 만연할 때 이 를 고치고 개혁하고 변혁하는 것을 관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행 동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를관심 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써는 큰 죄를 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일 주기도를 외우면서 '우리에 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한편에서는 다른 사람의 일용할 양식을 도적하여 재산을 쌓고 돈을 너무 많이 모아 배가 불러 죽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일용할 양식도 얻지 못 하여 배가 고파죽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이고 우리 주면에 이 추운 겨 울에 실업자가 득실거리고 노숙자들이 여기 저기에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 기독교인이 이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주기도를 부인하는 것이고 예수님과 하나님을 모독할 뿐일 것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불의한 악법-그것을 실정법이므로 지켜야 한다 고 우깁니다만-에 의해 의로운 사람이 죄인으로 판결되고 영어의 몸이 되어 이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아무런 행동을 안 해도 아무런 신앙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평화적인 현실이 우리의 삶과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가 평화를 바라지 않고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다면 이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명백히 어떤 도덕적인 불의가 있고 반그리스도적인 현실이 있는 것을 보고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의와 반그리스도적인 현실을 보고 알 고서도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고 이를 외면하는 사람은 더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아니 그런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희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각 사람이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기껏 새해의 소원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기독교인 에게 어울리는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금 묻게 합니다. 우리 각자가 무슨 복을 구할 것인가 할 때 무엇이 올바른 바람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내 목에 다이 어몬드를 걸치는 것 보다 차라리 식탁에 장미꽃을 원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어몬드를 바라지만, 이 사람에 게는 그것 보다 가정의 사랑과 행복을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 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도 좀 더 크게 생각하고 무엇이 보다 더 가치가 있고 귀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하고 하나님 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개인의 복을 바라는 것 보다 많은 사람을 불행케 하는 구조 그 자체를 고치는 것을 바라 고 이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고 노력하도록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희망의 새해를 맞아 토마스 위어링(Thomas Wearing)이 가졌던 것 같은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바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우리는 다시 새해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해가 끝나는 시간까지 여행하는 동안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어떤 슬픔과 고통이 우리를 맞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 이 모든 일을 선처하셔서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그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안심합니다." 우리가 만일 이런 신앙과 태도를 가지고 새해를 시작한다면 우리는 또 다음과 같은 기도를 우리의 새해의 기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주여! 저의 고통 안에서 당신을 배우게 하소서."란 기도문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주여! 저의 고통 안에서 당신을 배울 수 있도록 저의 마음을 열 어 주소서. 제가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에서 겟세마니이 외로움과 고독을, 제가 겪는 모독과 수치에서 당신의 사형 선고받으심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려는 유혹이 심할 때에는 기꺼이 십자가 지시는 당신을 기억함으로 당신을 배우게 하소서.-중략-주여! 당신 안에서 나를 버림이 나를 구함임을 알게 하소서. 비는 하늘에서 내려져 자신을 구하지 못하[않]고 새싹을 구합니다. 태양은 자신을 버리며 세상을 비춥니다. 현대의 예언자들은 양심을 세상에 외치다가 죄 없는 죄인 되어 자 신을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나를 구하기 위해 내 자신을 버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 그러나 주여, 버림이 끝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임을 알게 하시고 나의 채움 전엔 누군가의 버림이 있었음을 알게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 전에 당신의 십자가가 있었음을 알게 하소서. 주여 간절히 청하오니 나의 삶이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게 하시고 이웃을 향한 삶이 되게 하심으로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소서. 당신의 삶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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