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채울것인가? (고후6:3-10)
본문
본문의 중심내용은 "나는 행복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이고 ,그 분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나에게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I.속이 가득차야 한다(3-7).
A.성령님으로 가득채워 졌다.
1.바울이 한 일들이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걸어간 고생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말 그 어디에도 불평섞인 말은 없었다. 그는 3절에 “나의 실수로 혹시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조심했다”고 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행동이 예수님의 권세를 망신시키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노력했다고 하였다.
2.바울의 말은 “나는 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현상에 대하여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그러니 말이다.그러나 바울의 말은 전혀 달랐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3.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히 비정상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정신이상자란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정신이상자라서가 아니라, 바로 무언가가 그 속에 꽉차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었다.
4.바울은 온갖 고난과 궁핍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때로는 매를 맞았고, 때로는 억울한 옥살이도 하였다. 그리고 강도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이 모두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인데, 바울은 "불평하는 권리"를 포기하였다. 불평하는 권리는 영혼을 죽이는 권리다.
5.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썼다. 혹시 우리중에 자신의 말을 증명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있는가 아이러니한 현상처럼 느껴지겠지만, 전도자에게는 전도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시험”이 더 많다.왜일까 마치 사단이 욥의 순수한 신앙을 질투해서 온갖 시련을 준 것과 동일하다. 6.어떻게든 사단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가 어기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도 바울처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장이가 될 수있음을 잊지말자.
B.나는 무엇으로 가득차있나
1.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평으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는 주님을 영접했다고 대주 앞에서 큰소리치는 사람들 마저도 불평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본다.
2.교회에서는 열심으로 봉사를 하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집에만 가면 가족을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흔하다.
3.사람은 무언가로 가득채워져야 한다. 성령님으로 가득차든, 불평으로 가득차든 둘 중의 하나가 채워져야만 하는데, 기왕이면 성령님으로 채워져야 한다.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라. 무엇으로 보든 그에게서 감사를 찾을 근거가 없지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좀 실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마저 들 정도다.
4.그러나 성령님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환경이 어떻든 전혀 구애됨이 없이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렇다. 환경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 속에 채워져 있는 것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그것은 오직 “성령님의 충만 뿐”임을 잊지말자.
II.주님을 의식해야 한다(8-10).
A.사람의 의식하지 않았다.
1.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일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도들 중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남과 경쟁하기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 남보다 무조건 앞서려고 한다.
2.다른 사람이 나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생각할 때, 상대방을 향하여 비열할 정도의 공격을 퍼붓는다. 바울을 가장 괴롭혔던 문제도 바로 이점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신자들로 부터 배척을 당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바울이 그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로 부터 사례를 받은 것도 더욱 아니다.
3.바울의 소원은 오로지 교회가 성장하여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여 복음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바울을 비방하는 선동에 귀를 기울이고 바울의 말보다는 원수들의 말을 더 들었으니 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그럼에도 바울은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그가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그렇다고 그가 강심장이거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10절에 자신도 상처를 받았노라고 고백을 하였는데,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상처가 전혀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5.경제적인 문제도 보통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사례비라는 것이 있어서 경제적인 큰 문제는 없다고 하겠지만 그 시대는 그렇지가 못했다. 남에게 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줄 형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풍성한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고 간증하였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기쁨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말씀이다.
B.주님만 바라 보자.
1.옛말에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봐야 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꼭 그렇지가 못하다.
2.신자는 어떻게든 목회자에게 환심을 사려 애쓴다. 주님에게 잘보이려는 것이 아니고 인간 지도자에게 잘보이려 애써서야 될일인가
3.교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그렇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들도 뒤따르게 된다. 자연히 상처받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왜 상처를 입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4.우리는 누구를 믿는 것인가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라는 단체를 믿는 것이 아니다. 건물을 믿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목사를 믿어서도 안된다. 목회자는 단지 우리가 존경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믿음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결론
1.바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이 행복의 근거인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역보고가 아니다.
2.분명히 그의 환경은 “고난과 가시밭길” 이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시면 어떡하나 하고 염려될 정도의 환경이었다.
3.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라. 오직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 새색시의 자랑을 듣는 심정이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행복에 겹게 만들어 주었는가
4.그것은 두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성령님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의식했기 때문” 이다.
5.지금 내 속에는 무엇이 가득차있는지 살펴보자. 혹시 불평이 가득차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매사에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잘보일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는 않는가
I.속이 가득차야 한다(3-7).
A.성령님으로 가득채워 졌다.
1.바울이 한 일들이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걸어간 고생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말 그 어디에도 불평섞인 말은 없었다. 그는 3절에 “나의 실수로 혹시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조심했다”고 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행동이 예수님의 권세를 망신시키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노력했다고 하였다.
2.바울의 말은 “나는 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현상에 대하여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그러니 말이다.그러나 바울의 말은 전혀 달랐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3.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히 비정상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정신이상자란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정신이상자라서가 아니라, 바로 무언가가 그 속에 꽉차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었다.
4.바울은 온갖 고난과 궁핍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때로는 매를 맞았고, 때로는 억울한 옥살이도 하였다. 그리고 강도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이 모두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인데, 바울은 "불평하는 권리"를 포기하였다. 불평하는 권리는 영혼을 죽이는 권리다.
5.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려고 애썼다. 혹시 우리중에 자신의 말을 증명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있는가 아이러니한 현상처럼 느껴지겠지만, 전도자에게는 전도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시험”이 더 많다.왜일까 마치 사단이 욥의 순수한 신앙을 질투해서 온갖 시련을 준 것과 동일하다. 6.어떻게든 사단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가 어기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도 바울처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장이가 될 수있음을 잊지말자.
B.나는 무엇으로 가득차있나
1.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평으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는 주님을 영접했다고 대주 앞에서 큰소리치는 사람들 마저도 불평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본다.
2.교회에서는 열심으로 봉사를 하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집에만 가면 가족을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흔하다.
3.사람은 무언가로 가득채워져야 한다. 성령님으로 가득차든, 불평으로 가득차든 둘 중의 하나가 채워져야만 하는데, 기왕이면 성령님으로 채워져야 한다.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라. 무엇으로 보든 그에게서 감사를 찾을 근거가 없지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좀 실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마저 들 정도다.
4.그러나 성령님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환경이 어떻든 전혀 구애됨이 없이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렇다. 환경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 속에 채워져 있는 것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그것은 오직 “성령님의 충만 뿐”임을 잊지말자.
II.주님을 의식해야 한다(8-10).
A.사람의 의식하지 않았다.
1.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일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도들 중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남과 경쟁하기를 즐기고 있다. 그래서 남보다 무조건 앞서려고 한다.
2.다른 사람이 나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생각할 때, 상대방을 향하여 비열할 정도의 공격을 퍼붓는다. 바울을 가장 괴롭혔던 문제도 바로 이점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신자들로 부터 배척을 당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바울이 그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로 부터 사례를 받은 것도 더욱 아니다.
3.바울의 소원은 오로지 교회가 성장하여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여 복음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바울을 비방하는 선동에 귀를 기울이고 바울의 말보다는 원수들의 말을 더 들었으니 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그럼에도 바울은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그가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그렇다고 그가 강심장이거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10절에 자신도 상처를 받았노라고 고백을 하였는데,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상처가 전혀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5.경제적인 문제도 보통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사례비라는 것이 있어서 경제적인 큰 문제는 없다고 하겠지만 그 시대는 그렇지가 못했다. 남에게 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줄 형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풍성한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고 간증하였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기쁨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말씀이다.
B.주님만 바라 보자.
1.옛말에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봐야 하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꼭 그렇지가 못하다.
2.신자는 어떻게든 목회자에게 환심을 사려 애쓴다. 주님에게 잘보이려는 것이 아니고 인간 지도자에게 잘보이려 애써서야 될일인가
3.교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그렇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들도 뒤따르게 된다. 자연히 상처받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왜 상처를 입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4.우리는 누구를 믿는 것인가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라는 단체를 믿는 것이 아니다. 건물을 믿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목사를 믿어서도 안된다. 목회자는 단지 우리가 존경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믿음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결론
1.바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이 행복의 근거인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역보고가 아니다.
2.분명히 그의 환경은 “고난과 가시밭길” 이었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시면 어떡하나 하고 염려될 정도의 환경이었다.
3.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라. 오직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 새색시의 자랑을 듣는 심정이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행복에 겹게 만들어 주었는가
4.그것은 두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성령님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의식했기 때문” 이다.
5.지금 내 속에는 무엇이 가득차있는지 살펴보자. 혹시 불평이 가득차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매사에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잘보일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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