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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건축하는 사람들 (유1:17-25)

본문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아주 튼튼하게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라고 했었습니다. 건축한다, 세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를 건축하는 사람들’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전에는 집장사들이 있었습니다. 집장사들이 짓는 집은 날림으로 짓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살집을 짓는 사람들은 물자를 아끼지 아니하고, 기초부터 마감까지 최선을 다하여 튼튼하면서도 쓸모 있게 짓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사가시어 심방을 가보면 요즘 집들이 얼마나 잘 짓는지, 참으로 좋아 보입니다. '집사님, 이 집 정말 잘 지었습니다'라고 칭찬합니다. 그러면 주인 되시는 성도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모는 번듯하지만, 살다보니 정말 엉망으로 지었다면서 잘못 이사왔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비가오고 보니다르다는 것입니다. 집을 사시려고 하실 때는 장마철에 다녀봐야 좋습니다. 그래야 어디 비가 새는 것은 아닌지, 물이 스며 나오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시골에서 올라와서 서울 물정을 잘 모르고 아주 허술한 집을 세 들어 사는 것을 봅니다. 자, 어찌했든지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요즈음 집들은 정말 잘 짓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잘 짓는 것을 볼 때면 우리의 신앙이라는 집도 잘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좀더 경건하게, 좀더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였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 곧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개역에는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하면 존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높은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라고 가정해보십시오. 사다리 꼭대기에 다 올라간 뒤 사다리가 다른 벽에 놓여져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비극이며, 헛수고이겠습니까? 오직 한번뿐인 인생을 잘못 살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 하나님 안에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불신앙의 세력이 나타나서 우리를 미혹하고, 세상으로 유혹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고, 이 세상으로 미혹하는 세력들이 만만치 않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모두 다 잘 믿는 이들만 있다면 훨씬 힘이 날 터인데, 세상으로 나가기만 하면 우리를 훼방하는 이들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가면 갈수록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며,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 먼저 불신앙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라고 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마지막 시대라고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말이라는 말을 하는데 언제부터 종말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초림에서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마지막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마지막 시대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불신앙의 사람들의 특징(17-19)
1) 1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한 말을 기억하라' 여기서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이 꼭 집어 어떤 말씀을 가지고 하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말씀(행20:29, 딤후3:2, 딤후5:1-5), 사도 요한의 말씀에도(일요2:8), 사도 베드로의의 말씀에도(벧후3:2-3)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의 동생 유다는 외경을 인용하여 이단을 싸우기도 하고, 사도들의 말씀을 가지고 이단을 물리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가리키는 자리에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해야 합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으며, 예상하는 것이었습니다.
2)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건치 않은 정욕이라고 하니, 사람이 정욕에 치우치면 경건해질 수 없습니다.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인데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기 때문에 영은 구원받지만, 육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육신이 소멸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짓는 것이고, 나는 영혼과 육신의 합일체이지, 영과 육을 따로 데어놓고 말하면 이단입니다. 그들은 육체는 본래부터 악하기 때문에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짓는 죄는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육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며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 행한 일들은 중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의 사고 방식은 악한 사탄이 가져다주는 죄악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이란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무엇인가 써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의 소모품으로는 시간과 정력과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희생이라는 것이 사랑의 극치임을 알아야 합니다. 희생이 따르지 아니하는 사랑이란 사탕발림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장한 이기적인 자기 만족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은 사랑한다고 하실 때에 그 사랑에는 희생이 있었는데, 바로 아들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위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기 말에는 경건치 않은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만족에 치우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구만 충족되면 나머지는 상관하지 않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고, 예수 믿는 이들은 구시대의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순결이나 정조 같은 것은 구 시대의 산물이라면서 자기들은 그런 수준은 이미 지나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순결을 지키고, 정조를 지키면서 사는 것은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동생 유다가 이 편지를 쓰는 때에 이미 이러한 성도덕을 깨뜨리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자기를 추종하면 화려하고 멋진 인생을 살게 해준다며 기독교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고리타분한 성도덕, 골동품 같은 윤리를 다 때려 치고 우리편에 서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순수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개역에는 기롱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조롱하는 것은 남을 업신여기고 비웃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들만이 잘 믿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면서 진실하게 믿는 성도들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입니다. 자기들만이 한 단계 더 높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이 우리 성도들의 신령한 은사나 체험,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깔보고 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당시의 악한 자들은 편당을 지었습니다. 저들은 육에 속하고 영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파당을 만들고 파당에 편승해서 주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히려는 것이 사탄의 술책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서 편당심을 가진 이들이 있으며 교회는 애찬식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만 앉아서 먹고 마시고 친교를 나누고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하면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배타성이란 아주 큰 죄악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자리는 언제나 사랑으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파당을 짓는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두 세 계급으로 갈라놓았습니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이란 몸(쏘마), 혼(푸시케) 영(프뉴마)의 세 가지 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이란 의미는 분명합니다. 신체는 육체적 구조물이며, 체격입니다.
그런데 혼이란 이해하기가 참으로 곤란한 부분입니다. 헬라인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혼이란 단지 육체적인 생명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은 육체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 동물, 심지어 식물까지도 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프뉴마라는 영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해주고, 신과 동질이 되게 하며, 신에게 말을 할 수 있으며,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실체가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극소수의 사람들, 자기네 영지주의자들에게만 영의 사람이고, 혼의 사람, 육의 사람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육의 사람(싸르키코스), 혼의 사람들(푸슈키코스), 그리고 영의 사람들(프뉴마티코스)라고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영의 사람들 즉 '퓨뉴마티코스'로 참 지식을 가진 자요, 실제로 영을 가진 자들이며, 참된 종교적인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자들이라고 편을 갈랐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이미 율법적인 단계는 뛰어 넘어선 사람으로 자기들에게는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고 우월하다고 했지만, 하나의 환상이요, 함정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이 멸시하는 혼의 사람들이나 육의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보다 훨씬 경건하고, 믿음의 확신을 가진 성도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로 하여금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었고,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요, 성령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2. 자기를 건축하는 사람들(20-21)

우리는 악에 속하지 않고 선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과학이나 학문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하나의 건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자이신 유다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건축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각 사람은 자기의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위하여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 여기서 자신을 세운다는 자기를 건축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건축하는 것은 자기의 집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1)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합니다.
거룩한 믿음이란 신성한 믿음이라고 해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분리하다', 혹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거룩이란 다른 어떤 것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성전은 일반 건물보다 다른 것을 보는데 그래서 거룩한 건물,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믿음이라고 할 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믿는 자들로 하여금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거룩합니다.

선한 사람은 자기의 삶을 가장 거룩한 믿음 위에다 건축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생활은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합니다. 이 거룩한 믿음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인데 사도들에게 전달되었고, 교회를 통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핵심입니다. 거룩한 믿음은 구원의 도리입니다. 거룩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도리를 총괄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근간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온 어떤 역사를 근간으로 하여 살아야 할 것이냐, 아니면 나의 확신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이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를 건축해야 합니다. (고전3:10-11)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었습니다. 우리는 건축하는 사람으로 사도들이 닦아두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전 위에 건축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나, 어느 교회라는 터전 위에 우리의 신앙이라는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전 위에 건축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것도 연약한 사람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강하고 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근거로 믿음을 세우고 자기를 건축합니다.

사26:3에 '너희는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사람을 들어오게 하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저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주요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 신앙이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흐뭇한 신앙입니까!
2)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20하)
기도생활은 자아라는 집, 자기 신앙이라는 집을 건축하는데 아주 중요한 재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재료가 있고, 거룩한 믿음의 도리가 있어도 그것을 혼합하고, 연결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기도에 있습니다. 사람이 자주 만나서 대화하면 서로를 알게 되고, 친분이 돈독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주님과 대화를 나누어야 주님을 더욱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골방을 통하여 하늘을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펄죤목사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을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문을 작성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문을 제출하시고, 성부 하나님 아버지는 기도를 들으신다. 성 삼위일체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데 우리가 기도를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도라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건축하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성령께서 알아서 간구하시는 것을 더욱 기쁘시게 들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가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 우리의 기도를 전폭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도는 때로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완전히 붙드실 때만이 우리의 기도는 온전한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영원히 믿음을 지키고, 정절을 지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사실 앞에서 어떻게 그 사랑을 모른다고 할 것이며, 배신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되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을 지키고, 정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절정으로 나타나신 사건이 무엇입니까?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입니다. 그 사랑에 감복하여 이 몸 바치면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4) 자기의 신앙의 집을 건축하는 우리는 대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인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감사와 겸손과 인내는 신앙의 중요한 것 중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보증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6:37-40)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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