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환상 (행10:9-23)
본문
이방인을 찾으신 하나님,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탕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누가 말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방인을 찾으시냐 하면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리실 만큼 그 정도로 하나님 은 이방인을 찾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엡2:13-16)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 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 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둘이란 유대인과 이방인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의 막힌 담을 허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과 이 방인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로, 한 형제로 만드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은 이방인을 대표해서 경건한 군인인 고넬료를 택하셨습니다. 유대인을 대표해서는 사도였던 베드 로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에게 환상을 보여주시 고 두사람이 만나도록 함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 장의 예수님의 중보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내 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옵 소서" 에베소서에 보면 성령님의 역할 중에 하나가 우리가 하 나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세상에 큰 힘 을 발휘할 때는 우리가 하나 되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면 오지 않습니다. 가정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부터 해야 해요. 예수님 의 기도는 '하나 되게 하여주옵서서'였습니다. 어떻게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가를 지금 공부하고 있습니다.
9-11절까지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고넬료에게 찾아가셔서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었다. 베드로를 초청하라.' 그래서 경건한 하인 들을 불러서 베드로를 초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 넬료에게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아주 적당한 시기에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나 타난 환상은 어떤 것입니까 11절 베드로는 정오인 제 육시에 기도하러 지붕 위로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붕이 삼각형입니다. 그래서 지붕 위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갑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붕은 평평합니다. 올라가서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때가 정 오시간이었습니다. 배고픈 시간이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기도 하러 갔다가 먹을 것이 생각이 났는가 봅니다. 10절을 보니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그리고 그때 어떤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배가 고팠기에 음식이 생각났을 것이고, 누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런 순간에 먹을 것이 나타났습니다. 굉장히 이상한 먹을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환상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는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자기의 뜻을 계시하려고 할 때 언제하셨냐하면은 베드로가 기도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나 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를 생각해 보면 베드로는 아 주 굉장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 으켰습니다. 베드로는 죽은 자를 살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 실 베드로는 능력의 사람 이전에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 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치는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후 3시에 한참 일하는 시간인데도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12시에 자기의 집 지붕 위에서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합니까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러 가지 기적과 이적을 베푸 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귀신을 쫓으 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좀더 주의 깊게 예수님을 관찰해 보면 예수님의 사역 뒤에는 하나님과 개인적 으로 대면하는 경건의 시간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많 은 예수님을 설명하는 말씀들 중에 "예수님은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더라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새 벽기도하셨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장 위기의 시간인 십자가 를 져야 하느냐, 내가 꼭 이 잔을 마셔야 합니까 라는 그의 일생에 가장 큰 위기에 섰을 때 그는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도가 있 었습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의 활동 뒤편에는 은밀하게 개인 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많은 전도 뒤에는 가는 곳마다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들의 내면적인 모습에는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능력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있는 사람 과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일하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님 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기도 생활을 갖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말한다면 기도에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도하느냐가 내 신앙의 성공과 실패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 시간을 쫓아다니면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있지 않은데 어찌 말씀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 여기서 배우는 또하나의 교훈은 하나님은 언제나 적절한 때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분 내키는 대 로 역사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에는 사람의 시간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땅의 시간이 있고, 하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시간표에 의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의 시간에 맞추어 달라 고 아우성입니다. "하나님 이때 꼭 응답하십시오." 그리고는 응답이 없으면 '끝이다. 응답이 없다'합니다. 그러나 때가 아 직 아니에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때나 오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차매" 여인의 몸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의 모든 예언의 시각을 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 때나 죽지 않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병들었다고 죽을 것 같 아도 죽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 히 사십시오. 죽음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종들이 베드로에게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 의 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절묘하게 나타나셨어요. 이게 다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에 게 나타나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계산하고 계셨고,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진행시키신 것입니다. 사건을 통 해,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어떤 메시지 가 있어요. 그러면 베드로가 본 환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비몽사 몽간에" 기절했다는 말입니다.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 습니다. 그리고는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그 안에는 많은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참이상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안의 짐승들은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말하는 부정하고 속된 짐승들만 있었 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끔찍한 짐승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도 징그러운데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일어나 잡아먹으라" 얼마나 놀랬겠어요. 부정한 짐승을 만지면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요. 옷도 빨아야 되고, 레위기에 보면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그래요. 베드로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도 거절을 합니다. 레위기에서는 분명히 먹지 말라고 했거든 요. 14절 그럼 여기에 나타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나타난 부정한 짐승들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이 방인들, 거룩한 음식은 이스라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은 이방 인들
그런데 하나님은 먹으라고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두 번째 소리가 있어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참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더러운 부정한 짐승들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깨끗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끗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끗케 했는데 왜 네가 못먹겠다고 하느냐 말씀하십니다. 세 번씩이나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화목 되게 하셨습니다. 17절, 18절. 베드로는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이나 환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왜 속되다 하 느냐'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이것이 전 통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천년 동안 제사를 지내왔는데 지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합니다. 베 드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고넬료의 종들이 베 드로 집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얼마나 절묘한 성령님의 역 사입니까 정확한 시간에 찾아와서 노크를 합니다. 바로 이 때 성령님의 음성이 베드로를 강타하는 겁니다. 19-20절. 신 앙생활이 이렇습니다. 전혀 안될 것같은데 됩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죽어있는 신앙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해요. 전혀 감동도 없고, 변화도 없고, 아무 흥분 할 것도 없고, 들어오는 것도 없고 노크하는 것도 없고, 성령님이 오신 겁니다. 여러분의 중요한 시간 속에 성령님 이 오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는 신앙, 지적인 신앙 그게 그 렇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실제여야 합니다. 생각이 아니라 삶입니다. 우리는 어떤 철학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아 역사하는 분입니다. 21, 22절. 또한 가지 은혜받고 신은 것은 종들의 태도입니다. 22절. 이들은 노예요, 종이지만 아주 자부심이 있습니다. 고넬료를 주인으로 모신 점을 통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기 상전에 대해서 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절대로 순종합니다. 여러분 앞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여리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가운데 있는 것이라면 분명히 여리 고는 무너집니다. 안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다 되는 것 같으나 안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 같이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 심을 매 시간마다 받으며 살아가는 살아 있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9-11절까지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고넬료에게 찾아가셔서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었다. 베드로를 초청하라.' 그래서 경건한 하인 들을 불러서 베드로를 초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 넬료에게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도 아주 적당한 시기에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나 타난 환상은 어떤 것입니까 11절 베드로는 정오인 제 육시에 기도하러 지붕 위로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붕이 삼각형입니다. 그래서 지붕 위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이해가 잘 안갑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지붕은 평평합니다. 올라가서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때가 정 오시간이었습니다. 배고픈 시간이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기도 하러 갔다가 먹을 것이 생각이 났는가 봅니다. 10절을 보니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그리고 그때 어떤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배가 고팠기에 음식이 생각났을 것이고, 누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런 순간에 먹을 것이 나타났습니다. 굉장히 이상한 먹을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환상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는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자기의 뜻을 계시하려고 할 때 언제하셨냐하면은 베드로가 기도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나 타나신 것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를 생각해 보면 베드로는 아 주 굉장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 으켰습니다. 베드로는 죽은 자를 살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 실 베드로는 능력의 사람 이전에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 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치는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지만 사실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후 3시에 한참 일하는 시간인데도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12시에 자기의 집 지붕 위에서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합니까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러 가지 기적과 이적을 베푸 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귀신을 쫓으 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좀더 주의 깊게 예수님을 관찰해 보면 예수님의 사역 뒤에는 하나님과 개인적 으로 대면하는 경건의 시간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많 은 예수님을 설명하는 말씀들 중에 "예수님은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더라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새 벽기도하셨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장 위기의 시간인 십자가 를 져야 하느냐, 내가 꼭 이 잔을 마셔야 합니까 라는 그의 일생에 가장 큰 위기에 섰을 때 그는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도가 있 었습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의 활동 뒤편에는 은밀하게 개인 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많은 전도 뒤에는 가는 곳마다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들의 내면적인 모습에는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능력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있는 사람 과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일하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님 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기도 생활을 갖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말한다면 기도에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도하느냐가 내 신앙의 성공과 실패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 시간을 쫓아다니면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있지 않은데 어찌 말씀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 여기서 배우는 또하나의 교훈은 하나님은 언제나 적절한 때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분 내키는 대 로 역사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에는 사람의 시간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땅의 시간이 있고, 하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시간표에 의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의 시간에 맞추어 달라 고 아우성입니다. "하나님 이때 꼭 응답하십시오." 그리고는 응답이 없으면 '끝이다. 응답이 없다'합니다. 그러나 때가 아 직 아니에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때나 오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차매" 여인의 몸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의 모든 예언의 시각을 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 때나 죽지 않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병들었다고 죽을 것 같 아도 죽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 히 사십시오. 죽음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종들이 베드로에게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 의 기도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절묘하게 나타나셨어요. 이게 다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에 게 나타나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연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계산하고 계셨고,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진행시키신 것입니다. 사건을 통 해,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어떤 메시지 가 있어요. 그러면 베드로가 본 환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비몽사 몽간에" 기절했다는 말입니다.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 습니다. 그리고는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그 안에는 많은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참이상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안의 짐승들은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말하는 부정하고 속된 짐승들만 있었 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끔찍한 짐승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도 징그러운데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일어나 잡아먹으라" 얼마나 놀랬겠어요. 부정한 짐승을 만지면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요. 옷도 빨아야 되고, 레위기에 보면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잡아 먹으라고 그래요. 베드로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도 거절을 합니다. 레위기에서는 분명히 먹지 말라고 했거든 요. 14절 그럼 여기에 나타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나타난 부정한 짐승들은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이 방인들, 거룩한 음식은 이스라엘, 먹지 못하는 음식들은 이방 인들
그런데 하나님은 먹으라고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두 번째 소리가 있어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참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더러운 부정한 짐승들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깨끗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끗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끗케 했는데 왜 네가 못먹겠다고 하느냐 말씀하십니다. 세 번씩이나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화목 되게 하셨습니다. 17절, 18절. 베드로는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이나 환상을 보았습니다.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왜 속되다 하 느냐'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이것이 전 통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 천년 동안 제사를 지내왔는데 지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합니다. 베 드로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고넬료의 종들이 베 드로 집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얼마나 절묘한 성령님의 역 사입니까 정확한 시간에 찾아와서 노크를 합니다. 바로 이 때 성령님의 음성이 베드로를 강타하는 겁니다. 19-20절. 신 앙생활이 이렇습니다. 전혀 안될 것같은데 됩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죽어있는 신앙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해요. 전혀 감동도 없고, 변화도 없고, 아무 흥분 할 것도 없고, 들어오는 것도 없고 노크하는 것도 없고, 성령님이 오신 겁니다. 여러분의 중요한 시간 속에 성령님 이 오시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는 신앙, 지적인 신앙 그게 그 렇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실제여야 합니다. 생각이 아니라 삶입니다. 우리는 어떤 철학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아 역사하는 분입니다. 21, 22절. 또한 가지 은혜받고 신은 것은 종들의 태도입니다. 22절. 이들은 노예요, 종이지만 아주 자부심이 있습니다. 고넬료를 주인으로 모신 점을 통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기 상전에 대해서 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주인에게 절대로 순종합니다. 여러분 앞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여리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가운데 있는 것이라면 분명히 여리 고는 무너집니다. 안 무너질 것 같지만 무너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다 되는 것 같으나 안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 같이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 심을 매 시간마다 받으며 살아가는 살아 있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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