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회개 설교 (행3:11-26)
본문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예수 이름을 주어 고치게 하고 이어 그 기적을 보고 모여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에 여기 본문은 너희들이 알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니 회개하고 복받을 민족이 되기 위하여 죄를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범죄는 그들의 무지가 산출한 것이요, 위정자의 실책도 역시 무지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이라도 죄상을 인식하고 참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그 마음을 일변하여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허락하신다고 하는 간절한 설교였습니다.
‘밀톤’은 말하기를 “회개는 영원의 궁전을 여는 황금열쇠”라고 하였고 ‘데보날드’는 “회개는 제 2의 무죄”라고 하였으며 ‘비차’는 “회개는 향상의 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여, 매일의 생애를 흘리는 우리의 참회의 눈물은 우리에게 허락된 천성의 황금 열쇠 인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충신 우리아를 살해하여 살인죄를 범하고 또 남의 유부녀를 강탈하는 음행죄를 아울러 범한 다윗의 참회의 눈물을 보시고 그를 용서하셨고 조그마한 계집종에게 잡혀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참회 눈물을 보시고 그를 용서하시었으니 우리들도 죄를 지은 것을 주님께 바로 고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1.무지한 죄를 지적한 했습니다.
본문 17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알지 못해서 예수님을 십자가 형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눈이 있어 예수를 보았고 귀가 있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심령의 눈은 어두워졋고 심령의 귀도 막혀져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했고 듣기는 들었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악독한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도 무지 때문에 죄를 짓는 일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너무 모르기 때문에 하여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심령이 어두워져서 선한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릇된 길에 빠져 죄를 범하는 일 무지 때문에 죄를 범하는 일도 적지 아니합니다.
여기에 알지 못하고 죄를 지은데 대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들이 알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이미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해 받으실 것을 예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받기 위해서 무지해서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2.예언된 말씀을 믿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이 듣고 배운 것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기억하며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를 할 수가 없는 것은 당시 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이 곧 학습이었으며 생활의 규범이어서 가르치며 배우며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언에 말씀을 배우면서도 믿지를 아니했으며 알고 믿으면서도 예수를 죽였으니 죄가 되므로 회개를 해야 한 것입니다. 이는 죄가 됨이 분명하며 또한 성서는 알고 지은죄가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약 4:). 요는 죄악이 중하고 경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잘못한 일에 용서를 비는 자가 귀한 것이니 베드로는 이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현대 우리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실된 회개를 하여 성결의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유혹을 받는 경우에도 이를 거부하고 죄를 짓지를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그러한 경지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누구를 얼마만큼 미워했으며 얼마만큼 교만했으며 얼마만큼 남을 비방했으며 어떻게 거짓말을 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히 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십니다(요일 1:9). 죄의 구체적인 자복만이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짓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3.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터이니 회개하라고 외침.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했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괴로움과 어두움의 날을 제하시고 유쾌한 날을 주시기 위해서 돌이키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프랑스의 주권을 쥐고 있을 때 “마인포드”는 프리드리히 왕의 정적으로서 잡혀 사형을 선고 받고 집행을 몇날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목사가 전해준 성경책을 읽고 있었는데 (시50:15)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하는 말씀 앞에서 그만 충격을 받고 그 말씀 한절에 은혜받아 거꾸러졌습니다. 인간적인 절망과 몸부림에서 돌이켜 오직 이 말씀을 부여 잡고 지난날의 죄와 과오를 주님 앞에 애절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중생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마인프드가 말씀앞에 돌이켜 주님을 부르짖고 있었던 그 눈물의 시간에 프리드리히 왕은 웬일인지 그날 밤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프리드리히왕은 불면으로 시달리는 중에 “나에게 오늘밤 잠을 주시면 내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단잠을 주셨습니다. 편안하게 잠을 자고난 왕은 다음 날입니다. 왕후는 즉시 마인포드를 석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마인포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환란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말씀 앞에서 돌이켜 행한 회개의 순간이 그에게 상상하지 못할 유쾌한 날을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완전히 절망일지라도 돌이키는 자에게는 구원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4.죄를 회개해야 구원이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을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사명은 그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려고”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부요함에 앞서 영적인 구원하려는데 대한 비중인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승천하셨던 것(눅24:51) 즉 그가 성령을 보내신 것은 가장 큰 축복이요, 축복중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행1:4-5, 2:4).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오신 또 다른 사명은 “그 악함을 버리게”하시는데 있습니다. 즉 우리가 모든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교만과 불신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시며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사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신 근본 목적이요, 아울러 복음 전파의 목표입니다(요3:16, 고전1:21).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영적과 육적인 무지와 고통을 모두 해결해 주시며 영적에로의 초대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그를 죽인 너희들이여 회개를 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밀톤’은 말하기를 “회개는 영원의 궁전을 여는 황금열쇠”라고 하였고 ‘데보날드’는 “회개는 제 2의 무죄”라고 하였으며 ‘비차’는 “회개는 향상의 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여, 매일의 생애를 흘리는 우리의 참회의 눈물은 우리에게 허락된 천성의 황금 열쇠 인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충신 우리아를 살해하여 살인죄를 범하고 또 남의 유부녀를 강탈하는 음행죄를 아울러 범한 다윗의 참회의 눈물을 보시고 그를 용서하셨고 조그마한 계집종에게 잡혀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참회 눈물을 보시고 그를 용서하시었으니 우리들도 죄를 지은 것을 주님께 바로 고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1.무지한 죄를 지적한 했습니다.
본문 17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알지 못해서 예수님을 십자가 형틀에 못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눈이 있어 예수를 보았고 귀가 있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심령의 눈은 어두워졋고 심령의 귀도 막혀져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했고 듣기는 들었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악독한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도 무지 때문에 죄를 짓는 일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너무 모르기 때문에 하여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심령이 어두워져서 선한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릇된 길에 빠져 죄를 범하는 일 무지 때문에 죄를 범하는 일도 적지 아니합니다.
여기에 알지 못하고 죄를 지은데 대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들이 알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이미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해 받으실 것을 예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받기 위해서 무지해서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2.예언된 말씀을 믿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들이 듣고 배운 것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기억하며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를 할 수가 없는 것은 당시 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이 곧 학습이었으며 생활의 규범이어서 가르치며 배우며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언에 말씀을 배우면서도 믿지를 아니했으며 알고 믿으면서도 예수를 죽였으니 죄가 되므로 회개를 해야 한 것입니다. 이는 죄가 됨이 분명하며 또한 성서는 알고 지은죄가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약 4:). 요는 죄악이 중하고 경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잘못한 일에 용서를 비는 자가 귀한 것이니 베드로는 이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현대 우리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실된 회개를 하여 성결의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유혹을 받는 경우에도 이를 거부하고 죄를 짓지를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그러한 경지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누구를 얼마만큼 미워했으며 얼마만큼 교만했으며 얼마만큼 남을 비방했으며 어떻게 거짓말을 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히 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죄를 자백하기를 원하십니다(요일 1:9). 죄의 구체적인 자복만이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짓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3.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터이니 회개하라고 외침.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했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괴로움과 어두움의 날을 제하시고 유쾌한 날을 주시기 위해서 돌이키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프랑스의 주권을 쥐고 있을 때 “마인포드”는 프리드리히 왕의 정적으로서 잡혀 사형을 선고 받고 집행을 몇날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목사가 전해준 성경책을 읽고 있었는데 (시50:15)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하는 말씀 앞에서 그만 충격을 받고 그 말씀 한절에 은혜받아 거꾸러졌습니다. 인간적인 절망과 몸부림에서 돌이켜 오직 이 말씀을 부여 잡고 지난날의 죄와 과오를 주님 앞에 애절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중생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마인프드가 말씀앞에 돌이켜 주님을 부르짖고 있었던 그 눈물의 시간에 프리드리히 왕은 웬일인지 그날 밤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프리드리히왕은 불면으로 시달리는 중에 “나에게 오늘밤 잠을 주시면 내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단잠을 주셨습니다. 편안하게 잠을 자고난 왕은 다음 날입니다. 왕후는 즉시 마인포드를 석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마인포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환란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말씀 앞에서 돌이켜 행한 회개의 순간이 그에게 상상하지 못할 유쾌한 날을 가져다 준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완전히 절망일지라도 돌이키는 자에게는 구원이 예비되어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4.죄를 회개해야 구원이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을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사명은 그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려고”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부요함에 앞서 영적인 구원하려는데 대한 비중인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을 떠나실 때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승천하셨던 것(눅24:51) 즉 그가 성령을 보내신 것은 가장 큰 축복이요, 축복중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행1:4-5, 2:4).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오신 또 다른 사명은 “그 악함을 버리게”하시는데 있습니다. 즉 우리가 모든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교만과 불신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시며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사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신 근본 목적이요, 아울러 복음 전파의 목표입니다(요3:16, 고전1:21).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영적과 육적인 무지와 고통을 모두 해결해 주시며 영적에로의 초대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그를 죽인 너희들이여 회개를 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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