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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 오신 예수 (마2:6)

본문

1. 작은 마을 베들레헴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 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2:6)는 말씀은 구약성경 미가 5장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 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를 자유롭게 번 역, 인용한 것으로서 예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이 작은 마을이요 그곳에 자리잡고 사는 족속이 작은 지파임을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일발적으로 베들레헴은 스불론에 있는 같은 이름의 성읍과 구별하기 위해 유다 베들 레헴이라고 불리워진다. 위치는 예루살렘의 남남서쪽 약 10Km 지점에 있으며 예루살렘 과 헤브론 및 네게브 지방을 연결하는 남북 주요 도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성읍이다.
2. 작으면서도 작지않은 마을 베들레헴 성읍의 크기로나, 유대 족속 중에서의 위치와 세력에서 작은 에브라다 지파가 사는 땅 베들레헴은 작으면서 작지않은 의미있는 지역이다.
왜냐하면 비록 작고 적은 마을 이지만 그곳에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온 백성의 목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성경이 증 언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자신을 목자라 하고(창48:15, 시23:1등), 왕을 목자라 하기도 하였다(삼하5:2). 후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리운 것이다. 또한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선한 목자"라 자칭하셨고(요10:11), "영 혼의 목자"(벧전2:25), "목자장"(벧전5:4)이라 불리워 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참 하나님이시며, 왕이시며, 목자장이신 예수께서 탄 생하신 베들레헴은 작으면서도 작을 수가 없는 마을인 것이다.
3. 작은 곳을 찾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왕이신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출생지도 결정된 곳이 어째서 작은 곳을 베 들레헴이어야 했을까 좀더 나은 곳, 좀 더 큰 도성이면 안되었던 것일까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에덴 바깥, 즉 인간이 사는 이 세상으로 내보내셔서 우리들 인간의 처지를 그대로 경험케 하시려고 하실 때에 즉, 사람이 낙원에서 추방되 어 바라지 않는 고장, 이 세상으로 쫓겨난 것처럼, 그 영광의 세계, 하나님의 자리를 비어놓고(빌2:6) 이 삭막하고, 화평이 없고, 악이 들끓고, 궁핍과 질병과 죽음이 가득 찬 이 세상에 사람으로 독생 성자 예수님을 보내려고 하실 때에 철저하게 당신의 뜻 을 이루시고자 커지려고만 하는 세상 중에서 작은 마을을 택하시고 높아지려고만 하는 인간들 중에서 연약한 족속의 땅을 택하시 것이리라. 우리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을 당신의 출생지로 정하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인생들을 오늘도 긍휼히 여기시고 선택해 주시며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4. 떡집에 오신 생명의 떡 다윗의 옛 고향이기도 한 베들레헴이란 지명에 담겨진 뜻은 "떡의 집"이다. 또한, 떡의 집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서 "생명의 떡" (요6:35)이라고 하셨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떡의 집에 오신 생명의 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떡은 여러가지 용도로 쓰이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떡은 손님들이 사용하는 선물로서 언급되고 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맞으러 나오며(창14:18), 유숙할 곳이 없어서 성읍 거리에 앉아있 던 레위 사람은 그를 청하는 한 베냐민 노인에게 자신들을 유숙시킬 집 주인의 종들에 게도 줄 떡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삿19:19). 이런 점에서 떡집인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생명의 떡이시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가리켜서 `참 떡'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만나'에 대해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리신 떡'이라고 말하자 예수는 그 자신이 바로 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 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신 `참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제자들이 이 떡을 항 상 우리에게 주옵소서라고 요청하자(요6:31-34) 예수께서는 다시 자신이 `생명의 떡' 이며 그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히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다(요6:3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요6:48-52). 이런 점에서 볼 때에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시며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사랑과 희생 그 자체이다.
성탄절의 시작
성탄절 축제가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 기독교의 성립 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 탄절 축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 승 천하신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육신에 대 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주님의 인성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도 성육신의 심오한 의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별히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불가 사의한 사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교회는 성탄절을 기쁨과 경이로써 축하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의 최초는 4세기 초기의 이집트 파피 루스에 남은 기록이다. 이 파피루스에는 수많은 손자국들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이 미 그 파피루스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파피루스는 4세기 초 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까지 축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을까 2세기에 있었던 이단 분파인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 추종자들 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날(1월 6일 또는 10일)을 축제일로 지켰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성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또한 1월 5-6일 밤 엔 나일강 물이 놀라운 기적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날을 에피파니(Epiphany) 또는 `현현'이라고 불렀다. 한편 정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세례 받으심과 탄생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역시 1월 6 일을 축제일로 선택했다. 이 에피파니 축제는 오랫동안 팔레스틴에서 장엄하게 행해 졌다. 성탄절이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왜 바뀌게 되었나 가장 유력한 가설은 AD 325년에서 354년 사이에 로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AD 336년에는 그리스도의 성탄일이 12월 25일로 증명되고 모두가 그것을 신봉하도록 공포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12월 25일은 정복되지 않는 태 양신을 경배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빛의 축제가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성 암부로스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라고 말했다. 한동안은 태양의 축제를 그리스도의 성탄절에 통합한 것이 많은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많은 반대도 있었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확정지은 것은 크리소스톰에 의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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