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 (마2:1-6)
본문
어느 나이많은 유대인이 랍비에게 지혜의 말씀을 베풀어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랍비가 '당신은 평생동안 무엇을 하였는가'라고 묻자, 그가 '저는 탈무드를 세 번이나 두루두루 섭렵하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랍비가 다시 '그러면 탈무드가 당신을 얼마나 섭렵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진리에 우리가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열심을 앞장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나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시고, 나를 위해 이미 어떤 일들을 이루셨는가를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열심을 찾을수 있습니다.
1.예수님의 이름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1절의 '예수'라는 이름에 하나님의 열심이 들어 있습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1장21절에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나타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만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기에, 예수 밖에서는 다른 어떤것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죄의 비밀을 예수님의 이름안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자만이 예수안에 있는 이 사죄의 은총을 체험하고 누릴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천사를 통해 주신 이름이고, 태어나기 전에 주신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을 발견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 사함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둘째는, 1:23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많고 연약한 우리 인간과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상한 심령을 고쳐주시고 우리 눈물을 씻어 주시며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시는 분으로 '성육신'의 원리입니다.
셋째는, 4절에 '그리스도'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곧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구원자'를 말합니다.
넷째는, 2절에는 '유대인의 왕'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이방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었고,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이름은 내용상 같은 이름입니다. 이 왕을 섬길 때 우리가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6절에 '한 다스리는 자'와 '목자'입니다. 아픈자에게는 치료의 하나님으로, 낙심한 자에게는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마음의 질서가 깨져 방황하는 인생에게는 왕되신 주님으로, 죄 용서가 필요한 자에게는 예수로, 구원을 갈망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로 만나 주십니다. 이처럼 주님의 이름속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열심과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2.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 얽힌 하나님의 열심히 있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라고 했는데, 그럼 왜 하필 베들레헴이며, 그것도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까 왜 예루살렘은 안됩니까 그 이유는 5절에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년전에 미가 선지자를 통해 구원자가 어디에 태어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미가5:2' 그리고 누가복음2:4에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고향)'이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셨고, 다윗의 왕권을 가지시고 다윗의 왕국을 대표하는 것처럼 성경은 예수님을 '다스리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왕가(王家)'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베들레헴이라는 단어자체의 의미도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인데, 주님께서 요한복음6:47-51에서 직접 해석해 주시기를 '예수님 자신이 먹으면 영생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체험한 기적가운데 만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순간의 배고픔은 해결할수 있지만 다시 배고프고 영생할수 없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인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고 영생할수 있습니다.'요한복음6:53이하'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땅히 베들레헴에 나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음식을 먹기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합니다. 그러나 유신의 만족은 줄지 모르나 영혼에는 만족함을 결코 줄 수 없습니다.
3.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한 약속성취에 대한 열심입니다. 5절에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즉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15절에도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18절에도 "이루어 졌느니라", 23절에도 "이루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에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시는데 열심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는데 갖추어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1.여인의 후손에서 태어나야 합니다.'창세기3:15' 사람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2.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합니다.3.12지파중 유다지파이어야 합니다.
4.다윗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의 모든 조건을 갖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메시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책임을 지십니다. 사람들은 의도와는 달리 능력이 되지 않아 공수표를 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어떤 경우에라도 공수표가 없고 말씀하신대로 다 이루십니다. 우리가 1998년 성탄을 맞이하며 각자가 개인적으로 받은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목자들은 별을 통해서 그리고 꿈을 통해 인도하셨는데,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발견하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 지기위해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 2절과 11절의 동방박사들 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아기예수께 경배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나실지 예언된 구약성경을 말하며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 지식으로 예수께 경배하지는 못했습니다.'4-6절' 크리스마스때 여러 가지 행사에 이끌려 다니느라 바쁘고 마음을 빼앗겨서 예수께 경배하는데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황금이 있고, 몰약이 있고, 유향이 있을지라도 경배가 없으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마음에 분명히 새기고, 삶의 질서를 잡고 동방의 박사들처럼 개인적으로 주의 말씀을 받는 성탄이 되게 하소서. 이번 성탄을 계기로 우리의 남은 삶이 주님을 경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1.예수님의 이름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열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1절의 '예수'라는 이름에 하나님의 열심이 들어 있습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1장21절에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나타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만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기에, 예수 밖에서는 다른 어떤것으로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죄의 비밀을 예수님의 이름안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자만이 예수안에 있는 이 사죄의 은총을 체험하고 누릴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천사를 통해 주신 이름이고, 태어나기 전에 주신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열심을 발견하고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 사함의 유일한 길이십니다.
둘째는, 1:23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많고 연약한 우리 인간과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상한 심령을 고쳐주시고 우리 눈물을 씻어 주시며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시는 분으로 '성육신'의 원리입니다.
셋째는, 4절에 '그리스도'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곧 '기름 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으로 '구원자'를 말합니다.
넷째는, 2절에는 '유대인의 왕'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이방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었고,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이름은 내용상 같은 이름입니다. 이 왕을 섬길 때 우리가 보호를 받고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다섯째는, 6절에 '한 다스리는 자'와 '목자'입니다. 아픈자에게는 치료의 하나님으로, 낙심한 자에게는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마음의 질서가 깨져 방황하는 인생에게는 왕되신 주님으로, 죄 용서가 필요한 자에게는 예수로, 구원을 갈망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로 만나 주십니다. 이처럼 주님의 이름속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열심과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2.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 얽힌 하나님의 열심히 있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라고 했는데, 그럼 왜 하필 베들레헴이며, 그것도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까 왜 예루살렘은 안됩니까 그 이유는 5절에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년전에 미가 선지자를 통해 구원자가 어디에 태어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미가5:2' 그리고 누가복음2:4에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고향)'이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셨고, 다윗의 왕권을 가지시고 다윗의 왕국을 대표하는 것처럼 성경은 예수님을 '다스리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족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다윗의 자손'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왕가(王家)'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베들레헴이라는 단어자체의 의미도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인데, 주님께서 요한복음6:47-51에서 직접 해석해 주시기를 '예수님 자신이 먹으면 영생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체험한 기적가운데 만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순간의 배고픔은 해결할수 있지만 다시 배고프고 영생할수 없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인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고 영생할수 있습니다.'요한복음6:53이하'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땅히 베들레헴에 나셔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음식을 먹기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합니다. 그러나 유신의 만족은 줄지 모르나 영혼에는 만족함을 결코 줄 수 없습니다.
3.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허락한 약속성취에 대한 열심입니다. 5절에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즉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15절에도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18절에도 "이루어 졌느니라", 23절에도 "이루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에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시는데 열심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는데 갖추어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1.여인의 후손에서 태어나야 합니다.'창세기3:15' 사람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2.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합니다.3.12지파중 유다지파이어야 합니다.
4.다윗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의 모든 조건을 갖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메시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책임을 지십니다. 사람들은 의도와는 달리 능력이 되지 않아 공수표를 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어떤 경우에라도 공수표가 없고 말씀하신대로 다 이루십니다. 우리가 1998년 성탄을 맞이하며 각자가 개인적으로 받은 약속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목자들은 별을 통해서 그리고 꿈을 통해 인도하셨는데,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발견하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 지기위해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 2절과 11절의 동방박사들 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아기예수께 경배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나실지 예언된 구약성경을 말하며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그 지식으로 예수께 경배하지는 못했습니다.'4-6절' 크리스마스때 여러 가지 행사에 이끌려 다니느라 바쁘고 마음을 빼앗겨서 예수께 경배하는데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황금이 있고, 몰약이 있고, 유향이 있을지라도 경배가 없으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마음에 분명히 새기고, 삶의 질서를 잡고 동방의 박사들처럼 개인적으로 주의 말씀을 받는 성탄이 되게 하소서. 이번 성탄을 계기로 우리의 남은 삶이 주님을 경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