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승리 (요21:15-18)
본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승리입니다. 부활을 통해 승리하신 주님께서는 자신만 승리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같은 승리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앞으로 삼 주일 동안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승리해 가는 성경의 인물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실패와 고통을 딛고 승리하는 인생살이로 영광스럽게 매듭지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 말씀은 베드로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마지막 생을 통해서 베드로가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 재기할 수 있었고, 인생 대승리의 드라마를 이룰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착실히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였습니다. 열성 많은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을 가지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자가 있다”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말하기를 “(마26:33)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서는 “내가 주님과 죽을지언정 내가 주를 결코 배신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이렇게 호언 장담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였지만 막상 예수님이 체포되어 제사장 뜰로 끌려가실 때 베드로는 꽁무니를 빼고 말았습니다. 제사장 뜰에서 한 여자 종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예수 따라 다니던 사람 아니냐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라고 물을 때 베드로는 얼른 엉겹결에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라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약합니다. 스스로 선 줄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우쭐대다가는 언제 어떻게 실수할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제자로서 완전히 실패한 다음에 제자 되기 이전의 직업인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3년 반 지난 날을 생각해 보면서 정말 허물을 되씹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자기는 원래의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왔으니 지난 3년 반이 허송세월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배신했던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도 있었겠지만 한편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일들에 대한 어떤 실망감과 자포자기가 앞섰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좌절감과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을 나누신 이야기가 오늘 성경 말씀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또다시 찾아오셔서 베드로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하였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배신하지 아니하고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약해질 때가 있고, 몸도 약해질 때가 있고, 사업이나 직장생활, 가정으로나 여러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실패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셔서 자신의 사랑과 능력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 오셔서 베드로를 만나시고 베드로의 고기잡이를 도와 주신 후에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에 걸쳐서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이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치라는 말씀은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도권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다시 나의 제자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믿는 자들을 돌보아 주라”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한때 실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을 만난 다음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베드로는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서 사도권을 회복하고 초대교회의 초석이 된 대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승리를 바라보면서 베드로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졌기에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승리할 수 있었는가 이 점을 같이 생각하면서 우리들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베드로의 승리는 회개의 승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한 후에 회개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마음에 굉장한 가책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깊게 뉘우치면서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고 통회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세 번 고백한 그 이면에는 지난 날 잘못에 대한 회개의 심령과 함께 이제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는 단오한 결심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용서해 주시기를 즐기시고 회개하고 돌아온 자에게는 과거에 실패했던 일보다도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한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외치기를 “(사55:7) 악인은 그 길을,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준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어떤 실패에도 자기 자신을 깊이 뉘우치는 회개의 심정을 가지면 그것이 다시 재기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때로는 칭찬하실 때도 있었고 ㄸ로는 꾸중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을 든든히 가질 때는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믿음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는 항상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 믿음의 첫걸음은 먼저 회개의 심령에서 나옵니다.
누가복음 5장에 있는 말씀을 자세히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처음 부름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갈릴리에 가셔서 첫 제자를 뽑을 때에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에 주님은 “베드로야,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를 자기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깨닫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할 때에 그 결과 엄청난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첫 번 설교문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주간의 생활을 마친 다음 교회에 와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이 시간 다른 무엇보다 꼭 마음속에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잘못했던 일, 실수했던 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일, 사소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남을 헐뜯었던 일, 이런 저런 잘못에 대해 솔직히 주님 앞에 고백하고 자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대신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의 능력을 입고 한 주간 동안을 선한 싸움에 승리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회개는 새로운 힘을 얻게 해 줍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로서 빅토르 위고가 있습니다. 그는 많은 작품을 쓰고 유명해지자 돈도 많이 벌게 되었고 또 재산을 모으다보니 생활도 방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여자를 좋아하고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레오폴디느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빌토르 위고는 이 딸아이를 무척 애지중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딸아이가 하루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가출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딸아이의 시신이 세느강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딸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딸아이를 장사지낸 뒤에 집에 돌아와서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서 방을 정리하다가 보니 책상 위에 편지 하나가 있었는데 딸이 아버지께 보낸 편지였습니다. 겉봉에는 “아버님께 드립니다.”라는 글구가 씌여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 보았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방랑의 생활을 청산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세요. 집에는 하나님과 어머니와 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오세요. 아버님에게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제가 집을 떠납니다. 이 딸아이는 아버지의 회개를 바라 보면서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죽음으로 자극을 주려고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딸아이의 죽음, 그리고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나긴 그 유서를 바라보면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의 자서전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려세우기 위해 딸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내게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개시키시 위해서, 인생의 방향을 되돌리기 위해서, 잘못된 방향을 돌려세우기 위해서 아픔이라는 충격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 충격을 고통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 충격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려세울 수 있는 회개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회를 붙들 수 있고, 인생의 본질을 다시 승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내가 내 인생살이를 돌려세웠을 때 더 큰 승리가 있었고,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자기의 인생관을 재정립하고 자기의 타락된 생활을 다 정리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어딘가 좀 봉사하고 살아야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파리 시 정부의 사회복지국의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취직을 한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자를 찾아가서 상담하고 도와 주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뭇 사람의 존경을 다시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에 프랑스 정부의 교육부장관까지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입니다. 베드로의 승리는, 베드로가 제자로서 실패했지만 다시 제자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깊이 회개하는 데 있었습니다.
2. 베드로의 승리는 믿음의 승리입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주님 앞에 세 번이나 고백한 그 이면에는 주님께로 향한 전적인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신 장면을 보면, 베드로의 믿음이 왕성할 때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니까 주님께서 베드로를 아낌없이 칭찬해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마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도 걷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하시니까 주님을 바라보고 갈릴리 바다 위를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자 바람을 바라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겁을 집어먹고 그냥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건져 일으키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망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왕성할 때는 칭찬을 받았지만 베드로의 믿음이 흔들릴 때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재산, 직위, 지식을 보시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믿음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두 가지 측면에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사는 것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살이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있습니까 다른 그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무엇이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아니면 직위가 있습니까 명예가 있습니까 가족 중의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대신에 다른 그 무엇이 있으면 그것은 바로 우상이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아주 묘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면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선의의 하나님 이런 표현을 쓰는데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좀 나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 그 외에도 여러 곳에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있을 때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을 채찍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우리 마음 중심에, 우리 삶의 중심에,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하니님이 계셔야 하는데 하나님 대신 그 무엇 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내 자신의 우상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을 철저하게 파괴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것을 통해서 내게 실망을 주고 아픔을 주고 고통을 주십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내 생을 불태워가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이란 하나님께 내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의 어느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는데 마침 3층에 있는 한 칸의 아파트에 어른들은 아무도 없는데 다섯 살짜리 아이하나만 있다가 불이 나서 불을 피하지 못햇다고 합니다. 소방대원도 그 누구도 아파트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연기가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아이를 구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합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이불을 가져다가 들고 창문을 향해서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내려, 뛰어내려,” 했습니다. 아이는 어두컴컴한 그 아파트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았지만 겁에 질려서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급히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뛰어왔습니다. 이불을 같이 잡고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아버지다”하면서 “뛰어내려.” 하니까 그 아이는 그때서야 주저없이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살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기를 하나님께 던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신없이, 주저함 없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냥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전제 조건 하나를 붙이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자기 것으로 삼으신 다음에 야곱의 전 삶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니의 것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열러 주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이런 믿음이 베드로에게 있었습니다.
3. 베드로의 승리는 희생의 승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본문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요한은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늙어서 순교당할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팔을 벌리리라”는 이 말씀은 초대교회에서 흔히 쓰던 용어인데 십자가에 순교하는 장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형장에 끌려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원형극장이 있는데 원형극장 한 쪽 스텐드에 큰 십자가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히 전설에 의하면 이 십자가는 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붙잡혀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던 그 십자가라고 합니다. 참으로 비참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이란 문제를 생각할 때 그저 나이가 차서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의미없는 죽음도 있고, 졸렬하고 비겁한 죽음도 있고, 때로는 비참한 죽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영광스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기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죽음도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생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이에 영광받을 때가 있다. 그 영광이라는 것은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죽음이다.” 바로 이런 죽음을 통해서 열매를 맺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그 희생이 있을 때에 영광스러운 죽음, 마지막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랬습니다. 네로 황제에게 끌려와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그 죽음이 네로의 입장에서 보면 비참한 죽음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베드로야말로 로마를 복음화시키고, 그리고 나아가서 유럽을 복음화시킬 수 있고 세계를 복음화시킬 수 있는 가장 첫 기초를 놓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첫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죽음입니까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이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승리입니다. 인생의 승리는 마지막을 보아야 합니다.
찬송 중에 영광송이 있습니다. 곡은 후대에 붙여졌지만 가사는 초대교회 때 사도들이 순교하기 위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부르던 찬송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께 찬송과 영광 돌려보내세 대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 무궁토록 성삼위께 영광 영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의 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이 ‘영광 영광 영과, 성삼위께 영광을 올리세“라고 부르는 그 찬송의 이면에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패배자의 발걸음이 아니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져 가는 승리의 개선가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승리입니다. 복음 전파 뿐만 아니라 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승리자는 결국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칼라일은 말하기를 “사회는 내가 영광을 누릴 자리가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질 자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죽음과 죄악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승리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런 승리를 가졌습니다. 비록 실패한 베드로였지만 진지힌 회개를 통해서, 전적인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대사도가 된 베드로처럼 이런 승리의 은혜가 오늘 우리들의 삶에 충만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좌절감과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을 나누신 이야기가 오늘 성경 말씀 첫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또다시 찾아오셔서 베드로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하였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배신하지 아니하고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약해질 때가 있고, 몸도 약해질 때가 있고, 사업이나 직장생활, 가정으로나 여러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실패한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셔서 자신의 사랑과 능력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 오셔서 베드로를 만나시고 베드로의 고기잡이를 도와 주신 후에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을 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에 걸쳐서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이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치라는 말씀은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도권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다시 나의 제자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믿는 자들을 돌보아 주라”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한때 실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을 만난 다음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베드로는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서 사도권을 회복하고 초대교회의 초석이 된 대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승리를 바라보면서 베드로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졌기에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승리할 수 있었는가 이 점을 같이 생각하면서 우리들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베드로의 승리는 회개의 승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한 후에 회개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 마음에 굉장한 가책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깊게 뉘우치면서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고 통회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세 번 고백한 그 이면에는 지난 날 잘못에 대한 회개의 심령과 함께 이제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는 단오한 결심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용서해 주시기를 즐기시고 회개하고 돌아온 자에게는 과거에 실패했던 일보다도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한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외치기를 “(사55:7) 악인은 그 길을,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가르쳐 준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는 어떤 실패에도 자기 자신을 깊이 뉘우치는 회개의 심정을 가지면 그것이 다시 재기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때로는 칭찬하실 때도 있었고 ㄸ로는 꾸중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을 든든히 가질 때는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믿음이 약해지고 흔들릴 때는 항상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 믿음의 첫걸음은 먼저 회개의 심령에서 나옵니다.
누가복음 5장에 있는 말씀을 자세히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처음 부름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갈릴리에 가셔서 첫 제자를 뽑을 때에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에 주님은 “베드로야,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를 자기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깨닫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회개를 할 때에 그 결과 엄청난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첫 번 설교문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주간의 생활을 마친 다음 교회에 와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이 시간 다른 무엇보다 꼭 마음속에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잘못했던 일, 실수했던 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일, 사소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남을 헐뜯었던 일, 이런 저런 잘못에 대해 솔직히 주님 앞에 고백하고 자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대신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성령님의 능력을 입고 한 주간 동안을 선한 싸움에 승리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회개는 새로운 힘을 얻게 해 줍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로서 빅토르 위고가 있습니다. 그는 많은 작품을 쓰고 유명해지자 돈도 많이 벌게 되었고 또 재산을 모으다보니 생활도 방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여자를 좋아하고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에게는 사랑하는 외동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레오폴디느라는 외동딸이 있었는데 빌토르 위고는 이 딸아이를 무척 애지중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딸아이가 하루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가출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 딸아이의 시신이 세느강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는 딸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딸아이를 장사지낸 뒤에 집에 돌아와서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서 방을 정리하다가 보니 책상 위에 편지 하나가 있었는데 딸이 아버지께 보낸 편지였습니다. 겉봉에는 “아버님께 드립니다.”라는 글구가 씌여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 보았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방랑의 생활을 청산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세요. 집에는 하나님과 어머니와 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 오세요. 아버님에게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제가 집을 떠납니다. 이 딸아이는 아버지의 회개를 바라 보면서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죽음으로 자극을 주려고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딸아이의 죽음, 그리고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나긴 그 유서를 바라보면서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의 자서전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려세우기 위해 딸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내게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개시키시 위해서, 인생의 방향을 되돌리기 위해서, 잘못된 방향을 돌려세우기 위해서 아픔이라는 충격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 충격을 고통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 충격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려세울 수 있는 회개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회를 붙들 수 있고, 인생의 본질을 다시 승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내가 내 인생살이를 돌려세웠을 때 더 큰 승리가 있었고,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자기의 인생관을 재정립하고 자기의 타락된 생활을 다 정리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어딘가 좀 봉사하고 살아야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파리 시 정부의 사회복지국의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취직을 한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자를 찾아가서 상담하고 도와 주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뭇 사람의 존경을 다시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에 프랑스 정부의 교육부장관까지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입니다. 베드로의 승리는, 베드로가 제자로서 실패했지만 다시 제자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깊이 회개하는 데 있었습니다.
2. 베드로의 승리는 믿음의 승리입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주님 앞에 세 번이나 고백한 그 이면에는 주님께로 향한 전적인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신 장면을 보면, 베드로의 믿음이 왕성할 때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니까 주님께서 베드로를 아낌없이 칭찬해 주면서 말씀하시기를 “(마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도 걷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하시니까 주님을 바라보고 갈릴리 바다 위를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자 바람을 바라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겁을 집어먹고 그냥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건져 일으키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망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왕성할 때는 칭찬을 받았지만 베드로의 믿음이 흔들릴 때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재산, 직위, 지식을 보시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믿음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두 가지 측면에서 요약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이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사는 것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살이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있습니까 다른 그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가장 중요한 자리에 무엇이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아니면 직위가 있습니까 명예가 있습니까 가족 중의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대신에 다른 그 무엇이 있으면 그것은 바로 우상이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아주 묘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면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선의의 하나님 이런 표현을 쓰는데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좀 나쁜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 그 외에도 여러 곳에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하나님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있을 때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을 채찍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우리 마음 중심에, 우리 삶의 중심에,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하니님이 계셔야 하는데 하나님 대신 그 무엇 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내 자신의 우상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을 철저하게 파괴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것을 통해서 내게 실망을 주고 아픔을 주고 고통을 주십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내 생을 불태워가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이란 하나님께 내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의 어느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는데 마침 3층에 있는 한 칸의 아파트에 어른들은 아무도 없는데 다섯 살짜리 아이하나만 있다가 불이 나서 불을 피하지 못햇다고 합니다. 소방대원도 그 누구도 아파트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연기가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아이를 구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합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이불을 가져다가 들고 창문을 향해서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내려, 뛰어내려,” 했습니다. 아이는 어두컴컴한 그 아파트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았지만 겁에 질려서 뛰어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급히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뛰어왔습니다. 이불을 같이 잡고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아버지다”하면서 “뛰어내려.” 하니까 그 아이는 그때서야 주저없이 뛰어내렸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살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기를 하나님께 던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신없이, 주저함 없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43: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냥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전제 조건 하나를 붙이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자기 것으로 삼으신 다음에 야곱의 전 삶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니의 것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앞길을 열러 주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이런 믿음이 베드로에게 있었습니다.
3. 베드로의 승리는 희생의 승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본문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요한은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늙어서 순교당할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팔을 벌리리라”는 이 말씀은 초대교회에서 흔히 쓰던 용어인데 십자가에 순교하는 장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형장에 끌려가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원형극장이 있는데 원형극장 한 쪽 스텐드에 큰 십자가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히 전설에 의하면 이 십자가는 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붙잡혀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던 그 십자가라고 합니다. 참으로 비참한 죽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이란 문제를 생각할 때 그저 나이가 차서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의미없는 죽음도 있고, 졸렬하고 비겁한 죽음도 있고, 때로는 비참한 죽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영광스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기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죽음도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생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이에 영광받을 때가 있다. 그 영광이라는 것은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죽음이다.” 바로 이런 죽음을 통해서 열매를 맺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썩어지는 그 희생이 있을 때에 영광스러운 죽음, 마지막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랬습니다. 네로 황제에게 끌려와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그 죽음이 네로의 입장에서 보면 비참한 죽음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베드로야말로 로마를 복음화시키고, 그리고 나아가서 유럽을 복음화시킬 수 있고 세계를 복음화시킬 수 있는 가장 첫 기초를 놓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첫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죽음입니까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이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승리입니다. 인생의 승리는 마지막을 보아야 합니다.
찬송 중에 영광송이 있습니다. 곡은 후대에 붙여졌지만 가사는 초대교회 때 사도들이 순교하기 위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부르던 찬송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께 찬송과 영광 돌려보내세 대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 무궁토록 성삼위께 영광 영광.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의 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이 ‘영광 영광 영과, 성삼위께 영광을 올리세“라고 부르는 그 찬송의 이면에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패배자의 발걸음이 아니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져 가는 승리의 개선가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의 승리입니다. 복음 전파 뿐만 아니라 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승리자는 결국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칼라일은 말하기를 “사회는 내가 영광을 누릴 자리가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질 자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죽음과 죄악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승리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런 승리를 가졌습니다. 비록 실패한 베드로였지만 진지힌 회개를 통해서, 전적인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대사도가 된 베드로처럼 이런 승리의 은혜가 오늘 우리들의 삶에 충만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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