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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로 가자 (요5:2-9)

본문

지난 주일에도 비가 왔는데 오늘도 비가 오고 어제도 비가 종일 너무 많이 왔습니다. 우리 나라의 비는 유익을 주는 것보다는 피해를 주는 일이 참 많고, 일년에 비로 인하여 수천억, 수조원씩 국가에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8월, 9월은 결실기이기 때문에 비가 적당하게 와야 하는데 많이 오면 농사에 큰 피해가 되는 것이지요. 유대나라는 우리 나라의 비와 다릅니다. 유대나라는 비가 많이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꼭 와야할 때 적당하게 비가 오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태풍까지 일년에 십여회 정도 불어오지 않습니까 유대나라의 비는 간단하게 나누기를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나눕니다. 이른 비는 씨를 뿌리기 전에 비가 와서 농부들이 나가 씨를 뿌립니다. 유대땅을 다녀보면 밭을 일구어 놓고 비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른비가 오면 당장 그 땅에 씨를 뿌려서 푸르르게 되는 것이지요. 늦은 비는 열매를 거두기 전에 한차례 비가 와서 결실기에 열매를 잘 도와 건강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우리 교회의 3월과 9월의 새벽 집회는 우리 교회의 이른 비와 늦은 비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까지 20년 동안 부어주셨던 은혜는 거의 3월과 9월에 주시는 이 큰 은혜로 우리에게 싹이 나게하고, 또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습니다. 만가지 은혜가 이 새벽을 통하여서 왔고, 우리 온 교회가 이만한 힘을,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어떤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회 나오지 않고도 어느 곳에서 기도하나만 해도 대단한 것이고,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까 히스기야는 기도하여 죽을병에서도 나음을 받고 앗수르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여 놀라운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여 제물을 태우기도 하고,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과 싸워 이기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40년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야곱은 기도를 통하여 새 이름을 얻고 축복을 받아 에서와의 갈등과 그 분쟁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귀합니까 또 새벽기도는 더 귀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은 기도이기에 예수님이 새벽에 미명에 늘 기도하셨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을 접촉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뢰고 은혜를 받고, 간구하고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 이 세상에 나아가는 삶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능력의 집입니다. 부유한 하나님의 창고입니다. 우리가 쉴 수 있는 가정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생수가 흐르는 샘물과 같습니다. 베데스다 못과 같고 실로암 못과 같은 곳이, 기드온 시내와 같은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또 나와서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만도 놀라운데 기도하고, 새벽에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얼마동안 온 교회가 받는 이 교회는 가정 가정마다 내 잔이 넘치고, 3월, 9월. 하나님이 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싹이 나기도 하고 어떤 교인은 자라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금년 9월에도 풍성한 은혜를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죄와 질병은 풍성하면 안됩니다. 죄는 풍년이 들면 안됩니다. 죄는 없어야 되고, 죄는 찾을 수 없도록, 죄는 가난할수록 좋습니다. 질병도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가능하면 많은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좋은 곳에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각양 은사에 부족함이 없도록 가득가득 내 그릇을 채우는 ♪기름을 채우세. 내 맘속에 성령의 기름을 채워 믿음의 기름을 채워 주께서 베푸신 그 사랑을 이 세상에 널리 전하리♪ 많이 받아야 나누어 주고, 믿음이 많이 채워져야 그 믿음을 남에게 나누어 주고, 어떤 축복이든지 넘쳐야 우리가 복음의 증인으로서 하나님 주신 은혜를 나누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골에 부유한 집은 그릇이 차고 넘칩니다. 골방이 차고 넘치고 다락이 차고 넘치고, 물두멍에 가면 물이 차고 넘칩니다. 김치독에는 김치가 차고 넘치고, 김치의 종류도 다섯 개, 여섯 개가 되고, 우리 옛날 부잣집이라 하면 김치 종류가 몇가지냐 김치를 그 종류대로 담는 집은 부자입니다. 예를 들면 젓갈로 하는 것도 오징어 젓갈이 있고, 명태로 하는 젓갈, 도미로 담는 젓갈이 따로 있어서 각가지의 맛을 냅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독이 가득가득차서 온 식구가 먹고, 또 연말이 되어도 남아서 묵은 곡식들이 묵은 간장, 된장, 고추장들이 항아리마다 가득차 있는 집은 부유한 집이예요. 복된 집입니다. 가난한 집은 언제나 바닥입니다. 없습니다. 쌀독에 쌀이 차고, 그릇에 먹을 것이 차고, 하나님 주시는 축복이 내 집안에 가득 채워지는 것, 하나님의 큰 선물이요,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레 26:10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이 오면 묵은 곡식을 치운다.' 이것은 아주 복된 축복을 말합니다. 가난한 집은 묵은 것이 없습니다. 감자를 캘 때 부자집은 적절한 때에 캐서 찌면 감자가 솜같이 하얗게 되는데, 설탕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난한 집은 새알만 하면 벌써 캐서 먹어 버려요. 가난하니까 익지도 않은 것을 캐어 먹습니다. 다른 사람이 감자를 캘때는 캘감자가 없어요. 벼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르스름 하면 가서 베어다가 손으로 훑어서 먹으니까 언제나 궁핍하여 익은 것을 먹지를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축복을 받아 돈도 묵은 돈이 있어서 지난달 벌고, 작년에 번 것으로 먹어야지 어떤집은 먼저 돈을 타내서 가불을 해서 쓰고, 월급때가 되면 탈 돈이 없고, 이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창고가 넘치고, 이스라엘 백성의 창고가 넘치듯이 여러분의 가정의 삶에 축복이 넘치셔서 묵은 곡식을 먹는 복된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믿음도 묵어야 됩니다. 믿음이 묵은 믿음은 백년을 지나도 궁핍함이 없는데 가난한 믿음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믿음에는 큰 믿음도 있고, 산 믿음도 있고, 부유한 믿음, 능력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부유한 믿음은 백년이 가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데 한 주일도 믿음의 생활을 못하고, 믿음이 늘 흔들리는 연약한 믿음, 가난한 믿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를 받기 위하여 믿음도 크고 그릇도 커서 내 넓은 그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가득 채우시시 바랍니다. 이번 9월 새벽 집회위에 아직까지 받아야 할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미국은 부유할 뿐 아니라 창고가 넘쳐 묵은 곡식이 쌓여 있는 나라입니다. 제가 기사를 보고 놀란 것은 미국 국민이 10년 먹을 양식을 과학적인 처리를 하여 바다속에 넣어서 아무리 흉년이 오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몇 개월만 먹으면 쌀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도 기름이 한도 없이 솟아나지만 그 기름을 쓰지 않고 남의 나라의 것을 사다가 쓰고, 자기 나라의 기름을 저축하는 거예요. 계속 계속 저축하는 거예요. 어느 지역은 기름만 저장하는 곳이 있어요. 미국 국민이 1년을 쓸 수 있는 기름을 계속 저축하는 거예요. 묵은 기름을 쓰고, 묵은 쌀을 먹는 나라가 복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기름 보유가 며칠 쓸 것 밖에 안됩니다.
우리 경제는 올해도 4월 위기설이 5월에 6월에 8월에 위기가 온다고 항상 말을 하니 불안하기 그지없고, 우리 경제도 10년, 100년을 가도 위기가 없는 그런 안정된 나라가 되어야지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것입니까 경제에도 부유한 묵은 경제가 되고, 묵은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닭도 묵은 닭을 먹어야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요사이 삼계탕을 먹으면 흔들어 버리면 고기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어디 먹을게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창고가 넘치는 묵은 축복 넘치는 축복,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몇 년 믿고, 잘 믿었다고 큰 소리 치지 마시고, 이번 새벽 집회를 통하여 더 은혜 위에 살이 쪄서 건강한 은혜가 내 영혼에 가득차 넘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런 설교가 참 하기 어려운 말이지만은 제 마음에 꼭 부탁드리고 싶은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자녀를 기를 때 가능하면 많이 낳으라는 거예요. 성경에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그랬지, 자식을 낳지 말라는 것이 어디 있어요 자식이 많은 것은 축복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으면 힘들다. 교육도 어렵다. 기르기도 어렵다. 라는 생각을 하는데 알고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녀가 많으면 교육도 쉽고 기르기도 쉽습니다. 하나를 기를 때에는 온 식구가 다 달려들어야 됩니다. 그래도 불만이예요. 항상 불안해요. 건강이 조금 나빠도 걱정하고, 일생동안 불안해요. 하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어디 나가도 들어오기까지 잠을 못 자요. 아예 어디 보내지 않고 데리고 사는 분이 있어요. 불안하니까요. 학교 보내는 것도 불안하다라는 거예요. 집에 오기까지 불안한 거예요. 소리 하나만 들려도 창문열고 내다보는 거예요. 그러나 셋, 넷 길러봐요. 그런 불안함이 없어요. 한 놈이 없으면 아직 셋 남았으니까 전혀
그런데 신경 안씁니다. 기르는데도 아주 편합니다. 셋, 넷, 다섯, 여섯 기르면 아이들이 스스로 커요.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다 기를 수 없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다 공부시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여 다 가르치지 않아도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노력합니다. 하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 하나는 별 문제가 있겠느냐 하여 하라고 해도 안해요. 반드시 부모님이 어떤 방법으로도 뒷바라지 할 줄 알고, 공부도 잘 안합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메마릅니다. 아이는 아이들과 함께 커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이는 대화의 상대가 없습니다. 본 받을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인격 형성에 기초를 잘 닦아야 하는데 어른들과만 만나니까 전혀 배울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와 있으면 참 즐겁고 좋아합니다. 20세기 문명을 장난감 문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뿐이니까 놀 것이 없어서 자꾸 장난감만 주고, 장난감하고 놀게 하니까 아이들의 정서는 점점 메마르고, 강팍해 지는 거예요. 고독해 지는 거예요. 허전한 거예요. 그러나 여러명을 길러봐요. 저희들까지 자고, 엉켜서 놀고, 먹는것도 밥맛이 있고요, 조금만 늦게 먹으면 다 없어지니까 식욕이 좋아집니다. 소화 잘 됩니다. 잘 알아야 됩니다. 또 하나를 기르면 그 자식은 효자가 안됩니다. 나 하나 기르는 것 무슨 고생을 하셨는가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명을 기른 부모들은 기른 것은 하나 없는데 아이들은 우리 부모님이 여럿을 기르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고 엉엉 울고 효자 노릇 다 합니다. 명절이 되면 다 찾아와서 모두 바치고. 하나인 자식은 부모가 찾아갑니다. 많이 기른 자식들은 모두가 찾아와서 우리 부모 같은 분은 없다고 생각하며 효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이 지금 건강하시면 자녀를 많이 낳으시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은혜를 주셔서 우리 막내가 결혼하고 1년만에 첫 아들을 낳고, 두달만에 지금둘째를 가졌습니다. 제가 며느리에게 어지간하면 하나를 더 낳아라. one more,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축복이다. 우리 며느리는 건강해요. 입덧도 없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아이가 또 그렇게 순해요. 얼마나 순한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도 울지를 않아요. 아이가 너무나 건강하고 잘 크는 거예요. 제가 며느리에게 너는 다섯을 낳아도 괜찮겠다. 하나님이 건강 주시고, 이렇게 귀한 아들 주셨는데 계속 낳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기르는것도 쉬워요. 가정에 웃음이 그치지 않아요. 하나님 축복 받아 기르는데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지 몰라요. 무엇이든지 풍성해야 합니다. 교회는 부흥해야 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교회가 쓸쓸하고, 몇 사람 대나무 서듯이 있으면 좋은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부흥해야 됩니다. 가득차야 됩니다. 넘쳐야 됩니다. 그래야 은혜 위에 은혜가 되는 줄 믿습니다. 제가 주일학교 때 교회에 가서 배운 것이 있는데 두 손으로 하는 것인데 '어린 학생 둘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교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가득차서 와글와글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렸습니다. 둘이 열심히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었대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문을 열었을 떄에 교인이 가득가득 차고, 창고의 문을 열 때 창고가 가득가득 차고, 집에 문을 열 때 집에 가득가득 차고, 내 영혼에 각양 좋은 은혜가 내 심령 안에 가득가득 차서 넘칠 때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풍성한 은혜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는 잘못된 것 많고, 가난은 풍성하고, 죄악이 풍성하고, 질병이 풍성하고, 있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도, 버어마, 네팔,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우상숭배 하는 나라를 가보십시오. 사가지고 올것도, 물건 하나도 질병 옮길까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사가지고 올것도 없어요. 볼 것도 없어요. 먹는것도 겁나요. 하나님이 없는 나라, 위로부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없는 나라는 불쌍하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천년 동안 가난하고 궁핍하고, 저주받은 이 나라, 아무것도 쓸모없는 이 나라에 선교사들이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115년전에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실로 놀라운 세계적인 축복과 은혜를 받은 줄 믿습니다. 이 풍성한 은혜를 이번 새벽집회를 통하여 더 갑절로 이어지는 귀한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 가로 찾아 가셨습니다. 이 못은 예루살렘 양문 곁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문 가운데 양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행 3:2에는 미문이라는 문이 있잖아요 미문은 아름다울 美자 여자들이 드나드는 문이예요. 여자들이 모이는 곳이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다니지 않았어요. 오늘 양문이라고 하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위해 수많은 양들을 바쳐야 하니까 양을 몰고 드나드는 문 그래서 양문이라 했고, 이 문 곁에는 베데스다 못이 있었다라는 거예요. 이 베데스다 못은 간헐천, 온천수가 가끔 땅의 기압에 의해서 치솟아 나오는 그런 온천수가 흐르는 곳이었어요. 지금도 우리가 온천을 많이 가는데 옛날에도 온천이라고 하는 곳은 각종 피부병에도 좋고, 위장병에도 좋고, 그리고 뜨거울 때 그 물이 올라올 때 들어가면 엄청난 효과가 있겠지요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민간요법으로, 자연요법으로 치료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많았어요. 유대나라에 각색 병을 가진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못가에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옐로스톤에 가서 온천수가 올라오는 것을 한번 본적이 있는데 높이가 30m이상 치솟는데요. 물줄기가 마치 대포를 쏘듯이 치솟아 올라가는데 그 광경이 엄청났어요. 이 베데스다 못은 그 정도는 아니어도 물이 솟아올라간 것 같습니다. 그때 고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베데스다 못가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중에 가장 오래된 38년된 병자 앞에 가셔서 그의 병이 이미 오래된 병임을 아시고, 환자를 향하여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 내가 낫고자 합니다. 물이 동할 때마다 내가 뛰어들려고 했지만 환자가 있는 거기에도 생존경쟁은 치열해서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건강한 사람이 먼저 뛰어들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뛰어들고, 나는 다리를 못 쓰니까 기어가다가 기회를 놓치고, 또 놓쳐서 지금 38년째 여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랜 병이 인간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요. 625사변에 부상당하신 분이 아직도 그런 상태로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원호병원에 한 번 가 보십시오. 제일 어려움은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등이 썩는 거예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썩어 가는 거예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그런 분들에게는 등을 받쳐주는 기구가 제일 좋은 선물이예요. 건강하게 다니고, 음식먹고, 활동하고, 교회 나오는 것, 삶의 만족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늘 감사하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앞에 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 낫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네 자리를 들고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던 분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주님으로부터 치료함을 받은 이 놀라운 사건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가로 찾아가셨습니다. 이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긍휼과 사랑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와 같은 이 세상에 오셔서 38년된 병자와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걸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절망의 땅, 어두운 땅, 고통과 질병 많은 이 세상에 나를 구원하시려고 베데스다에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를 위해 오셨느냐.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이 슬픔 많은 세상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예수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고,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고, 세상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며칠전, 여러분들도 TV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캄보디아에 우리나라 의사가 무료 진료를 하며 봉사를 하고 있는데 캄보디아의 장례법은 사람이 죽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춤을 추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자식이 춤을 추고, 부인이 죽어도 춤을 추어요. 그것을 본 의사 선생님이 참 이상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왜 이렇게 춤을 출까 어떻게 이런 문화가 있나 하고 물어보았어요. 알고보니 이 죄악 많고 괴로움 많은 세상을 떠나갔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거예요. 캄보디아는 말라리아도 많대요. 병이 많아요. 비위생적인 물을 먹으니까 각가지 병에 시달리고, 모기도 많고, 특히 지뢰를 많이 묻어서 농부들이 농사를 하다가, 나무를 캐다가, 다리가 잘리는 일들이 그렇게 많더라구요. 다리도 없지 사는 것이 어렵지, 먹는 것 어렵지, 병도 많지, 자녀 기르기 어렵지, 집도 엉망이지, 그러니까 죽는게 천배, 만배 좋은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거기 보다는 천배 낫다고 할지라도 예수 없이 이 세상을 살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예수 없다면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고 누가 우리의 가는 길을 책임지고 인도해 줄 이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의 짐을 지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여 주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헨델의 메시야 칸타타에 보면 중요한 부분 가운데 12번에 우리를 위해 오셨다. '우리를 위해 오셨다. 우리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나셨다. 우리를 위해 한 아기 그 어깨 위에 통치권이 메어 지리라 기묘라 묘사라 전능의 주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 우리를 위해 나셨다' 계속 우리를 위해 오셨다 라는 거예요. 마지막은 우리를 위해 오신 분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거예요. 영원히, 영원히 얼마나 감격스러워요. 우리를 위해 오신분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사랑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걱정도 많고 근심이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길은 넘으면 또 하나의 능선이 또 다른 능선이, 또 강이 가로막습니다. 살아보세요. 아이들을 길러 보세요. 걱정을 벗어날 날이 있나요 벗어나는 길은 주님을 베데스다에 오신 주님을 만나서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면 오늘의 문제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나의 가는 길을 그가 다스리시고 내 모든 짐을 다져주시고 내 앞날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없이는 안됩니다. 누가, 우리를 다스릴 것입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를 영원히 다스려야 할 줄 믿습니다. 제가 소련을 지금의 러시아를 1990년부터 여러 해를 다녔습니다. 그 곳에 의료계와 관계가 있어서 많은 의료 기구를 보내고, 그 곳 기계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려고 했는데 그곳에 계신 분이 하는 말이 '목사님 모르셔서 그러는데 지금 소련에서는 서방에서 보내준 기계를 하나도 사용하지 못 합니다. 여기에는 돈만 보내주세요. 우리에게 급한 것은 돈입니다. 기계가 아닙니다.'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전부 배운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배운 사람을 대적하고, 배운 사람을 대적하고 배운 사람 때문에 자기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해요. 배운 사람들이 공산주의의 대적이예요. 제거 해야할
첫째 대상은 배운 사람들이라는거예요. 그래서 캄보디아에도 가보면 안경 쓴 사람들을 다 죽였구요. 주머니에 볼펜 있는 사람을 다 죽였어요. 글쓰는 사람을 다 죽이는 거예요. 있는 사람 다 죽였어요. 그래서 기계를 가져다주어도 글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기계를 사용하지 못하여 세워둔 기계가 가득 차 있다는 거예요. 다 무식하게 만들었어요. 너무도 몰랐어요. 그들의 생각으로는 배운자들이 없으면 모두가 잘 살 줄 알았어요. 못 배운 사람들끼리 잘 살 줄 알았어요. 있는 자들을 없애면 없는 자들이 잘 살 줄 알았어요. 있는 자가 있어야 없는 자가 있는 자들 때문에 그 공장에 들어가 먹고 살 것이 아니예요 있는 자가 사업을 잘해야 없는 자가 있는 자의 주는 것으로 살 것이 아니예요 배운 사람이 있어야 못 배운자가 배워서 살 것 아니예요. 위에 것을 다 없이하고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이런 마귀가 오늘 우리 마음에 틈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대적은 사탄이요, 죄악이지. 있는 사람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예수님 잘 믿어 주님이 오시면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소망이 있고 잘 되는 날이 올줄 믿습니다. 주님, 만나면 해결됩니다. 38년 된 병자도 주님 오시면 주님의 은혜로 다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짐을 지어주시고, 우리를 고쳐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에 오셨습니다. 교회는 연못입니다.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듯이 교회는 나와서 눈을 씻고 베데스다 못에서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시는 주님, 주님은 언제나 교회에 찾아오시는 성도들과 만나게 되고 기도 속에서 만나고 예배 속에서 만나면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소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해결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우리는 이 환자와 같이 주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지고 38년이 아니라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날지라도 주님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기다리듯이 항상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메시야가 오면 해결되리라. 메시야를 기다리며 물을 길러 나가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에게 목표를 두고 주님을 향해 나가는 성도는 언제든지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있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되어 있고 모든 병에서 저주에서 놓일 줄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지만 주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사람도 떠나고 부모 친지 다 떠나고 어떤 의학으로도 건짐을 받을 수 없는 불가능한 버려진 38년 병자이지만은 주님 앞에는 언제나 길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이제 마지막 결론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어떤 궁궐에 임금님이 정원을 거닐다 보니까 나무들이 다 시들었어요. 참나무에게 가서 너는 왜 그렇게 다 죽어가느냐 '저기 전나무는 인물도 잘났는데 나는 이게 뭡니까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또 전나무에게 가서 '너는 왜 그렇게 시들하냐 전나무가 인물만 잘나면 뭐합니까 포도나무는 저렇게 열매도 많은데 나는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아무것도 볼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궁핍하고 이렇게 살아서 뭐합니까'라고 말했어요. 포도나무에게 갔어요. 너는 왜 그렇게 다 죽어가느냐 '열매만 많으면 무슨 소용있습니까 열매는 무거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내 가지 내 인물을 보세요. 저 장미꽃을 보세요. 얼마나 예쁩니까' 장미에게 갔어요. 너는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갖고 왜 다 죽어 가느냐 '꽃만 예쁘면 뭐합니까 며칠 안되어 다 시드는데요.' 전부다 불평 불만이에요.
그런데 제일 나이 어린 조그마한 바닥에 있는 제비꽃을 찾아갔어요. 너는 어떻게 그렇게도 반짝 반짝 빛나느냐 어떻게 그렇게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느냐 '예. 저는 임금님의 정원에 있지 않습니까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나의 모습에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요사이 청소년의 문제가 첫째는 가정에 문제가 있고 예를 들면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탈선을 했다든지 사업이 부도가 났다든지 가정 불화가 있다든지 이런 일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이 탈선을 합니다. 또한 분야는 머리가 나빠서 공부가 안되어서 따라가지 못하니까 실력 때문에 탈선하는 문제 아이들이 그렇게 많고요. 세번째는 인물이 못나서 나는 왜 이렇게 뚱뚱한가 나는 왜 키가 안 크는가 나는 왜 남학생에게 전화도 없을까 이것 때문에 그렇게 문제가 생긴데요. 인물이 없다고 문을 닫고 고민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학교도 가지 않으려고 하고 부모님께 왜 낳았느냐고 항의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다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만, 전나무는 모양만, 장미에게는 아름다움만, 참나무는 든든하게 어느 나무도 다 주지는 않아요. 사람은 언제나 있는 것을 통해 시험이 듭니다. 좋은것만은 아니예요. 인물은 잘났다고 공부만 잘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만약에 하나님이 내게 다 주셨더라면 내 생각으로는 내가 가수가 됐든지 사업가가 되었든지 아마도 다른 길로 빠졌을 거예요. 내게 부족한 것 때문에 기도 많이 하다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거예요. 38년 된 병자라고 낙심하지 말고 나는 왜 이런가 나는 아무 소망이 없다 하는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고. 이번 집회에 은혜 받아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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