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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서신의 저자 (벧전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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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때때로 예수님의 마지막 몇 년간의 지상 생애에 동행했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특히 예수님과 각별히 가까웠던 제자를 만난다면 사복음서에서 생략된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소상히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가장 가까웠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전. 후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 대해서 우리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추가적인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사도 베드로가 본 서신을 썼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첫 절의 명백한 진술을 무시한 채, 본 서신이 베드로가 죽은 후에 집필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술한 책으로 간주합니다. 어떤 이들은 베드로처럼 거친 갈릴리의 어부가 베드로전서와 같은 아름다운 헬라어를 구사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베드로와 요한은 ‘학문 없는 범인’이었으므로 탁월한 헬라어 서신을 작성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에 사는 직업인들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촉했을 것입니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한 이후 헬라 문명에 의해 그 지역이 헬라어를 사용하던 시기에 베드로도 출생했고 자라면서 헬라 문명과 헬라어를 배우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일상사에서 자기 모국어만큼은 헬라어를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학문 없는 범인이라는 사도행전 4장 13절의 진술은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행4:8)의 눈에 비친 평가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반드시 실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하나님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우리들의 단순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상세한 부분들을 알고 싶어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경배하며 더 가까이 따르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사건들을 추가시키지 않은 이유는 우리들에게 복음서에서 기록된 내용 이상의 정보가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구원과 신앙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은 이미 다 제시되었습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보면(21장),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갈리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새벽이 되자 한 사람이 바닷가에 서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대로 하자 제자들은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지시를 한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모두 아침 식탁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세번씩 이 질문을 던지셨고 베드로는 “주여 그리 하오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니나이다.”라고 세 번씩 답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답변이 있을 때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절), “내 양을 치라”(16절), “내 양을 먹이라,”(17절)고 분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두 서신을 썼을 때, 그가 한 일은 갈리리 해변에서 예수님이 주셨던 명령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서신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격려해 줍니다. 본 서신은 특별히 고난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본 서신을 쓸 때 이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베드로가 네로의 박해가 있기 얼마 전인 주후 60년대에 본 서신을 썼다고 믿습니다. 베드로는 네로의 통치 말엽에 로마시 교외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고 합니다.(네로는 주후68년 자살하였음). “네로 시대의 박해가 로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면 베드로전서 2:13-17절에 언급된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랐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E.P. Clowney). 베드로는 2세기 교인들을 향해 본 서신을 썼다는 암시를 전혀 주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전서는 주후 60년대에 쓰여졌을 듯합니다. 그럼 베드로전서에서 부각된 고난을 우리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늘 닥쳐오는 고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들은 각 신자들이나 혹은 교회 전체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국가나 불신자들의 미움을 사고 학대를 받는 경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복음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서 온갖 힘을 기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자들의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어쩌면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극심한 박해가 없을지라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따르겠습니까 우리들이 고난에 대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더 많이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본 서신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 본 서신을 썼습니다. 서언 베드로의 첫 마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이 시점에서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목격했었고 주님이 주신 귀한 가르침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자신에 대해 매우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하나님이 선택하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처음으로 고백했던 자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했음직도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행했던 베드로의 고백은 마태복음 16:13-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그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가 본 서신에서 “교회가 내 위에 지어질 것이다, 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신 말씀은 교회가 베드로 위에 건설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방금 고백한 그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그토록 신령한 자였다면, 어째서 예수께서 불과 몇 절 다음에 그를 ‘사탄’이라고 꾸짖었겠습니까(마16:23). 우리는 바울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 베드로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도’란 무슨 뜻일까요 대표자(대리자)란 뜻입니다. 사도는 사자(使者, 혹은 대사)입니다. 우리는 열두 제자들과 바울을 사도라고 부릅니다. 이들 이외에도 넓은 뜻으로 바나바와 같은 다른 제자들을 사도라고 칭한 경우도 있습니다.(행14:14).
그런데 실은 예수님이 최고의 사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셨습니다(히3:1-3)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히3: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그리고 다른 모든 사도들의 직분은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사도가 있을까요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세기까지도 사도적 감독권을 주장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의 교리와 함께) 믿음의 기초이며 (엡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3: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님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주님을 실제로 목격한 증인들이었습니다(행1:21-22) (행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행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열두 사도들 이외에도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고전15:8)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사신)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는 조급하였고, 일을 저지르기 일쑤였으며 엉뚱한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최대의 곤경에 빠졌을 때, 주님을 부인한 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婢子) 하나가 와서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 새(막14:69)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막14: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막14: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이런 베드로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었겠습니까 사도라는 명칭은 고사하고 그냥 얼굴만 내보이고 사는 일조차도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떳떳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마가가 기록한 기사에 의하면, 여인들이 빈 무덤으로 들어갔을 때 한 천사가 말하기를 예수께서 살아나셨으니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막16:7) 이 사실을 전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메시지가 베드로에게도 꼭 전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듯합니다. “베드로야 나는 너를 용서하였다. 나는 네가 나의 전권대사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 후 약 30년이 지나서 베드로는 본 서신을 썼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고 복음 사역의 일꾼으로서의 권위를 회복 받았기 때문에 초대 교회의 한 중요한 지도자가 되어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서신을 남겼습니다. 이 서신은 곧 하나님의 귀한 말씀인 베드로 서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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