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바울 (욥42:1-6,갈2:6-14)
본문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 조 논제를 비텐베르그 성 교회 정문에 써 붙이므로 비화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을 정하여 이것을 기념하는 것은 교회 가 그 때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로마서 연구를 통하여 로 마 카톨릭교회의 공덕사상(功德思想)을 비판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신학의 발견이었으 며, 새로운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루터 이후 많은 칼빈이나 존 녹스 같은 많은 개혁자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로운 신학사상들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보편화되지 못하였고, 말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없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인쇄술의 발명과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 등과 더불어 성경 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파하였고, 말씀 중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성경과 그리고 믿음을 재발 견한 놀라운 개혁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 개신교의 신앙의 기 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의 정신입니다. 과거의 전통 과 틀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무 한하신 은총의 세계를 열어 나가고자 했던 그 개혁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 가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시 대의 변화에 따라 항상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나간 시대의 해석에 얽매서 새로운 해석을 정죄하고 받아 드 리지 않으려는 보수적 경향이 항상 그 교회를 낙후시키고 하나님께서 열 어 가시는 새로운 역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두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초대교회의 두 기둥과 같은 사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며 말씀을 들었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모두 목격한 사도라면, 바울은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통하여 변화된 후 기독교의 신학화에 공헌하 고, 특히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한다면, 바울은 이방인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 크리스찬을 대표한다면, 바울은 이방인 크리스찬을 대표하는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모신 제자로서 그의 생애와 교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대로 전달한 전도자 였다면,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 신 학자였다고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사 도라면, 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였습니다. 베드로가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게 국한하여 복음을 전한 것은, 율법을 상징하는 할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해 바울은, 유대인이 절대시 한 할례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함으로, 그 한계를 넘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드로의 신학적 입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 고, 바울의 입장은 진보적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와 바울이 만난 것은 세 번 정도입니다. 맨 처음에는 예루 살렘에서 만났습니다. 바울이 회개한 지 3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보름동안 지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처음으로 만난 지 14 년만에 예루살렘에서 역시 만났습니다. 이 때에는 바나바와 디도도 함께 갔었는데,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도 앞에서 변호하려고 갔다가 만났습니다. 이 때에 바울은 야고 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는데, 이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 중에서 특히 유대인에게 관련된 조항에는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제 안을 승인하였습니다. 이것을 의논하는 회의에서 이방인의 권리를 변호 해 준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이방인인 고넬료 집에 가 서 복음을 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할례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복음 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 있음을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적 자유를 위한 큰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이방인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두 사도가 만난 곳은 안디옥이었습니다. 이 안디옥은 이 방인 선교를 시작한 교회가 있는 곳으로서, 그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때에 한 방문객으로서 안디옥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이방인 신자들과 섞여서 함께 식사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게 되자 지금까지 행동했던 것과는 달리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앉았던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베드로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베드로를 면박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 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베드로와 바울의 두 번째 만남까지는 아주 협조적이었고, 세 번째 만 남에서도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왔을 때 문제가 생겼고, 바울이 정면으로 이에 대한 항의 를 한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 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갈 2:16a)는 이 복음의 진리가 깨어 질 위기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이를 밝혔던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 가지 체면을 생각하여 바울이 이 때에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 였을 것입니다. 나이도 어린 바울이 대선배인 베드로를 향하여 그 위선을 담대하게 지적한 것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그의 확신과 열정 때문에 가 능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아마도 그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해 사고하고 다시 한번 할례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고 판정을 받을 수 있음을 재확인하였을 것입니다. 사실상 베드로와 바울의 신학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그 집에 가서 경험하였던 일을 통 하여 이미 그의 신학이 분명하게 바뀌었고, 그래서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바울의 신학을 지지해 준 바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디옥에 내려와서도 이방인 신자들과 더불어 자유로운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 입니다. 다만 그의 유대인으로서의 오랜 관습이 그로 하여금 자기도 모 르게 이방인과의 구별을 의식하게 하여 식사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앉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사도의 차이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이 같은 신학 사상을 가지기는 하였지만, 베드로는 그 신학적 입장을 수동적으로 수용한데 반해, 바울은 이를 적극적으 로 수용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복음 전파자가 되었고,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자처하면서 3차에 걸친 선 교여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학적 입장을 수용하기는 하였지만, 그런 입장을 따라 적극적으 로 이방인 전도에 나서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여전히 율 법주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해 바울은 복음의 진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율법주의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벗어나 적극적으로 이방인 선교에 나섰고, 그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투쟁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이런 새로운 신학적 입장이 복음을 이방 세계에 널리 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이 아니었다면, 복음은 유대인에 국한되어 오늘의 세계적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유대사회에서 당시의 절대적 진리처럼 자리잡았던 할례, 그 할례야말 로 구원의 표지였기에 그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유대인 들에게 전파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 게 전파되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이 나 오게 된 것입니다. 할례가 하나님 백성된 표이기에 할례 없이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만 구원의 백성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주장이 별 무리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차츰 문제가 확대되었고, 마침내 예루살렘 회의까지 열려 이 문제를 논 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 결정은 복음이 더욱 활발하게 이방인 사회 속에 전 파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결정이 나오기까지에는 사도 바울의 피나는 투쟁과 그의 신학적 노력이 뒷받침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 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선민의식 내지는 특권의식의 장 벽을 헐어 버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방인 선교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았다고 하겠습니다. 새 시대를 향하여 복음은 항상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사 독재에 시달리던 남아메리카에서 자연스럽게 해 방의 신학이 대두되었고, 억압당하는 흑인들 속에서 흑인신학이 나오게 되었으며, 분단의 아픔과 군사 독재의 억압하에 있던 한국 교회는 민중 신학을 태동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신학이 나올 때마다 이를 저지하고 반대하며 핍박하는 보수적 세력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바울의 진보적인 신학을 반대하며 핍박하였던 유대인들이나, 루터의 개 혁을 저지하려 하였던 로마교황청이 그런 보수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역사이므로 누구도 그것 을 막을 수는 없고, 그 변화되는 역사를 이끌 새로운 일군들을 부르시어 그 시대에 맞도록 복음을 재해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 간직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복음의 세계는 한마디 로 정의할 수 없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시대마다 새로운 깨우침으로 인도하실 때, 과거의 전통과 틀에 매이 지 아니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우리가 항상 우리의 마음 을 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거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 들을 받아 드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특히 정보 통신의 발전 이 눈부시게 진행되면서 새롭고 신기한 통신수단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던 일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올 시대는 무한하게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과거의 어떤 규범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 미래의 세계를 탐구해 갈 때 새로운 도구나 이론들이 나타나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나타난 새로운 이론이나 도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 거의 낡은 이론이나 도구를 고집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그는 낙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이 편리하고 빠른 컴퓨 터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주판과 수작업만을 고집 한다면 어떻게 될 까요 그 은행은 곧 문닫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새로운 신학, 새로운 틀이 필요한 데, 과거의 이론과 생각만을 고집 한다면, 결국 새로 운 역사에 대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단순히 정보 통신의 혁명적인 변화만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의 사고의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신학과 믿음의 형태를 새롭게 해석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것을 따라 교회를 새롭게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배가 새로워져야 할 것이며, 전도의 방법도 달라져야 하며, 교회의 조직도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급 변하는 시대 정세를 우리가 깊이 있게 통찰하면서 그 속에서 복음의 진리가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지 켜 온 신앙의 전통을 이어 가되 변화하는 시대에 맞도록 재해석하는 작 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교회의 목회 를 개혁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안일하게 권위주의에 머물던 로마 카톨릭교회를 뒤흔들어 놓았고, 새로 운 교회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과거의 영광에 연 연하여 안주할 때,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뒤흔들리게 될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자유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그 부르심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도록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고집하 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지나간 시대의 해석에 얽매서 새로운 해석을 정죄하고 받아 드 리지 않으려는 보수적 경향이 항상 그 교회를 낙후시키고 하나님께서 열 어 가시는 새로운 역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두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초대교회의 두 기둥과 같은 사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며 말씀을 들었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모두 목격한 사도라면, 바울은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통하여 변화된 후 기독교의 신학화에 공헌하 고, 특히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한다면, 바울은 이방인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 크리스찬을 대표한다면, 바울은 이방인 크리스찬을 대표하는 사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모신 제자로서 그의 생애와 교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대로 전달한 전도자 였다면,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 신 학자였다고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사 도라면, 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였습니다. 베드로가 할례를 받은 유대인에게 국한하여 복음을 전한 것은, 율법을 상징하는 할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해 바울은, 유대인이 절대시 한 할례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함으로, 그 한계를 넘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드로의 신학적 입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 고, 바울의 입장은 진보적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와 바울이 만난 것은 세 번 정도입니다. 맨 처음에는 예루 살렘에서 만났습니다. 바울이 회개한 지 3년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보름동안 지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처음으로 만난 지 14 년만에 예루살렘에서 역시 만났습니다. 이 때에는 바나바와 디도도 함께 갔었는데,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도 앞에서 변호하려고 갔다가 만났습니다. 이 때에 바울은 야고 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는데, 이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 중에서 특히 유대인에게 관련된 조항에는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제 안을 승인하였습니다. 이것을 의논하는 회의에서 이방인의 권리를 변호 해 준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이방인인 고넬료 집에 가 서 복음을 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할례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복음 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 있음을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적 자유를 위한 큰 논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이방인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두 사도가 만난 곳은 안디옥이었습니다. 이 안디옥은 이 방인 선교를 시작한 교회가 있는 곳으로서, 그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때에 한 방문객으로서 안디옥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이방인 신자들과 섞여서 함께 식사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게 되자 지금까지 행동했던 것과는 달리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앉았던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베드로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난하고 베드로를 면박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 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베드로와 바울의 두 번째 만남까지는 아주 협조적이었고, 세 번째 만 남에서도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왔을 때 문제가 생겼고, 바울이 정면으로 이에 대한 항의 를 한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 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갈 2:16a)는 이 복음의 진리가 깨어 질 위기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이를 밝혔던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 가지 체면을 생각하여 바울이 이 때에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 였을 것입니다. 나이도 어린 바울이 대선배인 베드로를 향하여 그 위선을 담대하게 지적한 것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그의 확신과 열정 때문에 가 능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아마도 그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해 사고하고 다시 한번 할례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고 판정을 받을 수 있음을 재확인하였을 것입니다. 사실상 베드로와 바울의 신학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로마 백부장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그 집에 가서 경험하였던 일을 통 하여 이미 그의 신학이 분명하게 바뀌었고, 그래서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바울의 신학을 지지해 준 바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디옥에 내려와서도 이방인 신자들과 더불어 자유로운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 입니다. 다만 그의 유대인으로서의 오랜 관습이 그로 하여금 자기도 모 르게 이방인과의 구별을 의식하게 하여 식사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앉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사도의 차이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이 같은 신학 사상을 가지기는 하였지만, 베드로는 그 신학적 입장을 수동적으로 수용한데 반해, 바울은 이를 적극적으 로 수용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복음 전파자가 되었고,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자처하면서 3차에 걸친 선 교여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학적 입장을 수용하기는 하였지만, 그런 입장을 따라 적극적으 로 이방인 전도에 나서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여전히 율 법주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해 바울은 복음의 진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율법주의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벗어나 적극적으로 이방인 선교에 나섰고, 그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투쟁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이런 새로운 신학적 입장이 복음을 이방 세계에 널리 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이 아니었다면, 복음은 유대인에 국한되어 오늘의 세계적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유대사회에서 당시의 절대적 진리처럼 자리잡았던 할례, 그 할례야말 로 구원의 표지였기에 그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유대인 들에게 전파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 게 전파되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이 나 오게 된 것입니다. 할례가 하나님 백성된 표이기에 할례 없이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만 구원의 백성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주장이 별 무리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차츰 문제가 확대되었고, 마침내 예루살렘 회의까지 열려 이 문제를 논 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 결정은 복음이 더욱 활발하게 이방인 사회 속에 전 파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결정이 나오기까지에는 사도 바울의 피나는 투쟁과 그의 신학적 노력이 뒷받침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 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선민의식 내지는 특권의식의 장 벽을 헐어 버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해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방인 선교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았다고 하겠습니다. 새 시대를 향하여 복음은 항상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사 독재에 시달리던 남아메리카에서 자연스럽게 해 방의 신학이 대두되었고, 억압당하는 흑인들 속에서 흑인신학이 나오게 되었으며, 분단의 아픔과 군사 독재의 억압하에 있던 한국 교회는 민중 신학을 태동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신학이 나올 때마다 이를 저지하고 반대하며 핍박하는 보수적 세력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바울의 진보적인 신학을 반대하며 핍박하였던 유대인들이나, 루터의 개 혁을 저지하려 하였던 로마교황청이 그런 보수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의 변화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는 역사이므로 누구도 그것 을 막을 수는 없고, 그 변화되는 역사를 이끌 새로운 일군들을 부르시어 그 시대에 맞도록 복음을 재해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 간직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복음의 세계는 한마디 로 정의할 수 없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시대마다 새로운 깨우침으로 인도하실 때, 과거의 전통과 틀에 매이 지 아니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우리가 항상 우리의 마음 을 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발전에 따라 과거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 들을 받아 드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특히 정보 통신의 발전 이 눈부시게 진행되면서 새롭고 신기한 통신수단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던 일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올 시대는 무한하게 열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과거의 어떤 규범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 미래의 세계를 탐구해 갈 때 새로운 도구나 이론들이 나타나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나타난 새로운 이론이나 도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 거의 낡은 이론이나 도구를 고집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그는 낙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이 편리하고 빠른 컴퓨 터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주판과 수작업만을 고집 한다면 어떻게 될 까요 그 은행은 곧 문닫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새로운 신학, 새로운 틀이 필요한 데, 과거의 이론과 생각만을 고집 한다면, 결국 새로 운 역사에 대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단순히 정보 통신의 혁명적인 변화만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 변화는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의 사고의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신학과 믿음의 형태를 새롭게 해석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그것을 따라 교회를 새롭게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배가 새로워져야 할 것이며, 전도의 방법도 달라져야 하며, 교회의 조직도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급 변하는 시대 정세를 우리가 깊이 있게 통찰하면서 그 속에서 복음의 진리가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지 켜 온 신앙의 전통을 이어 가되 변화하는 시대에 맞도록 재해석하는 작 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교회의 목회 를 개혁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안일하게 권위주의에 머물던 로마 카톨릭교회를 뒤흔들어 놓았고, 새로 운 교회를 탄생시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과거의 영광에 연 연하여 안주할 때,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뒤흔들리게 될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자유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그 부르심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도록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고집하 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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