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노니냐 베냐민이냐 (창35:16-20)
본문
창세기 35장은 저 믿음의 조상 야곱이 20년간의 외삼촌집 밧단아람의 생활을 끝맺고, 드디 어 가나 안 땅으로 돌아오는 환고향의 여로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고향 길의 야곱에게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으로 그의 시신을 땅 속에 묻고. 묘비를 세워야 되는 아픔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 라헬과 베노니(창35'18) 라헬은 라반의 둘째 딸로 태어난 절세 미모의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이 형의 낮을 피하여 도망하 여. 밧단아람에 있는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라헬의 아름다운 미모 에 반하 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그만치 14년 동안을 한 푼의 삯도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을 할 정 도였습니다. 처음 7년은 야곱이 라헬에게 장가들기 위한 조건으로 무보수로 일하였고, 다음 7년 은 장가 든 후에 무보수로 일하였습니다. 실로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라헬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라에게는 야곱의 사랑을 받는 그 때부터 아픔을 씹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야곱의 사랑을 그의 언니 레아에게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언니 레아가 일곱 자녀를 낳는 동안 계속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라 헬의 고 통은 마침내 투기에 이르게 되고. 남편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 겠노라(창30:l)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라헬의 아픔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기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들어가게 하여. 그 아들을 자기의 무릎에라도 두고 싶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마 침내 그는 그의 여종 빌하로 하여금 아들을 얻게 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뜻이 내 원통함을 플어주심, 곧 신원이란 뜻이고 보면 라헬의 고통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라헬은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빌하로 하여금 야곱에게서 두번째 아들을 받게 하였는데 그 이름은 납달리' 곧 '내가 형과 경쟁하여 이기었다'는 뜻이고 보면 라헬의 아픔이 얼마나 극에 달 했는지를 모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의 탄원을 들었 습니다. 그녀의 태를 열어 아들을 주셨습니다.그가 '요씹인데 그 뜻이 더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더하게 하시기를 원함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흘러가는 세월은 라헬의 아름다 움을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말한 대로 인간의 삶은 슬픔과 더블어 시작하 고. 장미 꽃의 아름다움은 가시에 둘러 싸여있다고 한대로. 라헬의 아름다운 미모는 고통의 가시로 싸여 버 렸습니다. 그녀는 남편 야곱과 함께 밧단아람에서 벧엘로 떠나 야곱의 아비 이삭이 거주하 던 혜브 론으 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는 라헬의 뱃속에 아기가 뛰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벧 엘을 떠 나 에브랏에 이르렀을 때 라헬은 임산의 진통을 하게 됩니다 야곱 일행은 불가분 그 곳에 장막을 치고, 해산의 준비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라헬은 출산의 고통을 겪는 중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를 돕던 산파는 `두려워 말라 그대가 득남하였다'고 기쁜 소식을 라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들려온 득남의 소리는 결코 기쁨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들 요셉을 얻은 후에 도. 만족 할 수가 없어, 그에게도 또 아들을 더해 주기를 소원하던 라헬 이었지만 아들을 받은 그 순간에. 그 기쁜 소식을 들은 그 순간에. 라헬의 진통은 극에 달하여 숨이 멎어지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라헬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베노니'라고 부르면서 임종의 숨을 거두 고 말았 습니다. 그 뜻은 '내 고통의 아블.내 슬픔의 아블이깔 뜻입니다. 그 아들은 어미 라삘에게 만족과 기쁨, 즐 거옴과 소망을 주지 못하고. 고통과 슬픔, 절망을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오래 기다리다 지 쳐 버렸 을 때 왔던 아들입니다. 너무나도 진통 속에서 해산한아 들입니다. 그나마 그 아들의 해산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되는 그 소망이 오히려 절망이 되고, 그 만족이 오히려 블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슬픔의 아들이다.' 너는 '나에게 고통의 아들이었다고 절망적인 어두움 의 이름 을 붙혀 주고 말았습니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던 라헬에게는 베노니가 있었습니다. 이 지구를 찾아오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은 어머니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베노니들입니다. 그것은 역 시 죄의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범죄한 하와와 그 여자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해산의 고 통을 크 게 더해 버리신 결과입니다(창3:16). 어떤 경우든 라헬의 최후는 야곱의 가슴에 엄청난 슬 픔의 파 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후일에 죽음의 침상에서 요셉에게 말할 때 밧단아람에서 환고향 하는 길에 에브에서 라헬이 이 세상을 떠나 거기에 장사하였노라는 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창 48:7)
II. 야곱과 베냐민(창 35.18)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의 최후를 현장에서 목도하였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던 사랑하는 아 내 라 헬의 마지막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7년간이나 자기를 애태우고, 아니 자기에게 소망을 주던 라 헬의 최후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그를 위하여 또 7년올 더 일할 수 있도록 용기 를 주었던 라헬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처럼 학수고대 하던 차에. 아들을 낳았는데 기뻐하 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입에서 베노니`가 나오고 있음을 보았습이다. 그 때 야곱은 이 이름 이 사람 들에게 불려지기 전에 재빨리 베냐민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내 오른 손의 아들' 흑은 내 행복의 아뜰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라헬이 고통 중에서,아니 죽어가면서 낳은 아 들의 이름을 베노니 곧 '슬픔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베냐민 곧 뱅복의 아블, 오른 손의 아블이라 고 개칭 하여 불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그가 언약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 입니다 그는 적어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예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늘의 별 같이 빛 난 자손이라고 약속되어 있는 자손이 아닌가
둘째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 족장으로 태어났 기 때 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12지파중 베냐민 지파의 머리가 될 사람입니다. 그는 후일에 선민 역사와 계 보를 형성시킬 섭리에 의하여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오른 손의 아들' 내 행복의 아 흘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는 손입니다. 오른 손은 축복과 행운을 상징하는 손입니다 야곱은 라헬이 낳은 마지막 아들이 자기의 오른 손과 같이 힘있고, 강건한 자식이 되기를 기 원하였습니다. 결코 고통의 아늘. 슬픔의 아들. 불행의 아들로 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아들은 '베노니가 아닌 베냐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였 습니다. 힘의 아들, 능력의 아들, 기쁨의 아들, 행복의 아들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모 습은 확실히 그의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벧엘에 이 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네 이름은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이스 라엘이라 부를 것'이 라고 이 미 선언하였던 축복올 재확인해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받았기 때 문입니다 많은 국민이 네 허리 에서 나을 것이고, 조상들의 땅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재확인 해 주었습니다 (창35:9-15).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돌기등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블렀습니다, 이러한 은혜 체험 후에 라헬이 아들을 낳았습니다.야곱의 확신 속에는 결코 이 아들은 '베노니'가 아니고 베냐민'이라고 생각하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들은 결코 베노니'가 아니고 '베냐민입니다. 저들은 하늘 과 땅에서 하늘의 별같이 및나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창대하고 창성할 베냐민입니다. 결코 저들은 인류의 머리가 될 축복의 자손들입니다. 그것이 언약의 자손을 세상에 보낸 하 나 님의 뜻 이고, 또 그 자손을받는 부모들의 확신이요, 기원이고. 소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자손들을 베노니`라 부를 것인가 베냐민이라고 부를 것인가 우리는 우리 에게 있는 연약과 가시들로 인한 고통의 세상 여로를 날마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라헬의 아 픔과 버 금가는 여러류들, 여러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라헬처럼, 자기의 아픔과 고통 때문에 자 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까지 자기의 고 통과 슬픔을 유산하는 베노니를 남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육이요, 육신입니다 또 육신 의 생각입니다. 결코 영이 아닙니다. 육은 영의 일에 무익 합니다 그 아버지 야곱처럼 확신 속에서 우리의 자손들을 베냐민이라고 블러야 할 것입니다 .슬픔 의 아들 이 아닌 기쁨의 아들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절망의 아들이 아닌 소망의 아들로 불러야 할 것 입니다. 약한 아들이 아닌 강한 아들.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입니다 또 영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영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영의 소원입니다. 영의 기월입니다. 아니 영의 육신입니다. 라헬은 자기의 일시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고통을 자식에게까지 연결 시켜 버 리는 연약을 범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베노니 가 아닌 베냐민이라고 알려주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곧 남을 속여 취하는 자)을 야 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곧 왕자)이라고 블 러주었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훌 이요,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라헬은 그의 아들을 베노니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자의 아 들을 메 냐민이라 부르도록 야곱에게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그것은 우리를 `베노니 '라 하 지 않고 베냐민이라 불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이라 하지 않고 리인 곧 하나님의 자 디라 블러주기 위함입니다 라헬은 첫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습니다.그럼에 도 라헬 은 연약하여 하나님이 더하신 축복을 베노니 곧 고통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 래 라헬 의 소원 대로 베노니가 아닌 베냐민으로 더하였습니다.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야곱의 가문 을 더하 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라헬은 약했지만 야곱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더 강하고 블 변하였 습니다. 바로 이젓이 이 시간 우리를 향한 하나넘의 뜻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베노니가 아닌 베 냐민 이됩시다.
I. 라헬과 베노니(창35'18) 라헬은 라반의 둘째 딸로 태어난 절세 미모의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이 형의 낮을 피하여 도망하 여. 밧단아람에 있는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라헬의 아름다운 미모 에 반하 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그만치 14년 동안을 한 푼의 삯도 받지 않고 무보수로 일을 할 정 도였습니다. 처음 7년은 야곱이 라헬에게 장가들기 위한 조건으로 무보수로 일하였고, 다음 7년 은 장가 든 후에 무보수로 일하였습니다. 실로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라헬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라에게는 야곱의 사랑을 받는 그 때부터 아픔을 씹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야곱의 사랑을 그의 언니 레아에게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언니 레아가 일곱 자녀를 낳는 동안 계속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라 헬의 고 통은 마침내 투기에 이르게 되고. 남편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 겠노라(창30:l)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라헬의 아픔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기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들어가게 하여. 그 아들을 자기의 무릎에라도 두고 싶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마 침내 그는 그의 여종 빌하로 하여금 아들을 얻게 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뜻이 내 원통함을 플어주심, 곧 신원이란 뜻이고 보면 라헬의 고통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라헬은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빌하로 하여금 야곱에게서 두번째 아들을 받게 하였는데 그 이름은 납달리' 곧 '내가 형과 경쟁하여 이기었다'는 뜻이고 보면 라헬의 아픔이 얼마나 극에 달 했는지를 모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라헬의 탄원을 들었 습니다. 그녀의 태를 열어 아들을 주셨습니다.그가 '요씹인데 그 뜻이 더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더하게 하시기를 원함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흘러가는 세월은 라헬의 아름다 움을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말한 대로 인간의 삶은 슬픔과 더블어 시작하 고. 장미 꽃의 아름다움은 가시에 둘러 싸여있다고 한대로. 라헬의 아름다운 미모는 고통의 가시로 싸여 버 렸습니다. 그녀는 남편 야곱과 함께 밧단아람에서 벧엘로 떠나 야곱의 아비 이삭이 거주하 던 혜브 론으 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는 라헬의 뱃속에 아기가 뛰놀고 있을 때였습니다. 벧 엘을 떠 나 에브랏에 이르렀을 때 라헬은 임산의 진통을 하게 됩니다 야곱 일행은 불가분 그 곳에 장막을 치고, 해산의 준비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라헬은 출산의 고통을 겪는 중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를 돕던 산파는 `두려워 말라 그대가 득남하였다'고 기쁜 소식을 라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들려온 득남의 소리는 결코 기쁨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들 요셉을 얻은 후에 도. 만족 할 수가 없어, 그에게도 또 아들을 더해 주기를 소원하던 라헬 이었지만 아들을 받은 그 순간에. 그 기쁜 소식을 들은 그 순간에. 라헬의 진통은 극에 달하여 숨이 멎어지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라헬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베노니'라고 부르면서 임종의 숨을 거두 고 말았 습니다. 그 뜻은 '내 고통의 아블.내 슬픔의 아블이깔 뜻입니다. 그 아들은 어미 라삘에게 만족과 기쁨, 즐 거옴과 소망을 주지 못하고. 고통과 슬픔, 절망을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오래 기다리다 지 쳐 버렸 을 때 왔던 아들입니다. 너무나도 진통 속에서 해산한아 들입니다. 그나마 그 아들의 해산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되는 그 소망이 오히려 절망이 되고, 그 만족이 오히려 블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슬픔의 아들이다.' 너는 '나에게 고통의 아들이었다고 절망적인 어두움 의 이름 을 붙혀 주고 말았습니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던 라헬에게는 베노니가 있었습니다. 이 지구를 찾아오는 모든 아담의 후예들은 어머니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베노니들입니다. 그것은 역 시 죄의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범죄한 하와와 그 여자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해산의 고 통을 크 게 더해 버리신 결과입니다(창3:16). 어떤 경우든 라헬의 최후는 야곱의 가슴에 엄청난 슬 픔의 파 도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후일에 죽음의 침상에서 요셉에게 말할 때 밧단아람에서 환고향 하는 길에 에브에서 라헬이 이 세상을 떠나 거기에 장사하였노라는 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창 48:7)
II. 야곱과 베냐민(창 35.18)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의 최후를 현장에서 목도하였습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던 사랑하는 아 내 라 헬의 마지막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7년간이나 자기를 애태우고, 아니 자기에게 소망을 주던 라 헬의 최후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그를 위하여 또 7년올 더 일할 수 있도록 용기 를 주었던 라헬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처럼 학수고대 하던 차에. 아들을 낳았는데 기뻐하 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입에서 베노니`가 나오고 있음을 보았습이다. 그 때 야곱은 이 이름 이 사람 들에게 불려지기 전에 재빨리 베냐민으로 고쳐 불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내 오른 손의 아들' 흑은 내 행복의 아뜰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라헬이 고통 중에서,아니 죽어가면서 낳은 아 들의 이름을 베노니 곧 '슬픔의 아들'이라 하지 않고 베냐민 곧 뱅복의 아블, 오른 손의 아블이라 고 개칭 하여 불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이유는 그가 언약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 입니다 그는 적어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예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늘의 별 같이 빛 난 자손이라고 약속되어 있는 자손이 아닌가
둘째 이유는 그는 이스라엘 족장으로 태어났 기 때 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12지파중 베냐민 지파의 머리가 될 사람입니다. 그는 후일에 선민 역사와 계 보를 형성시킬 섭리에 의하여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오른 손의 아들' 내 행복의 아 흘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는 손입니다. 오른 손은 축복과 행운을 상징하는 손입니다 야곱은 라헬이 낳은 마지막 아들이 자기의 오른 손과 같이 힘있고, 강건한 자식이 되기를 기 원하였습니다. 결코 고통의 아늘. 슬픔의 아들. 불행의 아들로 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아들은 '베노니가 아닌 베냐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였 습니다. 힘의 아들, 능력의 아들, 기쁨의 아들, 행복의 아들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모 습은 확실히 그의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벧엘에 이 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네 이름은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이스 라엘이라 부를 것'이 라고 이 미 선언하였던 축복올 재확인해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받았기 때 문입니다 많은 국민이 네 허리 에서 나을 것이고, 조상들의 땅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재확인 해 주었습니다 (창35:9-15).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돌기등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블렀습니다, 이러한 은혜 체험 후에 라헬이 아들을 낳았습니다.야곱의 확신 속에는 결코 이 아들은 '베노니'가 아니고 베냐민'이라고 생각하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들은 결코 베노니'가 아니고 '베냐민입니다. 저들은 하늘 과 땅에서 하늘의 별같이 및나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창대하고 창성할 베냐민입니다. 결코 저들은 인류의 머리가 될 축복의 자손들입니다. 그것이 언약의 자손을 세상에 보낸 하 나 님의 뜻 이고, 또 그 자손을받는 부모들의 확신이요, 기원이고. 소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자손들을 베노니`라 부를 것인가 베냐민이라고 부를 것인가 우리는 우리 에게 있는 연약과 가시들로 인한 고통의 세상 여로를 날마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라헬의 아 픔과 버 금가는 여러류들, 여러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라헬처럼, 자기의 아픔과 고통 때문에 자 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까지 자기의 고 통과 슬픔을 유산하는 베노니를 남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육이요, 육신입니다 또 육신 의 생각입니다. 결코 영이 아닙니다. 육은 영의 일에 무익 합니다 그 아버지 야곱처럼 확신 속에서 우리의 자손들을 베냐민이라고 블러야 할 것입니다 .슬픔 의 아들 이 아닌 기쁨의 아들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절망의 아들이 아닌 소망의 아들로 불러야 할 것 입니다. 약한 아들이 아닌 강한 아들.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입니다 또 영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영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영의 소원입니다. 영의 기월입니다. 아니 영의 육신입니다. 라헬은 자기의 일시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고통을 자식에게까지 연결 시켜 버 리는 연약을 범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베노니 가 아닌 베냐민이라고 알려주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곧 남을 속여 취하는 자)을 야 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곧 왕자)이라고 블 러주었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긍훌 이요,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라헬은 그의 아들을 베노니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자의 아 들을 메 냐민이라 부르도록 야곱에게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그것은 우리를 `베노니 '라 하 지 않고 베냐민이라 불러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이라 하지 않고 리인 곧 하나님의 자 디라 블러주기 위함입니다 라헬은 첫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습니다.그럼에 도 라헬 은 연약하여 하나님이 더하신 축복을 베노니 곧 고통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 래 라헬 의 소원 대로 베노니가 아닌 베냐민으로 더하였습니다.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야곱의 가문 을 더하 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라헬은 약했지만 야곱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더 강하고 블 변하였 습니다. 바로 이젓이 이 시간 우리를 향한 하나넘의 뜻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베노니가 아닌 베 냐민 이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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