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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궤가 머문 집에 복이 임했습니다 (삼하6:1-15)

본문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왕위 에 오른 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은 그의 치세 중에 여호와의 복이 임한 한 장면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I. 먼저 그 역사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함인 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삼하 5:12). 그가 등극하자마자 그 마음에 있는 큰 소원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법 궤를 자기가 머무는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법궤를 머물게 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의 존재적 사명감에서 왕직을 수행하였습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대 상 13:1). 온 회중과도 합의했습니다(대상 13:2-4).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뺀 3만 명의 정예를 모았습니다 (삼하 6:1). 그리고 전국의 유명한 악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행사였습니다. 새 왕의 등극과 함께 전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법궤) 중심으로 뭉쳐지는 대동단결의 장면입니다. 전 이 스라엘의 중심이 그 법궤 앞으로 집결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명심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법궤'는 바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삼하 6:2). 이 말은 그 '하나님의 궤'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관계에 있어서 인격적인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법궤는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을 게시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수레를 몰고, '숲의 성'이란 뜻을 지닌 바알레유다 곧 법궤가 있던 기럇여아림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그리고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이스라엘에 새 아침의 햇살이 떠오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70년 세월이 지날 동안 흩어졌던 전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순간이기 때 문입니다. 저 블레셋에게 빼앗김 당해 버린 법궤가 하나님 자신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말 못하는 두 암소의 수레 위에 실려 다시 이스라엘 경내인 제사 장의 도시 벧세메스(수 15:10)까지 되돌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후 하나님의 법궤는 그 기럇여아림 지방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20년을 보냈습니다(삼상 6:13-7:2). 그리고 사울 왕의 통치 어간 40년과 다윗의 통치가 시작된 지 10여 년을 합쳐 보면, 참으로 기나긴 70년이란 세월 동안에 하나님의 법궤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의 말대로 사울 왕조는 이 법궤 앞에서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렇게 신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을 찾는 길만이 자신과 나라와 백성이 사는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마침 내 그의 신앙대로 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 앞으로 모였고, 그 법궤는 70년만에 다윗이 머무는 다윗성을 향하여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의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 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며 완전 축제의 행 사가 되고 말았습니다(삼하 6:5, 대상 13:8).
그런데 이 축제의 현장에 정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기돈 이라고도 불리는 나곤의 타작마당(삼하 6:6, 대상 13:9)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수레를 끌고가던 소들이 뛰므로 그 수레 위에 실린 궤가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소를 몰고가던 웃사가 손을 펴서 흔들리는 궤를 붙들었습니다. 이때 웃사가 그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크게 진노하사 웃사와 충돌하시므로, 그가 그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삼하 6:6, 7, 대상 13:9-11). 그 순간 모든 악기 소리는 중단되었고, 노래하고 춤추던 왕과 백성들 은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법궤를 하나님의 율례(법)대로 운반하지 않았기 때문 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법궤 운반의 율례는 레위 지 파 족속 중에 고핫 자손들이 친히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제정되어 있 었습니다(민 4:15, 7:9). 다윗은 이 사실을 깊이 뉘우치고, 다시 법궤 운반을 재개하여 다윗성으로 옮기는데 성공했습니다(대상 15장).
Ⅱ. 하나님의 궤가 머문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 향하던 축제의 현장은 웃사의 즉사 사건 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그 시간 다윗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대상 13:11). 그리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대상 13:12, 삼하 6:8, 9). 하나님의 궤는 그 근처에 있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 석 달 동안 그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법궤가 그 집에 머무는 석 달 동안에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삼하 6:11). 역대상 13장 14절에는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고 하였습니다.
1. 법궤가 머물었던 집에 임한 복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머물었던 집에 임한 복입니다. 무슨 신주나 어떤 우 상이나 아니면 다른 여러 신상들을 모셔 놓고 복받기를 원하는 이방 기 복 신앙들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궤가 머물고 있었던 집입니다.
2. 여호와로 말미암아 온 신적 축복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대 상 13:14)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은 통상적으로 받는 복이 아니 고 특별히 받는 축복입니다. 법궤가 머문 이후부터 갑자기 받은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오벧에돔이 받은 복은 우연한 복이 아닙니다. 확실한 축복이 고, 계획된 축복이고, 이미 목적되어 있었던 복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의 살아 계심을 입증한 것입니다. 웃사는 경거망동하게 하나님의 법궤를 붙들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 습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웃사를 치시므로 그가 죽었다고 하 였습니다. 반면에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머물었을 때 그가 복을 받게 함으로 하나님 자신의 살아 계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저주와 축복의 주 권은 오직 하나님 자신 뿐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3. 모든 사람이 공지(公知)하는 축복이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 12절에 혹이 다윗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 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 갈새 라고 하였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이 하나님의 궤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은 비밀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함께 공지하는 큰 축복,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왕궁에 있는 다윗에게까지 들리고 말았습니다. 영지작용(靈知作用)에 민첩한 다윗이 이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 가 없었습니다. 그는 즉시로 레위 자손 중 고핫 자손을 앞세워 그 하나님의 궤를 다윗 자기 성으로 옮기고 말았습니다(삼하 6:12-19). 하나님의 법궤가 머물었던 오벧에돔 집의 오벧에돔 자신과, 그 가정 과, 소유들이 복을 받았다는 이 사실은 바로 다윗에게 큰 영적 충격을 준 것입니다. 그는 그 오벧에돔의 개인과 가정이 받은 복을 자신과 나라 (백성)의 축복으로 승화시키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로 다윗 왕가에 축복 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 어간에 태평성대의 축복을 받고 말았 습니다.
Ⅲ. 법궤 축복의 현대적 의미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구약의 법궤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법궤는 하나님께서 종된 애굽에서 구출해 낸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과정에, 저들이 광야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 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계시 도구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물론 그 법궤의 설계와 재료, 운반 도구, 수종드는 방법… 등 일체가 하나님 자신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법궤 안에는 세 가지 중요 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하나님의 특별 양식을 먹고 가나안으로 행군했다는 구원 은총을 기 억나게 하는 기념물이었습니다(히 9:4). 또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 있었습니다(히 9:4).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모세와 아론을 친히 세워 주셨다는 입증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친수로 글을 새긴 십계 명의 두 돌판이 담겨 있었습니다(히 9:4).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기념물이었습니다. 저들은 광야 교회 40년을 이 법궤를 따라 움직인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신약시 대에 나타나실 영원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우리 생명의 만나요, 예수는 우리 부활이요, 예수는 우리 에게 사랑의 계명(말씀)이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법궤가 머문 집에 임한 축복의 진의는 확실해지고 맙니다. 오늘의 법궤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의 다른 이름과 같습니다. 마치 구약의 법궤가 '만군의 여호와 이름 으로 이름하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예수를 나타내는 또 다른 상징 적인 이름이 있다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머무는 개인의 영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민족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사랑의 대명사요, 용서의 대명사요, 영생의 대명사요, 구원의 대명사요, 복음의 대명사요, 축복과 승리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곤(기돈)의 타작마당에서 법궤 때문에 웃사는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오벧에돔은 이 법궤 때문에 자신과 가정과 그 모든 소유가 복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벧에돔은 법궤 때문에 웃사가 현장에서 천벌을 받는 것을 본 사람입니다. 웃사가 법궤 때문에 죽은 것을 알면서도 자기 집으로 그 법궤를 기꺼이 영접하는 그의 용기를 보십시오. 그것은 오벧에돔의 신앙입니다. 그는 그 법궤의 참 모습인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심이 곧 자기 집에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께서 임재하는 영광으로 본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그 법궤가 자기 집에 머무는 그 3개월은 아마 자기 생애 최고의 날들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궤 앞에서 생의 최고 의 충성을 다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어간에 그와 그의 가족들과 그의 소유들에게 크게 임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체험했습니다. 나 중에 그 법궤가 다윗성으로 옮겨진 후에, 그는 그 법궤가 보관되어 있는 성막의 수종자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대상 15:18). 이것은 법궤를 향한 오벧에돔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에서 오는 충성스럽고 겸손한 그의 행동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예수의 십자가에 대 한 절대적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구속적 신앙에서 출발하는 뜨거운 희생적 충성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 자신과, 그 가정과, 그 소유물에 여호와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주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형용하기에 불가한 마음으로 공식 설교 시간에 처음으로 감히 이 간증을 해 봅니다. 제가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고 다시 태어난 후, 예수의 종으로 사 명을 받아 사역에 나선 후 42년이 되는 지금까지 참으로 알게 모르게 받 은 은혜를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교역길에 나선 때가 1956년이었습니다. 그 어간에 남은 대학 교육과정과 신학교 졸업과 목사 안수(1967년)까지 11년 동안 네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했습니다. 제일 큰 사역이 주일학교와 S.F.
C., 청년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큰 교회라야 부역자를 남여 한 사람씩을 두는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을 그것이 복인 줄도 못 느끼고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볼 때 은혜와 축복이라기보다는 비참, 그 자체였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많았는 데, 저는 그 모든 것들을 감사로 감수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부분에는 확실한 축복의 열매를 맺어 당회장님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내가 받은 복이 아니고 그 당회장님의 목회의 복이었습니다. 제가 1967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대구서문로교회, 부산제일영도교회 그리고 서울에서 우리 경향교회를 개척하여 담임 목사로 긴 사역의 세월 을 보냈습니다. 대구서문로교회에서는 새 성전 신축의 기초 작업을 했습니다. 부산에서는 뜻밖에 확장되는 교세의 힘을 얻어 큰 성전을 지었는 데, 헌당예배를 앞두고 서울에서의 개척에 용단을 내렸습니다. 그 여러 축복들 중에 1 하나는 건강의 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몸이 아파서 주일 강단 설교를 못한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2 사역에 대 한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만나든 이것이 주의 뜻이라고 하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설교를 준비하는 즐거움과 고통입니다. 3 가는 곳마다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4 그리고 주 안에서 양육된 자녀의 복이었습니다. 5 더 크고 큰 축복은 저의 부 족과 연약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용서의 축복입니다. 인생의 연약보다는 주님의 사랑과 용서가 크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축복은 주님이 저에게 십자가적 구속 신앙의 은총을 주셨기 때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벧에돔이 복을 받은 비결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법궤가 머문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죄인들이 복받는 비결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지배하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 경향인 모두가 받은 이 크고 화려한 새 성전은 확실히 새 축복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허락하신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 집에는 십자가의 예표였던 구약의 법궤 가 아닌, 법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머물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이 집은 예수의 십자가만 신망하고, 십자가만 자랑하 고, 십자가만 증거하고, 십자가만 높여야 합니다. 확실히 법궤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머무시는 이 십자가의 새 집에 들어 오는 자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이 집에 들어오는 그 개인과 가정과 소유물들에 여호와의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복이 이웃 과 나라와 세계로 확산되기를 축원합니다.
 바로 세계 축복의 센터가 되 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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