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의 능력 (수3:14-17)
본문
법궤의 능력은 하나님 말씀의 힘이요, 기적을 이루는 창조의 힘이 그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궤를 언약궤라고 하는데 언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은 창조를 이루는 힘이 원동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법궤의 능력은 곧 법궤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법궤가 하나님이 아니라 법궤를 통해 인간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가를 이해 해야만 합니다. 눈에 보이는 법궤를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법궤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언약궤는 신약의 십자가의 예표중의 하나입니다. 예를들면 십자가의 능력은 십자가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길 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십자가를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법궤가 성막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십자가는 교회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릴려고 하는 것은 서론으로 법궤는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겠으며 본론으로 법궤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난 능력이 무엇인 가를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1. 법궤(언약궤)는 무엇입니까
(1) 법궤는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대상28:2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 건 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 할 재료를 준비하였노라" 다윗왕은 언약궤를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표현 하였는데 하나님의 발등상은 하나님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지체이고 하나님의 지체는 생명과 창조이며 능 력과 사랑입니다.
(2) 1 언약궤는 평안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대상6:31)2 언약궤를 향해 찬송을 돌려 보내야 합니다.(대상6:31) 위의 두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교회는 평안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법궤를 모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툼의 소리가 나서는 안되고 찬송 소리가 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언약궤에 거룩한 찬송소리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대상6:31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였노라" 언약궤는 고요하고 평안한 성막에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용사들이 불레셋과 싸 울 때 전쟁에 지고 있다고 하여 씨끄러운 전쟁터로 언약궤를 옮겨 놓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법궤와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드릴 때, 그 법궤(예수)가 축복의 근거가 될 것이요 축복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3) 성경에 하늘나라 성전에 언약궤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나라 성전은 지상 성전과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두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약궤, 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성전에 무슨 번개가 있고 지진이 있고, 우박이 있나라고 생각하실 분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번개, 지진, 우박은 하나님 능력을 상징한 것들인 것입니다. 지상 성전과 달리 하늘나라 성전은 이와같이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항상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어느 고등 비평가는 말하기를 법궤는 특수한 원자로를 가진 송수신기"라고 말합니다. 즉 법궤는 고도의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졌지만 법궤 안에는 하나님이 고도의 과학적인 기구를 숨기 셨다고 말합니다. "웃샤"가 법궤에 손을 대었을 때 죽은 것도 또한 다곤신이 궤 앞에서 쓸어진 것도 잘못 건드리므로서 방전함으로, 전기가 흘러 나옴으로 그런 비극이 일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격하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 름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것을 과학의 눈으로 보면 안됩니다.영안을 열고,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사랑 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올시다. 인류의 과학 수준이 법궤와 같은 능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법궤를 과학의 눈 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상 그것이 하나님의 과학이라 하더라도 신앙인의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 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불트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 신화화 할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고 주장합니다. 과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생명의 문제는 초과학으로 볼 때만이 즉 심령적으로 보아야 해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언약궤는 성경에 어떤 능력으로 나타났습니까
(1) 법궤는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수3장14-17절까지 보면 요단강이 법궤로 인하여 갈라졌는데 홍해가 갈라 질 때와 마찬가지로 마른 땅이 되었으며 한 쪽으로나마 물이 벽이 되어 쌓였습니다. 1 법궤는 앞길을 열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혹시 인생의 장애물로 인해 전진을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법궤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능력은 여러분의 인생 장애물을 제거해 줍니다. 십자가는 신약의 법궤입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앞길이 열려져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다 건널 때 까지 언약 궤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강 중심에서 제 위치를 지키고 굳게 서 있었습니다. 언약궤가 요단강의 중심을 떠나지 아니할 때 계속 요단강은 열려져 물이 흘러오 지 못했습니다. 영안을 볼 때 요즘 교회들도 언약궤를 멘 교역자(제사장)들이 제 위치를 잃고 자 리를 떠나면 성도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가기 전에 세속의 물이 성도들을 뒤 덮어 서 천국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 법궤가 요단강 중앙에 서있는 것은 시대적 중심임을 나타내며 신령한 법궤 가 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중심점에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시 대적, 역사적 중심은 심판의 중심과 같은 의미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섰던 요단강 중앙에서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돌 을 취하여 기념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건너간 뒤 맨 나중에 열 두개의 돌을 매 지파 대표들이 들고 나오면서 그 뒤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뒤따라 나오자마자 물이 원래대로 흘렀습니다. 제사장들은 법궤를 메고 제일 먼저 요단강에 들어가고 맨 나중에 철수 하였습니다.
(2) 법궤인 언약궤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었습니다.(수6:1-21) 50일 여리고 함락작전 기도회에 법궤를 앞세우고 기도했습니까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했습니까 십자가 능력을 앞세우고 기도할 때 공산주의 평양의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법궤없는 여리고 함락작전은 실패요 무기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수6: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 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양각나팔을 든 7명의 제사장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 그리고 무장한 군인들이 간 접적으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때 협조를 했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역사한 것은 법궤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등 비평가들에 의하면 초음파를 강하게 증폭하면 콘크리트 벽이라고 무너뜨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음파 소리를 은폐하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소 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팔을 불게 했고 백성이 소리지르도록 했다는 것 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벽이 무너진 것이지 과학적인 초 음파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성경을 부정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으면서 그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임을 인정할 때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법궤는 대적을 물리칩니다. 마음 속에 있는 신령한 법궤로 우리들의 대적인 사단의 생각을 물리칩시다. 마음 속에 있는 신령한 십자가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단의 요새를 깨뜨립시다. 기적의 힘, 생명의 힘의 근거인 법궤를 앞세우고 성령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합시다. 여리고성의 주위를 무장한 군인들이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갈 때 적군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여리고성을 돌았어도 싸움은 하나님 이 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무장을 한다고 해서 무장을 한 우리들이 마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아멘! "하나님이 싸워 주시겠지"하고 안일한 생각을 하고 무장을 안한다면 하나님의 역 사는 안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준비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순종과 인내를 가지고 법궤 중심의 생활을 할 때 대적의 성이 무너졌습니다. 명령에 따른 순종의 생활이 7일간이나 계속한 것은 인내입니다. 3 마지막 날 7일째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성을 돌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것은 7번을 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일에는 한번이지만 7 일째는 7번을 돌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였습니다. 새벽에 여리고성이 무너져서 여리고 함락작전 기도회를 새벽에 갖게 된 것입니다.
4 제사장이 어께에 법궤를 메고 있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어께에 법궤를 메고 있는 상태에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교역자들이 자기 책 임과 이에 따른 사명을 다할 때 교회의 대적이 물러갑니다. 무겁다고, 힘들다고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법궤를 내려놓고 "에라 모르겠다"라고 하는 식으로 했다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3) 법궤는 우상을 깨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삼상5:1-5) 1 법궤를 불레셋 사람들이 뺏어다가 다곤의 신당에 있는 다곤이라고 부르는 우상 곁에 두었는데 아스돗 사람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신당에 들어가 보니다곤 신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세워 놓고 그 다음날 가보니 이번에는 머리와 두 손목이 짤려셔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그 크신 권능으로 거짓 신인 우상의 세력을 무너뜨립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적 그리스도 우상의 세력을 무너뜨릴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2 불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벧세메스로 갈 때 그 수레에 금쥐 다섯개와 금 독종 다섯개가 달려있는 상자와 함께 실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벧세메스 사람 5만 70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법궤에 대한 불경죄입니다. 법궤를 수레에 실은 것도 잘못이요, 게다가 우상과 함께 법궤를 실은 것은 더 큰 잘못이요, 게다가 또 법궤를 들여다 보았으니 그것은 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5만70명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법궤는 우상과 함께 둘 수 없습니다. 법궤가 우상을 깨뜨린 것처럼 신약의 법궤인 십자가의 능력은 우상을 깨뜰릴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의 승리가 드러나게 될 때 모든 우상 종교는 말살되어 무저갱 에 던지움을 받을 것입니다. 한 나라에 우상종교가 득세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우상종교는 불교, 천주교, 흰두교, 유교등등입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득세하는 나라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4) 법궤는 축복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삼하6:10)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법궤를 어떻게 모시느냐에 따라서 축복이 되기도 하고 오히 려 역효과를 거두어 저주라기 보다는 축복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벳세메스에서 법궤에 대한 불경죄로 인하여 5만 70인이 죽는 대 사건이 발생하자 그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두었습니다. 1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는 그 집에 축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이 제 왜 그런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했습니다. 요는 잘 섬기지 않고 지키기만 했다는 데 축복을 받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 약시대인 오늘날도 주일을 지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삼상7장2절에 보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 라그런고로 법궤를 둔 아비나답의 집이 축복을 받았더라"고 하는 내용은 없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 성으로 옮기기 위해 아비나답의 집에서 수레에 싣고 나오다가 아비 나답의 아들 "웃샤"가 쓰러지는 수레를 뒤에서 바칠려고 했다가 즉사해 죽고 말 았습니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있었지만 법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수레에 싣고 그 집에서 나온 것을 보면 법궤에 대해서 무식했던 사실을 잘 입증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2 오벧에돔의 집에 있는 법궤는 그 집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능력으로 역사 했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은 법궤를 부정적인 안목으로 보고 그저 지키기만 했습니다. 그러니 20년이 지나도록 축복을 받지 못하고 결국 아들 웃샤만 죽는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를 집에 둔 것이 아니라 모시고 섬긴 것입니다. 그 결과 섯달 만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삼하6:11) 여러분!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분들은 축복을 받는데 어떤 분들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비나답의 집처럼 부정적인 안목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믿으면 20년을 믿어도 소 용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오벧에돔의 집처럼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섬김과 봉 사의 도리를 다하면서 진실로 믿는 가정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여러분들 가정에 신약의 법궤 십자가가 있으면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 부 담이 된다고 십자가 지기를 피한다면 축복의 근거는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업을 위해 십자가를 진다면 축복의 그 날이 반들시 오게 됩니다. 법궤를 정성껏 섬긴 오벧에돔의 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부탁드리나이다. 아멘! 나 진균목사 설교 (홍남감리교회) 서대문지방
왜냐하면 법궤를 언약궤라고 하는데 언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은 창조를 이루는 힘이 원동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법궤의 능력은 곧 법궤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법궤가 하나님이 아니라 법궤를 통해 인간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신가를 이해 해야만 합니다. 눈에 보이는 법궤를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법궤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언약궤는 신약의 십자가의 예표중의 하나입니다. 예를들면 십자가의 능력은 십자가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길 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십자가를 볼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법궤가 성막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십자가는 교회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릴려고 하는 것은 서론으로 법궤는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겠으며 본론으로 법궤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난 능력이 무엇인 가를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1. 법궤(언약궤)는 무엇입니까
(1) 법궤는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대상28:2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 건 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 할 재료를 준비하였노라" 다윗왕은 언약궤를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표현 하였는데 하나님의 발등상은 하나님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지체이고 하나님의 지체는 생명과 창조이며 능 력과 사랑입니다.
(2) 1 언약궤는 평안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대상6:31)2 언약궤를 향해 찬송을 돌려 보내야 합니다.(대상6:31) 위의 두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교회는 평안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법궤를 모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다툼의 소리가 나서는 안되고 찬송 소리가 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언약궤에 거룩한 찬송소리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대상6:31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였노라" 언약궤는 고요하고 평안한 성막에 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 용사들이 불레셋과 싸 울 때 전쟁에 지고 있다고 하여 씨끄러운 전쟁터로 언약궤를 옮겨 놓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법궤와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드릴 때, 그 법궤(예수)가 축복의 근거가 될 것이요 축복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3) 성경에 하늘나라 성전에 언약궤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나라 성전은 지상 성전과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두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약궤, 번개, 음성, 뇌성, 지진, 큰 우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성전에 무슨 번개가 있고 지진이 있고, 우박이 있나라고 생각하실 분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번개, 지진, 우박은 하나님 능력을 상징한 것들인 것입니다. 지상 성전과 달리 하늘나라 성전은 이와같이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항상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어느 고등 비평가는 말하기를 법궤는 특수한 원자로를 가진 송수신기"라고 말합니다. 즉 법궤는 고도의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졌지만 법궤 안에는 하나님이 고도의 과학적인 기구를 숨기 셨다고 말합니다. "웃샤"가 법궤에 손을 대었을 때 죽은 것도 또한 다곤신이 궤 앞에서 쓸어진 것도 잘못 건드리므로서 방전함으로, 전기가 흘러 나옴으로 그런 비극이 일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격하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 름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것을 과학의 눈으로 보면 안됩니다.영안을 열고, 과학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사랑 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올시다. 인류의 과학 수준이 법궤와 같은 능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법궤를 과학의 눈 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상 그것이 하나님의 과학이라 하더라도 신앙인의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 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불트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 신화화 할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고 주장합니다. 과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생명의 문제는 초과학으로 볼 때만이 즉 심령적으로 보아야 해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언약궤는 성경에 어떤 능력으로 나타났습니까
(1) 법궤는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수3장14-17절까지 보면 요단강이 법궤로 인하여 갈라졌는데 홍해가 갈라 질 때와 마찬가지로 마른 땅이 되었으며 한 쪽으로나마 물이 벽이 되어 쌓였습니다. 1 법궤는 앞길을 열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혹시 인생의 장애물로 인해 전진을 못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법궤와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능력은 여러분의 인생 장애물을 제거해 줍니다. 십자가는 신약의 법궤입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앞길이 열려져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다 건널 때 까지 언약 궤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강 중심에서 제 위치를 지키고 굳게 서 있었습니다. 언약궤가 요단강의 중심을 떠나지 아니할 때 계속 요단강은 열려져 물이 흘러오 지 못했습니다. 영안을 볼 때 요즘 교회들도 언약궤를 멘 교역자(제사장)들이 제 위치를 잃고 자 리를 떠나면 성도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가기 전에 세속의 물이 성도들을 뒤 덮어 서 천국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2 법궤가 요단강 중앙에 서있는 것은 시대적 중심임을 나타내며 신령한 법궤 가 되신 그리스도는 역사적 중심점에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시 대적, 역사적 중심은 심판의 중심과 같은 의미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섰던 요단강 중앙에서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돌 을 취하여 기념으로 삼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건너간 뒤 맨 나중에 열 두개의 돌을 매 지파 대표들이 들고 나오면서 그 뒤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뒤따라 나오자마자 물이 원래대로 흘렀습니다. 제사장들은 법궤를 메고 제일 먼저 요단강에 들어가고 맨 나중에 철수 하였습니다.
(2) 법궤인 언약궤는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었습니다.(수6:1-21) 50일 여리고 함락작전 기도회에 법궤를 앞세우고 기도했습니까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기도했습니까 십자가 능력을 앞세우고 기도할 때 공산주의 평양의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법궤없는 여리고 함락작전은 실패요 무기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수6: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 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양각나팔을 든 7명의 제사장과 언약궤를 멘 제사장, 그리고 무장한 군인들이 간 접적으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때 협조를 했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역사한 것은 법궤를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등 비평가들에 의하면 초음파를 강하게 증폭하면 콘크리트 벽이라고 무너뜨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음파 소리를 은폐하기 위하여 즉 하나님의 소 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팔을 불게 했고 백성이 소리지르도록 했다는 것 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벽이 무너진 것이지 과학적인 초 음파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은 성경을 부정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으면서 그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임을 인정할 때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법궤는 대적을 물리칩니다. 마음 속에 있는 신령한 법궤로 우리들의 대적인 사단의 생각을 물리칩시다. 마음 속에 있는 신령한 십자가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단의 요새를 깨뜨립시다. 기적의 힘, 생명의 힘의 근거인 법궤를 앞세우고 성령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합시다. 여리고성의 주위를 무장한 군인들이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갈 때 적군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여리고성을 돌았어도 싸움은 하나님 이 하셨습니다. 성령님으로 무장을 한다고 해서 무장을 한 우리들이 마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아멘! "하나님이 싸워 주시겠지"하고 안일한 생각을 하고 무장을 안한다면 하나님의 역 사는 안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준비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순종과 인내를 가지고 법궤 중심의 생활을 할 때 대적의 성이 무너졌습니다. 명령에 따른 순종의 생활이 7일간이나 계속한 것은 인내입니다. 3 마지막 날 7일째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성을 돌았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것은 7번을 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일에는 한번이지만 7 일째는 7번을 돌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였습니다. 새벽에 여리고성이 무너져서 여리고 함락작전 기도회를 새벽에 갖게 된 것입니다.
4 제사장이 어께에 법궤를 메고 있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어께에 법궤를 메고 있는 상태에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교역자들이 자기 책 임과 이에 따른 사명을 다할 때 교회의 대적이 물러갑니다. 무겁다고, 힘들다고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법궤를 내려놓고 "에라 모르겠다"라고 하는 식으로 했다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3) 법궤는 우상을 깨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삼상5:1-5) 1 법궤를 불레셋 사람들이 뺏어다가 다곤의 신당에 있는 다곤이라고 부르는 우상 곁에 두었는데 아스돗 사람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신당에 들어가 보니다곤 신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세워 놓고 그 다음날 가보니 이번에는 머리와 두 손목이 짤려셔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그 크신 권능으로 거짓 신인 우상의 세력을 무너뜨립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적 그리스도 우상의 세력을 무너뜨릴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2 불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벧세메스로 갈 때 그 수레에 금쥐 다섯개와 금 독종 다섯개가 달려있는 상자와 함께 실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벧세메스 사람 5만 70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법궤에 대한 불경죄입니다. 법궤를 수레에 실은 것도 잘못이요, 게다가 우상과 함께 법궤를 실은 것은 더 큰 잘못이요, 게다가 또 법궤를 들여다 보았으니 그것은 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5만70명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법궤는 우상과 함께 둘 수 없습니다. 법궤가 우상을 깨뜨린 것처럼 신약의 법궤인 십자가의 능력은 우상을 깨뜰릴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십자가의 승리가 드러나게 될 때 모든 우상 종교는 말살되어 무저갱 에 던지움을 받을 것입니다. 한 나라에 우상종교가 득세하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우상종교는 불교, 천주교, 흰두교, 유교등등입니다. 천주교와 불교가 득세하는 나라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4) 법궤는 축복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삼하6:10)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법궤를 어떻게 모시느냐에 따라서 축복이 되기도 하고 오히 려 역효과를 거두어 저주라기 보다는 축복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벳세메스에서 법궤에 대한 불경죄로 인하여 5만 70인이 죽는 대 사건이 발생하자 그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를 두었습니다. 1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법궤는 그 집에 축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이 제 왜 그런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했습니다. 요는 잘 섬기지 않고 지키기만 했다는 데 축복을 받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 약시대인 오늘날도 주일을 지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삼상7장2절에 보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 라그런고로 법궤를 둔 아비나답의 집이 축복을 받았더라"고 하는 내용은 없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다윗 성으로 옮기기 위해 아비나답의 집에서 수레에 싣고 나오다가 아비 나답의 아들 "웃샤"가 쓰러지는 수레를 뒤에서 바칠려고 했다가 즉사해 죽고 말 았습니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있었지만 법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수레에 싣고 그 집에서 나온 것을 보면 법궤에 대해서 무식했던 사실을 잘 입증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2 오벧에돔의 집에 있는 법궤는 그 집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능력으로 역사 했습니다. 아비나답의 집은 법궤를 부정적인 안목으로 보고 그저 지키기만 했습니다. 그러니 20년이 지나도록 축복을 받지 못하고 결국 아들 웃샤만 죽는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집은 법궤를 집에 둔 것이 아니라 모시고 섬긴 것입니다. 그 결과 섯달 만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삼하6:11) 여러분!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데 어떤 분들은 축복을 받는데 어떤 분들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비나답의 집처럼 부정적인 안목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믿으면 20년을 믿어도 소 용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오벧에돔의 집처럼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섬김과 봉 사의 도리를 다하면서 진실로 믿는 가정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여러분들 가정에 신약의 법궤 십자가가 있으면 축복의 근거가 됩니다. 부 담이 된다고 십자가 지기를 피한다면 축복의 근거는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사업을 위해 십자가를 진다면 축복의 그 날이 반들시 오게 됩니다. 법궤를 정성껏 섬긴 오벧에돔의 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부탁드리나이다. 아멘! 나 진균목사 설교 (홍남감리교회) 서대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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