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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을 것 벗고 입을 것 입자 (롬13:11-14)

본문

마지막 주일 낮 예배를 드리고 있다. 송년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 앞에 다짐했던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다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정말로 한해를 정리해야만 한다. 올 한해에 죄악된 더러운 모습 가지고서 새해를 맞이할 수는 없다. 성경은 (마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 오늘 성경 본문은 버릴 것은 벗고 입을 것을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 우리가 버려야 하는가 버리지 아니고서는 새로운 것을 입을 수 없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다면 누더기 옷을 버려야 만이 새 옷을 입을 수 있다. 더러운 음식이 담어진 그릇이라면 버려야 만이 새로운 음식을 담을 수 있다. 한 해에 우리의 심령이 알게 모르게 더러워 졌다. 이제 우리는 이 더러운 심령의 그릇 속에 든 더러운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신령한 것들로 다시 새롭게 채워야만 할 것이다. 오늘 본문은 버려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있다. 또 입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고있다. 오늘 우리는 버리지 아니하면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없다는 이 진리 앞에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모두 비우고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것들로 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입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온전한 모습으로 대망의 99년도를 맞이하자. 첫 번째:어두움의 일을 벗자 ! (12-13절) =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 어두움의 일을 벗으라고 했다. 일이라는 말씀을 놓치지 말자. 그 어두움의 일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방탕술 취함음란호색쟁투시기" 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육적인 자들이 누리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어두움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어두움" = 마귀에 속에 있는 세계다. "어두움의 일" = 마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방탕 = 흥청망청 쾌락을 위해서 무절제하며 사는 삶. 술취함 = 육체적 쾌락을 위해서 사는 삶 음란 =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사는 것 호색 = 삶 자체가 여자에 빠져서 사는 삶이다. 쟁투 = 다툼. 분쟁을 의미한다 시기 = 시샘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런 6가지 육적인 일은 곧 어둠에 속한 자가 하는 짓들이다. 이러한 일들을 우리는 이제 벗어 버려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육을 입고 사는 우리가 육을 위해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라면 우리는 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 예수를 믿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했다면 우리는 육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영을 위해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방탕한 삶을 사는 자들을 보라! 저들이 영을 위해 사는 자들인가 방탕하게 사는 자의 삶의 끝을 우리는 주위에서 보게되는데 그들은 육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끝을 보게된다. 방탕하게 산 자가 잘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며칠 전 개그맨이었던 사람이 필리핀에서 귀국했는데 그 사람은 도박으로 10억의 빛을 지고 귀국하지 못하고 필리핀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이번에 귀국했다.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불쌍했다. 육적 방탕도 결국은 비참하지만 영적 방탕은 더욱 비참하다. 우리가 이 한해 육적으로는 방탕한 삶을 살지는 안했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방탕한 삶을 살아오지는 안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영적으로 방탕한게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교회에 열심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면 영적으로 방탕하며 살아온 자이다 우리는 이제 이 방탕한 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방탕한 옷을 입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되지 못할 것이다. 술 취하며 사는 삶도 벗어 던져야 한다 이 술취함은 꼭 먹는 술만 의미하는게 아니다 육적인 술에 취해서 살아가는 자들의 말로가 비참하듯이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먹는 술은 안 먹은다 하드래도 세상 쾌락을 좇으며 세상 것들에게 취해서 살아가는 자는 술 취하며 살아가는 자와 다름없는 것이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음란하고 호색한 삶도 육적으로 성적인 면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보다도 세상을 더 좋아한다면 우리는 음란한 자들이다.
예수를 이용해서 세상 것을 추구하고 예수를 이용해서 나를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는 호색한 자들이다. 예수와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신랑으로 여기고 살수 없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신부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 되심을 믿으십니까 이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예수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면 이제 우리는 벗어 던져야 한다 분쟁과 시기의 옷도 이제는 벗어 던져야 한다. 분쟁과 시기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은 우리에게 죄를 잉태시킨다. 욕심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육적인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롬8:12)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 예수를 믿고 있다면 육신에 져서 육신이 이끄는 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우리가 육신을 위해 사는 것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영을 위해 살지 못한다 영을 위해 살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다 (롬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육을 위해 사는 것은 곧 어두움의 일을 쫓으며 사는 것이다. 어두움을 쫓고 사는 자가 어찌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아니하겠는가 이제 우리는 육을 쫓고 사는 이러한 일을 벗어 던져야 한다 육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육을 쫓지 말라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육을 위해 사는 자가 어떤 자이고 어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다면 우리는 이제 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육신을 쫓으며 사는자는 잠간의 쾌락은 누릴지 몰라도 그 후에는 너무나 비참한 곳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시대보다도 이제 영적인 자가 절실히 필요 할 때다. 육적인 자와는 예수님은 함께 일할 수 없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 지금도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세상을 좇고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예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의 아비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 우리는 세상을 좇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영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두 번째:빛의 갑옷을 입자 !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 세상적인 더러운 옷을 벗었으면 이제 반드시 입어야 할 옷이 있다. 그 옷은 보통 옷이 아니다. 갑옷이다. 그것도 그냥 갑옷이 아니라 빛의 갑옷이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세상과의 싸움을 의미하고 있다. 이 옷을 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더러운 옷을 벗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더러운 삶을 살수 밖에 없다.
 빛의 갑옷 =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의미한다. 갑옷 =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갈 때 입은 옷이다. 옷을 무엇을 의미한가 =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터 가운데 살고있다.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이 싸우는 가운데서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우리의 싸울 상대는 저 어둠의 세력이다. 그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빛의 갑옷을 반드시 입어야만 승리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저 어둠의 세력에 속수무책 당하고만 살고있다. 마귀의 세력들은 지금도 우리를 노리고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미혹하고 쳐들어오는데 우리는 너무 영적인 세계에 민감하지 못해서 마귀에게 당하면서도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리는 어둠의 일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수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고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싸움에서 마귀에게 매번 패배하고 있다. 마귀와의 싸움은 이미 끝난 싸움이다. 예수께서 2000년 전 십자가 위에서 사단에게 무장 해제 시켰고 사단의 머리를 박살 내었다. 예수님의 일방적인 승리로 싸움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귀에게 매번 패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안 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안 했다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예수 믿는 행위를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입니까 믿음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며 사는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의 행위가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예수의 옷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약2:17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믿음을 행할 수 없고 믿음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우리가 믿음의 행위를 보이고 믿음을 나타낼 때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빛의 갑옷을 입게 되는 시간이다. 성도 여러분 !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믿음을 보이고 나면 나도 모르는 새 힘이 우리의 심령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느낄 것이다. 그 힘은 아무리 감정이 둔한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타난다 맞습니까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나면 우리의 심령 속에서 묘한 새 힘이 솟아납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정성 들여 드리고 나면 내 영혼이 새 힘이 솟구친다. 억지로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면 이런 마음이 없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면 신기한 힘이 나타난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이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직장. 가정에서 피곤한데도 주일날 봉사하면 일주일 동안 더 새 힘이 나온다. 제가 평신도 때 직장 다니면서 금요 철야를 하고 첫 버스 타는 시간까지 2시간 교회에서 잠깐 눈 붙이고 직장에서 나가서 일해도 오히려 피곤을 몰랐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믿음의 행함을 보일 때 바로 그 시간에 주님은 우리에게 빛의 갑옷을 입혀주신다. 금요 철야하고 교회 문을 열고 나갈 때 마귀가 떼거리로 몰려와도 이길 것 같은 마음들 느껴 보았습니까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하고 내려오면 지나가는 병자들 다 붙잡고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날것 같은 마음 느껴 보았습니까 왜 그런 담대함이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집니까 믿음을 보이니까 주님께서 빛의 갑옷을 주었기 때문이다.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바로 빛의 갑옷이다.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는 빛의 갑옷을 반드시 입어야만 한다. 이 빛의 갑옷만 입고 있으면 세상의 어떤 더러운 세력이 우리를 미혹하고 넘어뜨린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날 것이다.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왜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시험받아서 실족되어서 일어나지 못하는가 결론적으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빛의 갑옷을 안 입었기 때문에 실족해 버린다. 이제 우리는 한해를 보내면서 종교인이라는 형식과 외식 적인 옷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빛의 옷이다. 이 옷을 입은 자만이 그리스도인이다. 빛의 갑옷을 입은 자만이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다.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다.    더욱 믿음으로 살려고 한다. 빛의 갑옷을 입으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된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빛의 갑옷 입기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쉬울 수도 있고 아주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의 믿음의 행위만 보이면 주님의 그냥 빛의 갑옷을 입혀 주신다. 그러나 이 믿음의 행위를 보이기가 쉽습니까 쉬운 자들에게는 죽 먹듯이 쉽지만 . 어려운 자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어려워도 믿음의 행함을 보이기만 하면 빛의 갑옷을 주님이 주시니까 이빨 악물고 행해보시기 바랍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나서 내가 그렇게 어려워서 못했던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올 것이다. 세상 옷도 새 옷 입을려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아내들은 옷 한번 남편에게 얻어 입을려고 아마 애교 좀 떨고 할 것이다. 그런가요 얼마 전 사모하고 어느 목사님 부부를 만났는데 그 사모 말씀이 우리 목사님은 자기 옷 한번 사주지 안 했다고 말하더군요. 저도 사모 옷 사준 적이 별로 없었지만 사모가 입고있는 치마 만원 짜리도 내가 사주었다고 자랑했다. 세상 옷도 입는 것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의 갑옷도 입는 것 그렇게 쉽지 않다. 이 옷은 보통 옷이 아니라 갑옷이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 세상 옷보다 더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이 빛의 갑옷이다. 우리가 믿음만 보이면 주님이 직접 "애야 자 팔을 벌려라 " 하시면서 우리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는 모두 빛의 갑옷을 걸치고 힘있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이제는 깨어 날 때다.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 이니라 " 왜 우리가 더러운 것들을 벗어 던져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가 때 가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무슨 때인가 주님의 오실 날이 가까워 오고있기 때문이다. (마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시기 = (카이로스) = 결정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즉 주님의 재림을 뜻한다. "자다가 깰 때처음 믿을때 보다" 때 = (호라) = 특별히 지정된 시간을 의미한다. 주님의 재림이 정해진 그 시간을 뜻한다. 본문은 주님의 재림이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임할 그 날이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에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재림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란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의 최대의 소망이요 기쁨이다. 물론 주님의 재림은 무섭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결코 그런 날이 안될 것이다. 주님의 재림을 무섭게 가르치고 두렵게만 가르친다면 잘못된 가르침이고 성경적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 한번씩이라도 "주님 어서 오시 옵소서"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 늦게 오시 옵소서" 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이 땅에 너무 미련이 많기 때문이다. 마24:48 =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왔으면 생각한다고 주님이 말씀. 위대한 종들은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주님 어서 오시 옵소서" 하는 신앙생활을 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하늘에 이상한 구름만 떠도 주님이 오시는가바 했다. '찬양'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초대 교회 성도들이 모두 "마라나다" 신앙을 가졌다. 왜 우리에게 재림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1. 이제 때가 너무 가까워 오고 있기 때문이다. 99년도에는 세상은 더욱 급변 할 것이다. 육적으로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세상이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더욱 육의 쾌락을 위해 마음껏 즐기며 살 것이다. 어린아이도 노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가 육을 입고 있는데 왜 저들처럼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들처럼 같이 산다면 우리들도 저들이 당하는 멸망과 심판을 받고 말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상 유혹과 미혹을 이기기 위해서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신 것이다.
2. 재림 신앙을 가지면 날마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 삶을 돌아보고 잘못된 것들을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죄와 담을 쌓게 될 것이다. 재림의 그 날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날을 알기때문에 하루하루 삶을 경건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3. 재림 신앙을 가지면 이 땅에 소망보다도 하늘에 더 소망이 있다. 이 땅에서 좀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원망하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바라보면서 인내하고 참고 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한 오백년 살 줄로 착각하고 살고있다. 예수 믿는 자들마져도 이 땅에 왜 마음을 뺏기고 사는가 재림 신앙이 심령 속에 자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림 신앙은 곧 능력이다.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죽음 앞에서도 사망 권세에 소리칠 수 있었는가 바울은 재림 신앙이 충만한 자였다. (고전15:55) 사망아 !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바울 서신을 보면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이 분명한 사실을 우리가 잊고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신앙도 적당주의가 되어 버린다. 이제 우리는 깨어 날 때이다. 깨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단장된 신부된 모습을 가져야 한다. ' 예 화 ' 80년대에 이 땅에 중동 붐이 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중동 땅에 돈을 벌러 갔다. 중동지역에 나가서 건설에 참여한 한 남편을 둔 여인이 있었다. 1년동안 떨어져 있던 남편이 돌아온다는 편지가 날라왔다. 편지를 받은 여인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노래지고 경색되었다. 왜 그럴까 그 여인은 남편이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춤바람이 나서 제비족에게 돈을 다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부정한 여인에게 남편이 다시 온다는 것은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어느 여인은 중동에서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받고 가슴을 설레이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시장을 보아다 김치를 새로 담그고 별식을 만들고 각종 요리 준비를 갖추고 이부자리도 깨끗이 빨고 집안도 대청소하고 귀국일 하루 전엔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볶으고 하루가 왜 그리도 안 가는지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남편을 기다렸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 두 여자의 모습에서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로써 어떤 여자 모습입니까 역사적으로 주님의 재림은 분명히 이 땅에 임할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시간표 대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의 생애에 있을지도 모르는 주님의 재림을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 날과 그 시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빛의 갑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살전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 그러나 어둠 속에서 세상과 짝하고 사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할 것이다. (살전5:2-3)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급변하는 세상 속의 거대한 물살에 떠내려가는 자들이 되지 마시고 재림 신앙으로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며 승리하는 자들이 되길 축원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 아침이 오듯이 이제 98년도의 어두웠던 한해는 몇 일을 남겨 놓지 아니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망의 99년도를 또 허락해 주셨다. 98년도에 잘못된 삶을 살아 왔다면 이제 우리는 벗어 던지자 어두움의 일들을 저지르면서 살아 왔다면 이제 그 더러운 누더기 옷. 죄악의 옷. 마귀가 준 옷을 미련 없이 벗어 던져 버리자. 더 좋은 옷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한해동안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면 이제 주님이 주신 빛의 갑옷을 입고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 믿는 자가 아니라 믿음 있는 자가 되자. 예수님은 믿는 자는 찾지 아니하신다. 예수님은 믿음 있는 자를 찾으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빛의 갑옷을 입혀 주실 것이다. 99년도에는 마귀가 더 발악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빛의 갑옷을 입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그날까지 어떤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이 옷만은 벗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빛의 갑옷을입은 자는 주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것이다.    믿음을 보이지 아니하고는 살수 없다. 빛의 갑옷을 입은 자는 교회를 위해서 살아갈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 12절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 14절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이제 우리 모두 새 날을 향해 빛의 갑옷을 입고 담대히 세상 속으로 나아가자. =오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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