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중의 법을 따라 살라 (약2:8-13)
본문
1. 사람들은 좋든 나쁘든 나름대로의 삶의 원리와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삶이 어떤 원리와 규칙을 따르든 간에 모두 다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1:28 이하에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은 온갖 범죄 가운데 빠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어느 사람은 의롭고 어떤 사람은 불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하고, 또한 복음의 진리를 좇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법 중의 법 구원받은 우리는 자기 나름의 삶의 원리와 규칙 대신에, 말씀에 근거한 삶의 원리와 규칙을 정하여 살아야만 합니다. 야고보는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경은 레위기 19:18을 가리키는 것이며, 예수님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중 두 번째 것으로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이웃 사랑이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 사랑이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을 최고한 법, 법 중의 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한글 사전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 개념을 동족까지로 확대하여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0:29에 기록된바 이웃에 대한 우리 주님의 해석은 아주 독특합니다. 즉,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 동족인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이웃이 아니라, 그를 도와 준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원수 관계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주님의 가르침은 대단히 충격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웃이란 곁에 있는 사람도 같은 핏줄의 사람도 아니라,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적이냐 벗이냐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소극적인 의미의 이웃이고, 누구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적극적인 의미의 이웃입니다. 여러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이웃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간에, 힘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원수라 할지라도, 그는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이웃입니다. 물론, 믿음이 없는 자연적 이성과 감정으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수를 이웃으로 여겨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모셔들이고, 그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5의 말씀처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풍성히 받은 성도라면, 바로 그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흔히 생각하듯, 사랑이란 손해보는 길도 망하는 길도 아닙니다. 오히려 미움과 증오가 손해보는 길이요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도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기 자신이 먼저 손해보거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살리는 사랑이란 자기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앞을 바라보기가 힘들 정도로 무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몇 시간 동안을 힘겹게 걷다가, 그만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지쳐서 도저히 내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어. 조금만 자고 나면 계속 걸어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죽음의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자기를 걸려 넘어지게 한 물체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눈 속에 묻혀 있던 사람의 맥박이 뛰는 것을 확인하고는, 축 늘어진 그 사람을 어깨에 걸쳐 맸습니다.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죽을 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헤쳐 나갔습니다. 땀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다행히 얼마 안 가서 오두막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가 살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인간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말씀 중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자신과 이웃을 살리는 길이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은사와 은혜, 영의 복과 재물의 복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의 방편, 사랑의 도구로 쓰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결코 자기 만족이나 자만을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복은 다 사랑의 빚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6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3. 율법 위반 그러한 사랑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당시의 교회가 행하고 있던바 가난한 교인에 대한 멸시와 부자에 대한 아첨은 용납될 수 없는 죄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차별 대우하는 것은, 이웃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며, 따라서 율법이 범죄자로 판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위대한 원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의 한 계명만 위반하여도, 그는 범법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유대인은 율법을 일련의 독립된 명령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명령 중 하나라도 지키면 채권을 얻는 것이고, 하나라도 범하면 빚을 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듯이, 계명을 지키는 경우에는 가산하고, 계명을 어기는 경우에는 공제했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킨 것이 더 많으면 그만큼 더 보상을 받고, 어긴 것이 더 많으면 그만큼 더 벌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러한 율법관을 정면으로 배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율법의 한 계명만 어기면 율법 위반자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지켰어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구원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4. 자유의 율법을 따라 살라 복음을 믿어 죄와 자아, 율법과 세상,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더 이상 양심 또는 율법의 문자적 계명에 얽매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든 속박에서 구원받게 한 자유의 율법인 복음을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언행을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핵심인 사랑의 주님을 좇아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마음가짐과 언행이 복음의 진리를 따르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이 모든 삶의 동기와 목적이 되기 바랍니다. 자유의 율법인 복음을 좇아 사랑의 원리로 살라고 한 야고보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5. 맺음말 이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모든 삶을 청산하고, 최고의 법이요 자유의 율법인 복음의 진리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예배에 힘써 참석하고, 십일조와 감사 예물을 드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십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형제와 그 밖의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여겨 사랑하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삶이 어떤 원리와 규칙을 따르든 간에 모두 다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1:28 이하에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은 온갖 범죄 가운데 빠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어느 사람은 의롭고 어떤 사람은 불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하고, 또한 복음의 진리를 좇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법 중의 법 구원받은 우리는 자기 나름의 삶의 원리와 규칙 대신에, 말씀에 근거한 삶의 원리와 규칙을 정하여 살아야만 합니다. 야고보는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경은 레위기 19:18을 가리키는 것이며, 예수님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중 두 번째 것으로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이웃 사랑이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참된 이웃 사랑이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을 최고한 법, 법 중의 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한글 사전에는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유대인들은 그 개념을 동족까지로 확대하여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0:29에 기록된바 이웃에 대한 우리 주님의 해석은 아주 독특합니다. 즉,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 동족인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이웃이 아니라, 그를 도와 준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원수 관계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주님의 가르침은 대단히 충격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웃이란 곁에 있는 사람도 같은 핏줄의 사람도 아니라,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적이냐 벗이냐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소극적인 의미의 이웃이고, 누구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적극적인 의미의 이웃입니다. 여러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이웃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간에, 힘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원수라 할지라도, 그는 우리가 사랑해 주어야 할 이웃입니다. 물론, 믿음이 없는 자연적 이성과 감정으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수를 이웃으로 여겨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모셔들이고, 그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5의 말씀처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풍성히 받은 성도라면, 바로 그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흔히 생각하듯, 사랑이란 손해보는 길도 망하는 길도 아닙니다. 오히려 미움과 증오가 손해보는 길이요 망하는 길입니다. 그것도 미워하고 증오하는 자기 자신이 먼저 손해보거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살리는 사랑이란 자기를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앞을 바라보기가 힘들 정도로 무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몇 시간 동안을 힘겹게 걷다가, 그만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지쳐서 도저히 내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어. 조금만 자고 나면 계속 걸어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죽음의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자기를 걸려 넘어지게 한 물체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눈 속에 묻혀 있던 사람의 맥박이 뛰는 것을 확인하고는, 축 늘어진 그 사람을 어깨에 걸쳐 맸습니다.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죽을 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헤쳐 나갔습니다. 땀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다행히 얼마 안 가서 오두막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가 살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인간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말씀 중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자신과 이웃을 살리는 길이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은사와 은혜, 영의 복과 재물의 복을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의 방편, 사랑의 도구로 쓰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결코 자기 만족이나 자만을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복은 다 사랑의 빚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6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3. 율법 위반 그러한 사랑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당시의 교회가 행하고 있던바 가난한 교인에 대한 멸시와 부자에 대한 아첨은 용납될 수 없는 죄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차별 대우하는 것은, 이웃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며, 따라서 율법이 범죄자로 판결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위대한 원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의 한 계명만 위반하여도, 그는 범법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유대인은 율법을 일련의 독립된 명령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명령 중 하나라도 지키면 채권을 얻는 것이고, 하나라도 범하면 빚을 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듯이, 계명을 지키는 경우에는 가산하고, 계명을 어기는 경우에는 공제했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킨 것이 더 많으면 그만큼 더 보상을 받고, 어긴 것이 더 많으면 그만큼 더 벌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러한 율법관을 정면으로 배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율법의 한 계명만 어기면 율법 위반자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지켰어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구원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4. 자유의 율법을 따라 살라 복음을 믿어 죄와 자아, 율법과 세상,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더 이상 양심 또는 율법의 문자적 계명에 얽매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든 속박에서 구원받게 한 자유의 율법인 복음을 따라 심판 받을 자처럼 언행을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핵심인 사랑의 주님을 좇아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마음가짐과 언행이 복음의 진리를 따르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이 모든 삶의 동기와 목적이 되기 바랍니다. 자유의 율법인 복음을 좇아 사랑의 원리로 살라고 한 야고보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5. 맺음말 이 새해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모든 삶을 청산하고, 최고의 법이요 자유의 율법인 복음의 진리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예배에 힘써 참석하고, 십일조와 감사 예물을 드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십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형제와 그 밖의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여겨 사랑하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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