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를 하나님의 눈으로 보세요 (민14:1-10)
본문
우리 인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대답이 각각 다르겠지만, ‘눈’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개중 많으리라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눈은 온 몸을 위해서 판단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즉 눈은 방향이나 거리 등을 판단함으로써 온 몸의 움직임을 조정, 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눈이 멀었다든지, 혹은 시력이 약화된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눈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뇨”
눈이 온 몸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온 몸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헤드라이트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어두운 밤길을 갈 때, 라이트가 없다면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겠습니까 꼼짝할 수 없습니다. 움직일수록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님이 강조하는 것은 육신의 눈(육안)도 그렇지만, 영혼의 눈(영안)에 관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안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영안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기 쉬운데, 사실은 영안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개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육안은 다른 감각기관으로 대체할 수 있으나, 영안이 먼 영적 소경은 대체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육안이 소경된 사람이라도, 물론 심한 고통과 불편이 있었겠으나, 얼마든지 인생에서 승리한 분들이 많습니다. 밀턴은 40세에 실명했지만, 그후 실락원, 복락원 등의 작품을 써서 대 문호가 되었습니다. 또 화니 제이 크로스비 같은 사람 도 소경이었으나 2천여 편의 주옥 같은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만 해도 24편의 찬송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감각기관의 도움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떠진 영안을 통해 역경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육안의 영향력은 국부적이지만, 영안의 영향력은총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 못 보면, 당장 당장의 활동이 불편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소경이면, 인생길 전체를 망치게 됩니다. 사람이 영안을 통해 인생의 방향, 가치 등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어두우면 전혀 엉뚱한 길로 갈 수 있고, 무가치하고 악한 것에 매달려 인생을 소모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육안도 밝고 건강해야 하겠지만, 영안이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이 승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밝은 영안을 가지고 인생을 승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보다 풍성하고, 복된 모습으로 발전되기를 축원합니다!
'1' 밝은 영안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본문 말씀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정탐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들어가면 그만이고, 정탐할 필요도 없어는데, 그들은 은근히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정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이 40일 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생겼습니다. 각 지파별로 1명씩 해서 12명이 다녀왔는데,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분명히 동일한 가나안 땅을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조건에서 보고 왔는데, 보고 내용이 달랐습니다.
10명은 절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기필코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은 10명의 편에 서게 되었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급기야 하나님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생겼는가 분명히 그들의 육안으로는 꼭같이 보았습니다. 성경 기록을보면 현상적인 것은 동일하게 말합니다. 민13:27에 보니까, 10명의 정탐군이 가나안 땅에서 갖고 온 실과를 보이면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본문 민14:8(하)에 보면, 갈렙과 여호수아도 꼭같은 내용으로 보고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현상에 대한 판단이 다릅니다. 가치 평가가 다릅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영안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열 사람은 영적인 안목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안목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아주 위험한 것 중 하나가 편견입니다. 사람이 사물이나 문제를 볼 때,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됩니다. 색안경을 끼면 색깔이 변하여 보입니다. 붉은 색안경를 끼면, 흰 것을 갖고도 붉다고 합니다. 이렇게 색안경이 판단이 잘못하게 하는 것처럼, 편견이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를 왜곡하게 만듧니다. 그래서 결국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인생에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죄의 색안경, 그리고 욕심, 편협한 이성주의 등의 색안경 등입니다. 그래서 보일 것이 안 보입니다. 비뚤게 보입니다. 판단력을 상실합니다. 결국은 인생에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과거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체포하려고 다메섹, 지금의 다마스커스로 향합니다. 다메섹에 가까운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대한 최대의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눈은 멀었고,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나니아라는 제자의 도움으로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울을 포악한 삶으로 이끌었던 죄의 색안경, 욕망의 색안경 등이 벗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영적인 눈이 떠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선과 악, 의와 불의를 올바로 판단하고, 의로운 인생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열 명의 정탐꾼과 백성들도 그들의 영안이 죄로 가리워졌고, 갖가지 욕심들로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들이 잘못 말한대로 그들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모조리 광야에서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죄도 욕심도 편협한 이성주의도 다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판단을 했고, 결국 그 세대 가운데 그 두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밝은 영안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와 욕심, 각종 편견을 벗고, 하나님의 안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입니다. 죄와 욕심, 편견의 렌즈를 벗고, 하나님의 렌즈로 갈아 끼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판단력을 갖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에 인생의 바른 길을 알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이 시간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악이, 욕심이 깨끗이 씻겨지고, 성령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렌즈를 쓰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사물과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그렇게 되기 위해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이 예비하신 승리와 형통의 길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러면, 영안이 밝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로 시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1 범사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정탐꾼들과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나쁘다고 평가합니다. 왜 그럽니까 자기들 상식으로 판단할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외에 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민13:32 “ .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 ” 즉 과실은 풍부하고, 젖과 꿀은 풍부할지 모르나, 다른 조건들, 식량이나 주거 환경 등은 형편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그들의 월권이요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을진대, 다른 모든 면에서도 충분하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는데도, 자기들 상식으로 보건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릇된 판단을 했고,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것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합니까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그르다고 하면 그른 것입니다. 좋다면 좋은 것이고, 나쁘다면 나쁜 것입니다. 그런 판단 기준을 가질 때 우리는 실수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2 범사에 하나님의 가능성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안이 밝아지지 않으면 잘못된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기 중심성입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교합니다. 자기와 문제를 비교합니다. 자기와 세상을 비교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좌절합니다. 불가능의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런데 영안이 밝아지면, 범사를 하나님과 비교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비교하고, 하나님과 문제를 비교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가능한 쪽을 생각하게 됩니다. 용기를 얻고 담대해집니다.
본문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나 백성들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자기들의 능력만을 바라봅니다. 자기들 앞에 있는 가나안 땅,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아낙 자손 등 거인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교해 봅니다. 그러니까 결론이 부정적으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민13:31 “ .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민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14:3 “ .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 ” 하나님의 가능성이 있을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무엇을 확신합니까 실패를! 믿는 대로 되는 겁니다.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습니까 문제와 자기들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와 하나님이 능력을 비교해 봅니다. 그러니까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승리를 확신합니다.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니 . ” 민14:8-9 “ 여호와께서 .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 ” 이들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았을 때 승리의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믿는 그대로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도 헤브론을 정복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하6:14 이하에도 영안이 밝은 자의 승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가 도단성에서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어땠습니까 영안이 열리지 않으니까, 무서워서 야단입니다. 영안이 안 열리니까, 그 큰 아람 군대와 자기 모습하고 비교합니다 그러니 낙심천만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밝은 엘리사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람 군대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로 임한 하나님의 권능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다가 용기를잃는다든지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런데에 그친다면 나는 영안이 밝은 자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건대 확실히 선한 것이라면, 확실히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권능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넉넉히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1:18-19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영안이 열리기를 간곡하게 기도합니다.“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그 능력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살리신 능력, 승천하여 우주를 다스리는 권능)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범사를 담대함으로 대처하기를 바랍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있게 대처해서 꼭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3 범사를 미래 지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자꾸 과거에 집착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로 움츠러듧니다.
왜냐하면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밝은 사람은 자꾸 미래를 바라봅니다.천국을 바라보고, 약속된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고, .
본문 2절을 보면, 열 명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뭐라고 합니까 “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고 말합니까 8절을 보면, “ 우리를 그 땅에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 ”고 했습니다. 그들은 과거 애굽 생활도 광야에서의 수치스런 기억도 다 잊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전진, 전진만 할 따름입니다.
역시 영안이 밝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
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런 미래 지향적인 태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특히 갈렙에게서 그런 모습이 걸출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수14:12에 보면 85세가 된 갈렙의 진취적인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자손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아직 가나안의 많은 땅이 덜 정복되었는데, 85세 노구이지만, 가장 어려운 헤브론 산지에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이 있기에, 그의 영안을 들어 바라보고, 전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할수록, 영적으로 밝아질수록 진취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추진력을 가지게 됩니다. 영안에 어두운 사람은 앞에 있는 축복의 보물이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단지 눈 앞의 어려움과 시련만이 괴롭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래서 뒷걸음질 치고, 움츠러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에 승리하겠는가는 명약관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영안을 떠서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고,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고, 늘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맺는 말 '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에게 육안이 밝은 것이 대단히 귀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안이 밝으면 그것은 더욱 귀중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영안이 밝을 때에 우리의 인생의 방향도 밝은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은 것처럼, 우리의 영안이 밝아 우리의 인생이 승리하고 형통하는 길로 나아가기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깨어서 성령 충만을 간구하시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영안에 더욱 밝아지는 체험이 날마다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그래서 앞으로의 인생을 승리로 영위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눈은 온 몸을 위해서 판단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즉 눈은 방향이나 거리 등을 판단함으로써 온 몸의 움직임을 조정, 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눈이 멀었다든지, 혹은 시력이 약화된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눈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더하겠느뇨”
눈이 온 몸의 등불이라고 했습니다. 온 몸을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헤드라이트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어두운 밤길을 갈 때, 라이트가 없다면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겠습니까 꼼짝할 수 없습니다. 움직일수록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님이 강조하는 것은 육신의 눈(육안)도 그렇지만, 영혼의 눈(영안)에 관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안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영안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기 쉬운데, 사실은 영안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개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육안은 다른 감각기관으로 대체할 수 있으나, 영안이 먼 영적 소경은 대체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육안이 소경된 사람이라도, 물론 심한 고통과 불편이 있었겠으나, 얼마든지 인생에서 승리한 분들이 많습니다. 밀턴은 40세에 실명했지만, 그후 실락원, 복락원 등의 작품을 써서 대 문호가 되었습니다. 또 화니 제이 크로스비 같은 사람 도 소경이었으나 2천여 편의 주옥 같은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만 해도 24편의 찬송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감각기관의 도움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떠진 영안을 통해 역경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둘째는, 육안의 영향력은 국부적이지만, 영안의 영향력은총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육안으로 못 보면, 당장 당장의 활동이 불편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소경이면, 인생길 전체를 망치게 됩니다. 사람이 영안을 통해 인생의 방향, 가치 등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어두우면 전혀 엉뚱한 길로 갈 수 있고, 무가치하고 악한 것에 매달려 인생을 소모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육안도 밝고 건강해야 하겠지만, 영안이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이 승리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밝은 영안을 가지고 인생을 승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보다 풍성하고, 복된 모습으로 발전되기를 축원합니다!
'1' 밝은 영안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본문 말씀은,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정탐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들어가면 그만이고, 정탐할 필요도 없어는데, 그들은 은근히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정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이 40일 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생겼습니다. 각 지파별로 1명씩 해서 12명이 다녀왔는데,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분명히 동일한 가나안 땅을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조건에서 보고 왔는데, 보고 내용이 달랐습니다.
10명은 절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기필코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은 10명의 편에 서게 되었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급기야 하나님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생겼는가 분명히 그들의 육안으로는 꼭같이 보았습니다. 성경 기록을보면 현상적인 것은 동일하게 말합니다. 민13:27에 보니까, 10명의 정탐군이 가나안 땅에서 갖고 온 실과를 보이면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합니다. 본문 민14:8(하)에 보면, 갈렙과 여호수아도 꼭같은 내용으로 보고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현상에 대한 판단이 다릅니다. 가치 평가가 다릅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영안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열 사람은 영적인 안목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안목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아주 위험한 것 중 하나가 편견입니다. 사람이 사물이나 문제를 볼 때,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됩니다. 색안경을 끼면 색깔이 변하여 보입니다. 붉은 색안경를 끼면, 흰 것을 갖고도 붉다고 합니다. 이렇게 색안경이 판단이 잘못하게 하는 것처럼, 편견이 사람으로 하여금 문제를 왜곡하게 만듧니다. 그래서 결국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인생에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편견의 색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죄의 색안경, 그리고 욕심, 편협한 이성주의 등의 색안경 등입니다. 그래서 보일 것이 안 보입니다. 비뚤게 보입니다. 판단력을 상실합니다. 결국은 인생에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과거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체포하려고 다메섹, 지금의 다마스커스로 향합니다. 다메섹에 가까운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대한 최대의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눈은 멀었고, 아무 것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나니아라는 제자의 도움으로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울을 포악한 삶으로 이끌었던 죄의 색안경, 욕망의 색안경 등이 벗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영적인 눈이 떠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선과 악, 의와 불의를 올바로 판단하고, 의로운 인생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열 명의 정탐꾼과 백성들도 그들의 영안이 죄로 가리워졌고, 갖가지 욕심들로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들이 잘못 말한대로 그들 가운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모조리 광야에서 시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죄도 욕심도 편협한 이성주의도 다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판단을 했고, 결국 그 세대 가운데 그 두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밝은 영안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와 욕심, 각종 편견을 벗고, 하나님의 안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입니다. 죄와 욕심, 편견의 렌즈를 벗고, 하나님의 렌즈로 갈아 끼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판단력을 갖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에 인생의 바른 길을 알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기는 이 시간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악이, 욕심이 깨끗이 씻겨지고, 성령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렌즈를 쓰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사물과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그렇게 되기 위해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이 예비하신 승리와 형통의 길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러면, 영안이 밝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로 시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1 범사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정탐꾼들과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나쁘다고 평가합니다. 왜 그럽니까 자기들 상식으로 판단할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외에 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민13:32 “ .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 ” 즉 과실은 풍부하고, 젖과 꿀은 풍부할지 모르나, 다른 조건들, 식량이나 주거 환경 등은 형편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그들의 월권이요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을진대, 다른 모든 면에서도 충분하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는데도, 자기들 상식으로 보건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릇된 판단을 했고,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것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합니까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고, 그르다고 하면 그른 것입니다. 좋다면 좋은 것이고, 나쁘다면 나쁜 것입니다. 그런 판단 기준을 가질 때 우리는 실수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2 범사에 하나님의 가능성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안이 밝아지지 않으면 잘못된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기 중심성입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비교합니다. 자기와 문제를 비교합니다. 자기와 세상을 비교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좌절합니다. 불가능의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런데 영안이 밝아지면, 범사를 하나님과 비교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비교하고, 하나님과 문제를 비교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항상 가능한 쪽을 생각하게 됩니다. 용기를 얻고 담대해집니다.
본문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나 백성들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자기들의 능력만을 바라봅니다. 자기들 앞에 있는 가나안 땅,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아낙 자손 등 거인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교해 봅니다. 그러니까 결론이 부정적으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민13:31 “ .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민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를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14:3 “ .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 ” 하나님의 가능성이 있을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무엇을 확신합니까 실패를! 믿는 대로 되는 겁니다. 그들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습니까 문제와 자기들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와 하나님이 능력을 비교해 봅니다. 그러니까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승리를 확신합니다.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니 . ” 민14:8-9 “ 여호와께서 .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 ” 이들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았을 때 승리의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믿는 그대로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도 헤브론을 정복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하6:14 이하에도 영안이 밝은 자의 승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사가 도단성에서 아람 군대에게 포위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어땠습니까 영안이 열리지 않으니까, 무서워서 야단입니다. 영안이 안 열리니까, 그 큰 아람 군대와 자기 모습하고 비교합니다 그러니 낙심천만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밝은 엘리사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람 군대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로 임한 하나님의 권능을 비교한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지 않고 담대하게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다가 용기를잃는다든지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그런데에 그친다면 나는 영안이 밝은 자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건대 확실히 선한 것이라면, 확실히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권능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넉넉히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1:18-19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영안이 열리기를 간곡하게 기도합니다.“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그 능력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살리신 능력, 승천하여 우주를 다스리는 권능)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범사를 담대함으로 대처하기를 바랍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있게 대처해서 꼭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3 범사를 미래 지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자꾸 과거에 집착합니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로 움츠러듧니다.
왜냐하면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밝은 사람은 자꾸 미래를 바라봅니다.천국을 바라보고, 약속된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고, .
본문 2절을 보면, 열 명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뭐라고 합니까 “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고 말합니까 8절을 보면, “ 우리를 그 땅에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 ”고 했습니다. 그들은 과거 애굽 생활도 광야에서의 수치스런 기억도 다 잊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전진, 전진만 할 따름입니다.
역시 영안이 밝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빌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
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이런 미래 지향적인 태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특히 갈렙에게서 그런 모습이 걸출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수14:12에 보면 85세가 된 갈렙의 진취적인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자손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아직 가나안의 많은 땅이 덜 정복되었는데, 85세 노구이지만, 가장 어려운 헤브론 산지에 도전하는 모습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이 있기에, 그의 영안을 들어 바라보고, 전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할수록, 영적으로 밝아질수록 진취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해 나아가는 진취적인 추진력을 가지게 됩니다. 영안에 어두운 사람은 앞에 있는 축복의 보물이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단지 눈 앞의 어려움과 시련만이 괴롭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래서 뒷걸음질 치고, 움츠러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에 승리하겠는가는 명약관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영안을 떠서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고,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고, 늘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맺는 말 '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에게 육안이 밝은 것이 대단히 귀한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안이 밝으면 그것은 더욱 귀중한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영안이 밝을 때에 우리의 인생의 방향도 밝은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은 것처럼, 우리의 영안이 밝아 우리의 인생이 승리하고 형통하는 길로 나아가기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깨어서 성령 충만을 간구하시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영안에 더욱 밝아지는 체험이 날마다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그래서 앞으로의 인생을 승리로 영위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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