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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살전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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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우리는 한 번씩 추수감사절을 맞이합니다. 추수감사절은 참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3대 절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장절”이라는 것입니다. 수장절은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추수 현장에 장막을 치고 한주간 동안 축제로 절기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 추수간사절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지켰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있어서도 최대의 명절은 이 추수감사절입니다. 그옛날 청교도들이 북미대륙에 건너와서 처음 농사를 지을 때의 눈물 겨웠던 모습들을 회상하면서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민족입니까 알고 보면 우리나라도 추수감사절을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추석입니다. 추숙은 사실 추수감사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풍년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온 백성들이 햇곡식과 햇과일로 후에게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데 사실은 하늘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막연하게 조상에게 제사했을 뿐이지 사실은 하늘에 감사한 것입니다. 사람이 감사함을 알고 산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의 가장 사람 된 모습은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보답하며 살아가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몇 가지 우선할 것이 있습니다.
1. 마음이 선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이 강퍅하면 감사를 모릅니다. 사람은 마음이 선하고 맑고 순전해야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은혜를 보답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두 마음이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순전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마음이 우러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너무 삭막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갈등이 많고 불화가 많고 경쟁에서 오는 질시의 마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 무슨 감사가 있고 감격이 있겠습니까 오늘은 감사보다는 원망과 갈등과 시비가 훨씬 더 많은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을 넘어지게 하고 다치게 하지 않고 마음이 병들게 하고 원망이 들게 하고 불평이 나오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 생활에서 감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 무서운 마음입니다. 신앙인들은 마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마음에 탐욕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은 옛날보다 생활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풍족함을 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타인가 비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는 한 만족이나 감사는 우러나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절대 빈곤이 없어졌는데도 상대적 빈곤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불만족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욕망이 통제되지 않고 절제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비참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무절제한 욕망이 사람의 생활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한 어린아이가 병꼭지가 좁은 병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 병 속에는 사탕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 아이는 병 속에 있는 사탕을 한줌 집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빼려고 하는데 나오질 않습니다. 애써도 빠지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손이 빠지지 않는다고 웁니다. 그러면서 필사적으로 손을 빼려고 애를 씁니다. 병 속의 사탕을 정도껏 집으면 금방 나올 손인데 한줌 욕심껏 집었으니 그 손이 나오질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는 그 사탕을 놓지 않고 계속 울어 댑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보다 훨씬 많이 소유하고 있고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생활에 즐거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에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만족함을 없애 버립니다. 옛날에 비해서 오늘 우리는 얼마나 잘살고 많이 소유하고 누리고 삽니까
그런데도 이 탐욕이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 탐욕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그 생활에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3. 하늘의 섭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늘의 섭리를 느끼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섭리를 느끼면 몇 가지 주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자중하는 마음”입니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신의 섭리를 느끼며 살아갈 때 비로소 자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타락을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넘어져도 아주 넘어지지 않습니다. 타락을 해도 막가파식으로 타락하지는 않습니다. 하늘을 의식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늘이 주는 축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알고 신의 섭리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기고만장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교만함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살아가면 그 생활 마디마디에서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하늘을 믿는 사람은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사고가 얼마나 많습니까 비행기 사고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교통사고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합니까 우리들이 얼마나 차를 많이 타고 다닙니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생각하면 참 감사합니다. 혹시 가다가 사고가 나서 죽는다 해도 하나님 나라 가는 일에 지장 없도록 회개 기도부터 합니다. 누가 압니까 사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선 오늘 죽을지라도 천국가는데 지장 없도록 회개부터 하고 잠을 잡니다. 그리고 무사히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알고 살아가니까 그런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그 마음속에 무슨 감사가 생겨나겠습니까 우리가 “늘 그랬듯이 내일도 또 이렇게 살게 될거야” 하고 무감각하게 살아간다면 그 생활에 무슨 윤기가 있겠습니까 하루를 다 살고 나서 잠자리에 들면서 “아, 오늘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구나. 주님 감사합니다. 내일도 또 소중한 날을 주십시오.” 하고 하루하루를 결산하며 살아간다면 그 생활이 얼마나 즐겁고 감격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에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고 살면 세 번째로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적 감응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행곱하고 기쁘고 잘되고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 그 고난의 의미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 때 가능합니다. 이것은 신앙인에게 주어진 은총입니다. 미국의 어떤 청년이 늘 “언젠가 나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하는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치 않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 하나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족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청년이 충격과 실망 속에서 해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러면서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뇌하던 중에 “나는 언젠가 하나님께 헌신하겠다”하고 생각했던 옛날의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생각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할 때라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드디어 이 청년이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떠났습니다. 지금의 콩고라는 아프리카 땅에 도착하자 식인종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옵니다. 하얗게 생긴 먹이가 오는데 식인종들이 얼마나 군침을 삼켰겠습니까 그때 이 청년은 자신의 의족을 뽑아서 식인종들에게 던졌습니다. 이 식인종들이 그 뻣뻣한 의족을 들고 먹으려니 먹어집니까 그러니까 이 야만인들이 그만 모두 엎드려서 그 청년을 신으로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아주 쉽게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는 선교 최기의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문명인과 야만인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명인은 일이 잘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게 되는데 야만인은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는 지혜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자신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면 모두 신으로 떠받드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이 청년이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깊으신 섭리에 얼마나 감복했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인은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여러분, 금년 농사를 놓고 한번 깊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금년은 이땅에 하나님의 섭리가 극명하게 나타난 해입니다. 우리 나라는 최대의 풍작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금년은 태풍 한번 없었습니다. 적당하게 비가 내렸습니다. 여름에 더워서 고생은 했지만 금년처럼 일조량이 많았던 해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병충해 한번 없이 곡식이 얼마나 잘 익었습니까
그런데 이웃의 나라들은 최대의 흉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우리나라 땅은 남북한 합쳐도 미국의 캘리포니아 땅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높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볼 때 이 땅이 얼마나 좁습니까
그런데도 이남 땅에는 풍년이 들고 저 이북 땅은 가뭄으로 최대의 흉작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다른 분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밭에도 비를 주시고 선한 사람의 밭에도 비를 골고루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악인의 밭에는 비를 금하고 선한 사람의 밭에만 비를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에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손바닥만한 땅에 한쪽은 비를 주셔서 사상 최대의 풍작을 이루게 하셨고 또한쪽에는 비를 주지 않아서 사상 최대의 흉작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저런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좀 깊이 생각을 해보면 이런 현상은 그냥 예사롭게 넘겨 버릴 일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손바닥만한 좁은 땅에 아래쪽은 적당하게 비를 주셔서 대풍을 이루게 하시고 위쪽은 가물게 해서 폐농하게 하시니 이것을 그냥 예사롭게 넘겨 버릴 일입니까 이러한 섭리를 느낄 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되고, 나를 돌아다보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게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살아가면 감사를 하되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가 무슨 뜻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지극히 종교적인 단어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잘된 일도 잘못된 일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잘된 일 때문에도 감사하고 잘못된 일을 위해서도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 생활입니다. 여러분 한해를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좋은 집으로 이사한 일, 좋은 직장을 얻은 일, 신앙생활 처음 시작한 일, 세례받은 일, 주님을 위해서 건강하게 일해 온 일, 심지어는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일 등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많습니까 그런 것만 감사한 일입니까 몸이 아파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할 때는 죽는 기분이었지만 오늘 건강이 회복되고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 일,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해서 어려움이 있긴 했어도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일, 그 동안 열심히 부어도던 계가 깨져 자칫 내가 물질에 중독될 뼌했는데 그 자라에서 건져 주신 것임을 깨닫게 해주신 일, 그뿐 아니고 잠자리에 들어가면 곧 잠이 오는 축복,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는 아픔을 당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하면 이런 것들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들입니까 그럼에도 별 생각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칼비는 “이렇게 선한 것들을 보고서도 감사치 않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하나님께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우리들이 추수를 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나온 일년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되 드려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드리는 것이 소중한 일이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소중한 본들에게는 마음도 드리지만 선물도 드리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드리되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추수감하절입니다. 여러분, 오늘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저 밭의 곡식은 누가 주셨습니까 겨자씨만한 배추씨 하나를 땅에 뿌렸는데 그 작은 씨가 마침내 큰 배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끈으로 묶어 주어야 합니다. 아주 조그만 씨를 하나 땅에 심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큰 호박이 열렸고 큰 참외가 열렸고 큰 수박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우연입니까 그것을 보고도 감각이 없고 감사한 마음이 없고 신비하다는 느낌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감성이 고장난 사람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도 별로 생각이 없고 신비함이 없고 마음이 그냥 무감각하다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옛날 히브리인들은 곡식을 거두면 첫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나무열매를 드릴 때는 첫열매를 드렸습니다. 자녀를 드릴 때는 첫아들을 드렸습니다. 짐승을 드릴 때는 첫새끼를 드렸습니다. 양를 드릴 때는 흠없는 살진 양을 잡아서 바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원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생활,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아가는 가장 좋은 생활입니다. 오늘 추수와 함께 일년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같은 은혜와 축복이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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