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지파 (삿21:1-4)
본문
본문의 줄거리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중의 하나였던 베냐민 지파가 다른 지파들 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버림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내민은 야곱이 낳은 열두번째 아들이었습니다.야곱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열두 아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유언 겸 마지막 축복을 했습니다.그 기사가 창세기 4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이 열두 아들들에게 베풀었던 축복이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물론 열두 아들을 다 축복한 것은 아닙니다.저주를 받은 자녀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빈 복이 그대로 임했다는 것과 자식들이 행한대로 복과 저주를 내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창세기 35:22에 의하면 큰아들 루우벤은 자기 아버지의 여종이 며 자기의 서모가 되는 빌하를 범했습니다.야곱은 루우벤에게 너는 물의 끊어짐 같이 탁월치 못하게 되리라 고 했습니다.서모를 범한 자식이 복을 받는다든지 탁 월하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그러나 유다나 요셉에게 내린 축복은 전혀 다릅니다.유다는 사자와 같아서 아무도 그를 범할 수 없으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할 것이며 모든 백성이 그에게 복종하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도 대단한 것입니다.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 지라고 했고 요셉의 활은 힘이 있으니,그 이유는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다 른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를 외면하고 따돌리고 버렸습니다.우린 그 이유를 본문 을 중심으로 밝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사기 19장과 20장을 보면 어떤 날 베냐민 지파가 사는 동네에 낮선 길손이 찾아 왔습니다.그는 베들레헴을 떠나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에브라임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갈 곳 없는 이 길손을 그동네 노인이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하룻밤을 쉬게 해 주었습니다.문제는 그날 밤에 벌어졌습니다.그 성읍의 불량배 들이 몰려와 낮선 사람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이유는 그를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그들은 호모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길손 대신 그의 첩을 밤새도록 윤간하고 날이 밝자 문간에 버렸고 그녀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그들이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전국에 퍼지게되자 격분을 참지못한 40만명의 장정이 미스바로 모여 들었습니다.그리고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했는데 그 전쟁에 죽은 사람이 모두 4 만여 명이 넘습니다. 이 사건 속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이긴 합니다만 베냐민 지파에 속한 불량배들의 성도덕의 타락입니다.그들은 동성애는 물론 성폭행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둘째는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 사람을 폭행했습니다.사사기 19:18을 보면 그는 베들레헴에 갔다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한마디로 예배 하러 가는 사람을 폭행한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도덕적 타락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그 전쟁으로 4만여 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몇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는 얼마나 질서를 잘 지켜느냐이고,
둘째는 윤리관이 건전하느냐이고.
셋째는 가치관이 올바르냐입니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최근 러시아 정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이 러시아안에서의 선교활동를 제한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의회는 그것을 가결했습니다. 그 내용은 러시아에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한 집회를 연다든지 선 교문서를 만들어 배포한다든지 하는 등의 일체 선교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법안이 나오게 된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가 개방되자 세계 여러나라의 교회들이 선교사를 러시아에 파송 했습니다.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교파마다 교회마다 앞을 다투어 선교사를 파송 했습니다.그러나 선교 방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돈을 뿌리는가 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경쟁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비위를 거스린 것입니다.러시아 정교회는 공산주의의 앞잡이였다느니,기독교가 아니라느니,구원이 없다느니라며 공격 하기를 시작했습니다.가뜩이나 교회가 성장 못하고 있던 국교인 정교회의 지도자 들의 비위가 상하게 되면서 선교법안을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무분별하게 덤빈 한국교회의 선교방법은 일단 재검토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가 취한 태도 역시 비판되어야 합니다.70년 동안 공산주의 가 세계를 향하여 온갖 만행을 일삼는 동안,그리고 국민의 생활이 도탄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그들은 침묵했습니다.그러다가 선교 과열 현상을 빌미삼아 선교 의 문을 막으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사기 19장을 읽으면서 러시아가 생각났습니다.베냐민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사람과 그 일행의 길을 가로막고 폭행과 만행을 저지른 그 사건 때문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제 아무리 이유가 타당하고 논리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선교를 가로 막거나 방 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미국 교회 가운데 교회재정을 이유 삼아 선교사를 소환하고 선교를 축소한 교회는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닫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길을 막으면 안됩니다.
2.그들은 이즈러진 지파였습니다. 본문 21:3 끝을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 까 라고 했습니다.그 뜻은 베내민 지파가 이즈러졌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이즈러졌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지파 수가 이즈러졌다는 것입니다.민수기 26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각 지파 별로 인구조사한 통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20세이상의 남자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당시 베냐민 지파의 수는 4만 5천 6 백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20장을 보면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을 저지르면 수가 이즈러집니다. 사업이 이즈러지고 수입이 이즈러지고 행복이 이즈러지고 안정이 깨어지게 됩니다.
둘째,신앙이 이즈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자신들의 힘이나 무력을 더 믿었습니다. 사사기 20:16을 보면 특공대로 뽑은 700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왼손잡이였으 며 물매로 돌을 던지면 백발백중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한다면서 자기 경험이나 자기 재주나 자기 능력을 하나님보다 더 의존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얼굴이 이즈러지면 보기 싫은 것처럼 인격이 이즈러지면 그 사람이 추해집니다. 그리고 신앙이 이즈러지면 그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언제나 이즈러지지 않은 건전한 인격과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3.이스라엘 총회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21:6을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라고 했고 8절을 보면 베냐민 사람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총회에 빠지게 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나가서 예배드리는 행위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들은 모임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을 점검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헌금하는 것, 기도하는 것,전도하는 것,말씀듣는 태도,사람을 대하는 태도,교회를 이해하는 태 도 등 여러가지로 미루어 그 사람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검법 중 하나가 예배출석입니다.예배를 소홀히 여기거나 교회 나오는 것을 소홀히 취급하는 사람은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스스로 총회 참석을 거부하였습니다.
둘째,이스라엘 다른 지파가 그들을 거부했습니다.싸움질 좋아하고 나쁜 짓하고 나서 뉘우치지 않고 신앙이 없는 이 지파를 다른 지파들이 좋아할 까닭이 없었 습니다. 21:1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사람들에게는 딸을 주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그것은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번째로 태어난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보나마나 그는 막내동이로 버릇없이 자랐을 것입니다.그리고 막내라는 이유로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자랐습니다.그러나 유다나 요셉처럼 믿음이 좋은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9장으로 미루어 볼 때 베냐민은 성장하면서 형들과 늘상 불화하고 싸 움질을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가리켜 물어 뜯는 이리 라고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끈질기게 물어 뜯었으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런 표현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미국 북애리조나 대학교의 P하난연구원 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침 햇살정도 의 밝은 조명아래서 밤일을 하는 여성 근로자의 경우 정신집중이 잘되어 작업능 률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불빛이 밝으면 졸음이 오거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뇌 속에서 생 성되는 물질인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해준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나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밟게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미국 어느 연구소에서 이혼부부를 대상으로 성격비교 연구를 했습니다.이혼한 사람들이 성격상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과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과거집착성이라는 것,
둘째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하는 혐오성,
셋째 자신을 지나치게 평가하는 과대망상성,
넷째 지난날의 어떤 실패를 두려워하는 피해망상 성 등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미래지향적이라야 합니다.그리고 밝고 맑아야 합니다.우리에겐 태양보다 더 밝은 의의 태양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빛을 외면한 채 어둡게 살아갈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아과 전문의의 말을 빌리면 응석부리기 위해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버림받 았다고 믿는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버림 받는다는 것,그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어느날 주인과 집을 잃어 버린 것같은 개 한 마리가 길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꼬리를 내려뜨린 채 무엇인가에 쫓지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조사를 살펴보면 그 왕조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날부터 불행과 비극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을 펴 그 왕조를 붙잡는 시간부터 그 왕조는 복을 받기 시 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교만,범죄,불신이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는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불신과 교만과 배신입니다. 제사무실에서 자라는 화초들도 이틀만 돌보지 않으면 시들고 메마르게 됩니다. 주인의 자상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버림받은 영혼이 잘되는 법이 없습니다. 버림받은 생명이 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 한 나는 결코 망하거나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주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를 돌보소서. 아멘.
요셉이 받은 축복도 대단한 것입니다.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 지라고 했고 요셉의 활은 힘이 있으니,그 이유는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기 때문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다 른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를 외면하고 따돌리고 버렸습니다.우린 그 이유를 본문 을 중심으로 밝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사기 19장과 20장을 보면 어떤 날 베냐민 지파가 사는 동네에 낮선 길손이 찾아 왔습니다.그는 베들레헴을 떠나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에브라임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갈 곳 없는 이 길손을 그동네 노인이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하룻밤을 쉬게 해 주었습니다.문제는 그날 밤에 벌어졌습니다.그 성읍의 불량배 들이 몰려와 낮선 사람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이유는 그를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그들은 호모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길손 대신 그의 첩을 밤새도록 윤간하고 날이 밝자 문간에 버렸고 그녀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그들이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전국에 퍼지게되자 격분을 참지못한 40만명의 장정이 미스바로 모여 들었습니다.그리고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했는데 그 전쟁에 죽은 사람이 모두 4 만여 명이 넘습니다. 이 사건 속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이긴 합니다만 베냐민 지파에 속한 불량배들의 성도덕의 타락입니다.그들은 동성애는 물론 성폭행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둘째는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 사람을 폭행했습니다.사사기 19:18을 보면 그는 베들레헴에 갔다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한마디로 예배 하러 가는 사람을 폭행한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도덕적 타락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그 전쟁으로 4만여 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몇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째는 얼마나 질서를 잘 지켜느냐이고,
둘째는 윤리관이 건전하느냐이고.
셋째는 가치관이 올바르냐입니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최근 러시아 정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이 러시아안에서의 선교활동를 제한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의회는 그것을 가결했습니다. 그 내용은 러시아에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은 선교를 위한 집회를 연다든지 선 교문서를 만들어 배포한다든지 하는 등의 일체 선교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법안이 나오게 된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가 개방되자 세계 여러나라의 교회들이 선교사를 러시아에 파송 했습니다.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교파마다 교회마다 앞을 다투어 선교사를 파송 했습니다.그러나 선교 방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돈을 뿌리는가 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경쟁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비위를 거스린 것입니다.러시아 정교회는 공산주의의 앞잡이였다느니,기독교가 아니라느니,구원이 없다느니라며 공격 하기를 시작했습니다.가뜩이나 교회가 성장 못하고 있던 국교인 정교회의 지도자 들의 비위가 상하게 되면서 선교법안을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무분별하게 덤빈 한국교회의 선교방법은 일단 재검토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회가 취한 태도 역시 비판되어야 합니다.70년 동안 공산주의 가 세계를 향하여 온갖 만행을 일삼는 동안,그리고 국민의 생활이 도탄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그들은 침묵했습니다.그러다가 선교 과열 현상을 빌미삼아 선교 의 문을 막으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사기 19장을 읽으면서 러시아가 생각났습니다.베냐민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사람과 그 일행의 길을 가로막고 폭행과 만행을 저지른 그 사건 때문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제 아무리 이유가 타당하고 논리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선교를 가로 막거나 방 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미국 교회 가운데 교회재정을 이유 삼아 선교사를 소환하고 선교를 축소한 교회는 이미 문을 닫았거나 닫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길을 막으면 안됩니다.
2.그들은 이즈러진 지파였습니다. 본문 21:3 끝을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 까 라고 했습니다.그 뜻은 베내민 지파가 이즈러졌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이즈러졌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지파 수가 이즈러졌다는 것입니다.민수기 26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각 지파 별로 인구조사한 통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20세이상의 남자로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당시 베냐민 지파의 수는 4만 5천 6 백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20장을 보면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을 저지르면 수가 이즈러집니다. 사업이 이즈러지고 수입이 이즈러지고 행복이 이즈러지고 안정이 깨어지게 됩니다.
둘째,신앙이 이즈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자신들의 힘이나 무력을 더 믿었습니다. 사사기 20:16을 보면 특공대로 뽑은 700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왼손잡이였으 며 물매로 돌을 던지면 백발백중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한다면서 자기 경험이나 자기 재주나 자기 능력을 하나님보다 더 의존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얼굴이 이즈러지면 보기 싫은 것처럼 인격이 이즈러지면 그 사람이 추해집니다. 그리고 신앙이 이즈러지면 그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언제나 이즈러지지 않은 건전한 인격과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3.이스라엘 총회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21:6을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라고 했고 8절을 보면 베냐민 사람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총회에 빠지게 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나가서 예배드리는 행위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들은 모임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을 점검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예를 들면 헌금하는 것, 기도하는 것,전도하는 것,말씀듣는 태도,사람을 대하는 태도,교회를 이해하는 태 도 등 여러가지로 미루어 그 사람의 신앙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검법 중 하나가 예배출석입니다.예배를 소홀히 여기거나 교회 나오는 것을 소홀히 취급하는 사람은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스스로 총회 참석을 거부하였습니다.
둘째,이스라엘 다른 지파가 그들을 거부했습니다.싸움질 좋아하고 나쁜 짓하고 나서 뉘우치지 않고 신앙이 없는 이 지파를 다른 지파들이 좋아할 까닭이 없었 습니다. 21:1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사람들에게는 딸을 주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그것은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번째로 태어난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보나마나 그는 막내동이로 버릇없이 자랐을 것입니다.그리고 막내라는 이유로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자랐습니다.그러나 유다나 요셉처럼 믿음이 좋은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49장으로 미루어 볼 때 베냐민은 성장하면서 형들과 늘상 불화하고 싸 움질을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가리켜 물어 뜯는 이리 라고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끈질기게 물어 뜯었으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런 표현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미국 북애리조나 대학교의 P하난연구원 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침 햇살정도 의 밝은 조명아래서 밤일을 하는 여성 근로자의 경우 정신집중이 잘되어 작업능 률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불빛이 밝으면 졸음이 오거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뇌 속에서 생 성되는 물질인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해준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나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밟게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미국 어느 연구소에서 이혼부부를 대상으로 성격비교 연구를 했습니다.이혼한 사람들이 성격상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과거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과거집착성이라는 것,
둘째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하는 혐오성,
셋째 자신을 지나치게 평가하는 과대망상성,
넷째 지난날의 어떤 실패를 두려워하는 피해망상 성 등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미래지향적이라야 합니다.그리고 밝고 맑아야 합니다.우리에겐 태양보다 더 밝은 의의 태양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빛을 외면한 채 어둡게 살아갈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아과 전문의의 말을 빌리면 응석부리기 위해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버림받 았다고 믿는 어린아이의 울음 소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버림 받는다는 것,그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어느날 주인과 집을 잃어 버린 것같은 개 한 마리가 길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꼬리를 내려뜨린 채 무엇인가에 쫓지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조사를 살펴보면 그 왕조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날부터 불행과 비극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을 펴 그 왕조를 붙잡는 시간부터 그 왕조는 복을 받기 시 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교만,범죄,불신이 그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는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불신과 교만과 배신입니다. 제사무실에서 자라는 화초들도 이틀만 돌보지 않으면 시들고 메마르게 됩니다. 주인의 자상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버림받은 영혼이 잘되는 법이 없습니다. 버림받은 생명이 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 한 나는 결코 망하거나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주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를 돌보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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