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에서 신앙으로 (요1:29-34)
본문
본문 성경 누가복음 18장 18절 이하를 읽어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묻기를 선생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 고 자신의 마음속에 가득찬 번민의 문제를 예수님깨 제시하고 그 해결 책을 상담하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모든 인간 들의 마음속에는 제반 인간문제에 대한 번민이 있는데 이것을 세가지 로 분석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철학적인 번민이 있습니다.
이 철학적인 번민이란 삶에 대한 번민을 말하는 것인데 동물과 인간 의 구별이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니가 생각이 됩니다.
동물은 생리적 욕구를 따라서 그것을 충족 시키며 살아갈 뿐이지만 인간은 보다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 즉 생활하는 데의 고민을 가지 고 있습니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의 특성인가 봅니다. 독일의 유 명한 학자인 괴테는 말하기를 나는 일평생 즐겁다고 생각된 날이 4주 일 밖에 없었다고 했으며, 로마의 유명한 학자요 웅변가인 시세로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요, 다음으로 행복 한 것은 하루바삐 죽는 것이다 고 하였으며, 유명한 생물학자 바이론 은 나는 일평생에 기쁜날이라고는 단 하루밖에 없었다고 하였답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가 인생의 삶에 대한 고달픔에서 나오는 철학적 번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보칼리스트였던 윤 심덕의 '죽 음의 찬미'를 들어 보세요. '황막한 빈들에 달리는 인생아! 너가는 곳 이 어디냐. 쓸쓸한 세상 너가는 고해에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눈물로 된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이다. 행복을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설 뿐!' 그는 이런 노래를 부르며 1925년 25세의 꾳다운 청춘으로 일본 오사 까에 있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노래 취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현해탄 바다위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솔로몬 왕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최고로 누린 지혜의 왕이었지만 그는 인생 황혼기에 고백 하기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아래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 엇이 유익한고 라고 번민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하기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너는 아무낙이 없다고 생각하기전 창조주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고 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은 인간의 번민을 하나님을 찾기전에는 해결할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블란서의 유명한 조각가인 피스라는 앞못보는 장님이었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그대는 가련한 사람이로구나. 소경 으로서 조각을 하니까 무슨 즐거음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대답하기를 친구여! 하나님이 나의 두눈을 가져가시고 열손가락에 열 눈을 주시니 나는 항상 감사할뿐이요라고 했습니다.
피스라는 삶에 대한 번민을 하나님을 믿음으로 죽 신앙을 번민을 승 리하는 비결임을 체험하였습니다.
두번째로,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인 번민이 있습니다. 이 번민을 다 시 말하면 죄에 대한 번민 또는 양심의 번민이라고 합니다. 동물은 아 무리 영리할지라도 이런 번민을 갖고 살지 않습니다. 왜 인간만이 이 런 번민을 합니까 그 이유는 성경 로마서 6장 22절에 죄의 값은 사 망 이란 하나님의 선고가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이 죄가 개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 개인이 망하게 되고,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 사회에 윤리와 도덕이 타락하여 죄악이 쌓이게 되면 그 국가 사회는 멸망을 받게 되었던 역사가 바로 성경이 가르켜 주고 있습니다.
모 여대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는데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대생은 그 동안에 다른 남학생의 유혹을 받아 임신하였습니다. 어느날 휴가 온 애인을 만난 뒤 그는 양 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던중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번민은 바로 이 죄악의 번민인 것입니다. 이런 번민은 저 유명한 성경의 기자중에 한 사람인 사도바울 에게 도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속에 있는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번민은 참되게 살아 보려는 아름다운 도덕적 번민입니다(로마서 7장 20-25). 바울사도는 이러한 번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로마서 8장 1-2),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해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 혈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죄악의 번민을 벗어나 극히 자유스럽고 평화 스러운 승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인간의 천번만번 죽을 무서운 죄의 번민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때 깨끗이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실제적 번민이 있는데 이것은 사망에 대한 번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죽음! 이란 실제적 번민앞에 떨고 있습니다.
구약 욥기서에 몹시 애타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다 시 살아날 수 있느나 하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무쳐 내려오는 가장 간절한 문제는 이 죽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오늘도 무수한 인생이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죽음의 번민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 되었으나 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 고 다시 사셨습니다. 기독교의 부활절은 바로 이 위대한 사실의 기념 물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와 신앙의 촛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하여 그 사 실을 믿을때에 죄의 값으로 오는 죽음의 번민을 해결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생명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산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는 의로운 재판장이 나에게 생명 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그는 분명히 죽음의 번민을 해결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번민에서 머물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신앙의 세계로 눈을 뜨고 옮깁시다. 인생의 참된 소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깨서는 삶의 번민과 도덕적 번민과 죽음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인간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간부터 번민에서 신앙으로 옮깁시다.
첫째로, 철학적인 번민이 있습니다.
이 철학적인 번민이란 삶에 대한 번민을 말하는 것인데 동물과 인간 의 구별이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니가 생각이 됩니다.
동물은 생리적 욕구를 따라서 그것을 충족 시키며 살아갈 뿐이지만 인간은 보다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삶 즉 생활하는 데의 고민을 가지 고 있습니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의 특성인가 봅니다. 독일의 유 명한 학자인 괴테는 말하기를 나는 일평생 즐겁다고 생각된 날이 4주 일 밖에 없었다고 했으며, 로마의 유명한 학자요 웅변가인 시세로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요, 다음으로 행복 한 것은 하루바삐 죽는 것이다 고 하였으며, 유명한 생물학자 바이론 은 나는 일평생에 기쁜날이라고는 단 하루밖에 없었다고 하였답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가 인생의 삶에 대한 고달픔에서 나오는 철학적 번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보칼리스트였던 윤 심덕의 '죽 음의 찬미'를 들어 보세요. '황막한 빈들에 달리는 인생아! 너가는 곳 이 어디냐. 쓸쓸한 세상 너가는 고해에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눈물로 된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이다. 행복을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설 뿐!' 그는 이런 노래를 부르며 1925년 25세의 꾳다운 청춘으로 일본 오사 까에 있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노래 취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현해탄 바다위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솔로몬 왕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최고로 누린 지혜의 왕이었지만 그는 인생 황혼기에 고백 하기를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아래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 엇이 유익한고 라고 번민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하기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너는 아무낙이 없다고 생각하기전 창조주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고 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은 인간의 번민을 하나님을 찾기전에는 해결할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블란서의 유명한 조각가인 피스라는 앞못보는 장님이었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그대는 가련한 사람이로구나. 소경 으로서 조각을 하니까 무슨 즐거음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대답하기를 친구여! 하나님이 나의 두눈을 가져가시고 열손가락에 열 눈을 주시니 나는 항상 감사할뿐이요라고 했습니다.
피스라는 삶에 대한 번민을 하나님을 믿음으로 죽 신앙을 번민을 승 리하는 비결임을 체험하였습니다.
두번째로,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인 번민이 있습니다. 이 번민을 다 시 말하면 죄에 대한 번민 또는 양심의 번민이라고 합니다. 동물은 아 무리 영리할지라도 이런 번민을 갖고 살지 않습니다. 왜 인간만이 이 런 번민을 합니까 그 이유는 성경 로마서 6장 22절에 죄의 값은 사 망 이란 하나님의 선고가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이 죄가 개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그 개인이 망하게 되고,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 사회에 윤리와 도덕이 타락하여 죄악이 쌓이게 되면 그 국가 사회는 멸망을 받게 되었던 역사가 바로 성경이 가르켜 주고 있습니다.
모 여대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는데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대생은 그 동안에 다른 남학생의 유혹을 받아 임신하였습니다. 어느날 휴가 온 애인을 만난 뒤 그는 양 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던중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번민은 바로 이 죄악의 번민인 것입니다. 이런 번민은 저 유명한 성경의 기자중에 한 사람인 사도바울 에게 도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속에 있는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번민은 참되게 살아 보려는 아름다운 도덕적 번민입니다(로마서 7장 20-25). 바울사도는 이러한 번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로마서 8장 1-2),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해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 혈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죄악의 번민을 벗어나 극히 자유스럽고 평화 스러운 승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인간의 천번만번 죽을 무서운 죄의 번민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때 깨끗이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실제적 번민이 있는데 이것은 사망에 대한 번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죽음! 이란 실제적 번민앞에 떨고 있습니다.
구약 욥기서에 몹시 애타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다 시 살아날 수 있느나 하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무쳐 내려오는 가장 간절한 문제는 이 죽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오늘도 무수한 인생이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죽음의 번민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 되었으나 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 고 다시 사셨습니다. 기독교의 부활절은 바로 이 위대한 사실의 기념 물입니다.
기독교의 역사와 신앙의 촛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하여 그 사 실을 믿을때에 죄의 값으로 오는 죽음의 번민을 해결하는데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생명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산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는 의로운 재판장이 나에게 생명 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그는 분명히 죽음의 번민을 해결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번민에서 머물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신앙의 세계로 눈을 뜨고 옮깁시다. 인생의 참된 소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깨서는 삶의 번민과 도덕적 번민과 죽음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인간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간부터 번민에서 신앙으로 옮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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