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성하고 열매맺게 하소서 (겔17:23-24)
본문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에스겔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적인 말씀을 비유로 전하는 말씀입니다. 즉, 순수한 신앙으로 바로 서기만 하면 하나님의 큰 기적과 은총을 맛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바벨론을 가르켜 ‘높은 나무’라 했고, 이스라엘을 ‘낮은 나무’라 했습니다. 또한 바벨론은 ‘푸른 나무’요, 이스라엘은 ‘꺾어진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의 말씀을 따라 살기만 하면, 비록 삶이 암담하고 어두울 지라도 모든 상황을 기적적으로 바꾸어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고, 희락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소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만 소원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강대국 바벨론은 낮추시고 희망이 없는 이스라엘은 높일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의지할 때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을 지내면서 할아버지도 노예요, 아버지도 노예요, 자손들도 노예 생활을 할 것이 뻔했습니다. 7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기를 지나는 많은 세월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낮은 나무이지만 높아질 날이 오리라고 한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기를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고 명하였습니다(스1:1-4).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족 운동을 전개케 하고, 온 백성들로 더불어 성전을 건축하게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사를 더듬어 보면, 영적으로 곤고하고 암흑기 였던 시기는 삶이 어렵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바로 살았던 시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미국 사회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보고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청교도들이 신앙을 개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기로 해서, 학교에서나 의회에서 성경을 읽고 시작했을 때에는 삶에 희락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지만, 의회에서 각 학교에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하고 기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폐지한 때 부터는 이상하게 국가에 문제가 많이 일어 났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폭력범, 마약 범죄, 도덕적인 범죄 등. 사건과 사고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영적으로 잘못되어서 암흑 시기를 맞아 그들의 삶이 곤고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북방과 남방의 왕족들이 여러 해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거역했을 때, 바벨론을 통해서 눌러 놓으시므로. 바벨론은 높은 나라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낮고 천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아무런 힘이 없고, 길이 없었습니다. 한세기가 지나도록 꿈과 소망이 없이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고레스 왕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동안은 감사하고 감격해서 그들은 신앙 제일 중심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시대부터 예수님이 오시기 까지. 자그마치 400년 동안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못 살다가 잘 살게 되면, 감사한 줄 알다가 좀 잘살게 되면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점점 하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 제일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데, 형식적으로 섬겼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십일조와 첫열매를 드리면서 양떼와 소떼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눈이 멀고 다리 못쓰고 병든 것만 골라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말1:13). “너희의 얼굴에 똥칠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말2:30). 영적인 암흑기 400년이 지나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소망의 길을 주시고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신후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의 세례를 부어 주셔서 어둠의 세계에 복음의 소식이 전파 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은 마침내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큰 불길로 일어 났습니다. 무슨 큰 부흥회나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성경말씀을 읽어 내려가다가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불길은 엄청난 기적의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뿐만아니라,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삼각산, 계룡산, 용문산 꼭대기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금식하는 주의 종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이 민족에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미국의 특파원이 한국의 현실을 간단하게 네가지로 말했는데, 1총체적인 부패의 나라,
2총체적인 혼란의 나라, 3총체적인 위기의 나라,
4총체적인 문제의 나라라고 지적 했습니다. 그러나 이 특파원이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니께서 숨겨 두신 믿음의 사람들 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그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상당히 암훌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용이 지렁이로 전락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앞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요소 요소에서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묵묵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때, 낮은 나무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개를 들게 하시고 일어서게 하시고 어깨를 펴게 하시고. 마침내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푸르르고 무성케 하셔서 번성케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른 나무는 희망이 없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잎도 없고 생기도 없어서 언젠가는 시들어서 말라질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하는 그런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했습니다(미7:7-8). 스바냐3:16절 이하의 말씀에도 보면,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희망이 없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은 오랜만에 만난 자녀를 껴안아 주듯이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마른나무 가지처럼 희망이 없습니까 우리의 삶에, 장래에, 우리의 경영하는 일이 절망적입니까 아무래도 시들고 사그라질 것 같습니까 종이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시123:2). 종은 주인이 베푸는 사랑의 손길 때문에 살아갈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 살 수 없습니다. 주인이 잘 돌봐주고 보살펴 주고 사랑을 베풀어야만 신바람이 나게 됩니다. 요셉이라는 종을 주인이 보니까, 꽤 쓸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부인을 제외한 그 모든 하속들과 제반 문제들을 다스리고 관할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노예라는 종의 신분이 주인이 베푸는 사랑의 손길 때문에 그 집의 모든 살림을 맡는 귀한 직분을 받았습니다(창39: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나의 삶이 마른 나무가지 같습니까 나의 장래 문제가, 나의 경영하는 문제가. 마르고 낮아 졌습니까 그 상황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마른 나무를 푸르르게 할 수도 있고, 무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번성하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쉘러’라는 사람은 월리암 텔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스위스를 지배할 때, 총독 게슬러라는 사람을 스위스에 파견을 해서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게슬러’라는 사람이 얼‘마나 악독한 사람인지 통치 수단의 하나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 높은 장대를 세워놓고 그 위에 자기 모자를 씌워놓고는 누구든지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절을 안하면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에 처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유명하고 전설적인 ‘월리암 텔’이라는 사람이 자기 아들과 함께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가다가 붙들려 갔습니다. 총독이 말하기를 “내 명을 어겼으니 나와 내기를 하자, 네 아들의 머리위에 사과를 얹어 놓고 그 사과를 화살로 맞추면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으리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에 있는 화살 두 개를 얼른 꺼내서 하나는 가슴에 숨겨두고, 하나를 가져다가 목표물에 겨냥을 하고 활 시위를 당겼습니다. 화살은 비호처럼 날라가서 다행히도 그 사과에 명중을 했습니다.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총독이 어이가 없어 하면서 “가슴에 숨긴 화살은 왜 숨겼느냐”고 물으니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을 쏴 죽일려고 했소!”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너는 내가 이 나라의 총독인줄을 모르느냐 내가 무섭지도 않느냐” 하고 물으니 월리암 텔은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이외에는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분은 못하실 일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시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현실의 문제는 자꾸만 작아지고 쪼그맣게 보여집니다.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는 담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비록 마른 나무가지 같이 희망이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기적과 능력의 손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고, 기적과 같은 역사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에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크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말씀하신대로 푸르르게 하시고 꺾여진 나무이지만 옮겨 심어도 싹이 나고 마치 백향목과 같이 성장해서 새들이 깃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한 것입니다. 신28:1절 이하의 말씀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에도 지금으로 말하면 경제적인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오기만 하면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고 했던 것입니다(합2:3). 시40:1절 말씀에도 보니까,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영성을 요약해서 말씀드린다면, ‘기다리는 영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신앙인 것입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귀한 열매를 기다리기 까지는 오래 참아 이른비와 늦은 비를 기다릴 때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5:7-8절 말씀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크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보면, 현실의 문제는 자꾸만 작게 보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여자 의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마리 버거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 신앙생활 잘하고 성실하게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의사시험에 합격도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 차를 좀 운전하겠다고 해서 핸들을 맡겼는데 차를 추월하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을 하고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온 몸이 못쓰게 되었습니다. 의사인지라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구나” 하면서 낙심을 하며, “하나님, 제가 평생을 두고 남의 손만 의지해서 살아야만 하겠습니까” 하면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데 세월이 좀 흘러서 정상적으로 손이 회복을 하게 되고 휠체어를 타고 어느정도 다닐 수 있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주셨습니까.” 하면서 손과 머리와 몸둥이만 건강한 육체이지만 마른 나뭇가지 같은 인생을 왜 살려 주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계속 기도한 것입니다. 그때, “많은 장애자를 위해서 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그는 다시 전문의 공부를 해서 여자로서는 참으로 힘든 과정들을 다 마치고, 특별히 장애자를 위해서 재활 수술에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훌륭한 의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호주로, 뉴욕으로 다니며 봉사하다가 인도에 나환자 회복센타를 건립해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책에는 “저의 삶을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저의 모든 시간을 거두셔서 값 있게 하소서! 저의 손을 잡아 주소서!” 하고 기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속에는 분명히 숨겨진 경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가.” 하고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반드시 푸르르고 풍성하고, 마침내 소원의 열매가 풍성하게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심히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총체적으로 위기라는 말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심 있는 민족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민족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를 일으키셔서 살이 붙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큰 군대를 이룬 것을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것처럼(겔37:10), 우리가 비록 꺾여진 나뭇가지와 같고 마른나무 같을 지라도 염려하고 근심하기 보다는.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놀라운 축복의 길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강대국 바벨론은 낮추시고 희망이 없는 이스라엘은 높일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의지할 때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을 지내면서 할아버지도 노예요, 아버지도 노예요, 자손들도 노예 생활을 할 것이 뻔했습니다. 7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기를 지나는 많은 세월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낮은 나무이지만 높아질 날이 오리라고 한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기를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고 명하였습니다(스1:1-4).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족 운동을 전개케 하고, 온 백성들로 더불어 성전을 건축하게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사를 더듬어 보면, 영적으로 곤고하고 암흑기 였던 시기는 삶이 어렵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바로 살았던 시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미국 사회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보고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청교도들이 신앙을 개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기로 해서, 학교에서나 의회에서 성경을 읽고 시작했을 때에는 삶에 희락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지만, 의회에서 각 학교에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하고 기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폐지한 때 부터는 이상하게 국가에 문제가 많이 일어 났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폭력범, 마약 범죄, 도덕적인 범죄 등. 사건과 사고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영적으로 잘못되어서 암흑 시기를 맞아 그들의 삶이 곤고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북방과 남방의 왕족들이 여러 해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거역했을 때, 바벨론을 통해서 눌러 놓으시므로. 바벨론은 높은 나라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낮고 천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아무런 힘이 없고, 길이 없었습니다. 한세기가 지나도록 꿈과 소망이 없이 지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고레스 왕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동안은 감사하고 감격해서 그들은 신앙 제일 중심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시대부터 예수님이 오시기 까지. 자그마치 400년 동안 영적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못 살다가 잘 살게 되면, 감사한 줄 알다가 좀 잘살게 되면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점점 하나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하나님 제일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데, 형식적으로 섬겼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십일조와 첫열매를 드리면서 양떼와 소떼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눈이 멀고 다리 못쓰고 병든 것만 골라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말1:13). “너희의 얼굴에 똥칠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말2:30). 영적인 암흑기 400년이 지나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소망의 길을 주시고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신후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의 세례를 부어 주셔서 어둠의 세계에 복음의 소식이 전파 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은 마침내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큰 불길로 일어 났습니다. 무슨 큰 부흥회나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성경말씀을 읽어 내려가다가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불길은 엄청난 기적의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뿐만아니라,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삼각산, 계룡산, 용문산 꼭대기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금식하는 주의 종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이 민족에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미국의 특파원이 한국의 현실을 간단하게 네가지로 말했는데, 1총체적인 부패의 나라,
2총체적인 혼란의 나라, 3총체적인 위기의 나라,
4총체적인 문제의 나라라고 지적 했습니다. 그러나 이 특파원이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니께서 숨겨 두신 믿음의 사람들 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을 그는 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상당히 암훌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용이 지렁이로 전락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앞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요소 요소에서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묵묵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때, 낮은 나무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개를 들게 하시고 일어서게 하시고 어깨를 펴게 하시고. 마침내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푸른 나무를 말리우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줄 알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푸르르고 무성케 하셔서 번성케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른 나무는 희망이 없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잎도 없고 생기도 없어서 언젠가는 시들어서 말라질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하는 그런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했습니다(미7:7-8). 스바냐3:16절 이하의 말씀에도 보면,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희망이 없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은 오랜만에 만난 자녀를 껴안아 주듯이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마른나무 가지처럼 희망이 없습니까 우리의 삶에, 장래에, 우리의 경영하는 일이 절망적입니까 아무래도 시들고 사그라질 것 같습니까 종이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시123:2). 종은 주인이 베푸는 사랑의 손길 때문에 살아갈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 살 수 없습니다. 주인이 잘 돌봐주고 보살펴 주고 사랑을 베풀어야만 신바람이 나게 됩니다. 요셉이라는 종을 주인이 보니까, 꽤 쓸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부인을 제외한 그 모든 하속들과 제반 문제들을 다스리고 관할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노예라는 종의 신분이 주인이 베푸는 사랑의 손길 때문에 그 집의 모든 살림을 맡는 귀한 직분을 받았습니다(창39: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나의 삶이 마른 나무가지 같습니까 나의 장래 문제가, 나의 경영하는 문제가. 마르고 낮아 졌습니까 그 상황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마른 나무를 푸르르게 할 수도 있고, 무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번성하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쉘러’라는 사람은 월리암 텔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스위스를 지배할 때, 총독 게슬러라는 사람을 스위스에 파견을 해서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게슬러’라는 사람이 얼‘마나 악독한 사람인지 통치 수단의 하나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 높은 장대를 세워놓고 그 위에 자기 모자를 씌워놓고는 누구든지 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절을 안하면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에 처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유명하고 전설적인 ‘월리암 텔’이라는 사람이 자기 아들과 함께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가다가 붙들려 갔습니다. 총독이 말하기를 “내 명을 어겼으니 나와 내기를 하자, 네 아들의 머리위에 사과를 얹어 놓고 그 사과를 화살로 맞추면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으리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에 있는 화살 두 개를 얼른 꺼내서 하나는 가슴에 숨겨두고, 하나를 가져다가 목표물에 겨냥을 하고 활 시위를 당겼습니다. 화살은 비호처럼 날라가서 다행히도 그 사과에 명중을 했습니다.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총독이 어이가 없어 하면서 “가슴에 숨긴 화살은 왜 숨겼느냐”고 물으니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을 쏴 죽일려고 했소!”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때, “너는 내가 이 나라의 총독인줄을 모르느냐 내가 무섭지도 않느냐” 하고 물으니 월리암 텔은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이외에는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분은 못하실 일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시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현실의 문제는 자꾸만 작아지고 쪼그맣게 보여집니다.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는 담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비록 마른 나무가지 같이 희망이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기적과 능력의 손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고, 기적과 같은 역사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에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크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말씀하신대로 푸르르게 하시고 꺾여진 나무이지만 옮겨 심어도 싹이 나고 마치 백향목과 같이 성장해서 새들이 깃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리라고 한 것입니다. 신28:1절 이하의 말씀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에도 지금으로 말하면 경제적인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오기만 하면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고 했던 것입니다(합2:3). 시40:1절 말씀에도 보니까,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영성을 요약해서 말씀드린다면, ‘기다리는 영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신앙인 것입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귀한 열매를 기다리기 까지는 오래 참아 이른비와 늦은 비를 기다릴 때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5:7-8절 말씀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크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보면, 현실의 문제는 자꾸만 작게 보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여자 의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마리 버거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신앙을 따라 신앙생활 잘하고 성실하게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의사시험에 합격도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 차를 좀 운전하겠다고 해서 핸들을 맡겼는데 차를 추월하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차와 정면으로 충돌을 하고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온 몸이 못쓰게 되었습니다. 의사인지라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구나” 하면서 낙심을 하며, “하나님, 제가 평생을 두고 남의 손만 의지해서 살아야만 하겠습니까” 하면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데 세월이 좀 흘러서 정상적으로 손이 회복을 하게 되고 휠체어를 타고 어느정도 다닐 수 있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주셨습니까.” 하면서 손과 머리와 몸둥이만 건강한 육체이지만 마른 나뭇가지 같은 인생을 왜 살려 주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계속 기도한 것입니다. 그때, “많은 장애자를 위해서 네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그는 다시 전문의 공부를 해서 여자로서는 참으로 힘든 과정들을 다 마치고, 특별히 장애자를 위해서 재활 수술에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훌륭한 의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호주로, 뉴욕으로 다니며 봉사하다가 인도에 나환자 회복센타를 건립해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책에는 “저의 삶을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저의 모든 시간을 거두셔서 값 있게 하소서! 저의 손을 잡아 주소서!” 하고 기도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 속에는 분명히 숨겨진 경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가.” 하고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반드시 푸르르고 풍성하고, 마침내 소원의 열매가 풍성하게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심히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총체적으로 위기라는 말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심 있는 민족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민족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를 일으키셔서 살이 붙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큰 군대를 이룬 것을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것처럼(겔37:10), 우리가 비록 꺾여진 나뭇가지와 같고 마른나무 같을 지라도 염려하고 근심하기 보다는.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놀라운 축복의 길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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