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가모 교회여 보아라 (계2:12-17)
본문
예언적으로 로마 국교시대를 예표하는 버가모 교회는 그러한 가운데서 버가모 교회 안에는 세상의 정치와 타협하는 무서운 사단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었다.
1. 역사적 배경. 소아시아에서는 가장 위대한 도시였다. 주전 282년 셀레우시드 왕국이 설립되어 버가모는 수도가 되었다. 주전 130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버가모 도시는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에서 중심지가 되었다.
2. 지리적 배경. 버가모는 내륙 도시로서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100km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름다운 계곡으로부터 매우 가파르고 웅장하게 솟아있는 큰 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버가모 시민들은 24km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한때는 16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이 도시는 지금은 2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쇠퇴한 도시로 남아있다.
3. 경제적 배경.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한 반면 버가모는 문화적인 면에서 아시아의 중심역할을 했다. 장서 20만권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으며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이기도 했다.
4. 종교적 배경. 버가모에는 신전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두개 있다.
1) 세계 7대 명물 중에 하나로 불리는 제우스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헬라의 주신(主神) 제우스를 섬기는 곳이었다. 높이가 12m. 폭이 27m 웅장하고 거대한 신전이었다.
2)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다. 버가모의 신으로까지 불리운 이 신전은 뱀 모양을 한 "의료 신전"으로 알려졌다. 이 신전에서는 약물투여. 심리요법을 포함한 치료방법을 사용한 신전이었다. 1960년대 발굴된 이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돌로 포장되었고 폭이 20m 도로 길이가 800m 였고 도로 양편에 약 15m 높이의 돌기둥들이 도열해 있다. 그 외에도 "황제는 곧 신이다" 황제 신당들이 있었고 아테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등이 있었다. 이러한 곳에 사도 바울은 교회를 3차 전도여행 때에 세웠다. 그리고 그 교회 지도자로 안디바를 세웠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해서 이곳이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자가 되었다.
5. 현재의 모습. 우상과 황제를 숭배하던 버가모 도시는 지금은 황폐한 도시가 되었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가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버가모 교회는 겨우 형체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다. 첫 번째:수신처와 수신자 12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이 편지는 1차 적으로 지역적인 측면에서 버가모 교회와 버가모 교회를 담임하는 주의 종에게 주어지는 편지이다. 2차적 교훈적인 측면에서 영적 상태를 분별하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편지이다. 3차적 개인적인 측면에서 예수를 믿고 마음에 성전을 삼고 사는 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주님의 편지이다. 4차적 예언적인 측면에서 사도요한 때부터 종말 때까지 교회의 영적인 모습을 나타내므로 버가모 교회는 로마국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버가모" 버 높다. 교만. 바벨탑 가모 혼인. 결혼. 버가모 교회는 교만과 결혼한 교회다. 즉 세상과 짝하고 타락한 교회다. 버가모 교회는 예언적으로 국교시대를 의미하는데 A.D 313-590년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이때 기독교는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A.D 313년 밀라노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그리고 A.D325년 니케야 회의에서 기독교를 정식으로 국교로 정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큰 저주가 된 것이다. 이때 이후로 카톨릭이 생겼고 교황이 생겼다. 당시에 화폐는 사탄의 위인 뱀의 모습이 돈에 그려져 있었다. 돈에서 보드래도 당시의 시국을 알 수가 있다.
당시로는 버가모 교회와 주의 사자에게 주어진 편지이지만 예언적으로는 국교시대를 가리키고 있다. 국교시대에 교회가 타락할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로마 국교시대에 교회는 무섭도록 타락하고 말았다.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와 짝하고 정치꾼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부귀 영화를 누렸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주의 종들이 세상 권세와 짝하고 세상 권세를 누린다면 교회는 타락하고 말 것이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버가모 교회 같은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버가모 교회 안에는 세상 권세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버가모 교회 지도자 안디바와 많은 성도들이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계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성도들도 세상과 타협하고 산다면 버가모 교회가 당한 책망을 듣게 될것이고 심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교회의 사자에게 먼저 주님이 편지 한 것은 그만큼 교회의 목사들에게 큰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목사는 성도들의 바른 삶을 살도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도록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많은 믿는 자들이 예수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끝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 주어진 주님의 편지 내용을 우리는 마음 깊이 새기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믿음을 굳건히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예수님의 모습. '계2:12'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예수께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모습으로 버가모 교회에 나타내 보이신 것은 두 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버가모 교회가 하나님 말씀으로 신앙의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불의 한 세력과 타협한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은 다면 좌우에 날선 검으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좌우에 날선 검 말씀을 의미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검은 두 가지로 쓰인다.
첫째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음식. 수술)
둘째는 사람을 헤치는 무기가 된다. 말씀도 깨닫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지만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한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끝까지 말씀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웠다. 말씀으로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버가모 성도들이 죽은 것이 무슨 승리한 것이냐 의문을 가질지 모르지만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순교한 것은 사단의 패배다. 성도들의 육적인 생명은 사단이 뺏었을지 몰라도 성도들의 영혼은 빼앗지 못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사단의 승리인가 사단은 십자가에서 머리가 박살났다. 우리가 사단과 싸운 싸움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이기신 싸움을 우리는 하고 있다. 이미 전쟁이 끝난 싸움이다. 우리는 말씀의 검만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말씀의 검을 가진다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한 삶을 살아갈 때 어떤 불의 한 세력도 우리는 넘보지 못할 것이다. 로마 국교 시대에 왜 교회가 정치와 하나가 되어 버렸는가 말씀의 검을 손에서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대 교회가 왜 세상과 짝하고 타협하는가 말씀의 검이 교회에 성도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불의 한 세력과 싸우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불의 한 세력과 말씀으로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해 버린다면 주님의 말씀의 검에 심판을 받을 것을 의미하고도 있다. '계19:1
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주님의 말씀의 검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큰 힘과 용기와 위로가 되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에게는 징계와 심판의 칼이 될 것이 다 세 번째:칭찬을 하시는 예수님 13절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 " 주님은 지금 버가모 교회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가 만연한 도시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가기란 그렇게 쉬웁지 아니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러한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버가모 교회 칭찬은 3가지로 볼 수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았다.
2.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순교를 당했다.
3.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이름을 굳게 잡아서" =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단의 위사단의 거하는 곳" = 곧 우상을 섬기는 신전과 버가모 도시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예언적으로 로마 국교 시대에 정치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교회 역사적으로도 오직 예수 한 분 때문에 살다간 믿음의 선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늘날도 오직 예수 한 분 때문에 세상 권세 명예 다 버리고 믿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가 칭찬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 이름을 굳게 잡았기 때문이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이름 하나 굳게 잡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세상과 정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이름 하나 굳게 잡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이름 하나 굳게 붙잡고 살기 때문이다. 예수이름 하나 붙잡고 믿고 살아갈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의 능력을 주신다.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주님은 버가모 도시를 사단이 거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 도시에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사단의 세력과 싸웠다. 그 대표적인 자가 안디바 였다. 안디바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예수님이 안디바의 순교를 알고 있었고 "내 충성된 증인" 이라고 하셨다. "터툴리안"이 기록한 문서에 의하면 그는 놋쇠 가마에서 서서히 구워지는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버가모 교회 수많은 성도들은 끝까지 예수이름 하나 붙잡고 믿음을 지켰다. 사단의 위가 있고 우상의 본거지가 있는 버가모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 시대에도 우리가 얼마나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운가 사단의 역사가 곳곳에서 우리를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직 예수 신앙 가지고 있을 때 우리에게 주신 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주님은 아낌없는 칭찬을 하실 것이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할지라도 내 믿음이 주님 앞에 보일게없다면 책망 받을 것이다. 아무리 뜨거운 교회에 내가 출석하고 있다 할지라도 내 믿음이 없다면 책망만 받을 것이다. 믿음이 좋은 가정 믿음이 뜨거운 교회 다닌다고 해서 주님께 칭찬 받은 것이 아니라 내 본인의 믿음이 주님께 보일 께 있어야 한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두려하지 않고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다. 그런 믿음을 주님은 칭찬을 하신 것이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기독교는 오히려 핍박을 당할 때 더욱 강해졌던 것을 본다. 쇠가 불 속에 자주 들어갈수록 더 강해지듯이 진정한 믿음은 핍박이 오면 올수록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가짜 믿음은 핍박이 오면 언제 내가 믿었느냐 식으로 믿음을 버리고 만다 . 이러한 믿음은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없다. (마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면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보여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 (계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러한 믿음을 우리가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강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는 지금부터 믿음을 훈련시키고 연단 시키시는 것은 우리를 칭찬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기 위함이다. 그 날에 우리 모두 주님께 "잘했다 충성된 종아" 칭찬 받은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네 번째:책망하시는 예수님. 14-15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버가모 교회가 강한 믿음을 보였지만 교회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을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고 계신다. 버가모 교회는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믿음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이 무엇인가 민22-25장에 나오는 발람과 발락이 펼치는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들어 우상 숭배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까지 한 사건이다. 발람 "다른나라 사람" 이라는 뜻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점쟁이였다. 발락 미혹케 하다.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 뜻이다. 발람과 발락이 하나가 된 것은 거짓 세력과 정치가 하나가 되어서 믿는 자 들을 미혹시키고 결국은 세상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로마 국교시대에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정치와 거짓세력이 하나가 되어서 교회를 타락하게 만들었다. 카톨릭이 정치와 하나되어 엄청난 세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렸다 니골라 당의 교훈은 무엇인가 영지주의자들로서 인간의 구원은 영적이기 때문에 육은 무익하므로 육적인 타락은 구원에 전혀 영향이 없으므로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 일종의 자유주의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의 두 면을 우리는 이 시간 잘 보아야 한다. 버가모 교회의 모습은 예언적으로 로마 국교시대를 예표했던 것처럼 국교시대에 교회의 두 모습이 있었다.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재해 올 때 이러한 버가모 교회의 두 모습이 항상 존재해 왔다.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교회를 보자 정치와 거짓세력이 하나가 되어서 교회를 미혹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교회는 두 모습으로 갈라졌다. 죽기를 가옥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진실한 신앙인과 적당히 타협해서 신사참배에 절을 하고 신앙 생활을 했던 자들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이다. 언제인가 어느 책에서 목사님이 이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신사참배한 자들이 살아 있는 한 어쩌면 우리 나라에 통일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보고 가슴 깊이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시대도 이 땅에 교회에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거짓 세력과 정치가 하나가 되어서 신성한 교회 속에 들어와서 목사들을 미혹하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 결과 예수도 믿으면서 우상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고 마음껏 즐기면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미아리 어느 점쟁이 집에는 "기독교인만 오세요" 써 붙여져 있다. 놀랄 일은 기독교인 55%가 한 번쯤은 점을 보러 갔다는 것이다 수많은 교회 성도들이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며 가는 발람의 길이 어떤 길인가 (벧후2:15-19)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 불의의 삯을 사랑한다.
2. 물없는 샘이다. =거짓 가르침을 뜻한다
3.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길이다. =거짓 가르침은 안개처럼 일시적이다
4.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된 길이다.
5. 허탄한 자랑을 한다. 6. 육체의 정욕에 빠진 자이다. 7. 멸망의 종들이다. 니골라 당의 교훈에 대해서도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셨다. 니골라 = "백성들을 삼킨다" 뜻이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랐다. 니골라 당의 가르침은 윤리.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육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육은 더럽고 추해도 영만 깨끗하면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르침이다 성경은 분명히 마지막 때에 너희 영과 혼과 육이 흠없이 보존하라고 하였다. (살전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니골라 당은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단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죄에 대해서 너무 방관하며 신앙생활 한다면 우리 속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는 자이다. 교회에서 목사가 성도들의 죄를 지적 못하고 너무 방관 만 하고 있다면 니골라 당의 교훈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도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자들이 곳곳에서 교회를 차려놓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 교훈에 빠지면 너무나 신앙생활 하는 게 편하다. 너무 자유롭고 편안 하는 것이다.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우리는 마지막 때에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예수와 바꿀 수는 없다. 세상 명예가 좋다고. 세상이 편안하다고 예수와 바꿀 것인가 예수 따라 가는 길이 가시밭 길 일지라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버가모 교회처럼 적당히 타협하는 교회. 성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버가모 교회 속에도 예수를 위해 죽은 안디바 같은 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주님의 경고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타락한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은 경고를 하고 계신다. 경고를 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주는데도 경고를 무시하면 주님이 직접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회개하라 =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것에 대해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입의 검으로 싸우리라 = 말씀으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히4:12) =하나님 말씀을 좌우에 날이 선 검으로 표현했다. 이 심판 앞에 피할 자가 있겠는가 주님의 말씀 앞에 누가 감히 대적 할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모든 교회마다 칭찬을 하시고 나서 강하게 책망을 하셨다. 그리고 그 책망을 듣고 회개하라고 모든 교회에 동일하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가 죄악 속에서 절대로 심판을 받기 원하지 않으신다. 한 영혼도 지옥 가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모든 교회는 성도들은 주님의 사랑의 경고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로마 국교 시대에 타락한 자들은 정치와 하나가 되어서 권세를 누리고 교회는 무섭도록 타락해 버렸다. 그들은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사탄의 종들이 되어서 교회 안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 (마23:13)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마23:15)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회개의 기회를 줄 때 회개해야 한다 세상과 예수를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과 예수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마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전10:21) "너희가 주(主)의 잔과 귀신(鬼神)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주님의 경고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회개의 삶을 게으르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우리에게 회개 기도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회개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살아가는 자는 주님의 재림 때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말씀의 검의 심판이 임할 때 심판을 못 면하게 될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섯 번째:주님의 약속.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버가모 교회에도 주님의 약속이 주어졌는데 그 약속은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약속이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은 3가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어느 교회보다도 버가모 교회는 가장 많은 약속을 받은 교회였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이다. (마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3가지
1. 감추었던 만나.= 생명의 떡이신 예수. 생명의 떡은 곧 말씀이다.
2. 흰 돌. = 하얀색을 성결을 뜻하고 돌은 예수를 뜻한다. 고전 10:4 = 그 반석은 곧그리스도시라. 벧전 2:4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런데 이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흰 돌은 당시 죄인이 무죄 판결을 받을 때 주었다. 노예가 해방될 때도 자유인의 표시로 흰 돌을 주었다.
그러므로 흰 돌을 주겠다는 것은 너희가 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한자가 되고 자유인이 된다는 증거다
3. 새 이름. = 무엇을 뜻하는 지 알수 없다. 받는 자 밖에 그 이름을 알 자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성경이가는데 까지 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긴다 = 전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저 흑암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말씀하셨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이 침노는 나쁜 의미가 아닌 열심을 뜻하는 말이다. 일곱 교회마다 주님의 약속이 주어지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이기는 자라는 말씀이 언급되어져 있다. 아무나 이 약속을 받는 게 아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해서 이 약속을 받는 게 아니다. 이겨야만 한다. 누구에게 이겨야 하는가 우리의 싸울 상대는 혈과 육이 아니라고 엡6:12에 말씀하고 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교회를 타락시키고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발람과 니골라 당의 세력과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로마 국교 시대에 주님의 뜻을 아는 자들은 배도 하는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이 이때 정치와 하나가 되어서 얼마나 악한 짖을 저질렀는지 알고있다. 이러한 배도하는 세력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3일-14일까지 W. C.C (세계교회 협의회) 총회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렸다. 이번에 공식적으로 결의된 내용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주고있다. W. C. C. 콘드라 라이저 총무는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하나님의 집으로 (Household God) 묶어 낸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앞으로 기구나 교파. 전통을 떠나 종교 일치 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에큐머니칼 포럼의 구성을 공식 결의했다. (살후2:3-4) 다 같이 보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4)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두 가지 사건이 먼저 반드시 있어야 한다.
1. 배도하는 세력이 난무 할 것이다. 성도들을 미혹시키는 배도하는 세력이 판을 칠 것이다. (마24:4-5)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2.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다. 바로 적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 사람은 대적자라고 했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다. 유럽 공동체 통합은 이제 완전히 이루어 졌다고 보아도 된다. 나라 국기가 나왔고 국경이 없어졌고 이제 화폐까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정치적으로 하나만 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하나 될 때 유럽 대통령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예언한 적 그리스도가 그 자가 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단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다니엘이 해석하여 주는데 구라파의 통합을 예언하고 있는 곳이다. (단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단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 이제 우리의 싸움은 밖의 세력과의 싸움만은 아니다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발람의 세력과 니골라 당의 세력들과 싸워야만 한다. 배도하는 역사가 뚜렷히 보이는 데도 교회들이 잠잠하고 있다면 안될 것이다. 모든 것을 은혜로 해서만은 안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목욕탕 속에 이단자가 들어오면 소스라치게 놀래면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잠시라도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겠다는 요한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주님은 일곱 교회에 동일하게 이기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싸우는 자만이 이길 수가 있다. (약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싸우라고 했다고 육적으로 치고 받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이 싸워서 상처투성이다.
1. 역사적 배경. 소아시아에서는 가장 위대한 도시였다. 주전 282년 셀레우시드 왕국이 설립되어 버가모는 수도가 되었다. 주전 130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버가모 도시는 정치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에서 중심지가 되었다.
2. 지리적 배경. 버가모는 내륙 도시로서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100km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름다운 계곡으로부터 매우 가파르고 웅장하게 솟아있는 큰 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버가모 시민들은 24km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한때는 16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던 이 도시는 지금은 2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쇠퇴한 도시로 남아있다.
3. 경제적 배경.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한 반면 버가모는 문화적인 면에서 아시아의 중심역할을 했다. 장서 20만권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으며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이기도 했다.
4. 종교적 배경. 버가모에는 신전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두개 있다.
1) 세계 7대 명물 중에 하나로 불리는 제우스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헬라의 주신(主神) 제우스를 섬기는 곳이었다. 높이가 12m. 폭이 27m 웅장하고 거대한 신전이었다.
2)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다. 버가모의 신으로까지 불리운 이 신전은 뱀 모양을 한 "의료 신전"으로 알려졌다. 이 신전에서는 약물투여. 심리요법을 포함한 치료방법을 사용한 신전이었다. 1960년대 발굴된 이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돌로 포장되었고 폭이 20m 도로 길이가 800m 였고 도로 양편에 약 15m 높이의 돌기둥들이 도열해 있다. 그 외에도 "황제는 곧 신이다" 황제 신당들이 있었고 아테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등이 있었다. 이러한 곳에 사도 바울은 교회를 3차 전도여행 때에 세웠다. 그리고 그 교회 지도자로 안디바를 세웠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해서 이곳이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자가 되었다.
5. 현재의 모습. 우상과 황제를 숭배하던 버가모 도시는 지금은 황폐한 도시가 되었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가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버가모 교회는 겨우 형체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다. 첫 번째:수신처와 수신자 12절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이 편지는 1차 적으로 지역적인 측면에서 버가모 교회와 버가모 교회를 담임하는 주의 종에게 주어지는 편지이다. 2차적 교훈적인 측면에서 영적 상태를 분별하는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편지이다. 3차적 개인적인 측면에서 예수를 믿고 마음에 성전을 삼고 사는 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주님의 편지이다. 4차적 예언적인 측면에서 사도요한 때부터 종말 때까지 교회의 영적인 모습을 나타내므로 버가모 교회는 로마국교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버가모" 버 높다. 교만. 바벨탑 가모 혼인. 결혼. 버가모 교회는 교만과 결혼한 교회다. 즉 세상과 짝하고 타락한 교회다. 버가모 교회는 예언적으로 국교시대를 의미하는데 A.D 313-590년 시대를 예표하고 있다 이때 기독교는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A.D 313년 밀라노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그리고 A.D325년 니케야 회의에서 기독교를 정식으로 국교로 정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큰 저주가 된 것이다. 이때 이후로 카톨릭이 생겼고 교황이 생겼다. 당시에 화폐는 사탄의 위인 뱀의 모습이 돈에 그려져 있었다. 돈에서 보드래도 당시의 시국을 알 수가 있다.
당시로는 버가모 교회와 주의 사자에게 주어진 편지이지만 예언적으로는 국교시대를 가리키고 있다. 국교시대에 교회가 타락할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로마 국교시대에 교회는 무섭도록 타락하고 말았다.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와 짝하고 정치꾼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부귀 영화를 누렸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주의 종들이 세상 권세와 짝하고 세상 권세를 누린다면 교회는 타락하고 말 것이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버가모 교회 같은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버가모 교회 안에는 세상 권세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버가모 교회 지도자 안디바와 많은 성도들이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계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성도들도 세상과 타협하고 산다면 버가모 교회가 당한 책망을 듣게 될것이고 심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교회의 사자에게 먼저 주님이 편지 한 것은 그만큼 교회의 목사들에게 큰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목사는 성도들의 바른 삶을 살도록 세상과 타협하지 않도록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많은 믿는 자들이 예수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끝까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 주어진 주님의 편지 내용을 우리는 마음 깊이 새기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믿음을 굳건히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예수님의 모습. '계2:12'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예수께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모습으로 버가모 교회에 나타내 보이신 것은 두 가지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버가모 교회가 하나님 말씀으로 신앙의 적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불의 한 세력과 타협한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은 다면 좌우에 날선 검으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의미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좌우에 날선 검 말씀을 의미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검은 두 가지로 쓰인다.
첫째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음식. 수술)
둘째는 사람을 헤치는 무기가 된다. 말씀도 깨닫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지만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한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칼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끝까지 말씀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웠다. 말씀으로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버가모 성도들이 죽은 것이 무슨 승리한 것이냐 의문을 가질지 모르지만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순교한 것은 사단의 패배다. 성도들의 육적인 생명은 사단이 뺏었을지 몰라도 성도들의 영혼은 빼앗지 못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사단의 승리인가 사단은 십자가에서 머리가 박살났다. 우리가 사단과 싸운 싸움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이기신 싸움을 우리는 하고 있다. 이미 전쟁이 끝난 싸움이다. 우리는 말씀의 검만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말씀의 검을 가진다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한 삶을 살아갈 때 어떤 불의 한 세력도 우리는 넘보지 못할 것이다. 로마 국교 시대에 왜 교회가 정치와 하나가 되어 버렸는가 말씀의 검을 손에서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대 교회가 왜 세상과 짝하고 타협하는가 말씀의 검이 교회에 성도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불의 한 세력과 싸우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불의 한 세력과 말씀으로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해 버린다면 주님의 말씀의 검에 심판을 받을 것을 의미하고도 있다. '계19:1
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주님의 말씀의 검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큰 힘과 용기와 위로가 되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에게는 징계와 심판의 칼이 될 것이 다 세 번째:칭찬을 하시는 예수님 13절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 " 주님은 지금 버가모 교회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가 만연한 도시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가기란 그렇게 쉬웁지 아니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러한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버가모 교회 칭찬은 3가지로 볼 수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았다.
2.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순교를 당했다.
3. 믿음을 끝까지 지켰다.
"이름을 굳게 잡아서" =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단의 위사단의 거하는 곳" = 곧 우상을 섬기는 신전과 버가모 도시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예언적으로 로마 국교 시대에 정치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교회 역사적으로도 오직 예수 한 분 때문에 살다간 믿음의 선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늘날도 오직 예수 한 분 때문에 세상 권세 명예 다 버리고 믿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가 칭찬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 이름을 굳게 잡았기 때문이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이름 하나 굳게 잡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진들이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세상과 정치와 타협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이름 하나 굳게 잡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이름 하나 굳게 붙잡고 살기 때문이다. 예수이름 하나 붙잡고 믿고 살아갈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의 능력을 주신다.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주님은 버가모 도시를 사단이 거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 도시에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사단의 세력과 싸웠다. 그 대표적인 자가 안디바 였다. 안디바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예수님이 안디바의 순교를 알고 있었고 "내 충성된 증인" 이라고 하셨다. "터툴리안"이 기록한 문서에 의하면 그는 놋쇠 가마에서 서서히 구워지는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버가모 교회 수많은 성도들은 끝까지 예수이름 하나 붙잡고 믿음을 지켰다. 사단의 위가 있고 우상의 본거지가 있는 버가모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 시대에도 우리가 얼마나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운가 사단의 역사가 곳곳에서 우리를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이름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직 예수 신앙 가지고 있을 때 우리에게 주신 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주님은 아낌없는 칭찬을 하실 것이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할지라도 내 믿음이 주님 앞에 보일게없다면 책망 받을 것이다. 아무리 뜨거운 교회에 내가 출석하고 있다 할지라도 내 믿음이 없다면 책망만 받을 것이다. 믿음이 좋은 가정 믿음이 뜨거운 교회 다닌다고 해서 주님께 칭찬 받은 것이 아니라 내 본인의 믿음이 주님께 보일 께 있어야 한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안디바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두려하지 않고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다. 그런 믿음을 주님은 칭찬을 하신 것이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기독교는 오히려 핍박을 당할 때 더욱 강해졌던 것을 본다. 쇠가 불 속에 자주 들어갈수록 더 강해지듯이 진정한 믿음은 핍박이 오면 올수록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가짜 믿음은 핍박이 오면 언제 내가 믿었느냐 식으로 믿음을 버리고 만다 . 이러한 믿음은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없다. (마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면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보여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 (계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러한 믿음을 우리가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강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는 지금부터 믿음을 훈련시키고 연단 시키시는 것은 우리를 칭찬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기 위함이다. 그 날에 우리 모두 주님께 "잘했다 충성된 종아" 칭찬 받은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네 번째:책망하시는 예수님. 14-15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버가모 교회가 강한 믿음을 보였지만 교회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을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고 계신다. 버가모 교회는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믿음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이 무엇인가 민22-25장에 나오는 발람과 발락이 펼치는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만들어 우상 숭배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까지 한 사건이다. 발람 "다른나라 사람" 이라는 뜻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점쟁이였다. 발락 미혹케 하다.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 뜻이다. 발람과 발락이 하나가 된 것은 거짓 세력과 정치가 하나가 되어서 믿는 자 들을 미혹시키고 결국은 세상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로마 국교시대에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정치와 거짓세력이 하나가 되어서 교회를 타락하게 만들었다. 카톨릭이 정치와 하나되어 엄청난 세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렸다 니골라 당의 교훈은 무엇인가 영지주의자들로서 인간의 구원은 영적이기 때문에 육은 무익하므로 육적인 타락은 구원에 전혀 영향이 없으므로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 일종의 자유주의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버가모 교회의 두 면을 우리는 이 시간 잘 보아야 한다. 버가모 교회의 모습은 예언적으로 로마 국교시대를 예표했던 것처럼 국교시대에 교회의 두 모습이 있었다.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재해 올 때 이러한 버가모 교회의 두 모습이 항상 존재해 왔다.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교회를 보자 정치와 거짓세력이 하나가 되어서 교회를 미혹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교회는 두 모습으로 갈라졌다. 죽기를 가옥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진실한 신앙인과 적당히 타협해서 신사참배에 절을 하고 신앙 생활을 했던 자들이 있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모습이다. 언제인가 어느 책에서 목사님이 이런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신사참배한 자들이 살아 있는 한 어쩌면 우리 나라에 통일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보고 가슴 깊이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시대도 이 땅에 교회에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거짓 세력과 정치가 하나가 되어서 신성한 교회 속에 들어와서 목사들을 미혹하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 결과 예수도 믿으면서 우상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고 마음껏 즐기면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미아리 어느 점쟁이 집에는 "기독교인만 오세요" 써 붙여져 있다. 놀랄 일은 기독교인 55%가 한 번쯤은 점을 보러 갔다는 것이다 수많은 교회 성도들이 발람의 교훈을 따르고 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며 가는 발람의 길이 어떤 길인가 (벧후2:15-19)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 불의의 삯을 사랑한다.
2. 물없는 샘이다. =거짓 가르침을 뜻한다
3.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길이다. =거짓 가르침은 안개처럼 일시적이다
4.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된 길이다.
5. 허탄한 자랑을 한다. 6. 육체의 정욕에 빠진 자이다. 7. 멸망의 종들이다. 니골라 당의 교훈에 대해서도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셨다. 니골라 = "백성들을 삼킨다" 뜻이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랐다. 니골라 당의 가르침은 윤리.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육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육은 더럽고 추해도 영만 깨끗하면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르침이다 성경은 분명히 마지막 때에 너희 영과 혼과 육이 흠없이 보존하라고 하였다. (살전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니골라 당은 죄에 대해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단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죄에 대해서 너무 방관하며 신앙생활 한다면 우리 속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는 자이다. 교회에서 목사가 성도들의 죄를 지적 못하고 너무 방관 만 하고 있다면 니골라 당의 교훈을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도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자들이 곳곳에서 교회를 차려놓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 교훈에 빠지면 너무나 신앙생활 하는 게 편하다. 너무 자유롭고 편안 하는 것이다.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우리는 마지막 때에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예수와 바꿀 수는 없다. 세상 명예가 좋다고. 세상이 편안하다고 예수와 바꿀 것인가 예수 따라 가는 길이 가시밭 길 일지라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버가모 교회처럼 적당히 타협하는 교회. 성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버가모 교회 속에도 예수를 위해 죽은 안디바 같은 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를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주님의 경고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타락한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은 경고를 하고 계신다. 경고를 한다는 것은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주는데도 경고를 무시하면 주님이 직접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회개하라 =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것에 대해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입의 검으로 싸우리라 = 말씀으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히4:12) =하나님 말씀을 좌우에 날이 선 검으로 표현했다. 이 심판 앞에 피할 자가 있겠는가 주님의 말씀 앞에 누가 감히 대적 할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모든 교회마다 칭찬을 하시고 나서 강하게 책망을 하셨다. 그리고 그 책망을 듣고 회개하라고 모든 교회에 동일하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가 죄악 속에서 절대로 심판을 받기 원하지 않으신다. 한 영혼도 지옥 가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모든 교회는 성도들은 주님의 사랑의 경고에 귀를 기울어야 할 것이다. 로마 국교 시대에 타락한 자들은 정치와 하나가 되어서 권세를 누리고 교회는 무섭도록 타락해 버렸다. 그들은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사탄의 종들이 되어서 교회 안에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 (마23:13)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마23:15)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회개의 기회를 줄 때 회개해야 한다 세상과 예수를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재물과 예수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마6:24)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전10:21) "너희가 주(主)의 잔과 귀신(鬼神)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주님의 경고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회개의 삶을 게으르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우리에게 회개 기도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회개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살아가는 자는 주님의 재림 때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말씀의 검의 심판이 임할 때 심판을 못 면하게 될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여섯 번째:주님의 약속.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버가모 교회에도 주님의 약속이 주어졌는데 그 약속은 이기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약속이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은 3가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어느 교회보다도 버가모 교회는 가장 많은 약속을 받은 교회였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이다. (마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3가지
1. 감추었던 만나.= 생명의 떡이신 예수. 생명의 떡은 곧 말씀이다.
2. 흰 돌. = 하얀색을 성결을 뜻하고 돌은 예수를 뜻한다. 고전 10:4 = 그 반석은 곧그리스도시라. 벧전 2:4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런데 이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흰 돌은 당시 죄인이 무죄 판결을 받을 때 주었다. 노예가 해방될 때도 자유인의 표시로 흰 돌을 주었다.
그러므로 흰 돌을 주겠다는 것은 너희가 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한자가 되고 자유인이 된다는 증거다
3. 새 이름. = 무엇을 뜻하는 지 알수 없다. 받는 자 밖에 그 이름을 알 자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성경이가는데 까지 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긴다 = 전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저 흑암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은 말씀하셨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마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 이 침노는 나쁜 의미가 아닌 열심을 뜻하는 말이다. 일곱 교회마다 주님의 약속이 주어지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이기는 자라는 말씀이 언급되어져 있다. 아무나 이 약속을 받는 게 아니다. 적당히 신앙생활해서 이 약속을 받는 게 아니다. 이겨야만 한다. 누구에게 이겨야 하는가 우리의 싸울 상대는 혈과 육이 아니라고 엡6:12에 말씀하고 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교회를 타락시키고 성도들을 타락시키는 발람과 니골라 당의 세력과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로마 국교 시대에 주님의 뜻을 아는 자들은 배도 하는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이 이때 정치와 하나가 되어서 얼마나 악한 짖을 저질렀는지 알고있다. 이러한 배도하는 세력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년 12월 3일-14일까지 W. C.C (세계교회 협의회) 총회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렸다. 이번에 공식적으로 결의된 내용 중에 하나가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주고있다. W. C. C. 콘드라 라이저 총무는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하나님의 집으로 (Household God) 묶어 낸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앞으로 기구나 교파. 전통을 떠나 종교 일치 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에큐머니칼 포럼의 구성을 공식 결의했다. (살후2:3-4) 다 같이 보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4)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두 가지 사건이 먼저 반드시 있어야 한다.
1. 배도하는 세력이 난무 할 것이다. 성도들을 미혹시키는 배도하는 세력이 판을 칠 것이다. (마24:4-5)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2.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다. 바로 적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 사람은 대적자라고 했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다. 유럽 공동체 통합은 이제 완전히 이루어 졌다고 보아도 된다. 나라 국기가 나왔고 국경이 없어졌고 이제 화폐까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정치적으로 하나만 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하나 될 때 유럽 대통령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예언한 적 그리스도가 그 자가 될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단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다니엘이 해석하여 주는데 구라파의 통합을 예언하고 있는 곳이다. (단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단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 이제 우리의 싸움은 밖의 세력과의 싸움만은 아니다 기독교 안에 들어와 있는 발람의 세력과 니골라 당의 세력들과 싸워야만 한다. 배도하는 역사가 뚜렷히 보이는 데도 교회들이 잠잠하고 있다면 안될 것이다. 모든 것을 은혜로 해서만은 안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목욕탕 속에 이단자가 들어오면 소스라치게 놀래면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잠시라도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겠다는 요한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주님은 일곱 교회에 동일하게 이기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만 한다. 싸우는 자만이 이길 수가 있다. (약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싸우라고 했다고 육적으로 치고 받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너무 많이 싸워서 상처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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