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배의 결실 (막10:29-31)
본문
금세와 내세에 결실의 축복을 누리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의 본문말씀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북방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남방 유대와 베뢰아 지방에 이를 때에 한 부자 청년이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찾아와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내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권고했습니다만 그 청년은 재 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물러갔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베드로 사도께서 "보소 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좆았나이다"고 자신있게 고백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 1:16이하를 보면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사실을 간증한 것입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가정과 가족과 재산을 버린 자는 금세에 백 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버린 자"만이 백 배의 결실을 하게 됩니다. 그 러면 , 백 배의 결실이 약속된 이 "버린 자"란 어떤 사람을 뜻합니까
1. 그리스도와 복음을 "절대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9절에 "집이란" 가정을 뜻하며,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란 말씀은 결국 가족을 뜻하며, "전토"란 말씀은 농경문화 시대의 재산을 가리킵니다. 가정, 가족, 재산! 이같은 것들은 우리가 너무 사랑할 위험성이 많은 것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섬기는 우상들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의 도"를 가르치실 때마다 강조하신 교훈은 주님과 복음보다 더 사랑할 위험성이 있는 것을 버리도록 권고하신 것입니다. 정신없이 사랑할 유록적 대상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가정! 이 얼마나 사랑스럽 습니까 지상의 낙원이요 경쟁과 투쟁과 전투가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요 여자 의 왕국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보다, 낮은 자가 높은 자보다 자유롭고 사랑받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우상이 되기 쉽고 가정을 "절대사랑"하기 쉽습니다. 이때는 주님도 가정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족! 이 또한 얼마나 사랑스럽 습니까 가장 부담없는 인연이요, 부끄럼, 수치,장벽이 필요치 않는 사람들이 요, 따져볼수록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금세와 내세에 결실의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이들 또한 "절대사랑"할 대상이 아님을 교훈합니다. 재산 도 정신없이 사랑케 되는 대상입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것들을 왜 "버리라"고 하셨씁니까 그근본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0:37에는 이같은 것들을 가리켜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4:26에는 이같은 것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마가의 "버리라"는 권고나 마태의 "더 사랑 하면 합당치 않다"는 경고나 누가의 "미워하라"는 권면은 다 같이 가정, 가족,재 산을 "절대사랑"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문자적으로 가정을 버리고 가족에 대 한 책임과 사랑을 등한히 하며 귀한 재산을 전적으로 포기하라는 멸열은 아닙니다. 이같은 것들도 신앙적 원리에서 사랑하고 아껴야만 합니다만 "절대사랑"의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을 "절대사랑"하는 사람만이 금세와 내세에 결실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2.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절대고통"을 각오하는 자입니다. 30절에 "핍박을 겸하여 받고"라고 복음과 그리스도를 절대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따를 것임을 밝힙니다. 그리스도가 절대가 될 때 극단적 상황에서 가정을 버리는 고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버리는 고통, 재산을 버리는 고통도 있을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버리는 고통까지 각오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눅14:26)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 (막8:34) 고 당부하셨 씁니다. 왜 이같은 고난과 고통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까 내세의 결실인 영생 이 가장 귀한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44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 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했씁니다. 마태복음서의 "천국"이나 마가 복음서와 누가복음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복음서의 "영생"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곧 영생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 을 사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고 했습니다. "돌밭"같은 인간은 "말씀 을 들을 때는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는 곧 넘어지는 자"(마13:20)입니다. 결코 30배,60배 100배의 결실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통에 약한 사람은 결실할 수 없습니다. "백 배"란 말씀은 "많은 결실"이라기 보다 "기적적인 결실"을 뜻합니다. 고난을 피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나(골1:24)베드로 사도나(벧전4:13) 구약의 모세 같은 분들은 (히11:24-26)고난을 자칭하여 받았습니다. 가정과 가 족과 재산을 버리는 고통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 백 배의 결실이 따라옵니다.
3.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절대보상을 받을 사람입니다. 30절 초에 "금세에.백 배"라고 밝혔습니다. 기적적 보상이 "버린자"에게 주 어집니다. 버리면 더 준다는 영적 축복의 비결입니다. 가정과 두 아들을 절대 사랑한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가정이 되었씁니다. (삼상4:21) 그러나 절대사랑하여 절대고난을 받은 모세가 어떠했습니까 30절 말에 "내세에.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버린"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최종적 보상은 내세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복락 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벧전 1:4)입니다. 그리고 영화로운 몸입니다. (고전 15:53)주님만을 "절대사랑"하시 고 이로 인한 "절대고통"을 피하지 않으며 "절대보상"을 믿는 참 성도들이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그리스도와 복음을 "절대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9절에 "집이란" 가정을 뜻하며,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란 말씀은 결국 가족을 뜻하며, "전토"란 말씀은 농경문화 시대의 재산을 가리킵니다. 가정, 가족, 재산! 이같은 것들은 우리가 너무 사랑할 위험성이 많은 것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섬기는 우상들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의 도"를 가르치실 때마다 강조하신 교훈은 주님과 복음보다 더 사랑할 위험성이 있는 것을 버리도록 권고하신 것입니다. 정신없이 사랑할 유록적 대상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가정! 이 얼마나 사랑스럽 습니까 지상의 낙원이요 경쟁과 투쟁과 전투가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요 여자 의 왕국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보다, 낮은 자가 높은 자보다 자유롭고 사랑받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우상이 되기 쉽고 가정을 "절대사랑"하기 쉽습니다. 이때는 주님도 가정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족! 이 또한 얼마나 사랑스럽 습니까 가장 부담없는 인연이요, 부끄럼, 수치,장벽이 필요치 않는 사람들이 요, 따져볼수록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금세와 내세에 결실의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이들 또한 "절대사랑"할 대상이 아님을 교훈합니다. 재산 도 정신없이 사랑케 되는 대상입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것들을 왜 "버리라"고 하셨씁니까 그근본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0:37에는 이같은 것들을 가리켜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4:26에는 이같은 것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마가의 "버리라"는 권고나 마태의 "더 사랑 하면 합당치 않다"는 경고나 누가의 "미워하라"는 권면은 다 같이 가정, 가족,재 산을 "절대사랑"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문자적으로 가정을 버리고 가족에 대 한 책임과 사랑을 등한히 하며 귀한 재산을 전적으로 포기하라는 멸열은 아닙니다. 이같은 것들도 신앙적 원리에서 사랑하고 아껴야만 합니다만 "절대사랑"의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을 "절대사랑"하는 사람만이 금세와 내세에 결실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2.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절대고통"을 각오하는 자입니다. 30절에 "핍박을 겸하여 받고"라고 복음과 그리스도를 절대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이 따를 것임을 밝힙니다. 그리스도가 절대가 될 때 극단적 상황에서 가정을 버리는 고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을 버리는 고통, 재산을 버리는 고통도 있을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버리는 고통까지 각오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눅14:26)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 (막8:34) 고 당부하셨 씁니다. 왜 이같은 고난과 고통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까 내세의 결실인 영생 이 가장 귀한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44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 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했씁니다. 마태복음서의 "천국"이나 마가 복음서와 누가복음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요한복음서의 "영생"과 똑같은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곧 영생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 을 사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고 했습니다. "돌밭"같은 인간은 "말씀 을 들을 때는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는 곧 넘어지는 자"(마13:20)입니다. 결코 30배,60배 100배의 결실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통에 약한 사람은 결실할 수 없습니다. "백 배"란 말씀은 "많은 결실"이라기 보다 "기적적인 결실"을 뜻합니다. 고난을 피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나(골1:24)베드로 사도나(벧전4:13) 구약의 모세 같은 분들은 (히11:24-26)고난을 자칭하여 받았습니다. 가정과 가 족과 재산을 버리는 고통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 백 배의 결실이 따라옵니다.
3.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절대보상을 받을 사람입니다. 30절 초에 "금세에.백 배"라고 밝혔습니다. 기적적 보상이 "버린자"에게 주 어집니다. 버리면 더 준다는 영적 축복의 비결입니다. 가정과 두 아들을 절대 사랑한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가정이 되었씁니다. (삼상4:21) 그러나 절대사랑하여 절대고난을 받은 모세가 어떠했습니까 30절 말에 "내세에.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버린"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최종적 보상은 내세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복락 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벧전 1:4)입니다. 그리고 영화로운 몸입니다. (고전 15:53)주님만을 "절대사랑"하시 고 이로 인한 "절대고통"을 피하지 않으며 "절대보상"을 믿는 참 성도들이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