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방황하는 백성들 (삿1:1-7)

본문

우리가 이시간 함께 은혜받고자 하는 말씀인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민족의 영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것입니다. 이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또 민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와 모세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모세는 역사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는 직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새로운 것을 보았고,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명령받고 법을 제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의 기초를 다져놓은 선구자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모세가 이루어 놓은 것을 잘 유지하고 보존하며 다스려 나가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전승 받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사명과 목표를 잘 간직하고 정돈하며 집행하여 백성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민족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이런 여호수아가 죽자 백성들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지도자인 모세와 여호수아가 충분히 백성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일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 백성들은 심각한 혼란에 빠졌고,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그들은 방황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그 사실은 출애굽기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선택의 은총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았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을 쉬지 않았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시시때때로 망각하는 백성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기의 백성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를 무려 40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모세가 죽고난 후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이들은 신명기 7장을 통해 볼 때 가나안 일곱 족족과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었습니다. 즉, 가나안인을 축출하라. 그들과 함께 공존하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문화적인 공존입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그 우상을 중심으로한 문화를 무엇보다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이고, 또 이것을 십계명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문화를 따르지 않아야 했습니다. 본래 히브리인들은 일종의 베두인으로서 광활한 사막에서 방랑하며 약대를 기르고 텐트를 치고 살면서 자연환경과 그대로 접촉하며 원시적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이 닦아놓은 기술과 인간의 입에 맞는 문화를 신봉하며 사는 자들이 아니라 성막의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매우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기 쉬운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순수했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과 관능에 호소하는 가나안 문화에 빠져들기가 그만큼 쉬웠습니다. 가나안 문화는 이스라엘 앞에 놓여진 함정이었습니다. 밤낮으로 방랑하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찬란한 정착 문화는 충분한 유혹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문화는 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란하고 강렬해 보이는 가나안 신들과 농경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론 물이 부족하고 때론 양식이 부족한, 무언가 부족한 가운데 살던 백성이었고 보면 그들에게 농경문화가 이루어 놓은 화려한 도시는 상당히 매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히 이러한 문화를 가진 가나안 족속과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함께 잘 살아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가나안에 정착한 후 정착 농민이 되어 유목과 농사를 함께 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풍성해지니까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편해지면 좀 더 편한 것을 찾고, 안정을 찾으면 과거에 힘들었던 시절을 잊고 좀 더 안정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허나 이 속성 때문에 인본주의 문화에 맛을 들이면 점차 깊이 젖어들게 되고, 결국 하나님은 무덤에나 모셔놓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문화에 동화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사사기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하나님의 어떤 법칙이 역사에 적용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게 바로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는 약 300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300년 중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거역함으로 인하여 노예로 산 기간이 무려 107년이나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패역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영적 지도자로서 14명의 사사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기의 첫장을 엽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십시다.
1. 그들은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죽었다고 자기들의 할 일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남은 가나안인들을 물리치고 자기들의 남은 기업을 차지하는 과업이 바로 목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감합니다. 여호수아가 없는 지금 누가 앞장선단 말입니까 지도자 없이 어떻게 가나안을 물리칠 수 있단 말입니까 처음에는 백성들의 의견이 분분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가 숱한 질문들이 백성들 사이를 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삿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 여기에서 묻는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하나님께 사용될 때에는 기도하다. 간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 물었다는 것은 곧 기도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믿고 따르던 민족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지금이야말로 가장 기도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기도가 필요한 때는 언제입니까 막상 기도가 요청되는 곤고한 시기에 기도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삶의 방향이 불분명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곤고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방을 아무리 둘러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절망의 때에 하늘 아버지를 바라 보십시오.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인간을 의지하거나 인간에게 하소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의 해결책이시오 소망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시46: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그들은 미해결 과제를 위해 새롭게 도전했습니다. 우리가 사사기 1장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아직 다 쫓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숙제를 남겨놓고 죽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가나안의 도시들을 지배하던 자는 7절에 언급된 아도니 베섹으로 그 이름의 뜻은 베섹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고고학적으로 베섹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전략상 아주 중요한 요새였다는 데는 고고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베섹의 용사들은 맹렬하고, 공격적이고, 잔인한 자들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베섹은 이스라엘이 당면한 커다란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미해결의 문제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게 됩니다. “(삿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지하고 바라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백성들을 위한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그러했고, 이스라엘의 사사들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겸허하게 엎드려 자신의 미래나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끈질기게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시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여호와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갈 길을 몰라 방황하며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의 자세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믿고, 기도하며 나아가십시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놀라웁게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3. 그들은 지파끼리 서로 협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지파를 선정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유다지파는 그 이름대로 매우 귀하게 사용된 지파입니다. 메시아가 나오기까지 한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입니다. 이 유다지파가 시므온 지파에게 올라가 가나안 족속과 싸워 줄 것을 요청했고, 시므온 지파는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삿1:3)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 형제가 동거동락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좋은 방법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전쟁은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도우는데 안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최후적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홀로 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나 개인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대신 지옥가주고 나는 천국 가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철저히 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배척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공동체에 속해 있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만큼은 항상 내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와 이웃을 무시한 문제해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죽은 후 방황하는 백성들처럼 오늘날 이 시대의 망망대해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개인적인 문제들, 사회적인 문제들, 나아가 국가적인 문제들이 태산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절망과 고통을 안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 받아야 합니다. 화해와 협력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자에게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52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