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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자가 되기까지 (눅22:1-6)

본문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에게는 늘 붙어 다니는 수치스러운 수식어가 있습니다. 배반자라는 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는 실눈을 가진 음흉스러운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반한 일로 인해서 이처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멸시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에 입맞추는 것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인시키기로 했습니다. 사랑과 애정의 표시를 배신과 비열의 표시로 전락시켰으니 그런 대우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며 교훈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3절에 의하면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귀신들렸다는 표현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복음서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들은 신체적인 기능장애를 일으키며 정신 이상으로 자학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단이 들어간 즉시 그의 몰골이 이상해지면 악마로 변해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의논할 때도 지극히 정상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유다를 상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는 유다의 생각과 행동이 사단의 통제 하여 놓이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유다가 그 이후로 계속 사단의 통제 아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나중에 예수님께서 정죄받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의 한 일을 뉘우쳤습니다. 그 순간 사단이 그를 지배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가 하니.”(마27:3,4) 아무리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귀 사단에게 생각을 지배당하면 가룟 유다가 그랬던 것 같이 비열하고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 사단은 인류의 대적입니다. 결코 그를 미화하거나 영화나 만화에서 하듯이 막강한 권세를 가진 엄청난 영적 존재로 부각시킴으로써 두려움으로 그를 숭배하게 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힘으로 사단과 대적하여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신 사람만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둘째, 유다가 탐심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만이 가룟 유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6일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자 마리아가 고이 간직한 값 비싼 양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가 주동이 되어서 귀한 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지 않고 허비한다고 그녀의 행위를 비난했습니다. 이것은 마태와 마가도 기록하고 있지만 사도 요한은 그들이 지나쳐버린 한 가지 사실을 부연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돈 생각이 나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일행의 필요를 위해서 사람들이 그분께 드리는 것들을 관리하고 지출하는 일을 맡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씩 횡령했던 것입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니라”(요12:4-6) 가룟 유다고 다른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만 믿었습니다. 그분을 좇다 보면 그분께서 왕이 되실 때 대신 자리 하나를 맡게 될 것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받들어주는데도 그 역할을 맡기를 거부하시며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부쩍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실망과 희망의 상실은 한 순간 예수님에 대한 보복 심리를 일으켰는지도 모릅니다. 거기다 오랫동안 키워온 탐심에 마귀 사단이 불을 질러 그분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흥정을 할 생각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유다의 배반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한 후에 취한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그가 대가로 받기로 한 것은 은 30냥으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대가 치고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목적이 단지 돈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학자는 가룟 유다가 그의 보기에 소극적이기만 한 예수님을 위험에 노출시켜 정치적인 메시야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려고 했다고 유추하기도 합니다. 그 경우라도 철저히 그의 동기는 물질과 세속 권력에 대한 탐욕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아요” 하고 전도하는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십일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일조 하면 복 받아요” 하고 설교하는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배에 참석만 한다고 해서 복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믿음으로 실천하는 중에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은 그대로 놔둔 채 아무리 십일조만 꼬박꼬박 하면 뭘 합니까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우리는 순종함으로 이 땅 위에서 물질적인 복을 누리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은 이 땅 위가 아니고 천국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몇 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며 봉사했는데 부자가 되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 교회를 비방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합니다. 부자 되겠다고 교회에 바친 내 청춘 돌려 줘. 부자 되겠다고 교회에 바친 내 돈 돌려 줘. 가룟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셋째, 유다가 거듭 난 체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시기 전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택하셨습니다(눅6:12,13).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 전도하러 보내셨을 때에 유다도 나가서 전도했고 여러 이적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구원받은 적이 없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라”(요6:70,71)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라.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13:10,1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 유다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경고의 말씀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도 다른 제자들처럼 “내니이까” 하고 질문했는데 주님께서 그렇다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개하기는커녕 악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거듭 난 그리스도인이 가룟 유다와 같이 주님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탐욕을 경계하며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우리에게 베푼 사랑과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배신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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