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를 지은 노아 (창6:13-22)
본문
사람들은 오늘의 사회상을 보면서 "말세로다! 말세야!"라는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오늘의 시대를 '말세'라고 할 때는 기 존의 도덕적 가치가 무너져 내린다는 뜻이 함축된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말세의 때를 '노아의 날'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가 그렇게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때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재림의 날이 언제임하겠는가 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노아의 날' 과 같이 사람들이 방심(放心)하고 세상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홀연히 그날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24:37).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 말씀은 항상 경성하여 깨어 있어야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그러면 노아가 살던 시대는 어떤 시대이었습니까 오늘 본문말씀 11절에 보면,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 에 충만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 천지가 되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패괴'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Corrupt 라고 번역 하였고, '강포'란 말을 Violenc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Corrupt란 1 타락한,
2퇴페한,3부정한,
4뇌물이통하는, 등의 뜻이 있고,
Violence란 1폭 력,
2폭행,3난폭,
4왜곡등의 뜻이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상이 바로 이렇 게 타락하고 부패한, 그리고 폭행과 폭력이 난무하던 무법천지의 시대였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6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연모하여 아내 를 삼았다고 하면서 "그들이 육체가 되니라" 라는 이상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 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니라"는 말입니다. 즉 영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영적 존재 로 하나님과 교제를 유지하여야할 인간이 이제 인간의 본능욕(本能慾)에 사로 잡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단절되어 오로지 육체의 욕망대로 사는 인간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는 세상이 바로 노아가 살던 시대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노아의 시대는 도덕적으로 문란하 고,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거짓과 부정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격(人格)의 타락(墮落)은 말(言)에서부터 시작되고 나타납니다. 요즘 도보면, 말에 신의(信義)가 없고, 거짓을 날조하고, 와전(訛傳)시키며, 입에 담지못할 말로 폭력을 휘둘러 댑니다. 이렇게 언어의 폭력, 활자의 폭력이 얼 마나 사람을 죽이는지 모릅니다. 어느날 제가 거리를 걸어가는데 앞에서 가는 웬 건장한 우락부락한 깡패같 은 남자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온통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입에 담지못할 상스러운 말과 욕지거리뿐이었습니다. 말끝마다 반복되는 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언어의 폭력입니다. 도리 어 그렇게 말함으로 상대방의 기(氣)를 꺾어보겠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렇게 패괴하고 강포가 심한 시대를 살아간 것이 노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가 다시 재림할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노아의 때와 같은 때를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인국 폭발을 통해 사람들이 번성하 게 되었고(창6:1)과, 그래서 거대한 도시들을 형성하여, 도시들마다 온갖 종류 의 도덕적 타락의 관영으로 멍이들게 되었고(창6:5)과, 폭력과 강포가 충만한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 서울의 밤거리를 한 번 상상해보면 노아의 날이 어떤 날이었을까 하는 것을 대략 짐작하게 될 줄 압니다. 밤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범죄와 타락의 양상을 보면 노아의 때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노아는 이러한 시대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본문 18절 이하를 보면,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고 하였습니다(18절-20절).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恩惠)입니다. 어떻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창6: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 세에 완전한 자 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노아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당시에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말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당대의 사람들에 비하여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산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 였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시고 공경하면서 950세를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창9:28-29) 그의 나이 480세때 홍수의 예고를 들었고, 120년간의 긴 세 월동안 방주를 지었으며, 500세 이후 셈, 함, 야벳을 낳아 키웠고, 600세 되던 해에 방주에 들어가 40주야 계속되는 비가 나려 온땅이 물에 잠기는데서 구원 받았고, 601세 되던 정월 1일, 지면에 물이 걷히고, 7 주후인 2월27일에 드디 어 마른땅에 내려 그후 350년동안 긴 세월을 저들 자녀들 앞에서 신앙의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았다는 것, 이 것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것은 깊은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어떻게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행한다 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려고 하는 그 모습! 그 것을 하나님은 미쁘게 보아 주실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이외에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할 수있겠습니 까 단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컷지 않고,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의 뜻을 준행하려고 하면서 사는 모습! 바로 그런 것이 이 마지막 시대의 구별되는 신자들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우리 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완전하게 행하였다는 말을 들 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방주를 지으라고 하였을 때, 그것을 그대로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시하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았다는 점입니다.
3.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 대로 절대 순종하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본문 14절 이하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 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행동입니까! 노아는 홍수로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그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얼핏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산에 올라가 방주를 짓는다는 것, 그것이 참으로 위대한 행동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 노아의 식구는 구원받았습니다. 현실에서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가 누가 묻는다면, 산에서 방주를 짓는 행 위와 같은것이라고 대답하면 옳을 것입니다. 아니 배를 지으려면 바닷가에서 지어야지 어째서 산에서 배를 짓는다는 말입니까 그러기에 신앙(信仰)은 합리 적인 이성(理性)으로는 이해가 안될 때가 많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산에서 배 를 짓는 사람을 보고는 좀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보면서 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것일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 왜 주일날 먼저 하나님 앞에 나 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왜 피곤한데도 교회의 봉사의 직임을 감당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경우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 자신과 그 가족들의 신앙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 방주를 지으시오! 곧 홍수가 납니다" 라고 했을 때, 누가 제일 반대하 고 뛰쳐나갔을까요 자녀들과 부인일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가장(家長)의 권위(權威)들이 몹시 손상된 시대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내들 중에는 남편의 말을 순종하기는커녕 핀잔만 주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식들이 요즘 아버지의 말 을 얼마나 순종합니까 세대차이라고 안방 영감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경우들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은 이점이 달랐습니다. 그만큼 평소에 노아는 가족들 앞에서 본 된 신앙생활을 보였다고 봅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다듬어 배를 짓는 아버지를 보면서 모두 순종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마 미친짓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만두자고 창피 하다고 가족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저들이 살아 남을 수 있은 유일한 구원선(救援船)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보면, 먼저 한 가정이 구원얻는 과정을 보면, 가족 전체가 다 함께 동시에 믿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경우입니다. 먼저 한가정의 누구이든지 그 사람에게 복음의 씨가 떨어져 온 가족을 구원시키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것은 그 가정을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시켰던것처럼, 오늘날도 누구든지 한 가정 의 구원의 씨가 되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먼저 가족 중에 한 사람을 택합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런 경우를 보고 있는 분들이 있을것입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가족 구원의 방주를 짓는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먼저 믿는 우리 들이 평소에 본이 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가족과 민족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믿는 우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믿지 않는 가족 들이나 친지들에게 무엇인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가정과 가장 대조적인 한 가정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롯'의 가정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삼촌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들었지만, 그는 세상으로 나갔다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대 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가족들에게 신앙의 본된 삶을 살지 못했기 때 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9장을 읽어보면 롯이 살던 소돔 고모라성이 마치 노아 의 때와 같이 패괴하고 부패한 시대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유황불로 심 판할 것을 미리 롯에게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평소에 그가 말씀대 로 순종하며 살지 못했는지, 롯이 말하는 그 말을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 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요즘도 신앙의 가장(家長)들의 말이 자녀들에게 이렇게 농담으로 여겨진다 면 어떻게 그 가정(家庭)이 구원에 이르겠습니까 참으로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문제들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직업과 명예와 재물을 소유하고, 겉으로는 교회의 직분을 감 당하느라 하여도, 평소에 가족들 앞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농담으로 들려질정도 라면 그 가장(家長)은 가장(家長)으로 실패한 가장(家長)일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 사람에게 세상에서 최고의 잘난 사람으로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하면 집에 손자녀석입니다. 그놈은 나의 일거일동을 죄다 흉내를 내면서 할아버지가 하는대로 고대로 할려고 합니다. 몸짓이며, 넥 타이를 매는 일이며,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며, 축도하는 것 까지도 따라서 할 려합니다. 저는 그런 손자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내가 이놈 앞에서 절대적인 우상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당시의 죄악이 관영하던 세상속에서 노아는 여호와 앞에서 정직 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 앞에서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라해도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여 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방주를 짓는 생활 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방주를 짓도록 힘쓰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 말씀은 항상 경성하여 깨어 있어야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1. 그러면 노아가 살던 시대는 어떤 시대이었습니까 오늘 본문말씀 11절에 보면,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 에 충만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 천지가 되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패괴'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Corrupt 라고 번역 하였고, '강포'란 말을 Violenc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Corrupt란 1 타락한,
2퇴페한,3부정한,
4뇌물이통하는, 등의 뜻이 있고,
Violence란 1폭 력,
2폭행,3난폭,
4왜곡등의 뜻이 있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상이 바로 이렇 게 타락하고 부패한, 그리고 폭행과 폭력이 난무하던 무법천지의 시대였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6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연모하여 아내 를 삼았다고 하면서 "그들이 육체가 되니라" 라는 이상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 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니라"는 말입니다. 즉 영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영적 존재 로 하나님과 교제를 유지하여야할 인간이 이제 인간의 본능욕(本能慾)에 사로 잡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단절되어 오로지 육체의 욕망대로 사는 인간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는 세상이 바로 노아가 살던 시대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노아의 시대는 도덕적으로 문란하 고,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거짓과 부정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격(人格)의 타락(墮落)은 말(言)에서부터 시작되고 나타납니다. 요즘 도보면, 말에 신의(信義)가 없고, 거짓을 날조하고, 와전(訛傳)시키며, 입에 담지못할 말로 폭력을 휘둘러 댑니다. 이렇게 언어의 폭력, 활자의 폭력이 얼 마나 사람을 죽이는지 모릅니다. 어느날 제가 거리를 걸어가는데 앞에서 가는 웬 건장한 우락부락한 깡패같 은 남자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온통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입에 담지못할 상스러운 말과 욕지거리뿐이었습니다. 말끝마다 반복되는 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언어의 폭력입니다. 도리 어 그렇게 말함으로 상대방의 기(氣)를 꺾어보겠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렇게 패괴하고 강포가 심한 시대를 살아간 것이 노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가 다시 재림할 때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노아의 때와 같은 때를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인국 폭발을 통해 사람들이 번성하 게 되었고(창6:1)과, 그래서 거대한 도시들을 형성하여, 도시들마다 온갖 종류 의 도덕적 타락의 관영으로 멍이들게 되었고(창6:5)과, 폭력과 강포가 충만한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뜻있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 서울의 밤거리를 한 번 상상해보면 노아의 날이 어떤 날이었을까 하는 것을 대략 짐작하게 될 줄 압니다. 밤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범죄와 타락의 양상을 보면 노아의 때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노아는 이러한 시대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본문 18절 이하를 보면,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고 하였습니다(18절-20절).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恩惠)입니다. 어떻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창6:9절에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 세에 완전한 자 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노아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당시에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말에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당대의 사람들에 비하여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산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에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하 였습니다. 공동 번역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모시고 공경하면서 950세를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창9:28-29) 그의 나이 480세때 홍수의 예고를 들었고, 120년간의 긴 세 월동안 방주를 지었으며, 500세 이후 셈, 함, 야벳을 낳아 키웠고, 600세 되던 해에 방주에 들어가 40주야 계속되는 비가 나려 온땅이 물에 잠기는데서 구원 받았고, 601세 되던 정월 1일, 지면에 물이 걷히고, 7 주후인 2월27일에 드디 어 마른땅에 내려 그후 350년동안 긴 세월을 저들 자녀들 앞에서 신앙의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았다는 것, 이 것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것은 깊은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어떻게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행한다 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려고 하는 그 모습! 그 것을 하나님은 미쁘게 보아 주실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이외에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할 수있겠습니 까 단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컷지 않고,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의 뜻을 준행하려고 하면서 사는 모습! 바로 그런 것이 이 마지막 시대의 구별되는 신자들의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우리 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완전하게 행하였다는 말을 들 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방주를 지으라고 하였을 때, 그것을 그대로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시하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았다는 점입니다.
3.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 대로 절대 순종하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본문 14절 이하에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 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행동입니까! 노아는 홍수로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그대로 다 준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얼핏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는지 모르나, 산에 올라가 방주를 짓는다는 것, 그것이 참으로 위대한 행동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결과 노아의 식구는 구원받았습니다. 현실에서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가 누가 묻는다면, 산에서 방주를 짓는 행 위와 같은것이라고 대답하면 옳을 것입니다. 아니 배를 지으려면 바닷가에서 지어야지 어째서 산에서 배를 짓는다는 말입니까 그러기에 신앙(信仰)은 합리 적인 이성(理性)으로는 이해가 안될 때가 많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산에서 배 를 짓는 사람을 보고는 좀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보면서 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것일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 왜 주일날 먼저 하나님 앞에 나 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왜 피곤한데도 교회의 봉사의 직임을 감당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경우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노아 자신과 그 가족들의 신앙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 방주를 지으시오! 곧 홍수가 납니다" 라고 했을 때, 누가 제일 반대하 고 뛰쳐나갔을까요 자녀들과 부인일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가장(家長)의 권위(權威)들이 몹시 손상된 시대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통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내들 중에는 남편의 말을 순종하기는커녕 핀잔만 주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식들이 요즘 아버지의 말 을 얼마나 순종합니까 세대차이라고 안방 영감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경우들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은 이점이 달랐습니다. 그만큼 평소에 노아는 가족들 앞에서 본 된 신앙생활을 보였다고 봅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다듬어 배를 짓는 아버지를 보면서 모두 순종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마 미친짓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만두자고 창피 하다고 가족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저들이 살아 남을 수 있은 유일한 구원선(救援船)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보면, 먼저 한 가정이 구원얻는 과정을 보면, 가족 전체가 다 함께 동시에 믿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경우입니다. 먼저 한가정의 누구이든지 그 사람에게 복음의 씨가 떨어져 온 가족을 구원시키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것은 그 가정을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어 가족을 구원시켰던것처럼, 오늘날도 누구든지 한 가정 의 구원의 씨가 되는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먼저 가족 중에 한 사람을 택합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도 그런 경우를 보고 있는 분들이 있을것입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가족 구원의 방주를 짓는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먼저 믿는 우리 들이 평소에 본이 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가족과 민족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먼저 믿는 우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믿지 않는 가족 들이나 친지들에게 무엇인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가정과 가장 대조적인 한 가정을 성경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롯'의 가정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삼촌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들었지만, 그는 세상으로 나갔다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대 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가족들에게 신앙의 본된 삶을 살지 못했기 때 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9장을 읽어보면 롯이 살던 소돔 고모라성이 마치 노아 의 때와 같이 패괴하고 부패한 시대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유황불로 심 판할 것을 미리 롯에게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평소에 그가 말씀대 로 순종하며 살지 못했는지, 롯이 말하는 그 말을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 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요즘도 신앙의 가장(家長)들의 말이 자녀들에게 이렇게 농담으로 여겨진다 면 어떻게 그 가정(家庭)이 구원에 이르겠습니까 참으로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문제들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직업과 명예와 재물을 소유하고, 겉으로는 교회의 직분을 감 당하느라 하여도, 평소에 가족들 앞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농담으로 들려질정도 라면 그 가장(家長)은 가장(家長)으로 실패한 가장(家長)일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 사람에게 세상에서 최고의 잘난 사람으로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하면 집에 손자녀석입니다. 그놈은 나의 일거일동을 죄다 흉내를 내면서 할아버지가 하는대로 고대로 할려고 합니다. 몸짓이며, 넥 타이를 매는 일이며,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며, 축도하는 것 까지도 따라서 할 려합니다. 저는 그런 손자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내가 이놈 앞에서 절대적인 우상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당시의 죄악이 관영하던 세상속에서 노아는 여호와 앞에서 정직 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녀들 앞에서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라해도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여 주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방주를 짓는 생활 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방주를 짓도록 힘쓰며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