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에 돌아온 바둘기 (창8:6-12)
본문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마지 막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 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의 생각 이 항상 악한 것 뿐임을 보시 고 땅위의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 시며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창6:=-s).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에 기는 것 공중의 나는 새까지 쓸어버리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음난하고난폭 하고 양심이 썩어 버린 사회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왔고 흥수 심판 의 멸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을 함께 멸망시킬 수 없는 공의로우 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노아를 구원하실 것도 아울러 계획하셨던것입니다. 노아 에게 잤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 하셨고, 노아는 믿음으로 수년 동안 막대한 재 산과 시간과 노력을 다하여 방주를 만들 었습니다. 노아는 배를 만들면서 멀지 않아 하나님 의 심판으로 이 땅에 전무후무한 홍수가 있어 전멸하게 될 것을 경고 하였으나 죄악 으로 이루어진 백성들은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하나도 없 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방주를 만들었고 여덟 식구가 배안 에 들어갔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 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 씩 그리고 공중나는 새도 암 수 일곱 씩을 방주 안에 들여보 내 고 하나님께서 문을 닫았습니다.(창7:ls) 드디어 심판의 흥수는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된 폭우는 4o일간 계 속 되었고 사람들은 을 다투어 높은 산으로 올라 갔으나 살아남은 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40일간의 폭우는 끝났고 오랫만에 하늘은 다시 맑게 개었고 태양은 힘 있게 지구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파또는 무수한 인간들의 시체를 삼킨 채 출렁거리고 있었 습니다. 만사는 끝이 났습니다. 향락도 끝났고, 질투도 끝났고, 싸움도끝 이 났습니다. 그토 록 노아 영감을 비웃던 인간들의 불신의 소리도 물속에 잠긴 채 파도만 출렁거리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물 위에 둥 실 떠 있는 방주 속에 있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만이 생명을 유지 하 고 있었습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하나님 은혜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저 흥수 심판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큰 기쁨 넘치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보냈읍니다. 내어 보내매 까마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물에 떠 있는 짐승 과 사람 의 시체가 썩은 것을 포식하느라고 방주에 돌아을 줄 모르 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비둘기를 창 밖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비둘기는 온 해면 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발 붙일 곳이 없 었습니다. 비둘기는 온 종일 바다 위를 헤매다가 온몸에 더러운 오물을 묻혀 지친 몸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석양 노을이 파도 위에 비쳐을 때 지 친 날개를 펄떡이고 방 주로 돌아오는 비둘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읍니다. 노아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비둘기를 방주 안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어서 돌아t1 어서 돌아만 _t1 우리들은 진종일 기 다리었다오 온 종일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면서 나간 너를 돌아오기만 정말 기다리었다오 노아는 칠일 후 다시 비둘기를 보냈더니 감람새 잎을 물고 돌아 왔습니다. 다시 칠일 후 비 둘기를 내어 놓으니 이젠 돌아오지 않았 습니다. 그것은 땅에 물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증거 가되었으므로노 아는 문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방주 밖으로 쌔어 놓은 까마기와 비둘기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까마귀의 임무는 어둡 고 무서운 율법을 내어 놓은 것의 그림자이며, 비둘기를내어 보낸 것은 장차 복음을 내어 보냄으로 인간에게 소망을상징하는 약속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까마귀는 은혜받지 못한 신자 를 상징하고, 비둘기는 은혜받은 교인들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나 비둘 기가 방주 안에 있을 때는 그 본성을 잘 모르지만 세상으로 내어 놓으면 전혀 다른 본성을 나타냅니다. 교인들도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는 잘 구별 안되지만 세상으로 내어 놓으면 은혜 받지 못한 신자는 까마귀처럼 주의 전으로 돌아을 줄 모르고 세상취미에 주님을 잊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받은성도는 비둘기처럼 주 없이 살 수 없어 주님의 품으 로 돌아오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 까마f
I틈 생각하여 봄시다, 까마귀는 창 밖으로 내어 았을 때 물 위를 왕래하며 방주 안으 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가 방주 안으로돌아오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지닌 가지 본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까마귀는 그 용모가 어둡고 더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까 마귀는 그 모습부터 흉조요. 보기에 지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의 본성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은 어두 움의 자식들입니다.(5:1 l ) 오늘 이 사회에 어두움 에 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빗을 미 워하며 및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 워하 기 때문입니다. (요=':20) 밤에 담을 넘는 도씨들, 백주에 어두운 지하실을 더듬는 나비 족들, 숨은 그늘 속에서 강도, 살인,사기, 음 모를 꾸미는 자들이 모두가 다 까마귀처럼 본성 을 지닌 자들입퍼다. 까마귀의 침울한 울음소리는 예로부터 인간사회에 불행을 전해주는 것으로 상징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남들에게 기쁨을 주 지 못하고 근심과 슬픔을 주며 남에게 실망을 던져주며 매사에 부정 적인 침울한 소리로 가정과 교회를 어둡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입을 열면 불평과 불만으로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드는 말은 까마귀 신자 의 본성을 말하는 것입러다. 까마귀는 언제나 더러운 것을 찾고 죽은 시체더미위에 먹이를 찾 고 있는 더러운 날짐숭이기도 합니다. 까마귀가 왜 방주 안으로 돌 아올 줄을 잊어버렸 던가요 창 밖으로 내어 놓았을 때 물 위에 떠 다니는 썩은 것들을 쪼아 먹으며 그 냄새나는 썩은 양식으로만족하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오늘 타락한 신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은혜받지 못한 신자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번 나가서 썩은 고기맛을 본 까마귀가 돌 아오기를 잊은 것처럼 오늘의 신자 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잊어 버리고 여전히 유 흑의 욕심을따라 썩 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6:27) 까마귀는 이 더러운 먹이 때문에 서로 싸움을 하고 서로 서로 미 워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없이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만 먹고 사는자 들. 서로 싸우고 죽 이며 헐뜯고 모략하는 가인의 후예들, 까마귀의 본성을 지닌 자들이 많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횐및을 세오나니 (싫어하니) 청파에 좋이 씻은 몸 더 럽힐까 하노라. 까마귀 인간들 성도의 의로운 생활 싫어하나니 주님 보혈로 깨꿋 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정 몽주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 더러운 세도 싸움, 구린내 나는 권세 싸움에 혈안이 된 까마귀같은 무리들에게 말려들지 말라고 말했 습니다. 온통 이 세상은 까 마귀 인간들의 싸움이요, 교회 안에도은 혜받지 못한 신자들의 불협화음으로 소란이 계속됩니다. 바울은 은혜받지 못한 신자들을 육신에 속한 자라 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 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 냐'(고전s:s)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오지않는 까마귀가 바다위에 헤 매이듯이 세상적인 정욕과 안 목의 정욕과, 이생의 일에 빠져서 세상 가운데 헤매이면서 주 일에도 주의 전을 찾아 오기 싫어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까마귀본성을 버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창 =.-으로 내어놓은 비둘기가 방주안으로 돌아오는 모 습을 생각하여 봄시다. 노 아는 비둘기 영접하먹 들였습니다. 비둘기는 물 위를 헤매이다가 발 붙일 곳을 얻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비둘기는 탕물과 더러움으로 온 몸이 얼룩진채돌 아왔습니다. 비둘기는 날개로 더 이상 제 몸을 지탱 할 수가 없었읍니다. 기진맥진해서 바다에 떨어질 것 같은 지친 모습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간신히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손을 내밀고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비둘기는 방주 안에 만 이 생명의 양식이 있고 편히 쉴 안식처가 있기에 이곳을 찾은 것입니다.
노아는 하루 종일 창문 밖 수평선 너머 비둘기에 시선을 집중하였 을 것입니다. 어디에 오고 있을까 얼 마나 피곤할까 기다리던 그 에게 찾아오는 비둘기의 모습을 발견한 노아는 팔을 힘껏 내밀 어 비 둘기를 손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무엇을 물고 오지 않았다고 책망 도 안했습니다. 반 가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방주 안에서 깨끗 한 물로 머리털도, 입도. 날개 깃도, 발 다리도 깨끗이 씻겨 주었읍니다. 이것은 아버지같은 노아의 심정이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타 난 아버지의 사랑을 노아에게서 발견합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배반 했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돌아올때상 거가 먼 데 뛰어나가 껴안고 반가이 맞아 들였습니다. 거지가 되었 다고 멸시하지도 않고 늦게 돌아왔다고 쫓아 내지도 않았고 돈올탕 진했다고 섭섭히 생각지 도 않았습니다, 그저 기쁘기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실괘한 후 천부여 의지 없 어서 손들고 옵니다. 늦=i라도 또 돈이 없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물고 을 감람잊 이 없어도 돌아오면 됩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무한한 위로와 희망을 얻습니다. `어떤 형제 가 이북에서 월남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젊어서 큰 사업을 하였 습니다. 그러나 세상 길로 빠져서 방탕하여 사업은 망하고 몸은 병 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패가 망신하 여도 하나님 앞에가서 회개하고 새 출발하자고 눈물로 하소연 했습니다. 그때 남편 하는 말 이 '이제 무슨 낮으로 하나님 앞에 가나, 이대로 죽는 것이마땅 하다'고 양심 선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양심을 원치 않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데 체 면 세우는 것 아닙니다. 깨어지지 못한증거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이 세상에서 헛된 일 에 분요하며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허물과 죄로 얼룩이 졌습니다. 그 누가 세상에 나가 살 면 서 죄의 얼룩이 묻지 않은 자 있습니까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못하고 헌금 못하고 전도 못배도 아버지 집을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박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찾을때 아 버지는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구원의 기쁨입니다. 많은사람들 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죄를 청산하고 교회 나간다는 생각, 이제 믿기로 하면 잘 믿어 야 할 터이니 서서히 믿는다는 것, 나는 하나님 에 바치지도 못하 고 층성을 못하니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생각들 을 하고 계십니까 십일조 변금을 못하니 그만 믿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 고 있습니까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앞에 돌아 오지 않는 죄입니다. 가장 올바른 신앙은 자신의 노력으로 의륨게 산다는 자보다 비록 약해서 넘어질지라도 교회 를 찾아 십자가 앞에 서는 자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자기는 믿으면서 죄를 지을까봐 아예 안 믿는 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주일이 무슨 날입니까 엿새 동안 세상 이곳 저곳을 날아보았으 나 무서운 죄악이 파도치는 고해에서 온 몸에 허물과 죄 악의 흙탕물 을 묻힌 채 노아의 방주인 하나님 아버지 집을 찾아오는 날인 줄로 믿습니다. 이날 수고하고 무거운 짐올 벗어 버리고 편히 쉬게 하%니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정하 게 겨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 씻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비둘기는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온통바 다 위에는 더러운 시체와 흙탕물 위에 떠다니는 썩은것들이 많았지 만 거기에 발 붙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다 가운데 먹을것이 많이 있는데도 거기에 발 붙이지 못하고, 먹이를 찾지 못하고 노아 의 방 주로 돌아오는 비둘기가 바로 참 신자의 모습입니다. 신자는 앉 고 서는 자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은혜를 처음 받은 신앙은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봐도 만족할수 없 고 삶의 의미가 없기에 주 앞으로 돌아옵니다. 이 신앙은 참 좋은신 앙입니다. 성령님이 임한 상태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이 세상 행복 (부귀, 명
예)과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랫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시편 l편의 말씀대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 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자리에 알지 아니하고. 성도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자 들이 아닙퍼다. 세상은 나그네로서 맡겨진 일을 하는 곳이요, 영주할 땅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썩어질 양식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하셨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_s,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오병 이어 의 기적후에 많은 무리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 로 가서 바다 건너 편에서 예수님을 만나니,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읍퍼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 시되 (요S:26-27) '내 가 진실로 진실로 너회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올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 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나는 하늘로 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 지 아니하면 너회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많은 무리들이 돌아 갔습니다 . 예수님께저 열두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 드로 가 대답하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요s:s8) 주 없이 살 수 없어 교회에 갑니다.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 밖에 나의 맘을 뉘 알아주리요. 내 맘을 위로하사 평온케 하신다. 주 없이 살 수 없기에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발 붙일곳 없어 주님 그리워 주 의 전을 찾아오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 주님 ! 당신은 위대하시오니 크게 찬양을 받으사이다. 당신은 인간을 당신을 위하여 만드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당신의 마음에서 안식을 얻기 전에는 참 평온을 가지지 못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고 발 붙일 곳이없습니다. 시편 84:lO절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 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 에 거함보다.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주 없이 살 수 없기에 주의 전을 사모하고 돌아오는 줄 믿습니다. 끝으로 비둘기는 새 감람잎을 물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비둘기는 창 밖으로 나갈 때 자기 할 일을 알았습니다. 창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찾아 헤 매이는 것이 할 일이 아니요, 노아가자기에 게 맡겨준 일을 비둘기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단계는 하나님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신앙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님이 날마다 감동하는 신앙 단계입니다. 비둘기가 새감람잎을 물 고 온것은 물이 줄고 육지가 나타나서 새감람잎이 보 였다는것이니 노아에게 은혜를 보답하는 모습입니다. 심판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 계의 임재 를 알리는 것입니다. 은혜가 깊어갈 때, 보답하는 신앙인 이 됩니다. 적은 정성이지만 십일 조와 감사 예물을 들고 오며, 형제 를 이끌고 주 앞으로 오게 되며,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는 단계에 이 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시간,물질 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감람잎 (십일조 감사, 전도)을 물고왔군 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 을 줄 믿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 징입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의 감람잎을,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감람잎을 물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늘 창문을 여시고 이 세상에 내어 보내셨는데 까마귀처럼 이 세상의 썩어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 욕, 이생 의 것들에 자신을 잃고 하나님의 보내신 뜻을 저버린 채 살으시렵니 까 아니면 비둘기처럼 사명을 다하고 주의 품으로 돌아가시렵니 까 인간이 위대한 순간은 사명을 깨 닫는 순간입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은 숭고한 의식입니다. 정치, 교육, 법조계, 사업, 목회 모두가 다 사명 의식으로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2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 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 를 흔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세상 에 계실 때 자신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 러 보낸 아들임을 알았 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 일할 때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명의식 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크게 일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할 일을 찾았고 자기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에 보내 심을 받은 자라는 사명감에서 산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름받을 때,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네게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U 아 브라함은 복의근 원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그의 생에 위대한 순 간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궁중에서 학문과 무예 를 닦고 성장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 고 ,이제 내가 너 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 하여 내게 하리라'는 사명을 받은 것은 모세의 생을 위대하게 만 든 순간 입니다. 베드로가 고기 잡는 어부에서 그토록 위대한 생애를 마칠 수 있었 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 은 부름이 있었기 때문입니 .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결국 오늘 이 시대는 말세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태24:S7에 H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인함도 그러하리라. 흥수 전에노아가방 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 고 시집가고 있 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리라'하였읍니다. 심판의 나팔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 박했습니다. 더욱 교회 안 에 있어야 합니다. 심판 날에 썩어지고 타 버릴 허탄한 일에 정신을 잃지 말고 주님의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 겠습니다. 비둘기신자 처럼 교회 안에서 살으시기를 바랍니다.
40일간의 폭우는 끝났고 오랫만에 하늘은 다시 맑게 개었고 태양은 힘 있게 지구를 비추어 주었습니다, 파또는 무수한 인간들의 시체를 삼킨 채 출렁거리고 있었 습니다. 만사는 끝이 났습니다. 향락도 끝났고, 질투도 끝났고, 싸움도끝 이 났습니다. 그토 록 노아 영감을 비웃던 인간들의 불신의 소리도 물속에 잠긴 채 파도만 출렁거리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물 위에 둥 실 떠 있는 방주 속에 있는 노아와 그의 식구들만이 생명을 유지 하 고 있었습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하나님 은혜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저 흥수 심판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큰 기쁨 넘치네.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보냈읍니다. 내어 보내매 까마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물에 떠 있는 짐승 과 사람 의 시체가 썩은 것을 포식하느라고 방주에 돌아을 줄 모르 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비둘기를 창 밖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비둘기는 온 해면 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발 붙일 곳이 없 었습니다. 비둘기는 온 종일 바다 위를 헤매다가 온몸에 더러운 오물을 묻혀 지친 몸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석양 노을이 파도 위에 비쳐을 때 지 친 날개를 펄떡이고 방 주로 돌아오는 비둘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읍니다. 노아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비둘기를 방주 안으로 맞아 들였습니다. 어서 돌아t1 어서 돌아만 _t1 우리들은 진종일 기 다리었다오 온 종일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면서 나간 너를 돌아오기만 정말 기다리었다오 노아는 칠일 후 다시 비둘기를 보냈더니 감람새 잎을 물고 돌아 왔습니다. 다시 칠일 후 비 둘기를 내어 놓으니 이젠 돌아오지 않았 습니다. 그것은 땅에 물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증거 가되었으므로노 아는 문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방주 밖으로 쌔어 놓은 까마기와 비둘기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까마귀의 임무는 어둡 고 무서운 율법을 내어 놓은 것의 그림자이며, 비둘기를내어 보낸 것은 장차 복음을 내어 보냄으로 인간에게 소망을상징하는 약속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까마귀는 은혜받지 못한 신자 를 상징하고, 비둘기는 은혜받은 교인들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까마귀나 비둘 기가 방주 안에 있을 때는 그 본성을 잘 모르지만 세상으로 내어 놓으면 전혀 다른 본성을 나타냅니다. 교인들도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는 잘 구별 안되지만 세상으로 내어 놓으면 은혜 받지 못한 신자는 까마귀처럼 주의 전으로 돌아을 줄 모르고 세상취미에 주님을 잊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받은성도는 비둘기처럼 주 없이 살 수 없어 주님의 품으 로 돌아오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방주로 돌아오지 않는 까마f
I틈 생각하여 봄시다, 까마귀는 창 밖으로 내어 았을 때 물 위를 왕래하며 방주 안으 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가 방주 안으로돌아오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지닌 가지 본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까마귀는 그 용모가 어둡고 더러운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까 마귀는 그 모습부터 흉조요. 보기에 지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의 본성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은 어두 움의 자식들입니다.(5:1 l ) 오늘 이 사회에 어두움 에 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빗을 미 워하며 및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 워하 기 때문입니다. (요=':20) 밤에 담을 넘는 도씨들, 백주에 어두운 지하실을 더듬는 나비 족들, 숨은 그늘 속에서 강도, 살인,사기, 음 모를 꾸미는 자들이 모두가 다 까마귀처럼 본성 을 지닌 자들입퍼다. 까마귀의 침울한 울음소리는 예로부터 인간사회에 불행을 전해주는 것으로 상징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남들에게 기쁨을 주 지 못하고 근심과 슬픔을 주며 남에게 실망을 던져주며 매사에 부정 적인 침울한 소리로 가정과 교회를 어둡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입을 열면 불평과 불만으로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드는 말은 까마귀 신자 의 본성을 말하는 것입러다. 까마귀는 언제나 더러운 것을 찾고 죽은 시체더미위에 먹이를 찾 고 있는 더러운 날짐숭이기도 합니다. 까마귀가 왜 방주 안으로 돌 아올 줄을 잊어버렸 던가요 창 밖으로 내어 놓았을 때 물 위에 떠 다니는 썩은 것들을 쪼아 먹으며 그 냄새나는 썩은 양식으로만족하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오늘 타락한 신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은혜받지 못한 신자들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번 나가서 썩은 고기맛을 본 까마귀가 돌 아오기를 잊은 것처럼 오늘의 신자 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잊어 버리고 여전히 유 흑의 욕심을따라 썩 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요6:27) 까마귀는 이 더러운 먹이 때문에 서로 싸움을 하고 서로 서로 미 워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없이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만 먹고 사는자 들. 서로 싸우고 죽 이며 헐뜯고 모략하는 가인의 후예들, 까마귀의 본성을 지닌 자들이 많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횐및을 세오나니 (싫어하니) 청파에 좋이 씻은 몸 더 럽힐까 하노라. 까마귀 인간들 성도의 의로운 생활 싫어하나니 주님 보혈로 깨꿋 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정 몽주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 더러운 세도 싸움, 구린내 나는 권세 싸움에 혈안이 된 까마귀같은 무리들에게 말려들지 말라고 말했 습니다. 온통 이 세상은 까 마귀 인간들의 싸움이요, 교회 안에도은 혜받지 못한 신자들의 불협화음으로 소란이 계속됩니다. 바울은 은혜받지 못한 신자들을 육신에 속한 자라 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 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 냐'(고전s:s)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오지않는 까마귀가 바다위에 헤 매이듯이 세상적인 정욕과 안 목의 정욕과, 이생의 일에 빠져서 세상 가운데 헤매이면서 주 일에도 주의 전을 찾아 오기 싫어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까마귀본성을 버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창 =.-으로 내어놓은 비둘기가 방주안으로 돌아오는 모 습을 생각하여 봄시다. 노 아는 비둘기 영접하먹 들였습니다. 비둘기는 물 위를 헤매이다가 발 붙일 곳을 얻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비둘기는 탕물과 더러움으로 온 몸이 얼룩진채돌 아왔습니다. 비둘기는 날개로 더 이상 제 몸을 지탱 할 수가 없었읍니다. 기진맥진해서 바다에 떨어질 것 같은 지친 모습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간신히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손을 내밀고 그를 받아들였습니다. 비둘기는 방주 안에 만 이 생명의 양식이 있고 편히 쉴 안식처가 있기에 이곳을 찾은 것입니다.
노아는 하루 종일 창문 밖 수평선 너머 비둘기에 시선을 집중하였 을 것입니다. 어디에 오고 있을까 얼 마나 피곤할까 기다리던 그 에게 찾아오는 비둘기의 모습을 발견한 노아는 팔을 힘껏 내밀 어 비 둘기를 손으로 영접한 것입니다. 무엇을 물고 오지 않았다고 책망 도 안했습니다. 반 가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방주 안에서 깨끗 한 물로 머리털도, 입도. 날개 깃도, 발 다리도 깨끗이 씻겨 주었읍니다. 이것은 아버지같은 노아의 심정이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타 난 아버지의 사랑을 노아에게서 발견합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배반 했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돌아올때상 거가 먼 데 뛰어나가 껴안고 반가이 맞아 들였습니다. 거지가 되었 다고 멸시하지도 않고 늦게 돌아왔다고 쫓아 내지도 않았고 돈올탕 진했다고 섭섭히 생각지 도 않았습니다, 그저 기쁘기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실괘한 후 천부여 의지 없 어서 손들고 옵니다. 늦=i라도 또 돈이 없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물고 을 감람잊 이 없어도 돌아오면 됩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무한한 위로와 희망을 얻습니다. `어떤 형제 가 이북에서 월남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으로 젊어서 큰 사업을 하였 습니다. 그러나 세상 길로 빠져서 방탕하여 사업은 망하고 몸은 병 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패가 망신하 여도 하나님 앞에가서 회개하고 새 출발하자고 눈물로 하소연 했습니다. 그때 남편 하는 말 이 '이제 무슨 낮으로 하나님 앞에 가나, 이대로 죽는 것이마땅 하다'고 양심 선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양심을 원치 않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데 체 면 세우는 것 아닙니다. 깨어지지 못한증거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이 세상에서 헛된 일 에 분요하며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허물과 죄로 얼룩이 졌습니다. 그 누가 세상에 나가 살 면 서 죄의 얼룩이 묻지 않은 자 있습니까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못하고 헌금 못하고 전도 못배도 아버지 집을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박대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찾을때 아 버지는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구원의 기쁨입니다. 많은사람들 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죄를 청산하고 교회 나간다는 생각, 이제 믿기로 하면 잘 믿어 야 할 터이니 서서히 믿는다는 것, 나는 하나님 에 바치지도 못하 고 층성을 못하니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생각들 을 하고 계십니까 십일조 변금을 못하니 그만 믿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 고 있습니까 가장 큰 죄는 하나님 앞에 돌아 오지 않는 죄입니다. 가장 올바른 신앙은 자신의 노력으로 의륨게 산다는 자보다 비록 약해서 넘어질지라도 교회 를 찾아 십자가 앞에 서는 자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자기는 믿으면서 죄를 지을까봐 아예 안 믿는 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주일이 무슨 날입니까 엿새 동안 세상 이곳 저곳을 날아보았으 나 무서운 죄악이 파도치는 고해에서 온 몸에 허물과 죄 악의 흙탕물 을 묻힌 채 노아의 방주인 하나님 아버지 집을 찾아오는 날인 줄로 믿습니다. 이날 수고하고 무거운 짐올 벗어 버리고 편히 쉬게 하%니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정하 게 겨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 씻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비둘기는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온통바 다 위에는 더러운 시체와 흙탕물 위에 떠다니는 썩은것들이 많았지 만 거기에 발 붙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다 가운데 먹을것이 많이 있는데도 거기에 발 붙이지 못하고, 먹이를 찾지 못하고 노아 의 방 주로 돌아오는 비둘기가 바로 참 신자의 모습입니다. 신자는 앉 고 서는 자리가 분명해야 합니다. 은혜를 처음 받은 신앙은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봐도 만족할수 없 고 삶의 의미가 없기에 주 앞으로 돌아옵니다. 이 신앙은 참 좋은신 앙입니다. 성령님이 임한 상태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이 세상 행복 (부귀, 명
예)과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랫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시편 l편의 말씀대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 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자리에 알지 아니하고. 성도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자 들이 아닙퍼다. 세상은 나그네로서 맡겨진 일을 하는 곳이요, 영주할 땅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썩어질 양식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하셨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_s,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오병 이어 의 기적후에 많은 무리들이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 로 가서 바다 건너 편에서 예수님을 만나니,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읍퍼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 시되 (요S:26-27) '내 가 진실로 진실로 너회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올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 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나는 하늘로 서 내려온 산 떡이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 지 아니하면 너회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많은 무리들이 돌아 갔습니다 . 예수님께저 열두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 드로 가 대답하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요s:s8) 주 없이 살 수 없어 교회에 갑니다.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 밖에 나의 맘을 뉘 알아주리요. 내 맘을 위로하사 평온케 하신다. 주 없이 살 수 없기에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발 붙일곳 없어 주님 그리워 주 의 전을 찾아오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 주님 ! 당신은 위대하시오니 크게 찬양을 받으사이다. 당신은 인간을 당신을 위하여 만드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당신의 마음에서 안식을 얻기 전에는 참 평온을 가지지 못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고 발 붙일 곳이없습니다. 시편 84:lO절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 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 에 거함보다.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주 없이 살 수 없기에 주의 전을 사모하고 돌아오는 줄 믿습니다. 끝으로 비둘기는 새 감람잎을 물고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비둘기는 창 밖으로 나갈 때 자기 할 일을 알았습니다. 창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찾아 헤 매이는 것이 할 일이 아니요, 노아가자기에 게 맡겨준 일을 비둘기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단계는 하나님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신앙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님이 날마다 감동하는 신앙 단계입니다. 비둘기가 새감람잎을 물 고 온것은 물이 줄고 육지가 나타나서 새감람잎이 보 였다는것이니 노아에게 은혜를 보답하는 모습입니다. 심판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 계의 임재 를 알리는 것입니다. 은혜가 깊어갈 때, 보답하는 신앙인 이 됩니다. 적은 정성이지만 십일 조와 감사 예물을 들고 오며, 형제 를 이끌고 주 앞으로 오게 되며,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는 단계에 이 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시간,물질 성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오늘도 많은 성도들이 감람잎 (십일조 감사, 전도)을 물고왔군 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 을 줄 믿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 징입니다.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의 감람잎을,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감람잎을 물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늘 창문을 여시고 이 세상에 내어 보내셨는데 까마귀처럼 이 세상의 썩어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 욕, 이생 의 것들에 자신을 잃고 하나님의 보내신 뜻을 저버린 채 살으시렵니 까 아니면 비둘기처럼 사명을 다하고 주의 품으로 돌아가시렵니 까 인간이 위대한 순간은 사명을 깨 닫는 순간입니다. 사명을 깨닫는 것은 숭고한 의식입니다. 정치, 교육, 법조계, 사업, 목회 모두가 다 사명 의식으로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2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 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 를 흔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세상 에 계실 때 자신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 러 보낸 아들임을 알았 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 일할 때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명의식 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크게 일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할 일을 찾았고 자기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에 보내 심을 받은 자라는 사명감에서 산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름받을 때,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네게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U 아 브라함은 복의근 원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그의 생에 위대한 순 간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 궁중에서 학문과 무예 를 닦고 성장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 고 ,이제 내가 너 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 하여 내게 하리라'는 사명을 받은 것은 모세의 생을 위대하게 만 든 순간 입니다. 베드로가 고기 잡는 어부에서 그토록 위대한 생애를 마칠 수 있었 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 은 부름이 있었기 때문입니 .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결국 오늘 이 시대는 말세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태24:S7에 H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인함도 그러하리라. 흥수 전에노아가방 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 고 시집가고 있 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리라'하였읍니다. 심판의 나팔소리가 가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 박했습니다. 더욱 교회 안 에 있어야 합니다. 심판 날에 썩어지고 타 버릴 허탄한 일에 정신을 잃지 말고 주님의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 겠습니다. 비둘기신자 처럼 교회 안에서 살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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