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문을 닫으신 하나님 (창7:13-16)
본문
타락한 세상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마지막 날 인류를 만드셨습니다. 자기 형상을 닮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고 이 땅에 충만하도록 축복해 주셨는데 불행하게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죄를 범하므로 그와 더불어 전 인류가 영원토록 죄와 관계를 끊고 살 수 없는 불행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하와와 그 후손들이 땅위에 점점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수 천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부패한 인간이 번성르 하니까 번성을 하면 할수록 죄악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해서, 즉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느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상당히 점잖은 표현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세상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가를 단적으로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부패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사람들이 있었ㅅ브니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셈의 후손이라고 일컫습니다. 셈의 후손들은 여기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그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세상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 땅에 사람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자 하나님을 섬겨야 될 하나님의 아들들, 그 거룩한 사람들이 함께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높은 표준을 놓고 그 표준대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려고 하던 사람이 세상이 자꾸 악해지니까 거기에 물 들어서 점점 표준이 낮아지는 겁니다. 낮아지다가 나중에는 비슷혀저서 결국은 똑같은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비슷해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난 죄악이 정욕이었습니다. 성적 문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양만 아름다우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딸을 마음대로 자기 아내를 삼게 된 것입니다. 말은 점잖지만 요즘 현대 말로 하면 성 문란의 부도덕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이 윤리적으로 부패하고 결국은 어떤 절대적인 윤리 의식이 상대적인 윤리 의식으로 바뀌면서 “이게 뭐 나쁘냐”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걷잡지 못할 정도로 성도덕이 문란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듣기만 하면 기절초풍할 일들도 요즘 들으면 태연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의식도 점점 세상 사람처럼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폭행 당했다 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떠들었어도 요즘은 예사로 생각하고 있고, 웬만한 남자가 여자 몇 명을 욕 보였다 해도 그까짓 거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이혼하는 것은 다반사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얘들이 인테넷을 통해서 이상한 프로들을 보아도 세상이
그런데 어떻느냐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젊은이들, 심지어 성인들까지 성중독증에 걸려 가지고 웬만한 것에는 감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점점 타락해 간다는 증거입니다. 부패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물결이 요새 교회 안에까지 상당히 들와와 있습니다. 노아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또 중요한 범죄가 하나 있었습니다. 창세기 6:4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네피림은 반신반인이라고 할 정도의 전설적인 거인들입니다. 이 네피림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네피림하고 하나님의 아들하고 거의 동격으로 쓰는 이유를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사람들 사이에 이런 아주 굉장한 용사들이 나왔나 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취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성적 타락을 가져 왔고, 또 하나 그들이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용사라는 단어 속에는 그 당시가 폭력이 난무하는 아주 포악한 세대가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힘 꽤나 쓰는 사람은 전부 자기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폭행하고, 그렇게 해서 결국 폭력이 정의가 되고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의 타락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성적 부패와 폭력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교만한 세대였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는지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에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바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두면 도무지 안되겠기에 쓸어버리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마, 노아 이렇게 모든 사람이 부패하여 정말로 의인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눈에 드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였습니다.
7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니니라.” 이 말을 바꾸면 하나님이 보실 때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게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넓은 길을 가도, 노아와 그의 가족은 좁은 길을 택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없는 삶을 통해서 쾌락을 누리고, 그저 이 세상에서 한껏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위험한 사상에 젖어 있었지만 노아와 그의 자녀들은 인간이 사는 유일한 것이고, 복된 길이요,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믿고 의롭게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지금 홍수로 이세상을 멀하려고 하니까 방주를 만들어라.” 노아는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가족, 네 아내와 아들 셋, 자부 셋, 여덟 명을 방주로 들어가고 너와 함께 이 세상에 내가 창조해 놓은 생물 가운데서 암수 둘 씩 너에게 나아오는 종류별로 전부 방주에 집어넣어라.” 이것은 홍수가 끝난 다음에 이 세상에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인간도 ㅎ한 가정을, 그리고 나지 생물도 암수 쌍으로 해서 방주에 다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방주를 닫으신 하나님 드디어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방우의문을 닫으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 들어간 사람들을 방주에 넣고 밖에서 천사를 보내어 자물통을 잠궈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굉장히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가 다 예수라고 하는 방주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이제 세상은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서 예수라는 방주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이 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다시는 예수 밖으로 못 나가게 닫아 버렸다 하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닫으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닫으셨다는 말 속에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노아와 그이 가족들은 이제 방주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그들과 이제는 더 이상 관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으로서 방주 안에 있어야 하는 독특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믿고 주님 앞에 왔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름 받아서 예수 안에 속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 믿음이 약해도 교회에 나와서 입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 사람이라면 ,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거루간 백성입니다. 세상과 혼동하면 안됩니다.
2. 돌아갈 수 없는 길 노아가 방주에 일단 들와왔는데 집에 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해서 다시 나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밖에서 잠궈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겁니다. 다시는 되돌아 볼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내가 죄사함 받았음을 믿습니다.”라고 신앙 고백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온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만약에 예수 믿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엉터리로 믿었던 사람입니다. 진짜 믿은 사람은 돌아가지 못합니다. 만약에 세상의 유혹을 받아서 “아이고, 다시 옛날처럼 좀 살아 봤으면” 하고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다시 돌려 들이십니다. 가만히 안 두십니다. 자기 자식이 잘못된 길로, 멸망 받을 길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가만히 둘 부모가 천하에 어디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아주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예수라는 방주에 벗어나 세상에 다시 돌아가려고 하면 가만히 안 둡니다. 여러분이 그런 유혹을 받다가 매를 맞을 기억이 있다면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문을 아예 닫아 버리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갑니다. 얼마나 축복입니까
3. 심판에서의 구원 또한 심판에서 구원받게 하십니다. 노아가 지금 방주 안에 있는데 관심이 있어서 자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왔다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드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중 호우가 1시간에 100mm만 쏟아져도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에 들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는데 그것은 집중 호우가 아니라 인간의 표현으로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였습니다. 하늘이 온통 쏟아지는 것처럼, 하늘에 있는 모든 물 탱크가 다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땅에서는 샘이 솟았다고 했습니다. 밑에서 샘물이 터져서 솟아오르비다. 이렇게 단 몇 시간만에 모든 세상이 잠기게 된 것입니다. 요즘처럼 고층빌딩이 있었다고 해도 온통 잠겼을 것입니다. 모든 숨 쉬는 생물들은 인간을 위시해서 다 심판 받아서 시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방주의 문을 닫아 놓고 열지 못하게 한 했으면 노아나 그의 실구들이 궁금증이 나서라도 열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큰 일 나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심판을 받지 못하도록, 심판에서 구원받도록 문을 닫아 버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홍수 심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노아에게 무지개로 언약하셨습니다.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지금까지 홍수 때문에 완전히 한 대륙이 물에 잠겨 버렸다든지 없어졌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기 떄문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범죄하고 그 시대 사람보다 더 죄를 범해도 홍수로는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심판은 불심판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음란해지고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해지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린애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폭력물을 보는데, 제가 통계를 정확하게 기억은 못합니다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텔레비전을 통해서 폭력물을 보는 횟수가 4만 건 가량 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폭력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떼러리로 몰려다니면서 이지매를 하고 다른 아이드을 두들겨 팹니다. 동네에서 칼을 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오늘 이 시대를 여러분이 보십니까 노아 시대보다 더 부패해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불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드시 세상은 심판을 받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이와 같이 악이 심판 받는 기회가 없다면 하나님도 안 계십니다. 이 세상은 절로 굴러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소망도 없고, 정의도 필요 없습니다. 힘 센 놈이 이기는 것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 앞을 가리는 사람이나 송공하지, 이 세상은 정의가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이 세상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우리를 집어넣고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보면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심판을 하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에 짐승의 피를 가지고 표를 하게 했습니다.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내려왔을 때, 그 피를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출애굽기 12장 13절을 보면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라고 했습니다. 피를 보고 천사가 넘어갑니다. 그래서 “Passover" 이라고 해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의 이마에는 주님의 피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자녀의 집에는 예수의 피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의 피로 표를 해놓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해도 그 심판이 넘어가지, 우리를 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앞으로 50년 후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거의 다 없을 겁니다. 이 세상은 결국 갑니다. 결국 이 세상은 언젠가 주니 재림하실 때 심판 받습니다. 아무리 손에 쥐고 아끼고 아옹다옹해도 50년 지나면 다 손에서 놓고 가야 합니다. 결국 윌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영원히 영생을 누리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고는 이 구원을 놓치지 않도록 하나님이 마치 노아를 방주에 집어넣고 자물통을 가지고 채워 버리듯이 우리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안전 장치를 해 놓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과 완전히 구별된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심판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안전 장치를 완전히 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심을 감사합시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이 큰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감사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부패한 인간이 번성르 하니까 번성을 하면 할수록 죄악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해서, 즉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느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상당히 점잖은 표현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세상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가를 단적으로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두 부패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사람들이 있었ㅅ브니다. 우리는 이들을 흔히 셈의 후손이라고 일컫습니다. 셈의 후손들은 여기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그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이 아무리 악해져도, 세상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 땅에 사람들이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자 하나님을 섬겨야 될 하나님의 아들들, 그 거룩한 사람들이 함께 세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렇게 높은 표준을 놓고 그 표준대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려고 하던 사람이 세상이 자꾸 악해지니까 거기에 물 들어서 점점 표준이 낮아지는 겁니다. 낮아지다가 나중에는 비슷혀저서 결국은 똑같은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비슷해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난 죄악이 정욕이었습니다. 성적 문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양만 아름다우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딸을 마음대로 자기 아내를 삼게 된 것입니다. 말은 점잖지만 요즘 현대 말로 하면 성 문란의 부도덕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이 윤리적으로 부패하고 결국은 어떤 절대적인 윤리 의식이 상대적인 윤리 의식으로 바뀌면서 “이게 뭐 나쁘냐”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걷잡지 못할 정도로 성도덕이 문란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듣기만 하면 기절초풍할 일들도 요즘 들으면 태연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의식도 점점 세상 사람처럼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폭행 당했다 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떠들었어도 요즘은 예사로 생각하고 있고, 웬만한 남자가 여자 몇 명을 욕 보였다 해도 그까짓 거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이혼하는 것은 다반사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얘들이 인테넷을 통해서 이상한 프로들을 보아도 세상이
그런데 어떻느냐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젊은이들, 심지어 성인들까지 성중독증에 걸려 가지고 웬만한 것에는 감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점점 타락해 간다는 증거입니다. 부패해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물결이 요새 교회 안에까지 상당히 들와와 있습니다. 노아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또 중요한 범죄가 하나 있었습니다. 창세기 6:4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네피림은 반신반인이라고 할 정도의 전설적인 거인들입니다. 이 네피림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네피림하고 하나님의 아들하고 거의 동격으로 쓰는 이유를 여러분이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사람들 사이에 이런 아주 굉장한 용사들이 나왔나 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사람들의 딸들을 취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성적 타락을 가져 왔고, 또 하나 그들이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 되었습니다. 용사라는 단어 속에는 그 당시가 폭력이 난무하는 아주 포악한 세대가 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힘 꽤나 쓰는 사람은 전부 자기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폭행하고, 그렇게 해서 결국 폭력이 정의가 되고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의 타락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성적 부패와 폭력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교만한 세대였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는지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에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바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두면 도무지 안되겠기에 쓸어버리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마, 노아 이렇게 모든 사람이 부패하여 정말로 의인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눈에 드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노아였습니다.
7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니니라.” 이 말을 바꾸면 하나님이 보실 때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게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넓은 길을 가도, 노아와 그의 가족은 좁은 길을 택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없는 삶을 통해서 쾌락을 누리고, 그저 이 세상에서 한껏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위험한 사상에 젖어 있었지만 노아와 그의 자녀들은 인간이 사는 유일한 것이고, 복된 길이요,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믿고 의롭게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를 부르셨습니다. “내가 지금 홍수로 이세상을 멀하려고 하니까 방주를 만들어라.” 노아는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가족, 네 아내와 아들 셋, 자부 셋, 여덟 명을 방주로 들어가고 너와 함께 이 세상에 내가 창조해 놓은 생물 가운데서 암수 둘 씩 너에게 나아오는 종류별로 전부 방주에 집어넣어라.” 이것은 홍수가 끝난 다음에 이 세상에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인간도 ㅎ한 가정을, 그리고 나지 생물도 암수 쌍으로 해서 방주에 다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방주를 닫으신 하나님 드디어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고 나자 하나님께서는 방우의문을 닫으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함께 들어간 사람들을 방주에 넣고 밖에서 천사를 보내어 자물통을 잠궈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굉장히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가 다 예수라고 하는 방주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이제 세상은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서 예수라는 방주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이 문을 닫아 버리셨습니다. 다시는 예수 밖으로 못 나가게 닫아 버렸다 하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닫으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방주를 닫으셨다는 말 속에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노아와 그이 가족들은 이제 방주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그들과 이제는 더 이상 관계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으로서 방주 안에 있어야 하는 독특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 믿고 주님 앞에 왔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름 받아서 예수 안에 속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 믿음이 약해도 교회에 나와서 입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는 사람이라면 ,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거루간 백성입니다. 세상과 혼동하면 안됩니다.
2. 돌아갈 수 없는 길 노아가 방주에 일단 들와왔는데 집에 뭐 두고 온 것이 있다고 해서 다시 나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밖에서 잠궈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겁니다. 다시는 되돌아 볼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내가 죄사함 받았음을 믿습니다.”라고 신앙 고백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온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만약에 예수 믿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엉터리로 믿었던 사람입니다. 진짜 믿은 사람은 돌아가지 못합니다. 만약에 세상의 유혹을 받아서 “아이고, 다시 옛날처럼 좀 살아 봤으면” 하고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다시 돌려 들이십니다. 가만히 안 두십니다. 자기 자식이 잘못된 길로, 멸망 받을 길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가만히 둘 부모가 천하에 어디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아주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예수라는 방주에 벗어나 세상에 다시 돌아가려고 하면 가만히 안 둡니다. 여러분이 그런 유혹을 받다가 매를 맞을 기억이 있다면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문을 아예 닫아 버리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갑니다. 얼마나 축복입니까
3. 심판에서의 구원 또한 심판에서 구원받게 하십니다. 노아가 지금 방주 안에 있는데 관심이 있어서 자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왔다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드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중 호우가 1시간에 100mm만 쏟아져도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에 들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는데 그것은 집중 호우가 아니라 인간의 표현으로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였습니다. 하늘이 온통 쏟아지는 것처럼, 하늘에 있는 모든 물 탱크가 다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땅에서는 샘이 솟았다고 했습니다. 밑에서 샘물이 터져서 솟아오르비다. 이렇게 단 몇 시간만에 모든 세상이 잠기게 된 것입니다. 요즘처럼 고층빌딩이 있었다고 해도 온통 잠겼을 것입니다. 모든 숨 쉬는 생물들은 인간을 위시해서 다 심판 받아서 시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방주의 문을 닫아 놓고 열지 못하게 한 했으면 노아나 그의 실구들이 궁금증이 나서라도 열고 밖으로 나오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큰 일 나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심판을 받지 못하도록, 심판에서 구원받도록 문을 닫아 버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홍수 심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노아에게 무지개로 언약하셨습니다.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지금까지 홍수 때문에 완전히 한 대륙이 물에 잠겨 버렸다든지 없어졌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기 떄문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범죄하고 그 시대 사람보다 더 죄를 범해도 홍수로는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심판은 불심판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음란해지고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해지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린애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폭력물을 보는데, 제가 통계를 정확하게 기억은 못합니다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텔레비전을 통해서 폭력물을 보는 횟수가 4만 건 가량 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폭력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폭력을 폭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떼러리로 몰려다니면서 이지매를 하고 다른 아이드을 두들겨 팹니다. 동네에서 칼을 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 오늘 이 시대를 여러분이 보십니까 노아 시대보다 더 부패해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불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드시 세상은 심판을 받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이와 같이 악이 심판 받는 기회가 없다면 하나님도 안 계십니다. 이 세상은 절로 굴러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소망도 없고, 정의도 필요 없습니다. 힘 센 놈이 이기는 것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 앞을 가리는 사람이나 송공하지, 이 세상은 정의가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이 세상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우리를 집어넣고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보면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심판을 하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에 짐승의 피를 가지고 표를 하게 했습니다.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내려왔을 때, 그 피를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출애굽기 12장 13절을 보면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라고 했습니다. 피를 보고 천사가 넘어갑니다. 그래서 “Passover" 이라고 해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의 이마에는 주님의 피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자녀의 집에는 예수의 피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의 피로 표를 해놓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해도 그 심판이 넘어가지, 우리를 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앞으로 50년 후에 남아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거의 다 없을 겁니다. 이 세상은 결국 갑니다. 결국 이 세상은 언젠가 주니 재림하실 때 심판 받습니다. 아무리 손에 쥐고 아끼고 아옹다옹해도 50년 지나면 다 손에서 놓고 가야 합니다. 결국 윌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영원히 영생을 누리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고는 이 구원을 놓치지 않도록 하나님이 마치 노아를 방주에 집어넣고 자물통을 가지고 채워 버리듯이 우리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안전 장치를 해 놓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과 완전히 구별된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심판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안전 장치를 완전히 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심을 감사합시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이 큰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감사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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