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14:39-40)
본문
어느 여행자가 제주 시내에서 시계포에 들러 시계를 수리 했습니다. 시계가 잘 가다가 바늘이 멈추었기에 그는 혼잣말로 '아 참 급한데, 도통 알수가 있어야지. 왜 탈이 났을까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그 시계점 주인은 자기 부인에게 "당신이 좀 안내합서게"라고 하자 부인은 친절하게 안내하였습니다. "삼촌(아저씨), 따라옵서게. 위문간(대문)으로 들어가야 함수다." 여행자는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해서 따라 가며 '혹시나 다과라도 대접하려고 그러는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따라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밑창에서 돼지가 꿀꿀거리는 화장실로 안내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행자는 "아주머니, 왜 나를 화장실로 안내하십니까 "하고 묻자 주인 아주머니는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아까 도통알 수가 없다고 하지 않했꽈" 하며 "제주도에선 화장실을 '도통'혹은 '통시'라고 함수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제주도 지방의 방언을 알아듣지 못한 결과로 이러한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 많은 방언이 있어서 같은 민족이라도 지방이 다르면 알아듣지 못하는 말 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도 이러한 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만남을 통하여 많은 체험을 갖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의 체험은 성령님세례를 받고 방언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방언은 방언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방언하는 것을 보고 듣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증거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특별히 통역의 은사가 내리기 전에는 방언은 하는 자나 듣는자나 모두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은 무엇 때문에 합니까방언하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방언하는 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께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언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대화할 수 있도록 주신 기도의 언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언은 사람 들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 내가 방언 은사를 받았으니까 사람들이 다 듣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요란스럽게 방언을 하는 것은 주신 목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많은 대화가 이루워 질 수가 입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국 말로써 기도를 오래 할 수 없는 사람은 방언을 하면 오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성령님께서 그 입술과 혀를 붙잡아서 말씀하게 하는 것이어서 조금도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방언은 알아 듣는 자가 없고 비밀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비밀은 친한 사람들과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깊은 비밀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천사도, 마귀도 주위에 있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알아 듣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친밀해지며 교통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원하시면 방언의 기도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움입니다. '덕'은 헬라어로 '호이코 도매오라고 하는 이는 '호이코스'에다가 '대모'란 말을 보탠 말입니다. '호이코스'는 집이란 말이고 '대모'란 집을 짓기 이해서 벽돌을 한 장, 두장, 쌓아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집'+''벽돌쌓기'입니다. 방언을 많이 말하면 할수록 기도의 벽돌이 한장한장 쌓아올려서 집을 크게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필요없는 방언을 우리에게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스스로 신앙이 약하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님세례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표적으로 나타나는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이 놀랍고 장성하는 것을 체험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방언은 통역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3절은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통역의 은사를 주셔서 통역하면 그때야 천사도, 마귀도, 사람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에 엎드려서 기도만 하면 방언만 나왔는데 하나님께서 통역해 주시기를 "너는 온 천하 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터임으로 지금부터 준비하라. 너는 은빛 날개를 타고 온 천하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이제 성경도 영어로 읽으라 생각도 말도 영어로 하라"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말씀을 좇아 영어성경을 읽고 영어로 생각하고 말도 혼자 영어로 중얼거리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후보니 성령님께서 방언 통역해 주신 것이 그대로 맞았습니다. 그는 지금 온세계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4. 방언은 개인예배에 큰 축복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지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때로는, 아는 말로 찬송하고 또 방언으로 찬송하기를 되풀이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아는 말로 찬미하고 영으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행하면 우리의 영성이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개인의 예배에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5. 방언은 마음의 안식을 가져 옵니다. 이사야서 28장 11절에서 1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듸지 아니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면 잡히게 하시리라…" 신앙생활 속에는 가끔 무아지경의 황홀감의 체험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것을 엑스타스(ecstasy) 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는 내 속에서 끌어오르는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가 떨리운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였으나 저들이 듣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듣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다가 피곤하거나 낙심이 침투하여 오면 그만 믿음을 버리고 만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이 방언기도는 우리의 마음속에 굉장한 안식과 휴식을 가져다 주는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깊은 잠재의식에까지 들어가서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다 씻어내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비를 들고 집을 청소하는 것처럼 성령님께서는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아는 의식 세계뿐 아니라 잠재의식 속,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슬픔과 고통과 억압과 침울함 등, 쌓여 있는 것들을 싹 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쾌하고 가볍고 평화롭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우울증이 없어지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확률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재의식 속의 상처들로 인해 불안, 초조,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억압된 스트레스를 방언을 통해서 모두다 풀어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6. 방언은 성령님의 대신 기도입니다. 바울선생은 신약성경 로마서 8:26-28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방언기도는 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이 직접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날에 일어날 것을 전혀 모릅니다. 앞날에 다가올 위험도 모르고 고통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장차 다가올 여러가지 시험과 환란들을 방지해 주는 역할도 하시는 것입니다. 7. 방언은 믿는 자로서의 표적이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마가복음 16장 17절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와 표적이 따르는데 그 중에 첫째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다는 표적으로써 새 방언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를 받았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표적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도 이러한 방언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만남을 통하여 많은 체험을 갖게 됩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의 체험은 성령님세례를 받고 방언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방언은 방언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방언하는 것을 보고 듣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증거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특별히 통역의 은사가 내리기 전에는 방언은 하는 자나 듣는자나 모두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은 무엇 때문에 합니까방언하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 선생은 고린도전서 14장 18절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방언하는 유익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방언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께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에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언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대화할 수 있도록 주신 기도의 언어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언은 사람 들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 내가 방언 은사를 받았으니까 사람들이 다 듣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요란스럽게 방언을 하는 것은 주신 목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많은 대화가 이루워 질 수가 입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국 말로써 기도를 오래 할 수 없는 사람은 방언을 하면 오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방언은 성령님께서 그 입술과 혀를 붙잡아서 말씀하게 하는 것이어서 조금도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방언은 알아 듣는 자가 없고 비밀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비밀은 친한 사람들과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깊은 비밀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천사도, 마귀도 주위에 있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알아 듣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친밀해지며 교통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원하시면 방언의 기도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움입니다. '덕'은 헬라어로 '호이코 도매오라고 하는 이는 '호이코스'에다가 '대모'란 말을 보탠 말입니다. '호이코스'는 집이란 말이고 '대모'란 집을 짓기 이해서 벽돌을 한 장, 두장, 쌓아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집'+''벽돌쌓기'입니다. 방언을 많이 말하면 할수록 기도의 벽돌이 한장한장 쌓아올려서 집을 크게 지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필요없는 방언을 우리에게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스스로 신앙이 약하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령님세례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표적으로 나타나는 방언으로 많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이 놀랍고 장성하는 것을 체험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방언은 통역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3절은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통역의 은사를 주셔서 통역하면 그때야 천사도, 마귀도, 사람도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에 엎드려서 기도만 하면 방언만 나왔는데 하나님께서 통역해 주시기를 "너는 온 천하 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터임으로 지금부터 준비하라. 너는 은빛 날개를 타고 온 천하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것이라"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이제 성경도 영어로 읽으라 생각도 말도 영어로 하라"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말씀을 좇아 영어성경을 읽고 영어로 생각하고 말도 혼자 영어로 중얼거리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후보니 성령님께서 방언 통역해 주신 것이 그대로 맞았습니다. 그는 지금 온세계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4. 방언은 개인예배에 큰 축복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지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때로는, 아는 말로 찬송하고 또 방언으로 찬송하기를 되풀이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아는 말로 찬미하고 영으로 기도하고 아는 말로 기도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행하면 우리의 영성이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개인의 예배에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5. 방언은 마음의 안식을 가져 옵니다. 이사야서 28장 11절에서 15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듸지 아니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면 잡히게 하시리라…" 신앙생활 속에는 가끔 무아지경의 황홀감의 체험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것을 엑스타스(ecstasy) 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는 내 속에서 끌어오르는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내가 떨리운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였으나 저들이 듣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듣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다가 피곤하거나 낙심이 침투하여 오면 그만 믿음을 버리고 만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이 방언기도는 우리의 마음속에 굉장한 안식과 휴식을 가져다 주는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깊은 잠재의식에까지 들어가서 우리 속에 있는 것을 다 씻어내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비를 들고 집을 청소하는 것처럼 성령님께서는 방언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아는 의식 세계뿐 아니라 잠재의식 속,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슬픔과 고통과 억압과 침울함 등, 쌓여 있는 것들을 싹 씻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쾌하고 가볍고 평화롭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방언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우울증이 없어지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확률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재의식 속의 상처들로 인해 불안, 초조,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억압된 스트레스를 방언을 통해서 모두다 풀어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많이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6. 방언은 성령님의 대신 기도입니다. 바울선생은 신약성경 로마서 8:26-28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방언기도는 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이 직접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날에 일어날 것을 전혀 모릅니다. 앞날에 다가올 위험도 모르고 고통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장차 다가올 여러가지 시험과 환란들을 방지해 주는 역할도 하시는 것입니다. 7. 방언은 믿는 자로서의 표적이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마가복음 16장 17절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와 표적이 따르는데 그 중에 첫째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다는 표적으로써 새 방언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를 받았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표적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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