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로 들어가라 (창7:1-5)
본문
노아의 대홍수 사건은 결코 자연의 재난이 아니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의로움과 피조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지진, 홍수, 해일, 태풍, 마른 번개, 화산폭발, 기 타 여러 가지 재앙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들은 지난 20 년 동안 280만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산사태 하나만 해도 해마 다 50억 달러 상당의 재산피해를 내고 있고, 열대성 태풍으로 인한 재산 피해는 70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런데 지구 인구 60억 인구 가운데 대부 분의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기 쉬운 해안 지대, 홍수가 잦은 평지와 삼각 주, 비옥한 화산 경사면 등지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대략 30초마다 지진이 발생해서 한해 동안 1만 5000명이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자연 재 앙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각종 질병입니다.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어린이들 이 매년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홍역, 소아마비, 결핵 등에 걸려 400 만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아에 의한 사망도 엄청납니다.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농작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 전 세계에서 5억이 넘는 사람들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식량부족으로 매년 2000만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에서 비롯되 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힘을 추구하는 인간에 의해 힘없이 파괴당하는 자연의 탄식과 고 통이 인간에게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비천하며 소외되고 힘없는 자의 편에서 그들의 권 익을 옹호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원래 팔레스틴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떠돌이 하층민들이었습니다. 이 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고난을 당할 때, 그들의 고통을 정녕히 보시 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 방시켜주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 십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사회가 다시 노예를 소유하고 억압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법을 주셨는 데 그것은 가난한 자, 나그네, 과부와 고아들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이 백성은 그들 자신이 이집트에서 가난하였고 나그네였다는 것 을 언제나 다시금 회상하면서 가난한 자, 나그네 된 자, 힘없는 자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이 민족은 "다른 모든 나라 처럼" 왕정을 세우고, 소수의 통치자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희 생시키며 부와 힘을 축적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회는 점점 부정 부패가 만연하고 불의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불의와 부정 부패는 가나안 사람들의 신 바알 숭배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바알은 "주(主) 와 소유자"를 뜻합니다. 바알은 주인들과 소유자들의 신이요, 생육과 성 장의 우상입니다. 자신의 번영과 성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부정과 불의 를 일삼아 자연과 사람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소유와 탐 욕을 채우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연과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알이란 이름이 억압을 나타낸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가 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시내산에 서 하나님이 힘없이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밝힌 "여호와" 라는 그의 이름은 연약하고 힘없는 자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들을 구하고 자 하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 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2:16). 이와 같이 성경의 하나님은 힘 없고 소외당하며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서신다면, 인간의 탐욕에 의하여 여지없이 파괴당하는 자연의 편에 서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의 편에서 서지 않고 힘없이 억압당하는 자연의 편에 서서 자연 과 함께 고통을 당하며 자연과 함께 신음하고 계십니다.(롬 8:18이하 참 조). 공중의 참새 한 마리와 들에 피는 들꽃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하나님은 이들을 돌보십니다.(마 6:25 이하 참조).
그러므로 힘없고 말이 없는 자연을 지배대상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파괴하는 일은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을 멸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서로 하나되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데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도 함께 나누지만 슬픔과 불행과 고난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 인간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오해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생태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 인간 외의 다른 피조물도 사랑하십니다. 돈이나 권력을 자기의 하나님 으로 삼고 자기 외의 모든 것을 이용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보다 하나님은 자연의 피조물을 더 사랑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도 사랑하지만 맑은 하늘과 푸른 숲과 땅 속의 지렁이를 하나님은 간악한 인간보다 더 사랑 하실지 모릅니다. 간사스러운 혀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인간 보다 말없는 자연을 더 사랑하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 연의 고난을 함께 당하시고 계십니다. 지구 위에 있는 식물과 동물 가운 데에 매일 한 가지 종류가 멸종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편리와 욕심 때문에 죄 없는 생물의 종이 멸종 당할 때 하나님 자신이 그 고통을 함께 당 하십니다. 피조물의 고난은 하나님 자신의 고난입니다. 피조물의 고난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의 고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가난하 고 힘없는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삶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당하는 십자가의 고난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고난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의 죽 음의 부르짖음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 까"라는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모든 연약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나 타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고난을 나타냅니다. 그의 죽음의 부르짖음은 억압과 고난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인류의 죽음의 부르짖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탐욕에 찬 인간으로 말미 암아 파괴되고 죽어가고 있는 식물과 동물들의 죽음의 부르짖음을 나타 냅니다.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로 말미암아 재난을 당하고 있는 인류는 저마다 나라마다 환경보호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환경보호 관련 단체들의 목소 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캠페인보다 우선할 것은 인간의 죄악상에 대한 회개운동입니다. 바알이라는 물질숭배에 빠져 탐욕 으로 가득한 인간이 벌이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행위를 먼저 회개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자연을 보호하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생태계 보존을 위해 환경캠페인을 등한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물질 숭배의 죄악을 회개하여 변화되지 아 니하면 자연은 그 당하는 탄식과 고통보다 더 큰 재앙을 인간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범죄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보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야 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 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 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노아 시대는 정말 용서하기 힘들만큼 죄악이 극도에 달한 시대였습니다. 도덕적으로 자제가 불가능하며 사회법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각종 범죄가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무서운 시대였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죄악상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 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더라 하시니라."(창세기 6장 5절-7절) 이와같이 노아 당시는 말 그대로 죄악이 충만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지으심을 한탄하실 정도로 구제불능의 한심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자그마치 1백 20년 동안이 나 주셨습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 백 이 십년이 되리라‥‥‥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 축과 기는 것과 공중 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세기 6장 3절, 7절) 그들의 수명이 1백 20년이 되리라는 것은 홍수로 심판하기 전에 그만 큼 회개할 시간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 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기회가 없어 회개하지 못했다는 핑계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 당 시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결국 홍수가 나서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롯의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 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소돔 성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세상이 망해도 사는 길이 있습니다. 비록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산다할지라도 노아처럼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노아는 죄에 묻혀 살면서도 현실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신앙이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요일 5:5) 성경은 노아의 믿음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11:7)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홍수 심판의 경고를 믿 고 그대로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하여 자신과 더불어 가족 모두가 구원받 았습니다.
그러므로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다 치 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백성 을 떡 먹듯이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않는다해도, 노아처럼 하나님을 찾으시고 하나님을 믿으시며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받 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1절의 말씀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노아의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시 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노아의 방주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셨습니다. 60억 인구가 몽땅 다 승선하고도 넉넉히 남을 방주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시대에 노아의 방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노 아의 방주에 승선하지 않은 모든 피조물이 멸망당했듯이 오늘날도 노아 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인 류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 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더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인 류가 사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노아의 대홍수 사건 당시 심판의 경계가 되었던 것은 방주 안에 있었느냐 아니면 밖에 있었 느냐입니다. 오늘날도 구원의 방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 느냐 밖에 있느냐,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방주 안에 있을 때 홍수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부정한 짐승도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 로 취하며"(창세기 7장 2절) 이 말씀을 통해 보면, 구원의 조건이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에 있지 않 습니다. 다만 방주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구원이 판가름납니다. 교회는 이 세상 의 도덕과 윤리를 책임지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향상시키는 사명이 아니라,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는 사명이 주어진 곳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능가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 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방주에 들어가 야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에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수명이 1백 20년, 아니 1천년이 남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고 무지개를 띄워 약속하셨습니다. 대신 성경은 앞 으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겠다고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 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 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12)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때에 어려운 시기가 닥쳐 오리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 그 때에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교만해지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무자 비하고 남을 비방하고 무절제하고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 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만으로 부풀어 있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할 것이며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신앙의 힘을 부 인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멀리하시오.(디모데 후서 3장 1절-5절) 그 리고 이 시대에 방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구 인구 60억 인구 가운데 대부 분의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기 쉬운 해안 지대, 홍수가 잦은 평지와 삼각 주, 비옥한 화산 경사면 등지에 살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대략 30초마다 지진이 발생해서 한해 동안 1만 5000명이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자연 재 앙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각종 질병입니다.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어린이들 이 매년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홍역, 소아마비, 결핵 등에 걸려 400 만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아에 의한 사망도 엄청납니다.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농작물 수확량이 크게 줄어 전 세계에서 5억이 넘는 사람들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식량부족으로 매년 2000만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에서 비롯되 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힘을 추구하는 인간에 의해 힘없이 파괴당하는 자연의 탄식과 고 통이 인간에게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비천하며 소외되고 힘없는 자의 편에서 그들의 권 익을 옹호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원래 팔레스틴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떠돌이 하층민들이었습니다. 이 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고난을 당할 때, 그들의 고통을 정녕히 보시 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 방시켜주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 십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사회가 다시 노예를 소유하고 억압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의 법을 주셨는 데 그것은 가난한 자, 나그네, 과부와 고아들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것 입니다. 이 백성은 그들 자신이 이집트에서 가난하였고 나그네였다는 것 을 언제나 다시금 회상하면서 가난한 자, 나그네 된 자, 힘없는 자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이 민족은 "다른 모든 나라 처럼" 왕정을 세우고, 소수의 통치자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희 생시키며 부와 힘을 축적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회는 점점 부정 부패가 만연하고 불의가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불의와 부정 부패는 가나안 사람들의 신 바알 숭배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바알은 "주(主) 와 소유자"를 뜻합니다. 바알은 주인들과 소유자들의 신이요, 생육과 성 장의 우상입니다. 자신의 번영과 성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부정과 불의 를 일삼아 자연과 사람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소유와 탐 욕을 채우기 위해서 얼마든지 자연과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알이란 이름이 억압을 나타낸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가 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시내산에 서 하나님이 힘없이 노예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밝힌 "여호와" 라는 그의 이름은 연약하고 힘없는 자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들을 구하고 자 하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 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2:16). 이와 같이 성경의 하나님은 힘 없고 소외당하며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서신다면, 인간의 탐욕에 의하여 여지없이 파괴당하는 자연의 편에 서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의 편에서 서지 않고 힘없이 억압당하는 자연의 편에 서서 자연 과 함께 고통을 당하며 자연과 함께 신음하고 계십니다.(롬 8:18이하 참 조). 공중의 참새 한 마리와 들에 피는 들꽃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하나님은 이들을 돌보십니다.(마 6:25 이하 참조).
그러므로 힘없고 말이 없는 자연을 지배대상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파괴하는 일은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을 멸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서로 하나되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데 있습니다. 기쁨과 행복도 함께 나누지만 슬픔과 불행과 고난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 인간에게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오해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생태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은 인간 외의 다른 피조물도 사랑하십니다. 돈이나 권력을 자기의 하나님 으로 삼고 자기 외의 모든 것을 이용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보다 하나님은 자연의 피조물을 더 사랑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도 사랑하지만 맑은 하늘과 푸른 숲과 땅 속의 지렁이를 하나님은 간악한 인간보다 더 사랑 하실지 모릅니다. 간사스러운 혀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인간 보다 말없는 자연을 더 사랑하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 연의 고난을 함께 당하시고 계십니다. 지구 위에 있는 식물과 동물 가운 데에 매일 한 가지 종류가 멸종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편리와 욕심 때문에 죄 없는 생물의 종이 멸종 당할 때 하나님 자신이 그 고통을 함께 당 하십니다. 피조물의 고난은 하나님 자신의 고난입니다. 피조물의 고난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의 고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가난하 고 힘없는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삶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당하는 십자가의 고난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고난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의 죽 음의 부르짖음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 까"라는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향한 모든 연약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나 타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고난을 나타냅니다. 그의 죽음의 부르짖음은 억압과 고난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인류의 죽음의 부르짖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탐욕에 찬 인간으로 말미 암아 파괴되고 죽어가고 있는 식물과 동물들의 죽음의 부르짖음을 나타 냅니다.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로 말미암아 재난을 당하고 있는 인류는 저마다 나라마다 환경보호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환경보호 관련 단체들의 목소 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캠페인보다 우선할 것은 인간의 죄악상에 대한 회개운동입니다. 바알이라는 물질숭배에 빠져 탐욕 으로 가득한 인간이 벌이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행위를 먼저 회개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자연을 보호하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생태계 보존을 위해 환경캠페인을 등한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물질 숭배의 죄악을 회개하여 변화되지 아 니하면 자연은 그 당하는 탄식과 고통보다 더 큰 재앙을 인간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범죄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보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야 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 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 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노아 시대는 정말 용서하기 힘들만큼 죄악이 극도에 달한 시대였습니다. 도덕적으로 자제가 불가능하며 사회법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각종 범죄가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무서운 시대였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죄악상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 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더라 하시니라."(창세기 6장 5절-7절) 이와같이 노아 당시는 말 그대로 죄악이 충만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지으심을 한탄하실 정도로 구제불능의 한심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자그마치 1백 20년 동안이 나 주셨습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 백 이 십년이 되리라‥‥‥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 축과 기는 것과 공중 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세기 6장 3절, 7절) 그들의 수명이 1백 20년이 되리라는 것은 홍수로 심판하기 전에 그만 큼 회개할 시간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 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기회가 없어 회개하지 못했다는 핑계는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 당 시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결국 홍수가 나서 다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롯의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 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소돔 성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세상이 망해도 사는 길이 있습니다. 비록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산다할지라도 노아처럼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노아는 죄에 묻혀 살면서도 현실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인 이었습니다. 신앙이 아니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요일 5:5) 성경은 노아의 믿음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11:7) 노아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홍수 심판의 경고를 믿 고 그대로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하여 자신과 더불어 가족 모두가 구원받 았습니다.
그러므로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다 치 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을지라도, 백성 을 떡 먹듯이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않는다해도, 노아처럼 하나님을 찾으시고 하나님을 믿으시며 방주를 예비하여 구원받 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1절의 말씀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노아의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시 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노아의 방주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셨습니다. 60억 인구가 몽땅 다 승선하고도 넉넉히 남을 방주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시대에 노아의 방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노 아의 방주에 승선하지 않은 모든 피조물이 멸망당했듯이 오늘날도 노아 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인 류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 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더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인 류가 사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노아의 대홍수 사건 당시 심판의 경계가 되었던 것은 방주 안에 있었느냐 아니면 밖에 있었 느냐입니다. 오늘날도 구원의 방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 느냐 밖에 있느냐,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방주 안에 있을 때 홍수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부정한 짐승도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 로 취하며"(창세기 7장 2절) 이 말씀을 통해 보면, 구원의 조건이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에 있지 않 습니다. 다만 방주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구원이 판가름납니다. 교회는 이 세상 의 도덕과 윤리를 책임지는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향상시키는 사명이 아니라, 죄악으로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는 사명이 주어진 곳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세상의 도덕과 윤리를 능가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 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방주에 들어가 야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에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수명이 1백 20년, 아니 1천년이 남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고 무지개를 띄워 약속하셨습니다. 대신 성경은 앞 으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겠다고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 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 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12)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때에 어려운 시기가 닥쳐 오리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 그 때에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교만해지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무자 비하고 남을 비방하고 무절제하고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 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만으로 부풀어 있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할 것이며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신앙의 힘을 부 인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멀리하시오.(디모데 후서 3장 1절-5절) 그 리고 이 시대에 방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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