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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경(四更)의 은총 (막6:45-51)

본문

때는 유대력 4월 중순이었습니다. 유월절 시기였습니다. 만월과 관계되는 때였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오후 6시에서 시작하여 아침 6시까지였습니다. 그것을 사경(四更)으로 나누었습니다. 제1경은 오후 6시부터 밤 9시까지, 제2경은 밤 9시부터 밤 12시까지, 제3경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제4경은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까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경에 기록된 밤 사경(막 6:48, 마 14:25)은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 어간을 가리킵니다.
I. 사경(四更)은 역경의 밤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다(갈릴리)에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폭풍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 큰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던 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8절에는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에는 바람이 거스리므로 라고 하였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일어난 폭풍은 바다의 물결을 성나게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밤중에 갈릴리 바다에서 돌풍이 일어나는 일은 사막의 기온 변화로 종종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저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았던 그날 밤에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 편 게네사렛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마 14:34). 거기서 가버나움으로 가기 위함이었습니다(요 6:17).
2. 제자들이 고난을 겪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에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젓는 것을 보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4절에는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제자들은 역경의 순간을 만났던 것입니다. 폭풍을 받은 성난 물결이 뱃전을 두들기는 바람에 제자들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괴로이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밤에 바람과 파도와 더불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괴로이 노젓고 있었다는 기록을 볼 때에 그 시간은 사투의 시간이었음이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밤 사경은 참으로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자연의 공간이 어두웠을 때였습니다. 바람과 파도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이 고투를 겪는 어둠의 시기였습니다. 말하자면 역경의 밤이었습니다.
Ⅱ. 밤 사경(四更)의 은총 그럼에도 이 시간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큰 은총을 체험하는 축복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밤 사경의 은총이었습니다. 어떤 은총이었던가
1. 예수께서 지켜보시고 기도해 주시는 은총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작별하신 예수는 그 시간 산으로 오르셨습니다(막 6:46). 주님은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마 14:23). 그는 거기에서 제자들이 괴로이 노젓는 것을 보셨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 중에 …괴로이 노젓는 것을 보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오르신 산 중복에서 바라다 보이는 호수 저편은 폭 6.5km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그때 갈릴리 호수는 만월 어간의 밝은 달빛이 비추이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눈에는 그 폭풍과 파도와 싸우는 제자들의 고투 현장이 보였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눈은 바람이 거스르므로 괴로이 노젓는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제자들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니 여기에 우리 모두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운동 경기장에서 죽을 힘을 다하여 뛰고 있는 아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부모를 생각할 때 새힘이 솟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성도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을 지금도 기도 중에 지켜보시는 주님이 살아 계신다고 하는 성경 신앙은(롬 8:34, 히 7:25-26) 밤 사경에서 만나는 은총입니다.
2. 예수의 오심을 보는 은총입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에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5절에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19절에는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의 곤경을 직시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던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제 행동하는 시간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구출하러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위로 걸으셨습니다. 노기 띤 바다의 물결 위로, 그는 거닐고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물론 자연을 지배하시는 초자연적 왕권(王權)을 행사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예수 자신의 본성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 자신의 구세주적 본성이 물위를 걸어 고난 당하는 제자들을 구출하러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위대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화목 제물로 보내신 것입니다(요일 4:10). 그래서 어거스틴(Augustine)이 이 사건에 대하여 말하기를 ‘예수는 파도를 밟고 오셨다. 그와 같이 예수는 인생의 넘치는 모든 혼란을 발아래 밟아 버리셨다. 크리스천들이여, 왜들 두려워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현장에 친히 오심이 밤 사경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물위)로 걸어오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파도와 물결 때문에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 주님은 그 위를 걸어오고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거닐고 있음’, ‘산책하고 있음’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실로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뜻밖의 경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풍랑 위로 걸어오고 있는 이 초자연적 지식의 경험 말입니다. 전혀 주관적 지식이 아닌 객관적 지식이었습니다. 자율주의적 산물의 지식이 아니라, 타율주의적 산물의 지식이었습니다. 그 분은 분명히 자연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통치주였습니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 주께서 친히 찾아오신 역경의 은총입니다.
3.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의 은총입니다. 마가복음 6장 50절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다 놀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막 6:49-50, 마 14:26). 여기 ‘유령’이란 말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 ‘악령’, ‘도깨비’를 뜻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제자들의 불신앙이요 미신적 소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제자들의 불신앙적이요 미신적 소행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 가지 말씀을 주었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안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너희는 담대하라.’, ‘너희는 용기를 내라.’는 뜻의 명령형 싸르세이테(θαρσετε )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내니…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1 유령이 아니라 ‘나다’라는 뜻입니다.
2 나는 너희 주요, 너희 선생이란 뜻입니다. 3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γ εμι; 출 3:14)란 뜻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두려워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함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사야 41장 13절에도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고 함과 같은 것입니다. 공포에서 자유케 하는 위로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분은 유령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인격적인 주 예수 자신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경의 은총입니다. 풍랑을 대항하여 괴로이 노젓는 이 죽음의 현장에 오신 주님은 위로와 소망의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역경 중의 은총입니다.
4. 해결해 주시는 은총입니다. 마가복음 6장 51절에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기 전에,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다가 불신앙과 무서움 때문에 물에 빠져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 주시는 기막힌 장면이 있었습니다(마 14:28-31). 그 장면 후에 예수께서 배에 함께 오르자마자 바로 그 시간에 바람이 그치고 말았습니다(마 14:32). 실로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물위를 걷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모두 불러 물위로 자기와 함께 걸어 가자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자신께서 친히 그 제자들의 배 위에 올라 제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문제는 예수께서 저들이 만난 풍랑을 잔잔케 함으로 저들을 구원하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바로 기적입니다. 역경 주의 은총입니다. 예수가 함께 계실 때, 더 이상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5. 목적지에 이르게 하시는 은총입니다. 같은 사건에 대하여 요한복음 6장 21절에는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처음 시도하신 당신의 뜻대로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날 밤의 이 항해는 예수 자신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이곳으로 가게 했기 때문입니다(마 14:22).
그렇다면 저들의 항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마 14:22).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진행되었습니다(마 14:25, 막 6:48).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요 6:21). 역경의 은총입니다. 그 결과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마 14: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시간의 밤 사경! 그 시간은 새벽 3시부터 6시까지입니다. 밤의 경점으로 보아 마지막 어두움을 지나는 어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무렵이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어간에 갈릴리 바다 위에서 폭풍을 만나 괴로이 노젓는 역경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폭풍의 현장은 이 지구촌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인생살이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온갖 생의 폭풍들과 고난에 부딪치고 있는 역경의 현장들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수십 억의 사람을 싣고 있는 오늘의 지구호는 정말 무서운 폭풍 속에서 항해하고 있습니다. 1 온갖 류의 악한 사상의 폭풍입니다.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우상숭배사상, 자연신론, 범신론 등등의 폭풍입니다.
2 온갖 류의 타락한 이단과 사술의 종교적 폭풍입니다. 3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폭풍입니다.
4 여러 류의 혁명들과 정치적 폭풍입니다. 5 그리고 공해의 폭풍입니다. 6 그 중에서도 지금 세계는 국부적으로 경제적인 폭풍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지금 아세아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폭풍입니다. 거기에다가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 운동으로 말미암는 온갖 류들의 기강 해이와 무질서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말 밤 사경에 괴로이 노젓는 우리들의 모습처럼 보여지고 느껴집니다. 여러 류의 매스컴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눈과 귀에 새겨지는 현상들은 정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입니다. 우리가 만난 역경의 현장들입니다. 밤 사경의 현장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이 시점의 밤 사경은 일제 식민지 아래 살던 우리 선배들이 만난 밤 사경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6.25 동란을 겪었던 우리 선배들이 만났던 그 밤 사경과도 다릅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밤 사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일어납니다. ‘도대체 우리가 만난 경제적 폭풍의 기준이 어디인가’라고 생각할 때 밤 사경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모두들 야단들이니 밤 사경이라고 합시다. 심지어 경제 공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볼 때 참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요 속의 불황입니다. 우리 모두의 생각과 말대로 밤 사경이라고 생각된다면 분명히 위기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가 바로 전화위복의 은총으로 바뀌어질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 확실하고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만난 밤의 정황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의 현장에 친히 가까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당신이 우리와 함께 친히 배 가운데 올라타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목적지까지 이르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 예수 교회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한국 교회를 통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세계복음화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 중에 계십니다. 민주주의 때문에 아니면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 한국을 만들기 위하여 그 분이 우리 중에 계십니다. 아니 그 분이 이 시점에 21세기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되고 말 경향교회당을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 교회 중에 계십니다. 그 분이 우리 중에 계실 때 폭풍은 그칩니다. 혼란은 평화로 변합니다. 불가능은 가능이 되고 맙니다. 어려운 일이 견디기 쉬운 일로 바뀌어집니다. 문제는 한국 교회와 백성이 그 동안 받은 풍요를 남용하고 악용한 죄를 회개함에 있습니다. 문제는 “다시 우리 경제를 회복해 주시면, 우리가 주의 것으로 알고 주의 뜻대로, 우리가 받은 물질들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서원의 기도입니다. 온갖 류의 역사의 파고(波高)는 택자구원 성취를 위한 위대하신 하나님 자신의 통치 수단들입니다. 밤 사경의 역경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인생이 만난 역사의 어떤 폭풍도 주께로부터 나고, 주께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갑니다(롬 11:36). 분명히 오늘 우리가 만난 밤 사경은 역경 중의 은총이 될 것입니다. 그 확실한 표적 중의 하나가 이 어간에 경향 새 성전을 주님께서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바로 밤 사경 중에 우리에게 나타내신 은총의 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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