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욥35:9-16)
본문
우리가 잘 아는 욥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루 아침에 무서운 재난이 닥쳐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목숨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세 친구가 찾아와서 “왜 욥과 같은 의인에게 고난이 찾아왔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장시간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지켜 보던 젊은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후입니다. 계속 듣기만 하던 그는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엘리후는 그의 세 친구가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 줍니다. 마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듯이 그는 놀라운 진리를 말합니다. 그것은 욥을 위시하여 이 땅 위의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불행, 그 자체만을 놓고 탄식할 줄만 알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절에 “사람은 학대가 많음으로 부르짖으며 세력있는 자의 팔에 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행은 더 불행해 보이고, 인간의 슬픔은 더 슬퍼지며, 인간의 비참한 모습은 더 처절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후가 발견한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엘리후가 소개하는 하나님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연단하시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지구에는 낮과 밤이 있습니다. 황혼이 깃들고 농부들이 집에 돌아와 손발을 씻고 될 수 있는 밤이 다가옵니다. 밤의 안식은 우리들의 모든 고민을 다 잊어버리게 합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 베푸신 밤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에게 밤은 꼭 필요하며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밤은 동시에 공포를 안겨다 줍니다.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세상 모든 악이 밤을 통하여 일어나고 모든 무서운 계교들이 밤의 침상에서 잉태됩니다. 그래서 밤은 안식을 주면서도 두려운 것입니다.
1. 사람에게도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인생은 작은 우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밤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건강을 잃었습니까? 직장을 잃었습니까? 가정에 걱정이 생겼습니까? 사업이 잘 안됩니까? 그러면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 이와 같은 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이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싢어하는 밤을 주셨습니다. 지구의 낮과 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도 낮과 밤을 주었습니다. 사 45:7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요 그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도라”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의 밤을 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정의하면 “최상의 가능한 목적을 설정하시고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최상의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이 사실을 적용시키면 각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최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하나님께서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최상의 수단 중에 하나가 밤입니다. 자연계에 밤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지혜입니다. 꽃은 아침에 피어나기 위하여 밤에 준비합니다. 아름다운 꽂봉오리가 이슬을 머금고 입을 벌려 피어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밤이 없다면 꽃은 피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밤동안 인간에게 꽃을 피울 준비를 시키십니다. 만일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은 피지 아니할 것입니다. 밤이 없는 대낮만을 걸어가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면 인간은 교만해질 것이며 완악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자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싫다고 하여도 불행의 밤을 주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게 만듭니다. 어떤 때는 만사가 끝난 것 같이 생각되는 죄악의 밑바닥에까지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무서운 사망의 골짜기를 인간에게 주셔서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목적을 달성하시는데 적용하시는 최상의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인간은 밤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아니하는 고약한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을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도 밤의 방법이었습니다. 골고다로 향하는 잔인하고도 무서운 저 십자가의 길, 예수에게 그것은 밤의 길이었습니다. 너무나 견딜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전 인류를 위하여 피흘리게 하시고 그 처절한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류가 죄 용서함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인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고전 1:18). 그러나 사람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지혜로운 능력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밤이라는 방법이었다면 한 평생을 세상에서 살아야 할 우리를 하나님이 세우신 최상의 목적에 합당한 존재로 만드는데 선택하신 방법 역시 밤이었다고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서는 밤은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행이나 고난을 자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 아멘으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우리에게 소개해준 하나님은 밤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밤 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 밤 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밤 중에 부르는 노래는 낮에 부르는 노래와 다릅니다. 실패와 눈물 속에서 침묵을 깨뜨리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하나님께 노래한다는 것은 은혜 중에 귀한 은혜인 것입니다. 밤을 맞이한 인간에게는 노래가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로 그 밤에 노래하게 하십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깊은 밤 중에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눈에 보인 세상에 큰 기대를 걸고 인생을 투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다가와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양합니다.
3. 밤 중에 부르는 노래의 내용 밤 중에 부르는 노래는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처절한 심령의 메아리가 동반됩니다. 밤 중에 들리는 노래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파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도 은혜스럽지만, 밤에 부르는 찬송, 고난을 당할 때,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릴 때, 실패를 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은 더욱 은혜롭고 감격이 넘치는 것입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세 가지의 노래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지나간 과거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밤자체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앞으로 닥아올 내일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밤 중에 우리에게 노래를 주실 때 이와 같은 내용들은 우리가 노래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주제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은 밤 중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유용한 방법은 지나간 날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밤 중에 노래를 부르게 되기를 희망하는 또 다른 내일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인가 죽게 될 것이며 그 때 우리는 밤 중에 부를 노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임종시 필요한 것은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는 우리를 생명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4. 밤 중에 부르는 노래의 탁월성
(1)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밤 중에 환란과 곤고의 밤에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 여러분들은 그 노래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노래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안할 때 노래는 나옵니다만 고통과 번민 중에도 아름다운 노래가 불러지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영의 소리일 것입니다. 여러분! “비록 주님께서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노래가 나온다면 그 노래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팅게일은 밤에 노래하는 까닭에 매우 아름답게 노래를 부릅니다. 만약에 나이팅게일이 낮에 노래를 부른다면 그 노래는 굴뚝새의 노래보다 더 아름답게 들리지 못할 것입니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밤의 고요함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의 노래도 그것이 밤 중에 불리어지는 까닭에 아름답고 진심어린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2) 밤 중에 부르는 노래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다운 신앙을 지니고 있음을 예시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한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충분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올바르게 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한 이에 대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3) 우리가 밤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은 참다운 용기를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 줍니다. 밤 중에 하나님의 세레나데 곡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용감한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4) 밤 중에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께 대한 참다운 사랑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 보여줍니다. 참으로 위대한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누더기를 입고 계실 때 그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 처할지라도 그리스도를 확고히 의지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신앙입니다. 밤 중에 그리스도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5) 밤 중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익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밤 중에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이 갖지 아니하는 밤 중의 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인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태연함이 있습니다. 밤 중의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둠을 뚫고 환하게 빛나는 보좌를 향하여 찬송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온전한 마음으로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행은 더 불행해 보이고, 인간의 슬픔은 더 슬퍼지며, 인간의 비참한 모습은 더 처절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후가 발견한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엘리후가 소개하는 하나님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연단하시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지구에는 낮과 밤이 있습니다. 황혼이 깃들고 농부들이 집에 돌아와 손발을 씻고 될 수 있는 밤이 다가옵니다. 밤의 안식은 우리들의 모든 고민을 다 잊어버리게 합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 베푸신 밤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에게 밤은 꼭 필요하며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밤은 동시에 공포를 안겨다 줍니다.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세상 모든 악이 밤을 통하여 일어나고 모든 무서운 계교들이 밤의 침상에서 잉태됩니다. 그래서 밤은 안식을 주면서도 두려운 것입니다.
1. 사람에게도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인생은 작은 우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밤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건강을 잃었습니까? 직장을 잃었습니까? 가정에 걱정이 생겼습니까? 사업이 잘 안됩니까? 그러면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 이와 같은 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이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싢어하는 밤을 주셨습니다. 지구의 낮과 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도 낮과 밤을 주었습니다. 사 45:7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요 그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도라”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의 밤을 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정의하면 “최상의 가능한 목적을 설정하시고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최상의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이 사실을 적용시키면 각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최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하나님께서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최상의 수단 중에 하나가 밤입니다. 자연계에 밤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지혜입니다. 꽃은 아침에 피어나기 위하여 밤에 준비합니다. 아름다운 꽂봉오리가 이슬을 머금고 입을 벌려 피어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밤이 없다면 꽃은 피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밤동안 인간에게 꽃을 피울 준비를 시키십니다. 만일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은 피지 아니할 것입니다. 밤이 없는 대낮만을 걸어가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면 인간은 교만해질 것이며 완악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자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싫다고 하여도 불행의 밤을 주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게 만듭니다. 어떤 때는 만사가 끝난 것 같이 생각되는 죄악의 밑바닥에까지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무서운 사망의 골짜기를 인간에게 주셔서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목적을 달성하시는데 적용하시는 최상의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인간은 밤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아니하는 고약한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을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도 밤의 방법이었습니다. 골고다로 향하는 잔인하고도 무서운 저 십자가의 길, 예수에게 그것은 밤의 길이었습니다. 너무나 견딜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전 인류를 위하여 피흘리게 하시고 그 처절한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류가 죄 용서함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인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고전 1:18). 그러나 사람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지혜로운 능력의 길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밤이라는 방법이었다면 한 평생을 세상에서 살아야 할 우리를 하나님이 세우신 최상의 목적에 합당한 존재로 만드는데 선택하신 방법 역시 밤이었다고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서는 밤은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행이나 고난을 자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 아멘으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우리에게 소개해준 하나님은 밤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밤 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 밤 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밤 중에 부르는 노래는 낮에 부르는 노래와 다릅니다. 실패와 눈물 속에서 침묵을 깨뜨리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하나님께 노래한다는 것은 은혜 중에 귀한 은혜인 것입니다. 밤을 맞이한 인간에게는 노래가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로 그 밤에 노래하게 하십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깊은 밤 중에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눈에 보인 세상에 큰 기대를 걸고 인생을 투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다가와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양합니다.
3. 밤 중에 부르는 노래의 내용 밤 중에 부르는 노래는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처절한 심령의 메아리가 동반됩니다. 밤 중에 들리는 노래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파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도 은혜스럽지만, 밤에 부르는 찬송, 고난을 당할 때,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릴 때, 실패를 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은 더욱 은혜롭고 감격이 넘치는 것입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세 가지의 노래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즉 지나간 과거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밤자체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앞으로 닥아올 내일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밤 중에 우리에게 노래를 주실 때 이와 같은 내용들은 우리가 노래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주제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깊은 밤 중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유용한 방법은 지나간 날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밤 중에 노래를 부르게 되기를 희망하는 또 다른 내일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인가 죽게 될 것이며 그 때 우리는 밤 중에 부를 노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임종시 필요한 것은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는 우리를 생명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위로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4. 밤 중에 부르는 노래의 탁월성
(1)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밤 중에 환란과 곤고의 밤에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 여러분들은 그 노래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노래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안할 때 노래는 나옵니다만 고통과 번민 중에도 아름다운 노래가 불러지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영의 소리일 것입니다. 여러분! “비록 주님께서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노래가 나온다면 그 노래는 여러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팅게일은 밤에 노래하는 까닭에 매우 아름답게 노래를 부릅니다. 만약에 나이팅게일이 낮에 노래를 부른다면 그 노래는 굴뚝새의 노래보다 더 아름답게 들리지 못할 것입니다.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밤의 고요함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의 노래도 그것이 밤 중에 불리어지는 까닭에 아름답고 진심어린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2) 밤 중에 부르는 노래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다운 신앙을 지니고 있음을 예시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한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충분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올바르게 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한 이에 대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3) 우리가 밤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은 참다운 용기를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 줍니다. 밤 중에 하나님의 세레나데 곡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용감한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4) 밤 중에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께 대한 참다운 사랑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 보여줍니다. 참으로 위대한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누더기를 입고 계실 때 그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 처할지라도 그리스도를 확고히 의지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신앙입니다. 밤 중에 그리스도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5) 밤 중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익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이 밤 중에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시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이 갖지 아니하는 밤 중의 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인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태연함이 있습니다. 밤 중의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둠을 뚫고 환하게 빛나는 보좌를 향하여 찬송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온전한 마음으로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