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부르짖는 기도 (눅18:1-8)
본문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며 기도드리는 것 외에 하나님께 무엇 을 구할 때는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는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것을 가르치고있습니다. 그 예로서 어떤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억울한 일을 당히 그 도시 의 재판장에게 가서 나의 얼울한 사정을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불쌍한 과부가 오라서 간청하가 것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 과부가 자주 찾아와 불의한 재판관을 번거롭게 하자 나중에 견딜 수가 없어서 그가 말했습니다. "이 과부가 나르 띵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 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안으면 늘 와서 나르 띵괴롭게 하리라"(누가복음 18:5). 왜 하나님께로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 불의한 재판관처럼 보일까요그것은 진실로 우리 아버지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선입관을 가지 고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대답치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 대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보좌에 올라가는 공중에 권세잡은 원수 마귀가 이 불의한 재판관처럼 우리의 기도를 막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기도의 통로를 막고 있는 원수 마귀와 우리가 대결해서 싸우기 위해서는 전투적인 태세를 가지고 나와야 되며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이 과부처럼 기도를 해야 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그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게 기도할 때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가 지고 밤이나 낮이나 계속해서 부르짖으며, 불퇴전의 믿음을 가지고 뒤로 물 러가지 말고 계속 외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주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불퇴전의 기도를 할 때 이 마귀의 진 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좋 은 예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둘러싸고 돔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아주 적절한 좋은 예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 아는 그 백성들과 더불어서첫째날에 한번 돌고,둘째날,셋째,넷째,다섯 째,엿새날 동안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이레째는 그 성을 일곱 바퀴 돌고난 다음에 일지히 고함을 칠때 여리고 성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만에 무너뜨리지 않고 왜 칠일동안 여리고성을 돌게 하고 여리고성이 무 너지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에 온전 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지 안하는지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에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인내가 살아있는 온전한 믿음 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돈 장면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아마
첫째날 그들은 여리고성을 돌면서 그 철벽성을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아! 저런 철벽성이 무너질 수가 있을까' 그들은 진에 와서 그것을 생각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이튿날 그들은 그만 낙심하여 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에 돌아와서 눈에 보이는 그 성벽에 대해 기도하고 거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했습니다. 이튿날 또 그들이 성을 돌때 성에 있는 모든 여리고의 군대들과 그 백성들 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이고 더 무장히 잘돼 있고 더 튼 튼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조롱하는 소리와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 소리 를 듣고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이 진에 돌아와서 과연 저 성이 무너질 것인 가 저 성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고 또 기도하고 거기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그들은 극복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삼일 되는 날은 돌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일어나서 삼일째 그 성을 도는데 가만히 보니까 분위기가 절대 로 무너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사일, 오일, 육일째가 되어도 무너질 아무 런 징조도 보이지 않습니다. '칠일째 여리고성을 도는데 끝까지 말씀을 믿 어 볼만 한가' '정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 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데 말씀만 믿고 돌아도 될 것인가' 그러한 마음 의 회오리 바람을 그들은 기도와 믿으으로 극복을 해야만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칠일날 일곱 바퀴를 돌고난 다음 그들은 믿음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든 의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속에 깊은 평안의 지점에서 도달했을 때 그들의 고함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소리가 되었고 그 믿음 소리에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보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완전한 믿음에는 도착할 때까지 하나님은 이레 동안 여리고 성을 돌고 그 모든 시련을 극복 한 후 믿음에 완전히 서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단호히 믿고 나서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 응답에 시일이 지체되는 것은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마태복음 18장18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하늘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 서 풀리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응답을 방해하는 마귀의 세력을 묶어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 때 이미 믿음의 밧줄은 여리고 성을 묶고 있었습니다. 두 바퀴 돌 때는 두번 감기고 세 바퀴 돌 때는 세번 감긴 것입니다. 칠일째 일곱 바퀴 돌 때까지 믿음의 밧줄은 여리고 성을 칭칭 동여 매었습니다. 마지막 고함은 감긴 그 믿음의 밧줄을 잡아 당긴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입니다. 마귀는 끝까지 결사적으로 저항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끝까지 대적해야 합니다. 일곱번 도는 것은 "완전히 대적하라절대로 물러가지 말아라끝까지 대적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일곱번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제사드리는 행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지만 오늘날에는 산 제물로 제사를 드려 야 됩니다. 제물이란 죽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고집이 죽고 자기 중 심이 죽고 인본주의가 죽고 불순종이 죽고 완전히 하나님, 그 발 앞에 내 자신을 내어 놓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이처럼 하나님께 자기를 드려서 완 전히 순종하는 그러한 삶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 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는 주의 것 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를 일곱번 돈다는 것은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산제물로 드릴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지나가면 성이 무너집니다. 우리의 문제의 성이 무너지고 고 통의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귀의 진이 휘파되는 것이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이와 같은 기도의 요건이 성립되어야 되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낙 심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2.엘리야의 갈멜산 일곱번 기도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삼년 육개월 동안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도전장 을 던졌스빈다. 바알의 선지자 4백50인, 아세라 선지자 4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달라고 요청했스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은 각각 송아 지 한마리를 가져다가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리고느니 엘리야는 야웨의 이름을, 바알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을 불러 불 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바울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오전이 지나고 저녁 소재 때가지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무너진 야웨의 단 을 수척하고 각을 뜬 송아지에 불을 부은 후 "야웨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 게 응답하옵소서"(열왕기상18:37) 라고 간구하자야웨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엘리야는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잡아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난 후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서 삼년 육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 은 땅에 비가 내리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한 후 사환에게 비 내릴 징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일곱번을 반복했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야 바다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습니다. 서경 에 보면 얼마나 그가 간절히 부르짖었던지 이 허리가 굽어져서 머리가 무 릎 사이에 넣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면서도 '가뭄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메말라 버렸는데 내가 기도한다고 비가 오겠는가'라고 의구심을 품었을지도 모르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의심들을 끈질기게 기도했스빈다. 그러나 일곱번 기도한 후 징조가 나타났스빈다. 종이 돌아와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 엘리야는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다가 일어나서 하늘이 깜깜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삼년 육개월만에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진 것입니다. 이러므로 엘리야는 온전한 믿음에 도달 할 때까지 마음에 조그마한 의심도 없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서 그 모든 것을 극복했고 마음에 완전한 믿음이 생겨날 때까지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려할 때 원수 마귀의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다니엘 이 자기 조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응답이 없습니다. 십일을 기도해도 응답 이 없습니다. 같이 기도하던 사람들은 낙심해서 다 뒤로 나가떠러졌스빈다. 다니엘 손자 남았스빈다. 그는 십일일, 십이일. 금식하면서 계속 기도했 습니다. 이십 일일째 되자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고 나타나서 "은총을 크게 받 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가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다네일10:11)고 권면했습니다. 그가 이어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일도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드로가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 가 만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내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다니엘 10:12-14)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고 마귀의 진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위해서는 기도드리는 자가 온전한 순종으로 나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산 제사를 요구했습니다. 하 나가링께서 백살에 낳으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했 스빈다. 그것은 이삭을 제물로 받으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전 적으로 순종하는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백살에 낳은 아들을 잡 아서 각을 떠서 장작 위에 넣고 불을 붙여서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 아브라 함은 두말하지 않고 순종해 그 아들을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 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칼을 내리도록 친히 명령하셨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순 종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순종의제사를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감동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완전히 제물이 될 때까지 하나님게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완전한 믿음,원수 마귀에 대한 완전한 대적, 그리고 완전한 산 제물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3.나아만 장군과 문둥병과 요단강에서의 일곱번 목욕 칠은 완전 숫자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마귀를 대적하고 완 전히 순종의 제물이 되기를 하나님은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이 구비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아람의 대장군 나아만은 임금을 위해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아람은 구제했으므로 국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명예와 지위와 권세가 있었지만 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를 사는 세상 사람들 같습니다. 이십 세기에 사람들은 옛날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과학이 발달되고 영화롭게 산다고 하지 마는 그 속은 영적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죄악의 문둥병, 하나님을 대적 하는 문둥병이 그들을 갉아 먹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문둥병이 낫지 않습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 죄악을 십자가에 대신 짊어지고 몸찢고피르리띵려 죽으시고 이를 극복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영적인 문둥병인 죄를 다 사해버리고 지옥에 가지 아니하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날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소녀가 집에서 집안 일을 돕고 있는데 그 소녀가 말하기를 "우리 주인이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엘리사에게 보이 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 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나아만 장군은 임금에게 얘기해서 이스라엘로 갔 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위세당당하게 장군의 옷을 입고 말들과 병사를 거느 리고 당당하게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엘리사의 문 앞에 나아만과 그 병사들이 서 있자 엘리사는 사자를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몰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열왕기하가 5:10)고 전하게 되었 습니다. 이 말에 나아만 장군은 노발대발했습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 저가 내 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야웨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열왕기하 5:1
1)라고 불만을 토했습니다. 그는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열왕기하 5:12)고 언성을 높 이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습으로 떠났스빈다. 종들이 나아와서 선지자의 명을 따르도록 간청하자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 곱번 몸을 담그자 그 살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이 완전한 순종을 하는지 시험에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군사들이 보는 가운데서 요단강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한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까 여전히 문둥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야, 이거 창피당하고 말았다.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했을지 도 모릅니다. 나아만은 두번, 세번. 엘리사의 명대로 일곱번 몸을 씻었습니다. 창피와 의심을 이기고 일곱번 몸을 물에 씻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어 린 아이의 몸같이 변하고 문둥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가 일곱번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여간한 믿음의 시련과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믿었습니다. 그 완 전히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일곱번 들 어갔다 나오매 그는 완전히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병이란 것은 사고로 다친 것이나 장애자가 아닌 이상 많은 퍼센트가 그 배 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님과는아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 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눌려서 걸린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기도는 마귀와의 씨름입니다. 성경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더우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 서 6:10-12)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마귀와의 씨름이며 레슬링입니다. 그 씨름과 레슬 링을 중간에 포기하면 안됩니다. 마귀는 결사적으로 덤벼들지만 우리는 완 전한 대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에 대해서 완전하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귀신아, 너는 이미 십자가에서 무장해제되 었다. 물러갈찌어다"라고 외치고 마귀에 대해서 일곱번, 끝까지 마귀가 물 러갈 때까지 저항해야 되는 것이빈다. 우리의 기도는 마귀를 괴롭힙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마귀는 번거로 워지고 괴로워지고 견딜 수가 없어 고함을 치고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아람의 장권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흙탕물에 들어가서 일곱번 목욕한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의 제 물이 된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기쁘게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둥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여호수아 앞의 여리고 성이나, 삼년 가뭄에 처한 엘리야나 그 당시에 결코 치료 불가능한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나 모두 인간적으로 볼 때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에 맞섰습니다. 불가능과 절망만이 눈에 보일 뿐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의심을 정복하고 마귀와의 대결에서 이기고 자신 들을 온전히 순종의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불가능은 하나님의 가능입니다. 인간의 절만은 하나님 의 소망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여주리라"(예레미야33: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알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을 하나님은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됩니다. 그 기도는 우리가 마치 여호수 아처럼, 엘리야처럼 그리고 나아만처럼 일곱번 기도하는 것, 완전한 믿음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마귀에게 대적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제물이 되어서 주님 중심으로 순종하고 일어날 때 마귀의 진은 훼파되고 하늘의 보좌는 움직이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은총이 다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게 기도할 때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가 지고 밤이나 낮이나 계속해서 부르짖으며, 불퇴전의 믿음을 가지고 뒤로 물 러가지 말고 계속 외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주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불퇴전의 기도를 할 때 이 마귀의 진 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좋 은 예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둘러싸고 돔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아주 적절한 좋은 예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 아는 그 백성들과 더불어서첫째날에 한번 돌고,둘째날,셋째,넷째,다섯 째,엿새날 동안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이레째는 그 성을 일곱 바퀴 돌고난 다음에 일지히 고함을 칠때 여리고 성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만에 무너뜨리지 않고 왜 칠일동안 여리고성을 돌게 하고 여리고성이 무 너지게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전에 온전 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지 안하는지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에는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인내가 살아있는 온전한 믿음 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돈 장면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아마
첫째날 그들은 여리고성을 돌면서 그 철벽성을 눈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아! 저런 철벽성이 무너질 수가 있을까' 그들은 진에 와서 그것을 생각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이튿날 그들은 그만 낙심하여 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에 돌아와서 눈에 보이는 그 성벽에 대해 기도하고 거기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했습니다. 이튿날 또 그들이 성을 돌때 성에 있는 모든 여리고의 군대들과 그 백성들 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이고 더 무장히 잘돼 있고 더 튼 튼해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조롱하는 소리와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 소리 를 듣고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이 진에 돌아와서 과연 저 성이 무너질 것인 가 저 성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고 또 기도하고 거기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그들은 극복을 해야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삼일 되는 날은 돌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일어나서 삼일째 그 성을 도는데 가만히 보니까 분위기가 절대 로 무너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사일, 오일, 육일째가 되어도 무너질 아무 런 징조도 보이지 않습니다. '칠일째 여리고성을 도는데 끝까지 말씀을 믿 어 볼만 한가' '정말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 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데 말씀만 믿고 돌아도 될 것인가' 그러한 마음 의 회오리 바람을 그들은 기도와 믿으으로 극복을 해야만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칠일날 일곱 바퀴를 돌고난 다음 그들은 믿음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든 의심과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속에 깊은 평안의 지점에서 도달했을 때 그들의 고함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소리가 되었고 그 믿음 소리에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보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완전한 믿음에는 도착할 때까지 하나님은 이레 동안 여리고 성을 돌고 그 모든 시련을 극복 한 후 믿음에 완전히 서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단호히 믿고 나서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 응답에 시일이 지체되는 것은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 입니다. 마태복음 18장18절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하늘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 서 풀리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응답을 방해하는 마귀의 세력을 묶어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 때 이미 믿음의 밧줄은 여리고 성을 묶고 있었습니다. 두 바퀴 돌 때는 두번 감기고 세 바퀴 돌 때는 세번 감긴 것입니다. 칠일째 일곱 바퀴 돌 때까지 믿음의 밧줄은 여리고 성을 칭칭 동여 매었습니다. 마지막 고함은 감긴 그 믿음의 밧줄을 잡아 당긴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입니다. 마귀는 끝까지 결사적으로 저항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끝까지 대적해야 합니다. 일곱번 도는 것은 "완전히 대적하라절대로 물러가지 말아라끝까지 대적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일곱번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제사드리는 행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렸지만 오늘날에는 산 제물로 제사를 드려 야 됩니다. 제물이란 죽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고집이 죽고 자기 중 심이 죽고 인본주의가 죽고 불순종이 죽고 완전히 하나님, 그 발 앞에 내 자신을 내어 놓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이처럼 하나님께 자기를 드려서 완 전히 순종하는 그러한 삶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 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는 주의 것 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를 일곱번 돈다는 것은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산제물로 드릴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지나가면 성이 무너집니다. 우리의 문제의 성이 무너지고 고 통의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귀의 진이 휘파되는 것이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이와 같은 기도의 요건이 성립되어야 되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낙 심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2.엘리야의 갈멜산 일곱번 기도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삼년 육개월 동안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도전장 을 던졌스빈다. 바알의 선지자 4백50인, 아세라 선지자 4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달라고 요청했스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은 각각 송아 지 한마리를 가져다가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리고느니 엘리야는 야웨의 이름을, 바알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을 불러 불 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바울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오전이 지나고 저녁 소재 때가지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무너진 야웨의 단 을 수척하고 각을 뜬 송아지에 불을 부은 후 "야웨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 게 응답하옵소서"(열왕기상18:37) 라고 간구하자야웨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엘리야는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잡아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난 후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서 삼년 육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 은 땅에 비가 내리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한 후 사환에게 비 내릴 징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일곱번을 반복했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야 바다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습니다. 서경 에 보면 얼마나 그가 간절히 부르짖었던지 이 허리가 굽어져서 머리가 무 릎 사이에 넣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면서도 '가뭄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메말라 버렸는데 내가 기도한다고 비가 오겠는가'라고 의구심을 품었을지도 모르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의심들을 끈질기게 기도했스빈다. 그러나 일곱번 기도한 후 징조가 나타났스빈다. 종이 돌아와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 엘리야는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다가 일어나서 하늘이 깜깜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삼년 육개월만에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진 것입니다. 이러므로 엘리야는 온전한 믿음에 도달 할 때까지 마음에 조그마한 의심도 없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서 그 모든 것을 극복했고 마음에 완전한 믿음이 생겨날 때까지 뒤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려할 때 원수 마귀의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다니엘 이 자기 조국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응답이 없습니다. 십일을 기도해도 응답 이 없습니다. 같이 기도하던 사람들은 낙심해서 다 뒤로 나가떠러졌스빈다. 다니엘 손자 남았스빈다. 그는 십일일, 십이일. 금식하면서 계속 기도했 습니다. 이십 일일째 되자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고 나타나서 "은총을 크게 받 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가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다네일10:11)고 권면했습니다. 그가 이어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일도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드로가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 가 만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내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다니엘 10:12-14)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고 마귀의 진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위해서는 기도드리는 자가 온전한 순종으로 나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산 제사를 요구했습니다. 하 나가링께서 백살에 낳으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했 스빈다. 그것은 이삭을 제물로 받으시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전 적으로 순종하는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백살에 낳은 아들을 잡 아서 각을 떠서 장작 위에 넣고 불을 붙여서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 아브라 함은 두말하지 않고 순종해 그 아들을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 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칼을 내리도록 친히 명령하셨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순 종하지 않고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순종의제사를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감동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완전히 제물이 될 때까지 하나님게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완전한 믿음,원수 마귀에 대한 완전한 대적, 그리고 완전한 산 제물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3.나아만 장군과 문둥병과 요단강에서의 일곱번 목욕 칠은 완전 숫자입니다. 완전히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마귀를 대적하고 완 전히 순종의 제물이 되기를 하나님은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건이 구비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아람의 대장군 나아만은 임금을 위해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아람은 구제했으므로 국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명예와 지위와 권세가 있었지만 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현대를 사는 세상 사람들 같습니다. 이십 세기에 사람들은 옛날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과학이 발달되고 영화롭게 산다고 하지 마는 그 속은 영적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죄악의 문둥병, 하나님을 대적 하는 문둥병이 그들을 갉아 먹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문둥병이 낫지 않습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 죄악을 십자가에 대신 짊어지고 몸찢고피르리띵려 죽으시고 이를 극복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영적인 문둥병인 죄를 다 사해버리고 지옥에 가지 아니하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날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소녀가 집에서 집안 일을 돕고 있는데 그 소녀가 말하기를 "우리 주인이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 엘리사에게 보이 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 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나아만 장군은 임금에게 얘기해서 이스라엘로 갔 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위세당당하게 장군의 옷을 입고 말들과 병사를 거느 리고 당당하게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엘리사의 문 앞에 나아만과 그 병사들이 서 있자 엘리사는 사자를 보내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몰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열왕기하가 5:10)고 전하게 되었 습니다. 이 말에 나아만 장군은 노발대발했습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 저가 내 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야웨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열왕기하 5:1
1)라고 불만을 토했습니다. 그는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열왕기하 5:12)고 언성을 높 이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습으로 떠났스빈다. 종들이 나아와서 선지자의 명을 따르도록 간청하자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 곱번 몸을 담그자 그 살이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이 완전한 순종을 하는지 시험에 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군사들이 보는 가운데서 요단강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한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까 여전히 문둥병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야, 이거 창피당하고 말았다. 우스꽝스럽게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했을지 도 모릅니다. 나아만은 두번, 세번. 엘리사의 명대로 일곱번 몸을 씻었습니다. 창피와 의심을 이기고 일곱번 몸을 물에 씻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어 린 아이의 몸같이 변하고 문둥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가 일곱번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은 여간한 믿음의 시련과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믿었습니다. 그 완 전히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일곱번 들 어갔다 나오매 그는 완전히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병이란 것은 사고로 다친 것이나 장애자가 아닌 이상 많은 퍼센트가 그 배 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님과는아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 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눌려서 걸린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기도는 마귀와의 씨름입니다. 성경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더우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 서 6:10-12)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마귀와의 씨름이며 레슬링입니다. 그 씨름과 레슬 링을 중간에 포기하면 안됩니다. 마귀는 결사적으로 덤벼들지만 우리는 완 전한 대항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에 대해서 완전하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 원수 귀신아, 너는 이미 십자가에서 무장해제되 었다. 물러갈찌어다"라고 외치고 마귀에 대해서 일곱번, 끝까지 마귀가 물 러갈 때까지 저항해야 되는 것이빈다. 우리의 기도는 마귀를 괴롭힙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마귀는 번거로 워지고 괴로워지고 견딜 수가 없어 고함을 치고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아람의 장권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흙탕물에 들어가서 일곱번 목욕한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의 제 물이 된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기쁘게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둥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여러 사건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여호수아 앞의 여리고 성이나, 삼년 가뭄에 처한 엘리야나 그 당시에 결코 치료 불가능한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나 모두 인간적으로 볼 때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에 맞섰습니다. 불가능과 절망만이 눈에 보일 뿐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든 의심을 정복하고 마귀와의 대결에서 이기고 자신 들을 온전히 순종의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인간의 불가능은 하나님의 가능입니다. 인간의 절만은 하나님 의 소망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 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여주리라"(예레미야33: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알 수 없는 크고 비밀한 일을 하나님은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됩니다. 그 기도는 우리가 마치 여호수 아처럼, 엘리야처럼 그리고 나아만처럼 일곱번 기도하는 것, 완전한 믿음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마귀에게 대적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제물이 되어서 주님 중심으로 순종하고 일어날 때 마귀의 진은 훼파되고 하늘의 보좌는 움직이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하나님의 은총이 다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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